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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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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사막의 신기루

등록 2006-06-22 00:00 수정 2020-05-02 04:24

포플러 나무들을 베고 에어컨 소리 윙윙 내며 들어선 우리 동네 이마트 … 싹쓸이식 경영으로 자신이 상징하는 ‘멋진 한국’을 불안하게 만든다

▣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유통업체는 이마트이다. 이제 이마트는 단순한 유통업체의 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

그것은 21세기 한국 사회의 한 상징이 되었다. 그것도 경제적 차원을 훌쩍 넘어선 문화적 차원의 상징이다. 이마트는 시나브로 우리의 일상과 의식에 지배적 영향력을 미치게 된 것은 아닐까?

조용한 월계동이 북적북적

몇 해 전에 내가 사는 월계동에 전국에서 가장 큰 이마트가 들어섰다. 철길 옆 시멘트 공장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이마트가 들어선 것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동쪽에는 중랑천이 흐르고 서쪽에는 경춘선 등의 철로가 있어서 조용한 곳이다. 이런 곳에 이마트가 들어서다니 영 마뜩지 않았다. 아무래도 동네가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였다. 이마트가 들어서면 오가는 사람들이며 차들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건,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이건,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이유에서 이마트가 들어서는 것을 환영했던 것 같다. 첫째, 이마트가 들어서면 살기가 아주 편해진다는 것이었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집값도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이마트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 영향력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해 내가 처음으로 배운 것은 이런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이마트가 문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진입로 부근에 이마트를 비난하는 커다란 현수막이 나붙은 것이었다. 내용인즉슨 ‘이마트는 사막의 신기루’라는 멋있는 문구였다. 이마트에서 가동하는 대형 에어컨이 문제의 원천이었다. 이마트는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1년 내내 대형 에어컨과 난방기를 가동한다. 이 때문에 상당한 소음이 발생하고, 따라서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 주민들이 항의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그들로서는 대단히 억울하고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원래 아파트와 시멘트 공장 사이에는 수령이 70~80년은 된 커다란 포플러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정말로 아름다운 나무들이었다. 여름에는 그 푸른 잎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졌다. 성북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며 그 나무들을 보노라면, 아파트 단지가 거대한 포플러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나무들을 보며 살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윙윙거리는 커다란 소음을 내는 커다란 시멘트 상자를 보며 살게 된 것이다. 이마트가 그 아름다운 포플러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 없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끔찍한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이사를 간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현수막은 오래지 않아 사라지고 말았다. 이마트와 주민들이 어떤 합의를 했던 모양이다. ‘사막의 신기루’를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합의를 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직접적 피해를 입은 소수 주민들의 항의가 있기는 했지만, 우리 동네의 이마트는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로 붐비게 되었다. 주위의 하계동이나 공릉동은 말할 것도 없고 멀리 삼양동이나 금호동에서도 이곳으로 물건을 사러 온다. 주말 저녁에는 가족끼리 삼삼오오 이곳에서 장을 보려는 사람이나 보고 가는 사람들로 보도가 북적인다. 여기저기서 몰려온 자동차들로 차도가 밀리고 주차장이 꽉 차는 것은 물론이다. 아름다운 포플러 나무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이마트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마트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대형마트가 호황을 누리는 이유는 시대의 변화에 부합하는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신뢰성이다.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 값으로야 재래시장 쪽이 더 싸다고 하지만, 물건의 신뢰성까지 고려하면 그렇다고 하기 어렵다. 둘째, 편리성이다. 이것은 다시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여러 종류의 물건들을 집약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것, 아기들을 데리고 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자동차를 몰고 가기에 좋다는 것이다.

시장을 넘어선 이데올로기적 장소

오늘날 한국 사회는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경제대국’이다. 30년에 걸친 고도성장의 결과로 이렇게 놀라운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빈곤층은 여전히 있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는 이루어졌다. 신뢰성과 편리성을 위해 돈을 더 지불할 사람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마트 등의 대형마트가 전체 유통시장을 장악하는 거대한 구조적 변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앞으로 오랫동안 이 구조를 해체하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마트 등이 낳고 있는 여러 문제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크게 네 가지 문제를 들 수 있는데, 주변의 생활공간에 미치는 피해, 크고 작은 주위의 상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수많은 납품업체나 업자들에게 미치는 막강한 권력, 그리고 그 노동자의 권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문제 등이 그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떠올리노라면 이마트에 가는 일은 결코 즐겁지 않다. 이 때문에 가능한 한 이마트에 가지 않고 다른 상점들을 이용하려고 애쓰게 된다.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이마트는 단순한 시장 이상의 장소인 것 같다. 그곳은 고도성장을 통해 이루어진 ‘풍요사회 한국’ ‘소비사회 한국’을 체감하고 학습하는 장소이다. 널찍하고 밝은 공간과 깨끗하고 활기찬 사람들은 그 자체로 ‘멋진 한국’을 상징한다. 이 점에서 이마트는 분명히 이데올로기적인 장소이다. 여기서 이마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마트는 포플러를 베어 없애는 것과 같은 ‘싹쓸이식 경영’으로 ‘멋진 한국’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마트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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