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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세고 오래가는 반대 여론

등록 2007-02-08 00:00 수정 2020-05-03 04:24

정부가 광고 물량공세 펼쳐도 협상 기간 내낸 찬반 여론 엎치락 뒤치락…협상 성과가 거의 없었다는 것 자체가 여론의 탄력을 못받게 만들어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 초안에서 ‘반드시 지킬 부분과 전략적 개방이 필요한 분야를 조화시킨 이익의 균형 도출’을 협상 목표로 천명했다. 물론 협상 과정에서 얻은 것과 내준 것에 따라 한-미 FTA를 둘러싼 여론의 향배는 달라진다. 비록 얻은 것이 더 많지 않고 최소한 ‘이익의 균형’이라도 유지되고 있다면 애초의 협상 목표에 부합하는 것이므로 찬성 여론이 확연히 높아져야 할 것이다.

지난해 7월27일 조사에선 반대 61%까지

그런데 7차 협상을 앞둔 시점에서 여론 동향은 결코 정부 쪽에 우호적이지 않다. 문화방송이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전국 19살 이상 성인 남녀 1514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28∼29일에 실시한 조사에서 한-미 FTA 체결 찬성은 42.8%, 반대는 43.8%로 나타났다. 정부가 “개방과 경쟁을 통해 선진 경제로 도약하자”고 내세운 대형 프로젝트임에도 40∼50%의 반대 여론이 공고하게 형성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반면 가 ‘리서치앤리서치’(R&R)와 공동으로 지난 1월27일 전국 19살 이상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는 한-미 FTA 찬성 의견(49.2%)이 반대 의견(29.1%)을 웃돌았다. 그러나 상당수가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무응답층이었다. 특히 체결 시기는 ‘차기 정부 이후’라는 대답이 56.5%인 반면, ‘연내’라는 응답은 18.1%에 그쳤다. 아무튼 정부가 협상 개시를 선언하면서 2006년 연내 타결을 공언했지만, 강력하고 안정적인 반대 여론에 밀려 협상을 진전시키지 못한 채 해를 넘긴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정부는 지난해 8월 이후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를 구성해 대대적인 홍보 작업에 나섰다. 지난해 말까지 각종 매체 광고비로 쓴 돈만 총 67억원에 이른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 쪽은 “정부의 집중적인 물량 공세에 따라 찬성 여론이 다소 늘고 있지만 찬성 여론의 질이나 강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며 “정부가 국민 세금을 투입하는 물량 공세를 펴고 있음에도 협상이 계속되면서 구체적인 정보가 제공될수록 반대 여론이 증가하거나 공고화되고 있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본협상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해 4월 중순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벌인 조사에서는 한-미 FTA 반대가 55.2%로 찬성(39.5%)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그런데 1차 협상 중인 6월7일 한국방송이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벌인 조사에서는 반대 29.2%, 찬성 58.1%로 찬성이 훨씬 더 많았다. 그 이후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듯했으나, 점차 반대 여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열린 2차 협상 직전(7월6일) 문화방송이 코리아리서치와 공동으로 벌인 조사에서는 반대 42.6%, 찬성 45.4%였고, 2차 협상 도중(7월12일) SBS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는 반대 52.3%, 찬성 30.4%로 나타났다. 다음날인 7월13일 리서치앤리서치가 벌인 한-미 FTA 국민의식 조사(19살 이상 성인 남녀 800명 대상)에서는 응답자의 46.5%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고, 43.4%는 ‘향후 결과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대답했다. 급기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벌인 7월27일 조사에서는 한-미 FTA 반대 61%, 찬성 30%로 압도적인 반대 여론이 형성됐다. 당시 2차 협상은 약제비 적정화 방안 등을 둘러싼 대립으로 일방적인 분과회의 불참이 잇따르는 파행 사태를 겪었다.

졸속 강행 폭로와 부처 간 갈등

협상이 열리지 않은 8월에는 한-미 FTA 반대 활동도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한-미FTA체결지원단이 8월 발족했다. 이 때문인지 한국방송이 8월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벌인 전화 조사에서 한-미 FTA 협상 찬성은 54.6%로, 반대(45.4%) 의견을 앞질렀다. 지난해 9월 초 3차 협상부터 관세 양허안과 서비스·투자 유보안에 대한 본격적인 협상이 개시되면서 찬반 여론은 오차범위를 오가는 혼전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특히 10월23일부터 제주에서 열린 4차 협상 즈음의 여론조사 동향을 보면, 10월26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한-미 FTA 반대 51.9%, 찬성 40.5%로 반대가 많았다. 그러나 10월 말 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벌인 조사(전국 성인 남녀 1003명 대상)에서는 찬성 45.1%, 반대 41.1%로 팽팽했고, 같은 시기에 문화방송이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한 조사(전국 성인 남녀 1천 명 대상)에서는 찬성 48.8%, 반대 42.3%로 나타났다. 정부가 4차 협상 결과에 대해 “양쪽의 이견을 좁혀나가기 시작하면서 협상 가속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등 실질적 진전을 거뒀다”고 밝혔음에도, 찬성 여론이 좀체 불붙지 않은 것이다.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협상이 주고받기식으로 진행되는 국면에 접어들면서 졸속 강행을 보여주는 문건들이 폭로되고, 협상팀과 정부 부처 간의 내부 갈등이 잇따라 터져나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외교통상부와 재정경제부 중심의 협상 추진에서 다른 정부 부처들이 이견을 보이거나 반발하면서 갈등이 노출됐고, 이것이 국민들의 반대 여론을 강화한 것이다. 물론 분과 협상이 몇 차례 결렬되는 등 협상 과정에서 한-미 양쪽은 요란하게 마찰음을 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국민들한테 내세울 별다른 협상 성과가 없다 보니 찬성 여론도 확산되지 못한 것이 아닐까?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내부적으로 부처 간 갈등이 많은 것으로 비쳐졌지만, 협상팀은 ‘FTA 협상을 깨지 않으려면 조용히 하고 있으라’고 각 부처를 위협했다. 의약품, 농산물 등 국내에서 저항이 큰 분야에서 주로 이런 갈등이 노출됐는데 마찰하는 모양새만 갖춘 여론 호도용에 가깝다. 정부가 뭘 따내고 받는 것을 넘어 FTA 협상의 성사 자체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반대 여론이 더욱 굳어지고 있는 양상이다”고 말했다.

여론 의식해 8차 협상까지 언급

정부는 연말로 접어들면 한-미 FTA 저항 곡선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연말에 무역구제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낸다면 ‘미국 시장 수출이 대폭 늘어난다’는 논리를 앞세워 찬성 집단의 지지를 공고히 하고 반대 집단의 반발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유력한 카드로 들고 있던 무역구제마저 5차 협상에서 요구안을 15가지에서 5가지로 대폭 축소했다. 깨질 위기에 놓인 협상의 불씨를 살리고 한-미 FTA를 계속 끌어가기 위해 오히려 출혈을 감수한 셈이다. 사실 제조업 수출은 애초에 대표적인 협상 성과로 홍보할 수 있는 ‘전략 분야’로 기대됐으나 이것마저도 꼬이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무역구제와 자동차·의약품, 쌀과 섬유가 ‘빅딜 품목’으로 짜이는 복잡한 함수의 방정식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정부는 비판 여론이 여전히 강력하게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타결을 강행하면 관망적인 여론이 부정적 여론으로 급선회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일까? 최근 김종훈 수석대표는 8차 협상까지 언급하고 있다. 범국본 쪽은 “협상 자체의 성과가 거의 없다는 점 자체가 FTA 지지 여론이 탄력을 받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이는 애초부터 협상 전략이 잘못됐음을 방증하는 것이고, 정부는 여전히 득실보다는 선진 경제 도약이라는 구호만 내걸고 여론에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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