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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인사는 작별인사?

등록 2006-01-10 00:00 수정 2020-05-02 04:24

여당의 반발에 깔려있는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운영과 정치노선에 대한 불신
정권 재창출보다 ‘노무현발 정계개편’ 꾸미는 음모라는 설까지 흘러나와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유시민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한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을 계기로 폭발한 당·청 갈등이 일단 봉합 국면에 접어들었다. 당내 잠재적 대권주자인 김근태·정동영 두 전 장관이 대통령의 인사권 존중 의사를 밝히고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인사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중대 고비를 넘긴 것이다.

‘청와대 리모컨 정당’ 만들었나

하지만 청와대에 대한 여당의 불만이 근본적으로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열린우리당의 상당수 중진 의원들이 노 대통령의 1·2 개각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김영춘·이종걸·최재천 의원 등 1월4일 항의 성명을 발표한 18명의 초재선 의원이 당·청 관계의 근본적 재정립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 의원들은 왜 한솥밥 먹던 유시민 의원의 장관직 임명에 그토록 거부감을 표출하며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인가.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은 유 의원에 대한 정서적 반감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 밑바닥에는 노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정국 운영과 정치 노선에 대한 불신과 의심이 자리잡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가장 큰 불만은 참여정부 출범 직후 구체화된 노 대통령의 당정 분리 원칙이 사실상 청와대 독주와 여당의 식물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입성 직후인 2003년 대통령이 여당의 인사와 공천을 좌지우지하던 제왕적 총재 시대의 낡은 패러다임은 끝내야 한다며 당정 분리 공약을 실행에 옮겼다. 여당 일각에서는 원칙은 옳지만 급격한 당-청 관계 단절은 정보 및 의사소통의 부조화 등 문제가 많다며 이유기가 필요하다고 외쳤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정무수석실과 정무수석직 폐지를 강행하고, 당무와 공천에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노 대통령의 한 핵심 측근은 “대통령은 여야를 떠난 국가적 과제에 몰두하고, 당무와 정치적 문제, 선거후보 공천 등은 여당이 자율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이 지켜져왔다”면서 “17대 총선 때 노 대통령은 그 흔한 공천 민원조차 하지 않았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정서는 전혀 다르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대통령은 당정 분리를 다짐했고 외형상 그 형식 요건도 갖췄지만 노 대통령이 당의 요구나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자신의 구상에 따라 정국을 뒤흔들면서 여당은 결국 뒷수습만 하는 처지가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말만 당정 분리였고, 사실상 대통령이 당을 쥐고 흔들었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들은 △2004년 총선에서 압승한 뒤 실세인 김근태 원내대표와 정동영 전 의장을 장관으로 전격 징발해 여당을 이른바 ‘바지사장’ 체제로 바꿔 당의 힘을 뺀 것 △2004년 가을 여권의 국가보안법 폐지 논쟁을 불필요한 이념 논쟁으로 확전시킨 것 △2005년 한나라당과 대연정 드라이브 등 구체적인 사례를 끝없이 들이댄다.

실제 노 대통령은 2004년 가을 천정배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보안법 개정론자들을 힘겹게 다독이며 폐지당론을 모아가는 상황에서 “보안법은 칼집에 넣어 역사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선언해 여당의 온건론자와 한나라당의 극단적 반발을 자초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그해 말 “오랫동안 군림한 법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겠냐”며 사실상 보안법 논쟁 중단을 지시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섣부른 개입과 말바꾸기는 여당의 위상을 ‘청와대 리모컨 정당’으로 격하했다.

“연정론은 당 무력화한 대표적 사례”

여당 일각에서는 당·청 의사소통 부재를 지적하며 정무수석 부활을 요구했지만, 청와대는 이를 거부했다. 오히려 노 대통령이 수석 당원으로 의사를 표현했으면, 당 스스로 변화된 시대에 맞게 능력을 발휘해 폐지했어야 하는데 청와대만 바라보며 젖 달라 울부짖는다고 당의 무능력을 비판했다.

상당수의 여당 의원들은 2005년 한 해를 뜨겁게 달군 노 대통령의 연정론은 당정 분리를 주창하는 노 대통령이 당을 무력화한 가장 명백한 사례로 손꼽는다. 노 대통령의 한나라당과 대연정 제안에 대해 많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지지층의 정서와 괴리된 채 지역구도 타파라는 자신의 정치적 과제에만 과도하게 집착한 것으로 광주 민주 영령을 모독하는 악재라며 끊임없이 중단을 요구했다. 몇몇 개혁 성향 의원들조차 노 대통령을 주관적 시대 인식을 강요하는 ‘계몽 군주’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지역구도를 극복할 수 있는 선거제도에만 합의해준다면 2선 후퇴, 임기 단축도 가능하다며 연정 드라이브를 몇 개월씩 밀고 나갔고, 여당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야당에 선거제도 개편 협상을 요구하며 따라갔다. 하지만 당 지지율은 더욱 곤두박질쳤고, 10·26 재선거에서 참패했다. 안영근 의원 등 당 일각에서는 연정론으로 지지층을 이탈시킨 노 대통령 책임론을 제기하며 탈당을 요구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청와대 역시 선거는 당의 책임이라고 지적했고, 정세균 의장 중심의 임시지도부는 ‘대통령 책임론’은 해당 행위라며 갈등을 서둘러 봉합했다.

결국 1·2 개각과 유시민 장관 기용으로 불거진 당·청 갈등은 여당 의원들에게 대통령의 정국 운영 프로그램과 노선이 여당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게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불러왔다. 그동안 여당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올 5·31 지방선거 승리와 2007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에 ‘올인’하려는 여당 의원 다수의 정서와는 다른 정국 운영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었다. 이미 대통령에 선출된 만큼 나름의 정국 구상에 의해 현재의 정당 체제를 뒤흔들고 정치판을 새로 짜는 이른바 ‘노무현 음모론’이 그것이다.

청와대 “정권 재창출 열망”

음모론을 제기하는 여당 관계자들은 당정 분리를 명분으로 여당과 거리두기, 여당 의원 다수와 핵심 지지층이 반발하는 한나라당과 연정에 대한 과도한 집착, 정동영계와 호남 출신 의원들이 제기한 민주당과 합당론에 대한 거부감, 기간당원제 완화에 대한 비판, 모처럼 당의 중심을 잡고 있는 정세균 의장의 산업자원부 장관 징발 등을 그 판단 근거로 들고 있다.

호남 출신의 한 의원은 “열린우리당에 정권 재창출보다 더 중대한 의무는 없다. 군사독재의 잔존세력인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줄 수는 없다”면서 “하지만 연정론, 민주당과 합당 반대, 비토세력이 많은 유 의원의 장관직 기용 강행 등을 볼 때 대통령은 좀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의원 가운데는 노 대통령이 국민 정서와 5월 지방선거 등을 감안해 당이 반대한 유시민 카드와 정세균 장관 징발을 강행한 것을 열린우리당과의 결별 절차로 보는 시각이 있다. 노 대통령은 민주개혁 세력의 대통합 없이는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며 반한나라당 연합전선 구축에 승부를 걸고 있는 여당 주류와는 전혀 다른 정국 구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대한민국이 망하지는 않는다”며 집권보다 3김이 만든 지역분할 선거제도 개혁, 보스 중심의 후보 공천제도 개혁 등 공정한 정치적 게임룰 정착에 더 관심을 둔 유 의원을 장관에 기용한 데는 노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의심한다. 노 대통령 자신과 정세 분석 및 정치적 과제에 대한 코드가 같은 유 의원 장관 임명이 여당을 뒤흔들려는 ‘노무현발 정계 개편’ 구상이라는 것이다. 아예 유시민 의원을 중심으로 한 나름의 후계 구도를 설정하고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의원들도 있다. 한 재선 의원은 “이미 대통령이 된 노 대통령은 대선에 지더라도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 개선, 당정 분리, 당원이 주인 되는 기간당원제 등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전면에 내걸고 정면승부할 수 있는 주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청와대는 물론 이런 음모론을 부정한다. 노 대통령과 가까운 한 여권 인사는 “노 대통령은 누구보다 현실 권력의 힘과 정치적 역학 관계에 밝은 고수”라며 “대통령 자신이 시작한 주요 국정 과제를 이어가기 위해 여당의 지방선거 승리와 정권 재창출을 열망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대선에 지더라도 원칙론을 고수하는 유시민 카드를 뽑아들 것”이라는 여당 일각의 의심은 근거 없는 억측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벌여놓은 일을 뒷감당하면서 당이 식물화됐다고 비판하는 의원들은 여전히 노 대통령의 ‘판갈이 음모’에 대한 의혹을 거두지 않고, 노 대통령과 유 의원 입각을 바라보는 당내 각 계파 간 계산법도 달라 당·청 갈등이 깔끔하게 정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환청이 들린다, 레임덕…레임덕…

채찍과 당근 쓸 수도 없는 처지, 최악의 당청관계가 예고하는 현상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역대 대통령의 임기 말은 대개 명절 때마다 방영되는 명화의 재방송 버전이었다. 권력은 이리저리 새고, 충성파 권력 핵심들 가운데 일부가 딴생각을 품기 시작한다. 신문엔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대통령 스스로가 소속 정당을 슬며시 떠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노태우(92.9.18) → 김영삼(97.11.7) → 김대중(2002.5.6) 등 3명의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 잇따라 집권당 당적을 버린 바 있다. 당 대선 후보와의 갈등이나 여론 악화 등이 주요한 이유였다. 탈당은 언제나 레임덕이라는 불길에 쏟아지는 휘발유였다.
그렇다면 ‘유시민 사태’로 당·청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가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역시 레임덕을 예상보다 빨리 맞을까. 김형준 국민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노 대통령 스스로가 레임덕을 가속화시킨 행위”라며 “당에 대한 영향력은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이번 사태는) 대통령 특유의 밀어붙이기라고 볼 수 있는데 본인 스스로 여유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집권 4년차가 어려운 해가 될 것임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이전 정권들에서도 나타났던 ‘집권 4년차 신드롬’이라는 시각으로 이 사태를 보고 있다.
그러나 이전 정부와의 단순 비교가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 이전 정권에서 보였던 레임덕의 흐름이나 궤도를 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이미 취임 초 집권당인 민주당을 탈당한 바 있다. 레임덕이 풍랑이라면, 쓰나미와도 같은 탄핵사태도 겪었다. 임기 중 총선도 더 이상 없다. 국회의원이 대통령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되자, 초·재선 의원이 툭하면 대통령의 탈당을 공개적으로 요구할 정도다. 더는 샐 권력이 없는 셈이다. 보스정치 시대까지 대통령이 집권당을 쥐락펴락할 수 있었던 ‘돈’(정치자금)과 ‘권력’(공천권과 인사권)을 노 대통령은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처지다. 따라서 당근과 채찍을 쓸 수 없는 처지가 된 뒤 레임덕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이전 대통령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당·정 관계’(또는 ‘당·청 관계’)가 기존의 수직관계에서 수평관계로 변해야 하며 현실적 방안으로 당·정 분리를 내세웠다. 그것은 그가 말하는 ‘분권형 대통령제’의 조건이기도 하다. 기회 있을 때마다 참여정부가 그리는 당·청 관계가 ‘정치실험’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말한 대로 되려면 정치 현안은 여당이 주도적으로 풀고, 정책은 여당과 일상적 국정 운영을 책임지는 총리가 맡아야 한다. 또 청와대와 대통령은 외교·안보와 중장기적 미래 구상에 전념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당·정 분리’를 넘어 ‘당·정 단절’이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여당과의 관계 설정과 관련해서는 “상당히 초연한 관계지만, 원한다면 언제라도 만나주겠다”는 식으로만 말해왔다. 그러나 청와대의 구심력은 대부분 당의 원심력보다 강했다. 열린우리당 출범 이후 2년 동안 당 의장이 5명이나 사퇴했다는 사실은 이를 웅변한다. 노무현식 당·청 관계를 성공으로 이끄는 열쇳말은 물리력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비전과 통찰력으로 대변되는 정치적 리더십이다. 여당 안팎에서 “당·정 사이의 유기적 통합의 실패는 결국 정치력과 소통의 부재 때문”이며 “여당과도 소통하지 못하면서 야당과의 소통이 가능하다고 본 시각부터가 잘못”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치적 사안에서는 당·정 분리, 정책적 사안에 대해서는 당·정 일치’라는 기계론적이고 이분법적 사고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당·청 관계 개혁 시도는 의회가 대통령의 시녀로 전락했던 과거의 병폐를 시정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진보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시스템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끝까지 ‘실험’에 그친다면 미래는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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