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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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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만큼은 절대 사절”

등록 2006-09-20 00:00 수정 2020-05-02 04:24

파업 장기화의 배경에는 박태준 회장부터 시작된 포스코의 무노조 철학이… 건설업체 사장들 다수가 포스코 출신, 파업 가담자 일 빼앗긴다는 우려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포항지역 건설노동자 파업과 관련해 지난 9월13일 노사 잠정 합의안이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 예상을 깨고 부결되면서 사태는 다시 혼미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장기화하고, 오랫동안 일을 못해 생존 위협을 받으면서도 건설노동자들이 작업장 복귀를 거부한 채 끝까지 싸우고 있는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지만 포스코와 직접 맞닿아 있는 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절대로 노조와 타협은 없다”는 포스코의 일관된 방침이다.

타협 불가 외치는 포스코와 건설업체

지난 2004년 포항지역 건설노동자들은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면서 한 달 넘게 파업을 벌였다. 당시 노조 쪽은 발주처인 포스코와 원청인 포스코건설을 상대로 싸우지 않는 한 사태가 해결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직접 교섭 당사자인 전문 건설업체 외에 포스코를 상대로 요구사항을 던지기 시작했다. 노조가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쥔 상대로 포스코를 지목하자 이때부터 포스코는 협력업체 건설노동자와의 노사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에 들어갔다. 그러나 결론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타협은 없다. 노동조합을 무력화해야 한다.” 올해 파업에 돌입하자 포스코와 전문 건설업체들은 “아예 공사를 접었으면 접었지 절대로 물러서거나 노조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버텼다.

흥미로운 건 전문 건설업체 사장과 임원들 중에서 상당수가 포스코나 포스코건설 출신이라는 점이다. 특히 올해 사용자 쪽 교섭대표인 ㅁ사 박아무개 사장과 지난해 사용자 쪽 교섭대표였던 ㅅ사 오아무개 사장도 포스코 쪽 출신이다. 또 ㅎ사 김아무개 사장을 포함해 노사 교섭에 참여하는 사용자 쪽 사장들 가운데 20∼30%는 예전에 포스코나 포스코건설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포항제철소 안에서 협력업체로 일하는 전문 건설업체는 기계설치·전기·보온·목공·철근에 걸쳐 100여 개에 이른다. 전문 건설업체 중 한 곳인 ㅅ사의 관계자는 “포스코 또는 포스코건설에서 임직원으로 일했던 전문 건설업체 오너들이 상당수 있고, 오너 말고 업체 임원 중에서 포스코나 포스코건설에서 일했던 사람도 꽤 있다”면서 “오너와 임원을 합치면 이곳 포항제철소에서 일하는 전문 건설업체의 40% 정도가 포스코 출신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이 의미하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ㅅ사 관계자는 “포스코 출신일수록 공사의 전문성도 있고, 이 현장의 생리와 설비를 잘 알기 때문에 더 나은 것 아니냐”면서 “이 업체 사장들이 포스코 쪽의 얘기를 참고사항으로 듣긴 하지만 (포스코의) 오더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노사 간 쟁점을 둘러싸고 포스코 쪽과 수시로 의견교환을 하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포항지역 전문 건설업체들이라고 해서 포스코 일감만 수행하는 건 아니고 전국의 다른 사업장에서도 공사를 동시에 진행한다. 하지만 포스코와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업체일수록 포항과 광양제철소에서 맡고 있는 물량 비중이 훨씬 더 높다. 포스코 출신 전문 건설업체 사장들이 주로 사용자 쪽 교섭대표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건설산업노조연맹 최명선 정책실장은 “교섭을 진행하다 보면 테이블에서 포스코 쪽의 입장을 전달해주듯 말하는 전문 건설업체 사장들도 간혹 있다”며 “이는 포스코와 전문 건설업체 대표가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가 출입 금지하면 포항 떠날 수밖에

파업이 장기화하고 있는 또 한 가지, 포스코와 직접 관련된 쟁점은 “파업 철회 이후 포스코 쪽이 파업에 가담한 일부 노동자들한테 일감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포스코 제철소에서 전문 건설업체들이 공사를 따내고 나면 이런저런 사람들을 고용해 일을 하겠다고 명단을 포스코에 통보하고, 그러면 포스코가 개인별 출입증을 발급해준다. 그런데 포스코가 특별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어떤 해명도 하지 않은 채 “이 사람은 사업장 질서 유지를 위해 출입증을 발급해줄 수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 노동자는 포스코 제철소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포항에서는 파업을 풀더라도 포스코가 몇몇 노동자들에 대한 영구 출입 제한조처를 내릴 것이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당초 이지경 노조위원장 등 일부 지도부에 한정될 것이라던 출입증 발급 거부 대상이 200명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소문도 파다했다. 건설산업노조연맹 최명선 정책실장은 “포스코 쪽이 명시적으로 밝힌 건 아니지만, 파업에 앞장선 사람들한테 출입증을 발급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몇 등급으로 나눠 일부는 제철소 현장 출입을 영구적으로 막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SK 울산공장의 건설노동자 파업 때도 직장 복귀 이후 회사 쪽이 노동자들을 4등급으로 분류해 일부 파업 주도자들에게는 현장 출입증을 안 줘서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포스코 쪽은 이런 소문에 대해 어떤 명확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단지 소문일 뿐이고 포스코는 파업 사태의 당사자도 아니기 때문일까? 물론 전문 건설업체가 노조 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을 준다면 부당노동 행위가 되지만 포스코는 직접적 고용 당사자가 아니므로 출입증을 안 준다 해도 법적 부담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출입증 발급이 거부된 노동자들은 실질적 해고를 당한 것이나 다름없고, 일을 하려면 결국 포항을 떠날 수밖에 없다.

포항제철소뿐만 아니라 광양제철소 역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사내 용역업체들의 오랜 파업으로 몸살을 앓았다. 광양제철소 내 용역업체인 태금산업(현 덕산)과 삼화산업노조가 회사의 직장폐쇄에 맞서 4년간 싸움을 벌인 것인데, 전국금속노조 광양지역지회 정용식 지회장은 “당시 포스코가 ‘협력업체에서 노동쟁의가 발생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약관을 들이대면서 쟁의 행위를 원천 봉쇄했다”고 말했다. 당시 포스코는 협력업체에서 쟁의 행위나 노조 결성 움직임이 포착되면 어김없이 약관과 함께 계약 해지 협박 공문을 보내곤 했는데, 삼화산업에 2003년에만 다섯 차례의 협박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정 지회장은 “‘포스코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라”는 노조의 요구에 포스코는 ‘협력업체의 문제일 뿐’이라면서 발을 뺐지만, 뒤에서는 쟁의행위 금지 약관을 앞세워 파업에 개입했다”고 말했다. 현행 포스코건설의 공사계약 일반약관 제49조는 ‘파업으로 인해 공기 지연을 초래한 업체는 모든 공사(제철소 및 외부 공사)에 대해 입찰 참여를 1년간 제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1990년 ‘민족포철’ 노조, 서너 달 만에 와해

조셉 인너스·애비 드레스가 1992년에 쓴 를 보면, 당시 박득표 포항제철 부사장은 “회장님(박태준)은 오랫동안 노조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회사와 달리 우리는 노사 간의 마찰이 거의 없었는데, 그건 박 회장 자신과 그의 ‘한가족’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라고 적고 있다.

현재 포스코에도 노조는 설립돼 있다. 그런데 조합원은 20여 명에 불과하고, 노조 전임자는 4명이나 된다. 사실상 진정한 의미의 노조라고 보기는 어렵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직후 각 사업장에 노조 결성 바람이 거세게 불었는데 당시 포항제철도 예외일 수 없었다. 박태준 당시 회장은 1988년에 “노조를 허용하겠다”고 선언했고 곧바로 노조가 설립됐다. 그리고 1990년 ‘민족포철’이라는 현장조직 집행부가 노조를 장악하면서 조합원 2만 명을 거느린 민주노조가 출범했다. 포철노조정상화추진위원회(노정추) 이건기 위원장은 “90년 당시에 회사가 포항지역 조합원들을 광양제철소로 전출해버리겠다, 포철공고 출신으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고 있는 조합원들은 군대에 보내버리겠다, 주택융자금을 안 주겠다는 등 온갖 협박을 앞세워 노조 탈퇴 공작을 벌였고, 결국 불과 서너 달 만에 노조가 와해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포스코의 ‘조직인사실 HR연구반’이 올해 3월 작성한 노무관리 문건을 보면, 포스코는 임직원들을 성향에 따라 분류해 노정추와 주변인물, 민포(민족포철) 출신, 노조활동 관심 표명자 등 비우호 계층(180명)은 책임관리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또 제4대 노경협의회(노사협의회) 선거에서는 회사 정책에 우호적인 직원들이 근로자위원으로 출마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노동조합 선거에서도 건전 성향의 우호적인 집행부 당선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건기 위원장은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대한중석 사장으로 있던 1960년대에 대한중석의 노조 문제로 골치 아픈 일을 많이 겪은 것으로 안다. 그래서인지 박 명예회장은 포항제철 태동 때부터 무노조 정책을 고수했다”며 “아무리 포스코가 변화하고 기업 윤리경영을 외치고 있지만, 오랜 시절 박 회장 밑에서 길들여진 포스코 임원들도 ‘노조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체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광양제철소와 포항제철소에서 터진 협력업체 노동자 파업 사태가 모두 장기화하는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 따져보면 맨 끝에 박태준 명예회장의 무노조 철학이 놓여 있는 건 아닐까?



포스코 통근버스의 진실

“몰래 대체인력 투입했다”며 파업 개입 의혹 제기하는 노조

포스코는 포항 건설노동자 파업 사태와 관련해 자신들은 제3자일 뿐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포항지역 건설노동자들은 “포스코 본사 점거농성은 포스코가 애초에 합법 파업임에도 불구하고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등 직접 개입했다. 즉 포스코가 점거농성의 발단을 제공했다”고 반박한다. 대체인력 투입 여부는 포스코가 포항지역 건설노동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16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변수다. 물론 불법 파업이든 합법 파업이든 포스코 본사 점거 자체에 따른 시설피해 보상 책임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포스코가 본사 점거를 유발한 책임이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노동조합은 “포스코 본사 점거 이전에 포스코 통근버스가 대체인력을 실어날랐다. 포스코가 개입하지 않고서는 포스코 통근버스의 동원이나 작업현장 출입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노조가 제기한, 대체근로 정황을 보여주는 사례 몇 가지를 보자. 포항제철소에서 일하려면 누구나 출입증이 있어야 한다. 노조 쪽은 우선, 출입증 발급에 원래 한 달 이상 걸리는데 파업 직후 인적사항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날그날 출입증이 무더기로 발급됐다고 주장한다. 또 포스코 정문에서 조합원들이 일일이 대체근로자 투입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바코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출입증이 여러 장 발견됐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사진이 박힌 출입증을 들고 있던 작업자도 여럿이었다고 한다. 특히 덤프차 뒤편 화물칸에 대체인력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숨겨 들어가다 정문에서 발각되자 숨어 있던 사람들이 도망치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노조 쪽은 “포스코 내 통근버스를 운영하는 ㅇ회사의 노조 조합원들이 ‘이 통근버스 안에 대체인력들이 많다. 버스 바깥에 수건을 걸어놓을 테니 그것이 내걸린 통근버스에 들어와 대체인력을 확인하면 된다’고 제보를 해왔다”고 말했다.
이번 파업으로 포항제철소 파이넥스 공장 건설이 중단되자 포스코는 파업 도중 이 공장의 공사 물량 가운데 400억원어치의 공사를 맡을 원청회사를 포스코건설에서 서희건설로 전격적으로 바꿨다. 원청을 아예 다른 업체로 돌려버리면 대체인력 투입 논란을 비켜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항지역 전문건설업체 중에서 포스코건설외에 서희건설에도 협력업체로 등록된 업체는 매우 드물다. 따라서 전문건설업체와 소속 건설노동자들이 서희건설을 통해 포스코 일감을 따내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결국 파업에 가담한 노동자는 포항을 떠나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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