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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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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잔치는 분열하고 있다

등록 2005-11-17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APEC 개최 홍보물 넘쳐나는 가운데 이라크전·신자유주의 반대 목소리 확산
생존권 위협받는 노점상·일용 노동자·농민들의 불만도 점점 고조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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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글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부산역사를 빠져나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광장 중앙에 우뚝 선 꽃화단이다. 거기엔 ‘APEC 개최기간 11월12일~19일, 하나 되는 부산’이라고 예쁘게 쓰여 있다. 그 옆엔 대형 이동식 홍보차량에서 ‘APEC 성공 개최는 시민의 힘으로’라는 문구가 전광판을 타고 흘러나왔다. 부산역사에도 ‘Welcome to Busan, 환영!’이라고 적힌 대형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부산시민행동, 반 부시에 초점 맞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사흘 남겨둔 11월9일 부산의 분위기는 부산역의 풍경이 전부는 아니었다. 정부나 부산시의 바람과 달리 ‘하나’되길 원치 않고, 성공 개최를 바라지 않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움직임을 ‘반APEC’ ‘APEC 바로알기’라고 했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부시를 막아라. 부시 반대 APEC 반대 자 시작이다. 18일날 부시 XX 부산에 온단다. 해운대로 모두 모여 부시를 막아라!” 한 카드사 광고의 CF송을 ‘노가바’(노래가사를 바꿔 부르기)한 ‘W송’이 부산의 가장 번화가 곳 가운데 하나인 태화쇼핑센터 앞에 울려퍼졌다. ‘전쟁과 빈곤을 확대하는 APEC반대 부시반대 부산시민행동’(www.antiapec.net·이하 부산시민행동) 회원 60여 명은 이날도 저녁 8시에 어김없이 ‘NO APEC, NO BUSH’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나와 문화 한마당을 펼쳤다. 10월24일부터 해온 이 행사엔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민주노총 부산본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 등 34개 단체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해온 공연을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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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왜 이라크를 침략했는지와 이라크 민중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패러디를 섞어 비판한 영상물 상영으로 막을 열었다. 그리고 부시 가면을 쓴 인물이 나와 참가자들을 향해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대자, ‘워~’ 하는 야유가 터져나온다. 조차리 민중연대 사무국장은 “사람들한테 가장 쉽게 어필(호소)하는 것은 전쟁광이자 수탈의 상징인 부시에 대한 반대”라며 공연물이 ‘반부시’에 초점을 맞춘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11월4~5일 미주정상회의가 열린 아르헨티나에서 반부시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던 것도 ‘부시 반대’ 구호가 부산 시민들에게 다가가기 쉽게 한 측면이 있다.

조금씩 더 많은 부산 시민들이 ‘APEC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구나’라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고 부산시민행동 활동가들은 입을 모았다. 하지만 국정홍보처, 부산시, 언론의 홍보와 선전이 주류다. 국정홍보처는 노무현 대통령이 나와 “자신감 갖고 힘차게 나가자”며 희망의 APEC을 얘기하는 방송광고를 내보낸 지 오래됐다. 부산시는 APEC이 부산 경제를 10년은 앞당길 수 있다고 선전한다. 그리고 시내 곳곳에는 APEC 개최를 홍보하는 선전물들이 넘쳐난다. 부산 시민 다수가 ‘왜 APEC에 반대하는지’를 이해 못하는 이유들이기도 하다.

공사전면 중단, 손 놓은 노동자들

10일 아침 7시30분 부산시 문현동 로터리.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남구위원회 박영환 분회장이 ‘APEC 반대 부시 반대’ 전단지를 출근하는 시민과 학생들에게 부지런히 나눠주고 있다. 이날 출근 선전전은 마지막이자 4번째였다. 윤영조 부산시민행동 상황실 팀원은 피켓을 들고 버스정류장 앞에 서 있었다. 대여섯 명의 당원들이 이곳에서 돌린 전단지는 이날 300장이 넘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이동훈(31)씨는 “왜 반대 시위에 나서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이러한 목소리가 시민들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하고 있지만, 왜 APEC이 미국의 참가만으로 테러 대상이 되는지 알아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뿌려진 전단지는 ‘누구를 위한 잔치인가’라며 APEC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APEC 반대가 과연 잘못된 것인가’를 묻고 답한다. 또 APEC의 진실은 △미국의 대테러전쟁 협력도구 △공공서비스 사유화 △식량주권 해체하고 농업을 망치는 기구 △반환경기구 △비정규직 확산, 빈곤 심화기구라고 주장한다. 민주노동당 부산시당이 실시한 이날 출근 선전전은 시내 10여 곳에서 이뤄졌다.

이러한 반APEC의 주장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부산의 현실이다. 개인사업을 하는 최동한(65)씨는 전단지를 건네는 윤영조 분회장에게 “세계 정상을 초청해 부산을 알리는 큰 잔치인데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한 택시운전사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뭐 있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하는 보통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목소리가 아직 조직화되거나 홍보되지 않았을 뿐이다. APEC으로 당장 손해 보는 노점상, 건설 일용직 노동자에서부터 APEC의 근본적인 성격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농민들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테러 예방과 안전이라는 명분으로 시민의 권리도 보이지 않게 조금씩 침해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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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의장인 누리마루가 위치한 동백섬 맞은편은 주상복합 신축공사로 망치 소리가 귀를 때린다. 해운대 현대 하이페리온, 포스코 아델리스, 두산위브 포세이돈, 대우 콘도미엄, 대우 트럼프월드 등의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포스코 공사현장은 누리마루에서 직선거리로 42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이곳을 포함해 동백섬 주변 공사장 15곳이 부산시청에서 11월12~19일 공사 중지를 요청받았다. 두산위브 건물 꼭대기에 세워진 타워크레인이 10일 오후에 해체됐다. 아직 더 올려야 할 2개 층이 남았지만, 140m의 높은 곳에 위치한 타워크레인은 테러리스트의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청와대 경호팀, 국정원, 부산시청이 판단한 것이다. 한 공사현장의 소장은 “APEC 기간 동안 공사를 전면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선 일용직 근로자가 많게는 하루 600~700명씩 일한다. 하청업체의 한 직원은 “생계에 지장을 받겠지만, 정부의 방침이라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부산시는 APEC 개최로 6천여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했지만, 한편에선 연인원 수만 명의 하루벌이 노동자들이 10여 일 동안 일손을 놔야 한다. 11월9일 건설연맹 지역업종협의회와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는 “부산시는 건설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APEC 때문에 시가지와 도로가 깔끔하게 정비된 해운대엔 좀처럼 노점상을 찾기 힘들다. 해운대 파라다이스호텔 뒤편 시장에 가서야 노점상들이 하나둘 눈에 띄었다. 1.5t 차에 단감을 놓고 파는 한 상인은 “요즘 부쩍 단속이 늘었다”고 그 이유를 말해줬다. 그는 “단속을 피해 점심시간 동안 잠깐 나와서 팔고 있다. 12일부터는 장사를 아예 할 수 없어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해운대엔 아예 인적이 뜸했다. 식당, 구멍가게, 유흥업소 상인들은 모두 울상이었다. 점심시간에 찾아간 콩나물국밥집의 주인은 “원래 이 시간엔 손님이 바글바글했는데, 아예 발길이 뚝 끓겼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농민들에게도 APEC은 남의 일이 아니다. 부산 강서구 대저동에서 원예농사를 짓는 장성기(전국농민회 부산농민회 부회장)씨는 9일 태화쇼핑센터 문화마당에 나와 “APEC을 반대하는 것은 쌀 개방 문제라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APEC에서 논의된 것들이 홍콩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와 연관된다고 믿었다. 가뜩이나 쌀값 폭락과 국회의 쌀 비준에 맞서 볏단 야적 투쟁을 벌이고 있는 농민들에게 APEC은 분명 반가운 손님이 아니었다. 부산·경남 지역 농민들은 11월18일 해운대에서 열릴 반APEC 민중대회에 1만 명의 참가 계획을 잡아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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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APEC, 두 개의 거정

해운대 일대는 온통 경찰들로 쫙 깔렸다. APEC이 시작되진 않았지만 동백섬 들머리엔 출입통제와 검문이 이뤄지고 있었다. 하늘엔 헬리콥터와 군용기들이 수시로 비행하고, 바닷가엔 해경 순시선이 떠다녔다. 박진현 부산시민행동 홍보팀장은 약간 과장해서 “APEC 때문에 부산은 준계엄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해외 비정부기구(NGO) 단체 활동가 998명 입국금지 및 입국시 통보조처, 정상회의 1.5km 반경 내 집회 금지, 해운대 인근 입산 금지, 강제 차량 2부제, 노점상 단속, 불심검문 강화 등 정부 조처를 열거하며,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처라곤 하지만 민주적 기본권과 대책 없는 생계권의 침해”라고 비판했다. 11월18일 민중대회엔 나라 밖 NGO 활동가 100명의 참가를 비롯해 10만 명이 해운대 일대에 모여, ‘반APEC 반부시’를 외칠 예정이다. 이들의 목소리에 공감하든 공감하지 않든 더 많은 부산 시민들과 국민들은 APEC에 대한 다른 목소리를 듣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부산시는 잔치판이 시끄러워지진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고, APEC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포스트 APEC’이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강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다. 그 간격은 좁혀지지 않고 곧 충돌할 것처럼 보였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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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수업안 마녀사냥</font>

전교조의 찬반 토론식 수업안중 18분만을 부각시킨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

부산시교육청은 지난 3월 APEC에 관한 학생용 지도자료를 일선 학교로 내려보냈다. APEC을 홍보하고 참가국의 문화, 학생들의 APEC 홍보하기 등으로 구성된 수업내용은 도덕시간 등을 통해 가르치도록 했다.
이 소식을 접한 강병용 전교조 부산지부 정책실장은 홍보 위주의 교육이 너무 일방적이라는 문제의식을 갖는다. 그는 지난 10월20일 ‘APEC 바로알기 수업’안을 전교조 부산지부 홈페이지에 올렸다. 강 실장은 <한겨레21>에 “장차 사회 갈등을 해결할 능력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APEC을 반대하는 주장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문제의식은 마녀사냥감이었다. 찬반 토론식으로 진행되도록 짜인 APEC 바로알기 수업안 가운데 미국의 쇼프로그램을 패러디해 부시 미국 대통령을 희화화한 18분짜리 영상자료가 트집의 대상이었다.
한나라당은 논평과 대정부 질의 등을 통해서 “교육의 중립성이 침해”되고 “교육의 기풍이 훼손됐다”며 전교조를 비판했다. 조·중·동 보수 언론도 거들었다. 여기엔 학생들이 수업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거의 고려되지 않고, 어른들의 우려 섞인 시각만이 지배했다. 강 실장은 “5분 정도 영상물 상영 뒤 부산시에서 만든 A4용지 한 장짜리 홍보물과 전교조에서 만든 A4용지 한 장 반짜리 자료를 같이 나눠준 뒤 요점을 정리해 발표하도록 했다. 그 뒤 조별로 나뉘어 찬반 입장에서 토론을 벌이고, APEC 모의회의를 하도록 한 것을 결코 편파적이라고 볼 순 없다”고 말했다.
전교조 부산지부는 집중 포화를 맞은 비속어 부분을 포함해 4분 정도의 분량을 자발적으로 삭제한 영상을 다시 올려야 했다. 전교조는 영상을 다듬어 모든 학교에서 공동수업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강병용 실장은 “한나라당 등 보수 진영이 APEC에 대한 반대 목소리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해 공격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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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r><tr><td colspan="5"></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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