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 경제 분야 미래 예측… 국민소득 세계 2위 국가의 자화상
다들 과열이라고 했던 교육과 통신 미디어 산업이 나라를 먹여살려
▣ 이원재/ <주식회사 대한민국 희망보고서> 저자 timelast@seri.org
오늘은 2050년 1월1일, 오랜만에 서점에 가서 신문을 샀다. 모두가 전자종이니 모바일이니 떠들면서 신문은 이제 서점에서나 찾을 수 있는 물건이 됐지만, 그래도 난 아직 종이신문이 익숙하다. 내가 신문을 들고 사무실에 들어서면 젊은 친구들은 올해 80이 된 내 나이를 떠올리며 속으로 웃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신문의 잉크 냄새가 좋은 걸 어쩌라고. 하기야 젊은 친구들도 신문을 들고 다니는 게 어쩐지 ‘폼’나는 일이라고 인정하는 듯하다.
경제성장률 1%, 제2의 외환위기?
“경제성장률 1%도 안 되는 나라.” 아이고, 또 시작이구나. 사설이 신문 1면에 올라왔다.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 이하로 떨어진다는 어느 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보고 호들갑 떠는 기사다. 참 신기하다. 신문의 호들갑은 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이리도 똑같을까.
한국의 경제 성장이 더뎌진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경제규모는 지금 세계 13위라고 한다. 나이지리아에 추월당했다고 언론이 난리법석이던 게 바로 지난해다. 2025년에 이탈리아와 캐나다를 제치고 세계 9위로 올라섰다고 환호했으니, 순위가 뒤처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브라질, 러시아 같은 나라에 따라잡히더니, 이제 동남아 대표선수 인도네시아와 아프리카 대표선수 나이지리아까지 치고 올라왔다.
그러더니 1년 만에 경제성장률 1% 이야기가 터졌으니 언론은 더 신이 났다. 신문만 보면 한국 경제가 바로 망할 것 같다. 이러다 “제2의 IMF”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려나 모르겠다.
사실 이건 정말 호들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이지리아 인구는 한국의 3배, 인도네시아 인구는 5배가 많다. 어떻게 이런 경제와 우리를 비교하나? 게다가 경제규모 성장은 둔화됐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계속 치솟고 있다. 1999년 아시아 금융위기 극복과 함께 치솟기 시작한 1인당 국민소득은 50년 동안 쉬지 않고 늘어나 올해 드디어 8만달러를 넘어섰다. 순위도 점점 올라서, 2025년에 이미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였고 몇 년 전 일본까지 제쳐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문득 45년 전 언론의 호들갑이 떠오른다. 그때 언론은 경제성장률이 5% 아래로 내려갔다고 난리법석이었다. 그리고 그 예측은 사실이었다. 경제성장률은 그 뒤 5%를 넘은 적이 없다. 2010년대에는 3%대, 2020년대부터는 1%대로 떨어졌고 이제 1% 아래로 간다. 그러면 어떤가? 그러고도 세계 2위의 1인당 소득을 벌어들이고 있고, 삶은 더 풍족해졌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45년 전에 나온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보고서가 그대로 맞아떨어진 셈이다.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와 ‘넥스트11’(방글라데시, 이집트, 인도네시아, 이란, 한국, 멕시코,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필리핀, 터키, 베트남)의 성장잠재력을 분석해 예측했던 그 보고서 말이다.
사실 30년 전에 퇴직한 나는 그 전이나 이후 세대보다 어쩌면 더 풍족하게 산 셈이다. 중견 회사원일 때 가입한 퇴직연금은 주가 상승분을 반영해 높은 수익률을 올려줬다. 젊은 시절 한때는 우리가 나이 들면 고갈되니 국민연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글을 인터넷에 뿌리기도 했는데, 결국 꼬박꼬박 높은 수익률로 챙겨받았다. 물론 우리 애들이 좀 힘들 거다. 연금 납부액이 많이 올랐으니 말이다. 그래도 걔들은 또 그만큼 더 버니까, 세상은 공평한 것 아닌가? 2005년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다섯 배로 올랐으니 말이다.
이제 신문은 접고, 회사에 가서 일해야겠다. 나는 지금 30년 전 사장으로 일하던 회사에서 시간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사장으로 퇴직한 뒤 이곳저곳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다가, 10년 전 친정으로 돌아왔다. 내가 젊을 때만 해도 나 같은 늙은이가 회사에 적을 걸치고 있다면 젊은이들의 눈총이 매서웠을 텐데, 다행히 그런 분위기는 완전히 없어졌다. 해외영업 전문가인 나 말고도 인사·재무·총무 등 여러 분야에서 60살 이상 퇴직자 컨설턴트들이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 물론 기술직에도 컨설턴트 제도는 보편화돼 있다.
다른 차별도 안 되지만, 특히 직장 내 나이 차별은 수십 년 전부터 불법이기도 하거니와 비도덕적인 행위라는 인식이 정착됐다. 주민등록번호에 생년월일이 사라진 지도 오래됐고, 이력서에 생년월일 적는 칸이 사라진 지는 더욱 오래됐다. 한동안은 노인고용 촉진 지원금도 지급됐는데, 이제는 그런 지원금이 없어도 활용할 수 있는 지식만 있으면 기업이 먼저 연락해 채용한다. 하여간 노인들을 노동시장에 받아들여주려고 많이들 노력했고 성과도 컸다.
에듀테인먼트 세계시장을 휩쓸다
여성이 출산 뒤에 재취업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진 지도 오래됐다. 2005년 무렵부터 저출산이 경제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출산 여성 재취업에 대해 정부가 고용지원금 재교육 등을 도입하면서 신경을 많이 썼다. 출산 여성들은 정부보조금을 받으면서 휴직한 뒤 복직하기도 쉽지만, 출산을 계기로 재교육을 받아 전직을 하기도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다. 힘든 출산과 육아 과정을 거치고 가족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이야말로 직무에 더 충실할 수 있다는 인식이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여성 전직이 활성화된 건, 전직 자체가 엘리트 직장인이 거쳐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되는 사회 분위기 덕이기도 하다. 이전에 성실히 일해 좋은 성과를 얻는 직장인이었다면 동떨어진 분야로 전직해도 이전 경력이 직업의 다양성을 더해줄 수 있는 가치로 인정받는 게 보통이다.
노동시장은 외국인들에게도 따뜻해졌다. 한동안은 뜨겁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온 국민이 세금을 모아 외국인 노동자를 환영하고 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도왔다. 그렇게 해서 노동력이 원활하게 공급됐고, 열린 경제 체제를 유지하면서 소득을 불려온 것이다.
우리 회사의 현지 사장도 인도 사람이다. 나는 어쩔 수 없는 구세대인지, 가끔은 인도인의 지시를 받기가 껄끄럽다. 내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인도가 세계 경제 3위에 올라섰다는 거만이 그 사람의 태도에서 은연중에 묻어나온다. 물론 중국인 직원들은 더하다. 중국 경제 규모가 세계 1위에 올라선 지는 이미 한참 됐으니 말이다.
그래도 외국인들이 이 땅에 들어와서 세금도 많이 내고 여기서 소비해 내수경제도 불려주니 참는다. 사실 규모만 컸지 1인당 소득으로 따지면 중국은 아직 3만달러대, 인도는 2만달러대이니 아직 한국의 발치에도 못 미친다. 복지제도, 문화·사회 체제 등 모든 걸 봐라. 우리가 뒤지는 게 있나. 경제성장률과 국내총생산은 숫자일 뿐이다. 하기야 우리도 그런 걸로 자부심 가질 때가 있었다. 귀엽게 봐주자.
잡생각은 그만두고, 이제 회사 일이나 생각해봐야겠다. 내 프로젝트는 우리 회사 에듀테인먼트 콘텐츠의 나이지리아 진출 방안 수립이다. 에듀테인먼트라니 거창하지만, 2005년에 방문 학습지로 시작한 사업이다. 사실 2005년만 해도 다들 과열이고 문제라고 하던 교육과 통신 미디어 산업들이 한국을 먹여살리는 어엿한 산업이 됐다.
이들은 모두 부드러운 ‘소프트’ 산업이다. 우선 한류열풍은 무선통신 과소비와 맞물려 한국을 전세계 콘텐츠 허브로 만들었다. 모바일 콘텐츠 서비스로 눈을 돌린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이미 20년 전 한국으로 본부를 옮겼다. 전세계 모바일 콘텐츠 소비의 선두주자인 한국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처음부터 콘텐츠를 제작하겠다는 것이다. 웬만한 아시아 관련 드라마나 영화는 한국에 있는 콘텐츠 기업들을 통해 생산되고 미국, 유럽으로 수출된다. 거꾸로 미국, 유럽 콘텐츠는 한국에 들어와 시험을 거친 뒤 아시아로 나간다.
이상 교육열은 한국을 교육 콘텐츠 생산기지로 만들었다. 지금 전세계 모든 교육 서비스의 시작은 한국이다. 교육을 오락화한 한국 에듀테인먼트(옛날 말로 사교육)가 몬테소리, 레고 같은 해외 기업들을 제치고 세계 시장을 장악한 지는 벌써 30년이 됐다. 수십 년 동안, 한국 시장에서 실험을 거치지 않은 교육 서비스가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일은 없다. 게다가 오래전 윤리 논란을 거친 뒤 더 단단해진 과학계는 이제 세계 경제의 브레인이자 한국 경제의 뒷심으로 자리잡았다. 탄탄한 과학자들을 갖춘 한국 대학들은 20년 전까지만 해도 독보적이던 미국 최고 대학들을 제치고 세계의 싱크탱크로 떠오르고 있다.
또 잡생각이 길어졌다. 이젠 정말 일을 시작해야겠다. 자동번역기로 나이지리아 신문을 읽는 걸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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