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기지에 공원 대신 도심 부대를 몰아넣겠다는 국방부의 욕심… 동두천도 부산도 “돈 주고 사가라”는 정부 때문에 갈등 불거져
▣ 원주·동두천=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charisma@hani.co.kr▣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이승현(34) 원주녹색연합 사무국장은 “국방부가 이럴 수는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에서, 용산기지를 둘러싼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공방이 계속되는 사이 원주에서도 ‘캠프롱’을 둘러싼 소리 없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어찌됐든 ‘공원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용산과 달리, 사회의 주목을 제대로 받지 못한 원주의 싸움은 서울보다 더 힘겹고 외로워 보였다.
반대운동 하지 않겠다는 시장
이 국장은 “50년 만에 미군기지로 묶였던 땅이 시민들에게 돌아오는데 제대로 된 대화나 토론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원주에 자리한 미군 부대는 캠프롱(10만4천 평)과 캠프 이글(13만9천 평) 등 두 곳으로 캠프롱은 2001년 5월20일 터진 기름 유출 사고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때 그 부대’다.
맥팔랜드의 독극물 방류, 캠프롱 기름 유출, 녹사평역 지하수 오염 등 미군 환경오염 사고가 잇따르던 2000년과 2001년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비로소 미군 환경오염 문제에 ‘개안’하게 된다.
미군기지가 터 잡고 있는 모든 도시들이 그렇듯이, 원주에도 캠프롱과 캠프 이글은 건전한 도시 발전을 가로막는 ‘독버섯’이었다. 미군이 처음 주둔하던 1950년대 원주 인구는 7만여 명이었고, 5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수는 28만 명으로 늘어났다. 최재석 한라대 교수는 2005년 9월15일 열린 토론회에서 “군사시설의 도심 공간 점유로 효율적이고 균형적인 개발은 물론 도시의 불균형적 발전이 오랫동안 지속돼왔다”고 주장했다.
그 때문에 ‘돌려받는 미군기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원주 시민들의 큰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 2002년 3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미 두 나라는 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라 캠프롱과 캠프 이글을 2011년까지 반환하기로 합의했다. 2년 뒤 두 나라는 10차 미래 한-미 동맹정책구상(FOTA)에서 그 일정은 2008년까지로 3년 앞당겼고, “돌려받는 기지에 시민공원을 만들자”는 원주 시민들의 꿈도 이뤄진 듯 보였다.
뜻밖의 암초가 나타났다. 주인공은 국방부였다. 국방부와 제1야전군사령부는 캠프롱 터에 “도심에 산재한 통신단, 방공중대, 보충대 등 6개 부대들을 옮기겠다”는 계획을 밝혀 원주 시민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당장 원주 지역 50여 개 시민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2004년 11월 ‘원주 미군기지반환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를 꾸려 투쟁을 시작했다. 범대위는 그동안 국무총리실에 ‘미군기지 국방부 사용 반대 의견서’를 냈고, 국방부 장관과 1군 사령관을 상대로 면담을 요청했고, 원주시장에게는 “힘을 합쳐 반대운동을 펼치자”고 제안했다.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결국 내용은 하나였다. 총리실은 말이 없었고, 국방부 장관은 “만나지 않겠다”고 회신을 보냈는데, 시장은 범대위 간부들의 면전에서 “반대운동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권순원 원주시 기획예산과 계장은 “국방부에서 미군기지를 쓰겠다는 입장이 너무 완고했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국방부 눈치만 살핀다
국방부가 그 땅에서 노렸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돈’이었다. 2003년 11월8일 원주시장이 국방부 용산사업단장에게 보낸 ‘주한 미군기지(캠프롱) 지역 용도변경 요청 회신’을 보면 땅을 팔아 돈을 벌고자 했던 국방부의 속내가 드러난다. “우리 시 태장동 소재 주한미군 기지(캠프롱) 이전 계획과 관련 용도지역 변경(녹지지역 → 주거지역 내지는 상업지역) 요청 건에 대하여 (중략) 현재의 용도지역인 녹지지역으로 존치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회신합니다.” 국방부는 미군이 떠난 기지 터의 용도를 바꿔 팔아먹으려 했지만, 원주시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용도변경의 명분은 물론 ‘전가의 보도’인 주한미군 이전비용 마련이었다.
미군이 떠나는 기지 터를 둘러싼 갈등은 결국 ‘돈’ 때문이다. 국방부는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미군에게 줄 돈을 만들기 위해 도시계획의 근간을 흔드는 엄청난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은 2004년 6월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지역 등의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만들면서, 그 안에 “국방부 장관이 임의로 용도지역을 변경해 민간에 매각할 수 있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이는 서울시와 시민단체들의 반발에 밀려 무효화됐지만, 미군기지 터를 지방자치단체에 팔아 “미군기지 이전비용을 댄다”는 기본 정신은 그대로 관철됐다. 싼값에 땅을 받아야 하는 지자체들은 국방부의 눈치를 봐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동두천시 미군현안대책과 오영준씨는 “결국 문제는 땅 매입 비용”이라고 말했다. 동두천시는 2005년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에 맡긴 용역 연구를 통해 앞으로 돌려받는 기지 터를 어떻게 활용할지 밑그림을 그려둔 상태다
동두천시에 미군과의 작별은 위기이자 기회다. 동두천시에 사는 미군부대 근로자는 3280명, 미군을 상대로 장사하는 가게는 362개나 돼 단기적인 타격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 대가로 시 행정구역의 42%인 40.53㎢나 되는 엄청난 땅을 돌려받게 된다. 동두천시는 캠프 님블·캠프 모빌·캠프 캐슬·캠프 케이시에 새 도심을 만들고, 그 뒤편인 캠프 호비·김볼스 훈련장에는 대형 골프 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 캠프 케이시의 동쪽에는 커다란 대학도시도 조성된다. 이 땅을 다 사려면 2004년 공시지가 기준으로 2조2443억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지만, 2006년 동두천시의 예산은 1732억원, 그나마 재정자립도는 24.6%에 불과하다. 오씨는 “정부의 특별한 배려가 없으면 ‘50년 기지촌’ 동두천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산, 고달픈 투쟁의 결실 맺을까
그나마 관심을 모으는 것은 부산의 ‘캠프 하야리아’다. 부산시는 2005년부터 ‘공원조성추진기획단’을 만들었고, 시민단체와 전문가 등 20명으로 구성된 자문단은 “어떤 공원을 만들지”를 놓고 활발히 토론을 벌였다. 그 배경에는 1995년부터 이어진 ‘하야리아부지 반환운동본부’의 고달픈 투쟁이 있었음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김해몽(45)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부산시와 시민단체가 적극적으로 반환 투쟁을 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부산시는 정부에 공원을 지으려는 것인 만큼 “땅을 공짜로 달라”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돈 주고 사가라”는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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