급속히 수 늘어가는데도 현행 국제법 체계에서 난민 지위 인정받지 못해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해 11월 말 영국 이민당국은 새롭게 강화된 이민 정책을 내놨다. 6개월 이상 영국에 머물고자 하는 일부 가난한 나라 국민들이 입국사증(비자)을 발급받으려면 의무적으로 결핵 검사를 받아야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영국 정부는 이미 방글라데시, 수단, 탄자니아, 타이 등의 출신자에게 입국에 앞서 전염병 관련 검사를 받도록 해온 터였다. 여기에 중국, 에티오피아, 케냐,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국, 짐바브웨 등이 추가됐다. 지난 500여 년 동안 유럽인들이 이른바 ‘신대륙’으로 ‘진출’하면서 각종 질병을 퍼뜨려 인종학살에 버금가는 행태를 저질렀던 역사가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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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면 1m 상승하면 베트남 1천만명 이재민
인류의 역사는 이주의 역사다. 더 나은 삶을 찾아 정든 땅을 떠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유엔 인구국이 지난 2000년에 펴낸 의 추정치를 보면, 약 1억7천만 명이 태어난 곳을 떠나 새로운 땅에 정착한 이주민이다. 유럽에만 이주민이 2천만 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관리형 이주민’으로 불린다. 일자리를 찾아 떠나온 숙련 노동력이란 얘기다. 하지만 대부분은 다른 선택이 없어 이주한 이들이다. 물론 불법체류자도 상당수다. 이들 대부분은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하며 새 삶을 꾸려나간다. 정든 고향을 떠나온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난 이들도 있지만, 정치·종교적 박해를 피하기 위해 낯선 땅에 둥지를 트는 이들도 있다.
여기에 최근 국제적 인구 이동의 새로운 원인이 하나 추가됐다. 화석연료 사용의 부산물이자 지구 온난화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가 지구적 차원의 집단 이주를 부추기는 요소로 등장한 것이다. 이름하여 ‘환경난민’이다. 그들의 이주 원인이 바로 자신들이 영위하고 있는 고에너지 소비형 생활방식이란 점은, 영국을 비롯한 이른바 ‘선진국’ 국민들에겐 다소 ‘불편한 진실’일 게다.
지난 2002년 국제적십자사가 내놓은 를 보면, 오세아니아주 일대에서 기후와 관련한 재난으로 인한 사망자는 1970년대에 비해 1990년대 21%나 늘었다. 1970년대 27만5천여 명이던 이재민도 1980년대 120만 명으로 늘더니, 1990년대 들어선 1800만여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이는 1970년과 비교해 65배에 이르는 규모다. 지구 온난화는 비단 기상 이변에 그치지 않는다. 해수면 상승은 일부 지역에서 재난을 영구적 상황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위원회(IPCC)가 지난 1998년에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해수면이 1m 상승할 때마다 방글라데시에선 300만ha의 땅이 물에 잠기면서 1500만~2천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베트남에선 전국적으로 약 250만ha가 물에 잠기면서 1천만 명의 이재민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인도양의 섬나라 몰디브는 본섬의 85%가 물에 잠기면서 약 30만 명의 난민이 인도와 스리랑카 등 인근 국가로 이주할 것이라고 IPCC는 내다봤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난 1985년 펴낸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환경적 변화로 삶의 질이 심각하게 훼손됐을 뿐 아니라, 존재 자체가 위험해지면서 전통적으로 살아온 장소를 강제로 떠나게 된 이들”을 ‘환경난민’으로 규정했다. 그럼 한 나라의 영토가 모두 물에 잠기면서, 그 나라 국민 모두가 ‘환경난민’이 돼 다른 나라로 집단 이주해야 하는 경우는 어떨까? 투발루의 예에서 보듯 이는 결코 상상의 영역이 아니다. 국제사회가 이미 현실로 맞닥뜨린 문제다.
‘환경적 박해’개념 도입해야
한 나라의 영토가 송두리째 사라진다면, 그 영토에 기반한 국적 개념도 살아남기 어렵다. 그 국가가 점유하고 있던 배타적 경제수역(EEZ)과 해상 국경은 또 어떻게 해야 하나? 기후변화가 지구촌이 집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세계 시민’이란 새로운 개념이라도 만들어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렇듯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난민의 등장은 국제법의 기본 개념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환경난민은 가뭄이나 토양침식, 사막화, 삼림파괴 등 환경 문제와 이에 따른 인구학적 압력, 극단의 빈곤 등으로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 더 이상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이들은 대안이 없기 때문에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안정된 삶을 찾아 이주를 선택한다. 물론 이런 환경난민이 모두 자기 나라를 떠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자국 내에서 이주를 선택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 환경난민 대다수가 가까운 장래에 고향 땅으로 돌아갈 기약 없이 반영구적으로(또는 영구적으로) 삶의 터전을 등지고 있다는 점이다.”
노먼 마이어스 영국 옥스퍼드대 그린칼리지 교수는 지난 2005년 5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제13차 경제포럼에서 발표한 ‘환경난민: 떠오르는 안보 문제’란 제목의 발제문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마이어스 교수는 “가장 최근에 포괄적 조사가 이뤄진 지난 1995년 당시 세계적으로 환경난민은 최소 2500만 명에 이른다”며 “이는 정치적 억압이나 종교적 박해, 종족 간 분쟁 등에 따른 이른바 ‘전통적 난민’이 2700만 명에 이른다는 점과 비교할 때 상당한 규모”라고 밝혔다.
그는 또 “각종 자료를 종합하면 오는 2010년까지 환경난민 규모는 1995년의 두 배 규모로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며 “오는 2050년에 이르면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등의 영향으로 1억5천만 명의 환경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유엔 등이 추정한 오는 2050년 전세계 예상 인구가 90억 명인 점을 감안할 때, 환경난민이 지구촌 전체 인구의 1.5%에 이를 것이란 얘기다.
그럼에도 현행 국제법 체계에서 환경난민은 ‘난민’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다. 난민권을 규정하고 있는 제네바협정은 난민을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에 속하거나 정치적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 자기 나라를 떠났거나, 아예 국적을 포기한 채 돌아가려 하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가혹한 가난을 피해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나는 전세계 수많은 이들을 ‘경제적 유민’으로 분류해 난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국의 진보적 연구기관인 ‘새경제재단’(NEF)은 지난 2003년 9월 펴낸 ‘환경난민: 난민권 인정을 위하여’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해수면 상승을 비롯한 기후 관련 재난은 결국 ‘선진국’ 국민들이 화석연료에 기반한 고에너지 소비형 삶을 살아가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며 “그럼에도 현행 국제법 체계 아래서 환경 문제로 인해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하는 이들에겐 난민권이 부여되지 않으며, 이에 따른 부담은 오로지 재난 국가 스스로 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모두 48쪽 분량의 이 보고서에서 앤드루 심스 새경제재단 정책국장은 “국제법 체계에 ‘환경적 박해’란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의 행위로 개인에게 고통이 초래되는 것은, 그것이 정치적인 것이든 환경적인 것이든 마찬가지로 취급돼야 한다”며 “환경적 박해로 정든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는 정치적 난민과 마찬가지로 난민권이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스 국장은 이어 “지구촌 경제활동의 80%는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으며, 에너지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전제이기도 하다”며 “가난한 나라보다 부유한 나라에서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것은 당연하므로, ‘오염자 배상’이란 단순한 원칙에 따르더라도 책임 있는 쪽에서 환경오염으로 인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조차 인정 안해
그럼에도 국제사회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환경난민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난민을 보듬기 위해 만들어진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조차 현행 국제법 체제 아래서 환경난민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거듭 밝히고 있다. 그러는 사이 지구 온난화는 이어지고, 환경난민의 규모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새경제재단은 보고서에서 “전통적 난민 기준이던 정치·종교적 이유와 무력 갈등에 따른 박해에 그칠 게 아니라, 환경 파괴와 그에 따른 재앙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환경난민을 다룰 새로운 국제협정이 마련돼야 한다”며 “지구촌 차원에서 환경난민에 대한 ‘생태적 부채’를 갚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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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클랜드=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환경난민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클라우스 보셀만(55) 뉴질랜드 환경법센터 소장(오클랜드대 교수)은 “선진국이 도덕적 책임에 입각해 환경난민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를 3월5일 오클랜드대에서 만났다.
수몰 위기에 처한 투발루인들을 환경난민으로 보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기존의 난민은 정치적으로 정의돼왔다. 환경난민(environmental refugee)은 이와 다른 형태다. 이미 20여 년 전부터 환경 파괴로 인해 아프리카나 아시아 일부 지역 주민들의 물 접근권이 약화된 사례 등이 거론됐다. 반면에 환경난민의 하위 개념인 기후난민(climate refugee)은 최근에 논의되고 있다. 언론에서 먼저 남태평양 주민들을 기후(환경)난민의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주민들 스스로 자신을 ‘난민’으로 규정하고 난민 신청을 한 사례는 보지 못했다.
투발루인들이 고향을 떠나 뉴질랜드로 모여들고 있다.
=지구 온난화 시대에는 이민법을 어떻게 제정하고 해석해야 하는지가 문제로 떠오른다. 그런 점에서 유럽연합과 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는 극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사막화가 진행되는 아프리카 주민과 해수면이 상승하는 남태평양 섬나라 주민들의 이주 선호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다가올 사태를 준비하지 않고 있다. 경제 논리로 이주 노동자 문제를 바라봄으로써 결국 이민 규정을 폐쇄적으로 운용한다. 환경난민은 잘못을 저지른 자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도덕적 문제다.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은 나라가 책임져야 한다. 미국 그리고 뒤를 잇는 오스트레일리아, 이에 못지않은 뉴질랜드 등이 환경난민을 수용해야 한다.
구체적인 해결 방법은?
=현재 국제법상 환경난민 개념이 없다. 두 방법이 있다. 각국이 국내법을 손질해 환경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 하나는 1992년 기후변화협약을 발전시켜 지속 가능한 개발의 취지로 국제협약 체제를 출범시키는 것이다. 날로 늘어날 환경난민은 세계에 절망을 가져다줄 것이다. 환경난민의 존재를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근거를 새 협약에 마련해야 한다. 국제법적으로 통용되는 난민도 결국은 약자에 대한 도덕적 책무에서 비롯됐다. 나치 시절 세계 각국이 유대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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