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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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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사들이 불쌍하다”

등록 2005-05-11 00:00 수정 2020-05-03 04:24

탈세 ‘공모’ 없다고 말하는 서태식 한국공인회계사회장… “국세청 가이드라인에 맞출 뿐”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공인회계사회 회관은 그리 크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소 ‘뜻밖’이었다. 서울 충청로 큰길가에서 안쪽으로 50m쯤 들어가서야 흰색의 5층짜리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 4월26일 기자와 처음 만난 서태식 한국공인회계사회장은 인터뷰 도중에 회계사가 “힘이 없다” “불쌍하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업계의 고충을 토로했다.

월 10만~15만원 기장 수수료 바랄까

<한겨레21>이 공인회계사회의 고충을 들으러 간 것은 아니다. 세무대리인들이 때때로 탈세의 ‘도우미’나 ‘방조자’로 나서고 있는 ‘관행’에 대한 회계사회의 입장이 궁금해서다. 이를 의식한 듯 서 회장은 첫마디부터 “저의 제일 큰 관심은 (회계사의) 직업윤리”라고 운을 뗐다. 그는 그러나 자영업자나 소규모 법인의 탈세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을 고객으로 하고 있는 세무대리인의 ‘공모’는 수긍하지 않았다. 오히려 “회계사가 탈세를 돕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세무대리 시장의 과당경쟁으로 고객의 ‘무리한’ 요구마저 거절하기 힘든 구조로 돼가는 것 아닌가.

회계사는 납세자쪽이 일리가 있다면 편드는 것이다. 돈 몇푼에 팔려 납세자의 탈세를 돕지는 않을 것이다. 세무대리인들은 납세자를 돕고 있으면서 동시에 세정 협조자다. 또 회계사가 탈세를 조장하고 공모할 그런 유인이 뭐가 있겠나? 고작 한달에 10만~15만원 하는 기장 수수료를 벌려고 탈세 수법을 가르치겠나?

그래도 세무대리인들의 주고객인 소규모 법인이나 자영업자들의 탈세가 심각한 것 같다.

국세청이 행정적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거기에 맞춰 어느 정도 수준으로 신고하면 세무조사를 하지 않는다. 사실 돈을 많이 벌면서도 가이드라인에 비슷하게 맞춰 신고하면, 거기서 발생하는 차이가 탈세라고 볼 수 있다. 빨리 시정돼야 한다. 그러나 그리 중요한 탈세는 아니라고 본다. 세무대리인들은 이렇게 용인되는 가이드라인을 지키도록 세정 협조를 해주는 것이다. 이를 놓고 ‘악덕’ 회계사나 세무사라고 보는 것은 한 측면만을 보려는 것이다.

세무대리인들이 직업상 절세와 탈세의 모호한 경계선 위에 서 있는 것 아닌가.

너무 이분법적으로 얘기하지 마라. 절세와 탈세의 중간대가 넓다. 예를 들어 국세청은 갑설로 과세를 하고, 납세자는 을설이라고 해서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다. 법에 대한 해석 차이는 얼마든지 있다.

기업들이 탈세를 하면 감사를 맡은 회계사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나.

회사에서 작심하고 숨겨둔 것은 찾을 수 없다. 기업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회계사를 속이기가 쉽다고 한다. 미국은 엔론 사태 이후 기업의 회계 기준을 더 엄격히 한 ‘사베인 - 옥슬리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회계사만 족친다. 제일 만만한 게 공인회계사니까, (분식이나 탈세를) 못 찾았다고 처벌하는 것이다. 자본가든 회사든 힘이 있지만, 공인회계사가 무슨 힘이 있나. 사회의 역학구조가 그렇다. 회계사들이 불쌍하다. 능력을 넘어서 탈세를 찾지 못한 경우에는 회계사를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범죄에 공조하거나 방조한 사람은 엄히 다스려야 한다.

“회사가 회계사 속이기 쉬운 세상”

서태식 공인회계사회장은 지난해 6월 취임하면서 ‘윤리와 전문 수준을 높이고, 잘 살도록 한다’는 3가지 목표를 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윤리 수준을 높이면서 동시에 수입을 올리려는 다소 ‘상충’되는 두 가지 과제를 조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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