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여행과 블로그의 만남 ‘트레블로그’를 연재하는 사람들
자신만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생산하는 여행’을 떠난다</font>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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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치는 김원섭(39)씨는 요즈음 여행기 쓰는 재미에 푹 빠졌다. 이젠 수년 전의 여행 기록까지 들춰 일주일에 1~2편을 생산해낸다.
“인터넷에 블로그를 만들어 우연히 시작했는데, 재미가 있더라고요.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이제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까지 생겼어요.”
트래블로그(travelogue: 슬라이드·전시품 등을 이용한 여행담).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트래블로그는 ‘트래블’(여행)과 ‘블로그’의 합성어(travel+blog)로 이해해도 다르지 않다.
트래블로그 만드는 재미에 빠진 사람이 많아졌다. 디지털 카메라와 인터넷으로 무장한 여행자들은 여행을 즐길 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트래블로그를 연재한다. 아마추어 여행작가가 대량생산되는 시절, 그래서 그들은 ‘트래블로거’(traveloger)다.
여행 전문 출판사인 성하출판의 이상희 편집장은 “디지털 시대의 여행자들은 모두 기자이자 사진작가”라고 말한다. 이 출판사에는 인터넷 블로그로 실력을 연마한 여행자들의 출판 의뢰가 쏟아진다. 평소에는 사흘에 한명꼴, 여름이 지나면 하루에 세명꼴로 사진과 글을 들고 찾아온다.
트래블로거는 독립적인 문화 콘텐츠 생산자들이다. 여행으로 얻은 타 문화 경험과 역사·문화적 지식을 그들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재구성한다. 주제도 다양하다. 사진기술을 연마하는 트래블로거, 야생화를 관찰하는 트래블로거, 특정 지역을 연구하는 트래블로거까지, 여행은 일상과 동떨어진 휴식 공간에서 삶과 교류하는 인생의 중요한 지점이 됐다.
트래블로거는 소비적인 여행은 사양한다. 여행을 직접 기획하고 참여하고 정리함으로써, 여행을 삶의 일부분으로 끌어들인다. 어느새 디지털 시대의 여행자들은 ‘소비하는 여행객’에서 ‘생산하는 유목민’으로 바뀌고 있다. 올여름, 트래블로거가 돼보자. 트래블로거들에게서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생산하는 유목민이 되는 방법을 들어봤다.
<font color="#C12D84">여행 전</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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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준비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다. 김유경(36·공무원)씨는 “여행을 다녀와서 곱씹는 것도 재밌지만, 가게 될 여행지를 기대하며 사전 준비를 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트래블로그는 여행의 순간뿐만 아니라 준비 과정부터 기록해야 한다. 오는 8월10일부터 20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를 둘러볼 김씨의 트래블로그(hi60.com)에는 벌써부터 이 나라들에 대한 정보가 가득하다. 지역 정보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개봉된 러시아 영화까지 망라했다. 김씨는 <푸틴 자서전> <이야기 러시아사> 같은 독서 목록을 올려놓고 차례로 읽은 뒤 감상문을 올리고 있다.
여행은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1년 동안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할 용기가 없다면, 한 가지 테마를 잡고 짧게는 하루이틀, 길게는 일주일씩, 수년 동안 꾸준히 하는 게 낫다.
김원섭씨는 자연사 기행을 여행의 테마로 잡았다. 그는 한달에 한번씩 주말을 이용해 서남해의 해안절리, 영월의 곡류천 등 한국의 ‘지리학적 경관’을 둘러본다. 자신의 블로그(blog.naver.com/gida1)와 동호회 홈페이지(geofocus.co.kr)는 그가 찍은 사진으로 채워져 있다.
“이번 여름엔 실크로드를 준비하고 있어요. 중국 우루무치에는 고대 지하수로인 ‘카레즈’란 게 있는데, 이를 통해 산에서 사막까지 물을 이동시키죠. 카레즈의 현대판은 사우디아리비아에 설치된 ‘카나트’인데, 이곳도 나중에 가려고 합니다.”
인도·네팔처럼 한 문화권을 테마로 잡을 수도 있고, 옛집·산사·포구 등 장소와 건물을 섭렵하는 방식도 있다. 이장희(33·블로그 tthat.com)씨는 스케치를 위해 펜과 노트를 챙기고, 강영의(30·salk02.com)씨는 사진찍기에 집중한다. 진유정(35)씨는 베트남에 머물면서 길거리 음식에서 고급 레스토랑까지 밑바닥을 샅샅이 훑어 <여기는 베트남, 껌은 밥이다>라는 책을 펴냈다. 전문 여행작가도 지나쳤던 ‘여행 책의 공백’을 발견한 것이다.
<font color="#C12D84">여행 중</font>
트래블로거들은 사실의 검증과 확인의 자세가 갖추어진 ‘아마추어 저널리스트’여야 한다. 새 풍광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안내판과 브로슈어를 열심히 읽고 현지인들과 가능한 한 많이 대화한다. 자신의 감상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정보가 담겨야 할 트래블로그를 위해서다.
그래서 트래블로거에게는 ‘기록의 습관’이 배어 있다. 글과 사진은 대표적인 기록 수단이다. 그래서 어떤 여행자들은 노트북을 가져간다. 글을 써야 할뿐더러 찍은 사진을 저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기간 여행을 하는 이들은 여행지에서 직접 트래블로그를 쓴다. 강영의씨는 스튜어디스를 그만두고 남편과 함께 1년 동안 지중해 연안과 남미를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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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그날 찍은 사진을 노트북에 저장해요. 그리고 1~2주일에 한번 정도 트래블로그에 여행기와 사진을 올리죠. 사진을 평가해주는 네티즌 덕분에 더욱 힘을 냈어요. 인터넷은 머나먼 외국에서도 사람들과 소통하는 수단이죠.”
다만 여행을 하러 온 것인지, 작업을 하러 온 것인지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사진 찍고 메모하는 데 신경쓰다 보면, 여행을 오롯이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에 여행기를 올리는 이정열(42)씨는 “카메라가 여행을 눈곱만큼이라도 옥죈다면 미련 없이 카메라를 버릴 줄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font color="#C12D84">여행 후</font>
여행이 끝나면 트래블로그를 본격적으로 만들 때다. 여행에서 얻은 정보를 검증하고, 사진을 고른다. 그리고 여행 기간에 틈틈이 메모한 내용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
이상희 성하출판 편집장은 ‘좋은 여행글’의 세 가지 요소로 △의식의 과잉을 경계할 것 △테마를 잡아 쓸 것 △객관적 정보가 담길 것을 꼽았다.
“좋은 여행기가 되려면 일기장을 공개하는 것 같은 노출증의 단계를 벗어나야 해요. 정보와 감상이 결합한, 최소한의 객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 편집장은 ‘좌충우돌’식의 배낭여행기도 환영받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여행이 대중화된 이상, 더는 신기한 세계란 없기 때문이다. 되레 자신만의 전문성을 가지고 국내든 해외든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한 글쓰기가 돋보이게 마련이다.
여행기가 모이는 사이트에 게시된 트래블로그는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외국에서는 트래블맥(travelmag.co.uk), 월드험(worldhum.com) 등의 사이트가 여행작가의 등용문이 되고 있다. 한국의 트래블로거들은 ‘쁘리티님의 떠나볼까’(prettynim.com), ‘딴지일보 노매드 관광청’(nomad21.com), <오마이뉴스> 여행 페이지 등에서 활동한다. 작품이 훌륭하면 방송이나 인쇄매체에 ‘픽업’되기도 한다.
송지수(36·blog.naver.com/bellissima)씨는 지난 4월 여행작가도 쓰기 힘든 가이드북 <이탈리아 까발리기>를 펴냈다. 1994년부터 이탈리아를 드나들면서 꼼꼼히 남긴 글과 사진을 바탕으로 출판사를 설득한 게 주효했다.
“남들이 지나쳤던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트래블로그를 쓰면서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만큼 삶이 느긋하고 여유로워졌죠.”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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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느리게… 종이를 채우다</font>
▣ 이장희 시야트 인터내셔널 근무· tthat.com
그냥 두면 끝없이 쌓여만 가는 수많은 스케치들과 글, 사진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하고자 시작된 것이 나의 트래블로그의 탄생이다.
나는 곧잘 즉흥적으로 짧은 스케치 여행을 떠나는지라 계획부터 꼼꼼히 세우는 여행은 1년에 몇번 하지 않는다. 게다가 계획이 탄탄한 배낭여행이나 많은 곳을 둘러볼 수 있는 상품으로서의 여행과는 달리 일단 현실에서 벗어나고 본 뒤 고속도로 휴게소나 터미널, 기차역 등에서 행선지를 고를 수 있는 부담 없는 여행들, 그런 편안한 여행이 나는 좋다. 수첩에는 그동안 틈틈이 적어놓은 목적지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기에 그다지 망설이거나 힘들 건 없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과 그간 모은 정보를 잘 얼버무리기만 하면 될 뿐. 카메라는 언제나 든든한 어깨에 잘 매달려 있고, 스케치를 위한 작은 도구들은 항상 가방 속에서 ‘이상 무’를 외치고 있다. 자, 그럼 떠나볼까!
풍경과 함께하는 스케치 여행은 사진을 위한 출사나 새로운 곳을 경험하기 위한 일반 여행과는 분명 다르다. 어쩌면 많은 곳을 볼 수도 없고, 볼 필요가 없을 때도 있다. 맘에 드는 곳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느꼈다면, 주저앉아 얼마만큼의 시간을 할애하면 되기 때문이다. 햇볕이 내리쬐는 벌판에서 땀 흘리며 사진을 남길 필요도, 시간에 쫓기어 한 군데라도 더 보기 위해 발품을 팔 일도 드물다. 그저 한없이 느리게 움직이는 풍경 속에서 스케치와 함께 놓여 있으면 비로소 그 기쁨은 최고조에 이른다. 선 하나하나마다 종이를 채워가며 그냥 지나쳤다면 만나지 못했을 여러 녀석들과의 유대감, 그게 스케치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돌아와서는 여행보다 더 어렵다는 정리가 기다리고 있다. 스케치는 좀더 다듬고 채색을 한 뒤 스캔하기도 하고, 반대로 컴퓨터에서 채색을 할 때도 있다. 사진은 즐겨 하는 몇 단계의 보정 과정을 거쳐 맘에 드는 녀석들을 추려내 이야기를 꾸릴 준비를 한다. 남은 건 가장 중요한 여행에 대한 느낌을 바탕으로 글을 써나가는 것. 같은 곳을 갔더라도 그날의 날씨나 기분, 동행한 사람 등에 따라 느낌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진들을 죽 늘어놓고 하나하나 설명을 달면서 느낌을 적고 있으면, 가끔 웃음도 때로는 아쉬움도 어떤 때는 상념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렇게 돌아볼 시간마저 없었다면 잊혀졌을 조그마한 추억들. 그것들이 다음 여행을 떠나게 하는 손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나그네에게는 자신만의 방식과 철학에 근거한 유랑이 있듯 나에게 스케치 여행을 위한 모든 과정은 삶에 내재돼 있는,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하지만 어느 곳에서라도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시간, 즉 또 다른 모습의 나를 만나는 것이리라.
</font></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r><tr><td colspan="5"></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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