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와 골프쳐도 초연할 거라 믿으면서도 골프를 그만둔 어느 판사의 고백… 법관 충원 시스템에 문제 없는지 반성하고 적절한 보완책 강구하는 계기 되길
비리혐의 판사 구속
▣ 이현철(가명)/ 현직 판사
마음이 어지러운 탓인지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이런저런 옛 사건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사라지곤 합니다. 애써 실마리를 잡아 윤리에 관한 몇몇 단상들을 모아보았습니다.
‘좋은 교수’와 ‘나쁜 교수’사이
여러 해 전 한 대학 골프학과 교수의 부패 사건이 있었습니다. 골프학과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프로 골퍼가 꿈입니다. 그러나 대학이 개설한 강좌는 이론에 치우쳐 있었고 실기라고는 교내 스윙 연습이 고작이었습니다.
프로 골퍼의 꿈을 이루기 어렵자, 학부모들이 나섰습니다. 입학하자마자 학부모들은 적지 않은 돈을 거둬 교수에게 전달하면서 과외로 정기적인 골프장 실전 훈련을 시켜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학부모 대표는 비용과 보수를 구분하지 않았고, 교수도 이를 묻지 않았습니다. 관행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낮은 학점에 불만을 품은 한 학부모의 고발로 수사가 시작됐는데, 검사는 과외 훈련비 중 개인 용도로 쓰인 것으로 의심되는 금액에 대해 횡령죄로 교수를 기소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해 보이지만 보는 이에 따라 견해가 다릅니다. 저 역시 이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먼저 과외교육을 거부하는 이는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지만 학생들의 실력을 높일 수 없기에 성과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최악의 인간형입니다. 최선의 인간형은, 받은 돈을 학생들을 위한 훈련비용으로만 쓰고 증빙자료를 챙겨 장부를 정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돈을 훈련비용으로 쓰면서 적은 금액을 개인 용도로 쓴 사람은 차선의 인간형이고, 반대로 많은 돈을 개인 용도로 챙기면 차악의 인간형입니다. 이 두 인간형에 대한 사회의 평가는 판이합니다. 전자는 ‘좋은 교수’, 후자는 ‘나쁜 교수’입니다.
검사의 주장은 최선의 인간형만이 무죄이고, ‘좋은 교수’와 ‘나쁜 교수’는 모두 유죄라는 전제 위에 서 있었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나쁜 교수’만이 형사 사안으로서의 유죄이고, ‘좋은 교수’는 징계 사안이라는 게 제 견해였습니다. 학부모들이 교수에게 건넨 돈 중 일부는 분명히 과외수업을 하는 데 대한 보수의 의사로 건네졌을 것이고 그 범위 안에서 개인 용도로 쓰는 행위는 횡령죄가 아니라고 봤습니다. 징계사안인 이유는 받은 돈 중 얼마가 과외수업에 대한 보수이고, 얼마가 비용인지를 분명히 하지 않았고, 설사 이를 명확히했더라도 교수와 학부모라는 불평등한 권력적 지위를 이용해 개인적 이익을 도모했다는 오해를 받을 만한 부적절한 처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성공적인 수술에 감사하는 환자로부터 선물을 받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공무원의 경우에는 직무 관련 선물을 금지하는 법이 있습니다. ‘공무원의 청렴의무’라고 합니다. 일반 공무원의 청렴 의무와 비교할 때 ‘판사의 청렴 의무’는 한층 더 강력한 것입니다. ‘법관윤리강령’은 법관이 공평무사하고 청렴해야 할 뿐 아니라, 공정성과 청렴성을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법관윤리강령도 비슷한 규정을 두어서 법관은 일체의 활동에서 부적절한 처신뿐 아니라 부적절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처신을 피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영장 기각은 접대의 대가였을까
10여년 전 일입니다. 친구들과의 모임에 갔는데 쑥덕쑥덕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이 저를 보고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습니다. 판사니 변호사니 하는 얘기를 얼핏 들었기 때문에 무슨 일인지를 캐물었습니다. 한참을 추궁하자 대학교수 친구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동료 교수가 주말에 골프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음주운전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습니다. 부인은 친구를 찾아가 울면서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휴일인 다음날 친구는 동료 교수의 부인과 함께 영장이 청구된 시골 법원 앞으로 찾아가 수소문 끝에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전화 연락을 받은 사무장이 나와 사무실 문을 열고 변호사님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변호사가 나타나지 않자 친구는 초조해졌습니다. 변호사를 기다리는 사이에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어떻게 하느냐, 변호사가 당장 오지 않으면 다른 변호사를 찾아가겠다고 사무장에게 따졌습니다. 사무장은 걱정하지 말라면서 지금 우리 변호사님이 영장 당직 판사님과 골프를 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오후 늦게 운동복 차림으로 나타난 변호사는 다시 한번 영장 당직판사와 골프를 치고 오는 길임을 확인해주었습니다. 친구는 믿음직한 마음을 갖고 변호사와 수임 계약을 맺었고 그 믿음이 헛되지 않아 교수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습니다.
이 얘기를 듣고 친구에게 따져물었습니다. 왜 그 얘기를 나한테 쉬쉬했느냐, 혹시 그 영장 당직판사가 골프 접대의 대가로 영장을 기각했다고 믿는 것은 아니냐? 친구는 머뭇거리면서 대답했습니다. 자기나 동료 교수 부인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판사님인데 제가 알게 되면 그 판사님에게 누가 될 것 같아서 그랬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설명을 했습니다. 나도 고등학교 선생님에 대한 음주운전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착한 일 하라고 가르치고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인데 구속된 전력을 가진 선생님이 어떻게 교단에서 당당할 수 있겠느냐? 만일 선생님으로서의 자격을 박탈해야 할 정도로 큰 잘못을 저지른 선생님이라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책임을 묻겠지만 한 번 음주운전을 한 것을 갖고 다시 교단에 서서는 안 된다고 할 정도로 큰 잘못이라고 할 수야 있겠느냐? 나는 판사가 당연히 그런 사정까지도 참작해 영장재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마 그 판사님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제 설명을 듣고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제 말을 모두 믿는 표정은 아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 저는 골프채를 처분하고 골프를 그만두었습니다. 골프 친구인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해 왔을 때에도 다른 사건과 동일한 기준에서 사건을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갖고 있습니다. 그런 친분 관계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십수 년 전의 일입니다. 현재는 판사들이 변호사와 부적절한 교제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변호사와의 부적절한 교제는 없어졌지만 최근 발생한 판사들에 대한 몇 건의 비리 의혹 사건에서는 변호사 아닌 사업가와의 부적절한 만남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같은 판사로서 부끄럽고 참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매도와 격정적 비난으로 이어지지 않길
이 사건들은 판사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판사들의 윤리의식을 높이고 점검하는 제도적 장치와 사법 절차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제도적 방안이 제안되고 검토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판사를 임명하고 재임명하는 우리의 법관 충원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를 다시 한 번 반성해보고 적절한 보완책이 강구되기를 바랍니다. 사법시험과 연수원 성적순으로 판사를 충원하고서 성적 좋은 사람들이 모두 판사로서 갖추어야 할 공정하고 청렴한 품성과 인격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법원과 판사와 우리의 사법제도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비판은 그러한 발전을 추진하는 긍정적인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최근의 비리 의혹 사건으로 촉발된 우리 사회의 비판이 사법 절차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을 확산하는 매도와 격정적인 비난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판사들이 좋은 판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판사들은 공정하고 청렴하며 성실하게 재판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치욕스러운 사건입니다만, 우리 사회가 이를 발전의 계기로 삼는 지혜와 역량을 발휘하리라 믿습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계엄의 밤, 사라진 이장우 대전시장의 11시간…“집사람과 밤새워”
‘28시간 경찰 차벽’ 뚫은 트랙터 시위, 시민 1만명 마중 나왔다
[단독] 노상원 ‘사조직’이 정보사 장악…부대 책임자 출입도 막아
롯데리아 내란 모의…세계가 알게 됐다
28시간 만에 시민들이 뚫었다...트랙터 시위대, 한남동 관저로 [영상]
“안귀령의 강철 같은 빛”…BBC가 꼽은 ‘올해의 이 순간’
조진웅 “내란수괴가 판칠 뻔… 진정한 영웅은 국민들”
공조본, 윤석열 개인폰 통화내역 확보…‘내란의 밤’ 선명해지나
국힘 추천 조한창 헌법재판관 후보자, 윤석열 탄핵 심리 “믿고 지켜봐달라”
“역시 석열이 형은 법보다 밥이야”…모두가 행복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