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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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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머리’ 하나는 똑똑하군…

등록 2005-03-09 00:00 수정 2020-05-03 04:24

효율과 성취 중시하는 이명박 시장의 ‘기업가 리더십’… 재산 관련 특권층 인상 극복할 수 있나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는 청계천 복원 사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시장 취임 뒤 곧바로 공사에 착수했다. 지금 공사가 거의 완료돼 10월1일 복원 행사를 앞두고 있다.

이 공약을 두고 당시 참모진들 사이에선 반대 의견이 우세했다. 환경 측면에선 괜찮지만 공사 과정에서 막심한 교통체증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게 참모들의 주장이었다. 그가 시장에 당선된 다음에 한 언론사 사주를 만난 자리에서도 그 사주는 “공약은 잊어버리시라. 청계고가도로를 뜯었다간 큰일 난다”고 조언했다. 시청 공무원들도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반대 무릅쓴 청계천 복개와 버스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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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내부 회의에서 “교통 문제만 해결하면 시민들이 박수를 보낼 일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교통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고민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강승규 서울시청 홍보기획관은 “이 시장은 ‘이래서 안 됩니다’ ‘저래서 안 됩니다’라고 하는 부하를 가장 싫어한다”며 “성과가 분명하다고 판단되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게 시장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당시 서울시 기술진은 청계고가도로를 해체하는 데만 1년이 걸린다고 보고했다. 이에 이 시장은 “공기를 3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가도로가 모두 5.7km인데, 구간을 3등분해 3개 업체가 동시에 작업하면 4개월에 끝낼 수 있지 않느냐고 그는 말했다. 현대건설 평사원으로 입사해 ‘노가다판’을 구르던 끝에 회장에까지 오른 그였기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철거공사는 실제로 석달 만에 끝났다.

그렇다고 그가 밀어붙이기에만 능하다고 보긴 어렵다. 그는 청계천 복원 사업을 위해 △시청 기술직 중심으로 복원사업 추진본부 △시정개발연구원 중심으로 청계천지원연구단 △청계천 복원 100인 시민위원회 등 3개 조직을 꾸렸다. 행정실무와 이론적 지원, 시민 컨센서스의 세 날개를 고루 가동한 것이다.

청계천 복개 부위를 뜯어낸 다음에는 기자들과 함께 시궁창 냄새가 나는 청계천 바닥으로 직접 들어갔다. 텔레비전 카메라 불빛에 옛 광교 홍예석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런 모습이 방송 전파를 타면서 복원에 찬성하는 여론이 갈수록 높아갔다. 여론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홍보에도 그는 수완을 발휘했다. 다만 이 시장은 문화재를 원상대로 복원하느냐를 둘러싸고 문화재 전문가들과 일대 충돌을 빚긴 한다.

시내버스 체계 개편도 시청 공무원 대다수가 반대한 사업이었다. 시내버스 업자들도 “이명박이가 공연히 들쑤시기만 하지 실제 할 수 있겠느냐”며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서울시 버스체계 개편은 조순 시장 때도 검토하다가 중단된 바 있었다. 시의 검토 방침이 알려지자 업계쪽에서 투서를 했고 이에 따라 교통국장 등이 구속되는 홍역이 빚어진 탓이다. 업자들이 움켜쥔 굴곡노선을 모두 회수해, 시민 편의에 맞춰 곧게 편 뒤 되돌려주는 게 교통개혁의 핵심이어서 당연히 업자들이 반발해온 것이다. 고건 시장도 교통체계는 건드리지 않았다.

‘업적 위주’로 국민의 눈높이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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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사장은 취임 날로부터 6개월에 걸쳐 교통국 직원 150여명을 거의 남김없이 바꾸는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다. 교통 담당 공무원들과 버스 업자간의 유착관계가 교통개혁을 가로막는 핵심적인 문제라고 그는 판단했다. 물갈이로 신규 충원되는 직원들은 교통행정 비경험자들이었다. 따라서 “교통의 ‘교’ 자도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뭘 어떻게 하려느냐”는 내부 반발이 나왔다. 그러나 이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에 △업자들과 가급적 접촉 금지 △부득이 접촉하면 혼자 만나지 말라 △정 만나면 공무원이 밥값 내라 등 3개항을 지시했다. 그는 “교통개혁은 칼질의 문제”라고 했다. 개혁안은 학계·시민단체들이 오래전부터 마련해왔던 만큼, 이젠 개혁안을 시행할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시장 밑에서 초대 정무부시장을 지낸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이 시장은 한마디로 일의 핵심을 잘 파악하는, ‘일 머리’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상이나 이념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정해졌을 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을 찾는 데 그가 재능을 발휘한다는 평가다.

정치 지도자의 재능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상이나 이념 토론에 능한 사람이 있으며, ‘조직 머리’가 발달한 사람도 있다. 화술이 능란한 정치인도 많다. 반면에 이 시장은 ‘하우 투(how to) 지향형’ 또는 ‘문제해결 지향형’으로 분류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그는 구체적 문제와 동떨어진 이른바 거대 담론을 운위하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강승규 홍보기획관은 “이 시장은 효율과 성취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시장은 평소 “차기 대통령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경영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효율과 성취, 경영능력 등은 기업체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이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기업가형 리더십’으로 요약된다. 그는 평소 “그동안의 대통령들은 각각 건국, 경제발전, 민주화를 이룩했다”며 “시대 조류상 다음 대통령은 국가경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최근 상승세는 ‘고건 신드롬’과 일맥상통하는 측면도 있다. 즉 이 시장이 기업과 광역자치단체 경영의 성과를 토대로 대중성을 쌓아나가고 있으며, 고 전 총리는 ‘행정의 달인’이란 성과가 오늘날 ‘1위 질주’의 기반이 되고 있다. “무엇을 이룬 사람이냐”라는 ‘업적 위주’로 국민들의 눈높이가 형성될 때 두 사람이 먹힐 여지가 다분한 셈이다.

재산 186억6680만원은 깨끗한가[%%IMAGE3%%]

그러나 그의 대권쟁취 가능성을 점치긴 아직 이르다. 대선이 멀리 남은데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도덕성 검증의 강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도덕성과 관련해 그의 아킬레스건은 역시 재산 문제다. 그는 2월24일 공직자 재산변동 신고 기준으로 186억6680만원의 재산을 지니고 있다. 서울 서초동과 양재동의 빌딩, 서초동의 상가, 논현동의 단독주택 등 부동산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시장쪽은 “부동산의 대부분이 현대그룹 시절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보너스 형식으로 지급받은 것”이라며 ‘깨끗한 재산’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재산 형성 과정의 의혹도 의혹이지만, 서민들에게 “우리와는 거리가 먼 특권층”으로 비칠 가능성이 충분하다.

게다가 그는 1998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적도 있다. 당시 정보를 쥐고 있던 비서관을 해외로 도피시킨 혐의도 받았다. 2002년 7월에는 ‘히딩크 사진 사건’으로 공인 의식 부족 논란을 빚었다. 히딩크 월드컵 대표감독의 명예 서울시민증 수여식장에 자신의 아들과 사위를 불러 함께 기념촬영을 하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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