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이어린이집 덕택에 기회를 얻은 ‘소설같은 사연’의 부모와 아이들
시설 지원 중단까지 검토한 여성부는 이들의 형편을 제대로 파악이나 했는가
▣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한돌(가명)이는 5살이다. 아기는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어린이집 식구가 됐다. 한돌이를 낳았을 때 아빠는 20살, 엄마는 18살(고2)이었다. 학생이던 엄마는 아이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어린 아빠는 아이를 감당하기 힘겨웠다. 한돌이는 결국 할머니에게 넘겨졌다.
단란주점에서 자는 아이를 보고 결심
할머니(55)는 “그때 얘기를 다시 꺼내서 뭐 하겠냐”며 웃었다. 아들이 원망스러웠지만, 너무 일찍 세상 구경을 한 손자를 외면할 순 없었다. 당장 생계가 걱정이었다. 50대 중반의 대한민국 여성에게 세상살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더라고요. 앉아서 굶어죽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때부터 할머니는 서울대학병원·고려대학병원·경희의료원을 오가며 중환자들을 돌보는 간병인이 됐다. 한 달에 그렇게 버는 돈이 적을 때는 70만원, 많을 때는 100만원이다. 할머니는 그 돈으로 한돌이 뒷바라지를 하고, 남는 것은 생활비로 쓴다.
수입이 생긴 뒤, 뜻하지 않은 고민이 생겼다. 매일 24시간 3교대로 일을 하다 보니, 아이를 키우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 것이다. 고민하던 할머니에게 뜻밖의 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날아왔다. 평소 할머니의 사정을 딱하게 여기던 서울 성북구 공무원이 “영등포에 있는 영이어린이집에 가보라”고 조언했다. 어린이집을 처음 방문한 그날부터 할머니의 고민은 눈 녹듯 사라졌다. 한돌이가 어린이집의 식구가 된 것은 올해로 4년째.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구김살 없이 잘 크고 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언제 옹알이를 했는지, 키는 몇 cm 컸는지, 이빨은 어떻게 났는지 다 알려준다니까요. 아이 사진첩이 자그만치 8권입니다.”
귀엽게 잘생긴 한돌이는 어린이집에서 인기가 많다. 할머니는 일이 없는 주말이면 손자를 집으로 데려와 같이 잔다. 한돌이는 엄마·아빠가 미국에 공부하러 간 줄 알고 있다. 한돌이는 “할머니랑 집에 가는 날이 제일 좋다”고 말했다. “애한테는 한돌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엄마·아빠가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거든요.” 삶이 모두에게 늘 아름다운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까지 아이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24시간 동안 아이를 맡아준 어린이집 덕분이다.
김희영(32) 서울 영등포구립 영이어린이집 원감은 “모든 아이들을 처음 품에 안았던 때를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에서 ‘24시간 보육’이 시작된 것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혜(당시 5살) 어머니가 어느 날 어린이집으로 찾아와 “아이를 24시간 동안 봐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24시간 보육이라는 개념이 없었거든요. 거절할 수밖에 없었죠.” 그렇지만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노랫가락과 술주정 소리가 뒤범벅된 단란주점 의자에서 허리를 구부린 채 잠들어 있었다. 그때가 새벽 3시였다. 어린이집에서는 당장 아이를 놀이방에 데려와 눕혔다. 그때부터 고행이 시작됐다. 교사들은 일주일에 3번씩 조를 짜 아이들과 어린이집에서 잠을 잤다.
빈곤보단 챙겨주지 못하기 때문
현재 영이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는 49명. 그 가운데 절반이 조금 못 되는 21명이 어린이집에서 먹고 놀고 잠을 자는 ‘24시간 보육’ 아동이다. 그 21명 가운데 20명이 아버지나 어머니가 없는 홀부모 가정 아이들이다. 아이를 병들게 만드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인 궁핍이 아니라 관심 부족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8월 조사한 ‘결식아동 급식지원 현황’을 보면, 지원 대상자 4만7505명 가운데 결식 이유를 ‘경제적 빈곤’으로 꼽은 사람은 36.0%인 1만7116명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밥을 굶길 만큼 가난하진 않지만)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 없거나’(29.4%), ‘보호자가 아프거나’(12.5%), ‘맞벌이를 하느라 바빠’(6.4%) 아이를 챙겨주지 못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 아이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저마다 책 한 권씩은 써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샘물’반 재성이네 집은 엄마가 가출한 뒤, 아버지가 붕어빵을 구워 아이를 키운다. 성주네 어머니는 밤에 야간 업소에서 주방일을 한다고 하는데,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어린이집에서도 잘 모른다. 보연(7)이네 두 자매의 아버지는 주중에는 지방 건설현장에 다니느라 아이들을 돌볼 틈이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보연이 아버지는 쉬는 날에는 어린이집에 들러 수리가 필요한 곳을 직접 고쳐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아프면 손수 병원에 데려가 약을 먹이기도 합니다. 주말에 일이 없을 때는 꼭 아이들을 데리러 오신다니까요. 아이를 기를 형편이 안 되는 것이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은 아닙니다.” 조정미(34) 원장이 말했다.
걸림돌은 여성부다. 여성부의 ‘2005년도 보육사업안내’를 아무리 뒤져도 24시간 보육에 대한 언급은 없다. 여성부 관계자는 “시간연장 보육은 아동을 24시 이전까지 보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말했다. 여성부는 올 7월부터 24시간 보육시설 지원을 중단하는 것을 검토했다가, 한돌이 할머니 등 시설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보호자들의 반대로 “시설장의 재량에 맡기겠다”며 한발 물러난 상태다. 여성부는 전국에 24시간 보육시설이 몇 개이고, 수용 아동이 몇 명인지 통계조차 없다. “아이는 부모님 곁에서 자야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올바르게 자랄 수 있거든요. 24시간 보육시설을 점차 줄여나가야 할 것으로 봅니다.” 서울시와 여성부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 7일 새벽 보모 남편의 폭력으로 하나(3)를 잃은 김아무개(36)씨는 “아이는 어머니 곁에 있어야 좋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포기와 인내를 서성이는 부모에게…
지난해 초 어린이집을 떠난 수인(10)이는 가끔 방학이 되면 어린이집에 놀러 온다. 수인이는 어린이집을 옛날에 살았던 ‘고향’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수인이 6살 때 어린이집 식구가 됐다.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을 했고, 어머니는 새 삶을 찾아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자주 술을 마셨고,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 수인이는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가기가 무서웠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개에 물려 숨진 영인(9)이도 아마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가기가 무서웠을 것이다. 수인이는 서울 양평2동 어린이집 원장님의 손에 이끌려 영이어린이집 식구가 됐다. 아이는 다행히 잘 자라줬고, 아버지가 재혼한 뒤 다시 가정의 품으로 돌아갔다.
24시간 보육시설은 아이들과 부모를 잇는 마지막 끈으로 보였다. “이곳에 아이를 맡긴 부모님들은 질병·실직·이혼 등 견디기 힘든 충격을 이중, 삼중으로 겪고 있거든요. 그럴 때 아이들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견뎌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김 원감이 말했다. 아이들을 무방비 상태로 방치해 하루아침에 ‘파렴치한’ 부모가 돼버린 우리 주변의 평범한 가장들에게 필요했던 것도 자신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 최소한의 시간을 벌어주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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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지낼 형편이 안 되는 부모들은 고아원에 보내란 얘기인가
김희영(32) 서울 영이어린이집 원감은 “여성부가 보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너무 몰라 답답하다”고 말했다. ‘24시간 보육’에 대한 여성부의 공식 입장은 “아이의 정서 발달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자에겐 그 말이 “부모가 기를 형편이 안 되거든, 고아원에 보내라”는 뜻으로 들렸다. 김 원감은 “고아원은 부모들에게는 아이를 버렸다는 죄책감을, 아이들에게는 버림받았다는 상처를 준다”며 “‘24시간 보육’ 시설이 극단적인 선택을 막는 완충지대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성부의 2005년 보육사업 안내를 보면, ‘24시간 보육’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인데.
=여성부는 24시간 보육은 고아원 등 수용시설의 업무라고 말한다.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다. 어린이집은 아이들을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맡아주는 이용시설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이를 맡아 키울 형편이 못 되지만, 아이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부모들도 많다. 이 사람들에게는 수용시설보다는 우리 같은 ‘24시간 보육’ 시설이 더 적합하다.
‘24시간 보육’ 시설의 장점은.
=우리는 부모님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려고 한다. 애들이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서로 의지가 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렇지만 고아원 같은 수용시설에 가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확률이 매우 낮아진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아이들을 버림받았다는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다. 국가 예산을 놓고 봐도, 부모들에게 양육비를 어느 정도 부담시킬 수 있는 ‘24시간 보육’ 시설이 효과적이다.
‘24시간 보육’이 아이에게 나쁘다는 지적도 많다.
=누가 모르겠나. 애들에게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아이들은 가족과 함께 있는 게 가장 좋다. 아이들은 자기를 버린 사람이라도 늘 부모를 그리워한다. 집이 형편없고 초라해도 집에 가는 날에는 친구들에게 “오늘 엄마 온다”며 엄청나게 자랑한다. 우리가 배려해야 하는 것은 아이와 함께 지낼 형편이 안 되는 부모들이다. 적절한 ‘24시간 보육’이 이뤄졌다면, 최근 벌어진 의왕과 안산 같은 사고도 막을 수 있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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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보육’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들은 누굴까. 여성부가 지난해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에 맡겨 조사한 ‘특수(시간연장형)보육 수요조사 및 정책대안연구’를 보면, ‘24시간 보육’ 시설을 절박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은 직업의 특성상 24시간 교대 근무나 밤 근무가 필요한 특수 직업을 가진 홀부모들로 나타난다.
서울 영이어린이집에 맡겨진 21명 가운데 20명은 이혼·사별 등의 이유로 아빠나 엄마가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직업은 목욕관리사·단란주점 종업원·도매시장 영업·트럭 노점·일용직 노동자·24시간 간병인·붕어빵 장사·트럭 운전사 등으로 다양했다. 보고서는 “(24시간 보육이 필요한) 계층은 보육료를 지불할 여력은 있지만, 24시 보육이 없다면 아이를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할 계층”이라며 “이들이 아이들을 포기하면 보육원 사업이 커지게 되고 이를 위한 정책 비용은 이전보다 더 커질 수 있다”고 적었다.
실제, 보모 남편에게 맞아 죽은 하나(3)의 경우 어머니(36)가 노래방에서 일하며 매달 80만원을 양육비로 지급하고 있었고, 개에 물려 죽은 영인(9)이의 교사들도 “급식비를 단 한 번도 밀리지 않을 만큼 가정의 경제 사정은 나쁜 편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특수직업에 종사하는 홀부모 가정에서만 ‘24시간 보육’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진이 191명의 부모들에게 “어떤 형태의 보육시설을 원하느냐”고 물어보니, 4가구 가운데 1가구꼴(25.8%)로 ‘24시간 보육’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들의 업무 형태가 탄력적으로 변하면서 ‘24시간 보육’에 대한 욕구는 점점 커질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앞으로도 ‘24시간 보육’에 대한 지원은 강화돼야 한다”고 결론을 맺으면서 시설 운영 기준으로 △교사를 소진시키지 않을 정도의 운영 기준 △365일 개방 △아이들의 정기적인 귀가 등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보고서의 첫 페이지를 읽어보면 이렇다. “본 연구는 연구자의 의견으로 여성부의 공식적인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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