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때 그사람들>이 조롱하는 권력… 뜬금없는 ‘거사’에 무너져버릴 정도로 허망한 나라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김재규 영화가 박정희 논란을 낳고 있다.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은 10·26 사건을 일으킨 김재규와 그 부하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감독도 이 영화를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이들에 대한 추모곡”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논란은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에 맞춰졌다. 그분은 ‘각하’이기 때문이다. 각하 살해 장면과 엽색 행각, 일본어 사용과 엔카 등장이 영화가 공개되기도 전에 문제로 떠올랐다. 각하의 아들인 박지만씨는 이 영화가 사자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영화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던 박근혜 대표도 영화 시사회가 열릴 무렵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만들 때부터 비밀리에 했으니까”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김재규 영화에 박정희 논란
영화 시사회장에서도 ‘박정희의 그림자’는 어른거렸다. 서울 용산CGV에서 시사회가 열리던 1월24일 저녁, 시사회장으로 올라가는 길에 한 중년 남성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박정희 대통령 각하를 매도하?말라”는 피켓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여동활(48)씨는 경북 경산 하양읍에서 시사회 소식을 듣고 올라왔다. 여씨는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역사에서 한번 만날까 말까 한 분”이라며 “그나마 이만큼 먹고사는 것도 다 그분 덕분 아니냐”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한반도 역사상 처음을 “이밥에 고깃국 먹여주었다”고 여겨지는 박정희 향수의 실체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는 “나도 60~70년대 구로공단에서 일하고, 최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하면서 고생을 할 만큼 했다”며 “그래도 그분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저녁 7시30분, 마침내 영화가 상영됐다. 영화는 여성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됐다. “그러던 어느 날, 뜬금없게도 박정희는 총에 맞았습니다.” 영화는 10·26을 ‘뜬금없는’ 사건으로 규정하고 들어간다. 그리고 1979년 10월26일의 풍경을 통해 얼마나 그 사건이 ‘뜬금없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때 그사람들>이 묘사하는 당시 권부의 핵심 풍경은 조폭들의 행태를 빼다박았다. 조악한 중소기업의 작태를 떠올리게 한다. 감독은 여기 대한민국 주식회사가 있다. 그 ‘유치한’ 작태를 보라고 말한다.
권력 눈치만 보아온 자들의 생리
주변 인물들이 “할아버지”로 부르는 각하는 연회에 취하고, 아부에 약한 외로움에 찌든 노인일 뿐이다. 그를 총으로 쏘는 김 부장은 “사나이의 길” 운운하지만 사실은 각하의 총애를 차 실장에게 뺏겼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나약한 인간이다. 김 부장은 권력 안의 야당이기도 하다. 그의 두 가지 정체성은 묘하게 겹쳐지며 ‘거사’를 도모하는 명분이 된다. 김 부장은 “민주주의를 위해 자결하는 마음으로 같이 가는 거야. 그게 사나이 길이야”라고 짐짓 엄숙하게 말한다. 그리고 그의 수하인 주 과장, 민 대령을 거사에 끌어들인다.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인 주 과장도 권력 가까이에 있지만, 행동은 아주 평범한 ‘사나이’다. 그는 각하에게 여자들을 골라 바치는 일에 이골이 났고, 차 실장에게 모멸당하는 것에 신물이 났다. 그에게 김 부장의 거사 제안은 부담스럽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이다. 그는 반자발적인 심정으로 “오늘 우리 인생 쇼부 쳐버립시다”라고 결심한다. 김 부장의 수행비서인 민 대령은 상관의 명령에 따르는 충직한 심복으로 묵묵히 ‘사나이의 길’을 간다.
그런데 사나이의 거사는 소시민의 일상을 침탈한다. 김 부장은 주 과장에게 “똑똑한 놈 세명만 데리고 나를 지원하라”고 말하지만, 정작 차출되는 인물은 어수룩한 주변 인물들이다. 주 과장의 명령으로 그의 부하와 중정 경비원, 운전사까지 ‘재수 없게’ 사건에 연루된다. 그들의 운명이란 누가 던졌는지도 모르는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 꼴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운짱’이 군인들에게 체포되면서 내뱉는 말에는 그들의 가련한 운명이 요약돼 있다. “씨발 우리는 뭣도 모르고…. 무슨 개 같은 경우냐고.” 이처럼 영화는 부조리로 가득 차 있다. ‘거사’를 시작한 인물도, ‘거사’에 연루된 인물도 왜 자신이 그 행동을 하고 있는지 자신조차 이해시키지 못한다. 감독은 그것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고 말한다. 조선희 소설가는 “<그때 그사람들>은 당시 인물들을 아주 제멋대로, 함부로, 막 다루었다”며 “그것이 이 영화의 치명적인 장점”이라고 분석했다.
<그때 그사람들>은 10·26 사건이 잘 짜인 시나리오에 따른 집단행동이 아니라 김 부장 개인의 돌출행동이었다고 말한다. 김 부장은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는 그 유명한 대사를 날리지만, 그저 ‘욱’하는 심정으로 사고를 쳤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준다. 90년대 중·후반 김재규 재평가 움직임이 일기는 했지만, 10·26은 ‘역사’가 아니라 ‘사건’으로 여겨져왔다. 물론 그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에서 나온 우발적인 사건은 나비효과를 일으켜 대한민국 국가권력의 향배를 바꾸는 효과를 낳았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때 그사람들>은 사사로운 행동이 역사의 흐름을 바꿀 만큼 ‘그때 그시절’의 국가란 허망하고 허술한 것이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 신랄한 비판은 박정희 정권을 넘어 모든 권력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이 영화를 보면, 아무리 거룩한 일이라도 ‘어느 정도’는 사적 네트워크에 기반할 수밖에 없는 인간사의 아이러니가 겹쳐진다. 그래서 <그때 그사람들>은 모두에게 반성의 기회를 던지고, 권력 가진 모든 자들을 기분 나쁘게 만든다.
국가 비판, 남성에 대한 조롱
사건 수습 과정은 더욱 가관이다. 사태 수습에 나서야 할 육군참모총장은 일신의 안위에만 매달리고, 육본 벙커에 모인 국무위원들은 우왕좌왕한다. 그들의 행태 또한 권력을 좇는 늙은이들의 심약한 행동에 다름 아니다. 국무위원들은 대통령 유고시에 누가 권력을 승계하는지도 헷갈리고, 죽은 대통령의 시신에 대한 묵념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권력자에 대한 경례를 올리기에 바쁘다. 어떤 국무위원은 대통령의 유고를 알리지 말자는 의견에 “미국 애들한테는 얘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애즈 순 애즈 파서블”이라고 말하고, 김 부장이 사건 전에 미 대사를 만났다고 하자 “미국이랑 미리 교감이 있었던 거요?”라는 답이 바로 튀어나온다. 영화는 권력에 눈치를 보며 살아온 자들의 생리를 ‘리얼하게’ 재현한다. 묘사가 리얼할수록 헛웃음이 터져나온다. 감독은 그것이 ‘사나이의 세계’라고 말한다. 김 부장은 사익에만 매달리는 국무위원들과 대비되면서 차라리 ‘괜찮은’ 인물이 된다.
조폭의 생리로 움직이면 위기가 닥쳐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간첩 만들기에는 귀신 같지만, 정작 위기에는 허점투성이인 국가 시스템이 조롱당한다. 청와대 비서실장의 귀띔으로 국무위원들은 김 부장이 대통령을 쏘았음을 알게 된다. 육본 간부들은 김 부장을 체포하기 위해 황급히 실탄을 찾지만 대한민국 육본에는 총알 몇발이 없다. 결국 김 부장을 차로 몰아넣고 몸싸움을 벌여 체포한다. 1979년 10월29일 당시 국가권력은 곧 남성권력이었다. 국가에 대한 비판은 자연스레 남성에 대한 조롱으로 이어진다. 사나이의 길은 진지할수록 우스꽝스러워진다. 반면 사건 현장에 있었던 두 여성의 인간적인 면모가 도드라진다. 이들은 총에 맞은 각하를 감싸안는 유일한 인물들이고, 궁정동을 빠져나오며 울음을 터뜨린다. 이들은 누군가의 ‘죽음’에 눈물 흘리는 유일한 인물들이다.
거사는 실패로 돌아가고 운명은 비극으로 마감된다. 김 부장이 체포돼 조사를 받는 장면 위로 질문이 겹쳐진다. “이 사람은 과대망상증 환자인가? 민주투사인가?” 관객들은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주기 힘들다. 아니 그는 과대망상증 환자이자 민주투사이다. 혹은 과대망상증 환자도 아니고 민주투사도 아닌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김 부장을 지나친 카메라는 부하들의 쓸쓸한 마지막 모습을 비춘다. 그들의 최후에 대한 진술이 이어진다. 감독은 <그때 그사람들>을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이들에 대한 진혼곡”이라고 했다. 하지만 영화는 권력을 조롱하느라 바빠서 죽은 자에 대한 연민을 표현할 겨를이 없다. <그때 그사람들>은 주 과장을 비롯해 이름 없이 스러져간 이들의 내면을 파고들지 못한 채 서둘러 마무리된다. 영화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큐멘터리가 시작된다.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 장면이다. 소복 입은 박근혜 대표가 등장하고, 길가의 시민들은 오열을 한다. 장례식 장면을 보여주며 감독은 “제발 이제는 박정희를 떠나보내자”고 애원한다.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그 무엇인가가 환기되고, 겹겹의 서글픔이 북받쳐오른다.
진퇴양난, 흥행에 다다를 수 있을까
시사회가 끝난 뒤, 반응이 쏟아져나왔다. “생각보다 세지 않다”는 평부터 “다큐멘터리의 의도가 미심쩍다”는 비판까지 반응은 엇갈렸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눈물> <바람난 가족>으로 우리 시대의 성과 가족에 대해 급진적인 비판을 해온 임상수 감독의 전작에 비해 <그때 그사람들>의 도발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불만도 있다. 10·26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너무 무책임하게 다루었다고, 사건에 대한 감독의 관점을 알 수 없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물론 한국 영화의 새로운 경지로 치켜세우는 호평도 있다. 한편으로는 박정희에 대한 입장에 따라 영화를 보기도 전에 ‘감상’이 결정되기도 한다.
<그때 그사람들>은 어느 집단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어느 세대에게도 어필하지 못하는 불우한 운명에 빠질 수도 있다. 친박정희 진영은 “지나친 희화화”라고 불쾌해할 것이고, 반박정희 진영은 “비판의 핵심을 놓쳤다”고 아쉬워할 수 있다. 벌써 그런 징후는 나타나고 있다. 10·26을 아는 세대는 잘 알아서 불만이고, 모르는 세대는 몰라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어쩌면 진퇴양난이다. <그때 그사람>이 논란을 뚫고, 비판을 넘어, 흥행에 다다를 수 있을까. 어쨌든 한국 영화는 <그때 그사람들>을 통해 박정희의 시대를 정면으로 응시하기 시작했다.
|
“<그때 그 사람들>이 모든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가 사실과 다르면 가만 있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분들이 영화를 보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들이 아는 사실을 꺼내 다시 이야기해보자는 거다.” 시사회 다음날(1월25일) <그때 그 사람들>의 임상수(43) 감독을 삼청동에서 만났다. 그는 이 영화가 묻혀졌던 진실을 꺼내서 이야기하는 데 ‘기폭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직도 민감한 소재인 ‘그때 그 사건’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부시나 전·현직 대통령도 자유롭게 조롱하거나 농담의 소재가 되는 시대임에도 박정희씨는 여전히 신주단지 위에 모셔진 사람이다. 박정희씨를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저 하늘에서 땅 위로 올려놓고 그를 생각할 때가 됐다고 본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박정희가 누구인지,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마주 보고 직시하자는 의도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영화화된 것도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싶다.
영화 마지막 부분의 장례식 다큐멘터리 장면 삽입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유족들이나 당시 사람들에 대한 조롱이라는 등.
다큐멘터리 삽입은 나름대로 야심적인 설정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였다. 고2 때였는데 생중계되던 장례식을 보다가 김수환 추기경이 “여기 주님 앞에 인간 박정희가 놓여 있습니다”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 ‘인간 박정희’라는 표현에 충격을 받았던 거다. 다큐 장면은 이렇게 죽은 사람을 두고 사람들이 그렇게 슬퍼했다는 일종의 메타화의 느낌을 주고 싶어서 활용했다. 물론 어떻게 보여지는지에 대한 해석은 관객의 몫이다.
당시의 역사를 드러내려고 한 건가, 남은 사람들이 바보처럼 그때의 역사를 방기하고 내버려뒀다는 걸 보여주려고 한 건가.
둘 다다. 이를테면 주검의 일부에 모자를 씌운 장면에도 논란이 있는 것 같은데 사건이 일어났던 날 밤 그 방은 국가 그 자체였다. 국가를 이루는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고, 그렇게 허둥지둥했던 게 국가였다는 거다. 그런 나라에서 살아온 자괴감이나 앞으로 다시 반복하지 말자는 반성, 결의 같은 걸 담았다고 본다.
마지막 내레이션이 당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비꼬는 것처럼 들린다.
이 영화는 군사문화를 배경으로 가진 남자들의 정신 상황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앞뒤 내레이션을 여자들에게 맡겼다.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민 대령의 모델이 된 박흥주의 청렴했던 개인사나 그 사건 이후 유족들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알고 있어서 연민도 갔지만 내레이션에서는 그를 ‘철딱서니 없다’라고 표현한다. 총을 들어 무언가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남자들의 생각이 여자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철딱서니 없는 일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감독은 블랙코미디가 아니라고 했지만 냉소적인 느낌도 든다.
냉소적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지만 센티멘털리즘이나 값싼 연민에 빠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연민은 지속되지 않고 종국에는 배신감만 안길 뿐이다. 섣부른 감상주의나 자기기만적인 연민에 빠지는 걸 막는다는 점에서 냉소가 하나의 방법론이 될 수도 있다는 건 맞는 말이다.
영화를 본 한 국회의원은 인물이 너무 희화된 것 아닌가 하는 말을 하더라.
시나리오를 감수한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건 정치가나 학자의 시선일 뿐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을 보면 주인공 도시로가 칼싸움을 하는 장면에 대한 본인의 이야기와 그 모습을 훔쳐봤던 나무꾼의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도시로는 자신이 대단히 용감하게 싸운 것으로 기억하지만, 나무꾼은 덜덜 떨면서 개싸움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를 통해 관습적 묘사를 탈피한 새로운 리얼리즘이 탄생되는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은 그 전통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나는 희화가 아니라 진실일 수 있다고 본다.
김은형 기자/ 한겨레 문화생활부 dmsgud@hani.co.kr
|
사실 <그때 그 사람들>은 영화를 만들기보다 만들 것을 결정하는 일이 더 어려웠을 것 같은 영화다. 영화를 벗어난 정치적 논란까지 감수해야 하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작자의 고민이 감독의 고뇌만큼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그때 그 사람들>의 제작자 심재명 (주)MK버팔로 대표는 뜻밖에도 “별 고민 없이 제작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처음 영화를 제안받고 고민하지 않았나.
전혀. 임상수 감독이 <바람난 가족>을 찍기 전 프리 프로덕션을 할 때 <그때 그 사람들>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당시에는 박근혜 대표가 ‘대표’가 되기 전이었고, 과거사 논란도 심하지 않을 때였다. 더구나 박정희 대통령을 다룬 영화가 아니고, 김재규 부장의 밑에 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영화였다. 그래서 좀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작자로서 그런 점에 매력을 느꼈다.
어쨌든 제작자 입장에서는 모험 아니었나.
시나리오·캐스팅·편집·홍보 작업을 진행하면서 점점 힘든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다. <그때 그 사람은>은 제작비 40억원, 마케팅비 20억원이 들어간 만만치 않은 규모의 영화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스타를 쓰면서도 사전 홍보를 하지 못한다는 부담이 컸다.
제작자로서 민감한 묘사는 피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을 텐데.
(웃으며) 물론 그런 욕망도 있었다. 하지만 감독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오히려 논란이 되니까 외적 상황 때문에 제작자도 검열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률적 자문은 어느 정도 구했나.
시나리오 초고를 끝내고 난 뒤 변호사에게 1차 자문을 구했다. 공적인 사건인 만큼 관련 인물이나 유족들을 직접 만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편집을 끝낸 뒤에도 자문을 구했다.
박정희 죽이기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
영화로 선동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개인의 역사, 문화사회적 감수성에 따라 작품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강우석 감독이 <쉬리>를 만들고 <실미도>를 만드는 것처럼, 나도 <공동경비구역 JSA>를 만들고 <그때 그 사람들>을 만드는 것뿐이다. 우리 사회는 감수성조차 정치로 과도하게 해석한다.
영화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관객들이 현재를 규정하고 있는 과거를 영화를 통해 되돌아볼 수 있다면 만족한다. 영화에 나온 사람들의 얼굴이 나의 자화상일 수도 있으니까.
박지만씨가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심재명 대표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이미 명필름 대표 시절 <공동경비구역 JSA>를 제작하면서 ‘외풍’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심 대표는 “JSA를 만들 때, 촬영 초기에는 서해교전이 터져서 개봉도 못하는 것 아닌가 걱정했는데 영화를 완성하고 나니까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됐다”며 “한국은 아직도 격변하는 사회여서 사회정치적 소재는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영화 <그때 그사람들>의 첫머리에 나오는 자막이다. <그때 그사람들>은 10·26 사건이라는 사실을 뼈대로 감독이 영화적 상상력으로 살을 붙여 만든 영화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 픽션일까? 사건의 뼈대와 궁정동 안가에서 육군본부 등으로 이어지는 인물들의 동선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자잘한 에피소드와 대사는 영화적 상상력에서 나온 개연성 있는 허구로 채웠다. 아무래도 영화가 실화에 기초하다 보니,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알고 보면, 픽션일 것 같지만 사실에 근거한 장면들도 적지 않다. ‘거짓말 같은 사실’ 몇 장면을 꼽아보았다. 다만 그 사실은 당사자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없으므로 당시에 대해 ‘기록된’ 사실들이다.
우선 코믹해서 사실로 보이지 않지만 사실에 근거한 장면들이 있다. 김 부장은 각하에게 ‘한방 먹인’ 뒤 권총이 격발이 되지 않자 정원으로 뛰어나와 “총 어디 있어”라며 난리를 친다. 살벌한 총격 장면을 어수선한 분위기로 반전시키는 장면이다. 마치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기 위한 ‘장치’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장면은 당시 합동수사본부의 수사기록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다. 물론 김 부장의 과장된 제스처에는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됐다.
각하의 사망 이후, 김 부장과 함께 육군본부로 들어가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육군본부 정문 위병이 막무가내로 제지해 곤욕을 치르는 장면이 나온다. ‘진짜’ 육군참모총장은 웃통까지 벗어젖히며 열을 내지만, 수위병은 그가 육군참모총장을 사칭하는 것으로 오해해 정문을 통과시키지 않는다. 말단 부하가 최고 상관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이러니에 웃음이 절로 나오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도 정승화씨의 자서전 <대한민국 군인 정승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각하의 엽색행각에 대한 묘사도 기록에 근거했다. 자신의 딸이 각하와 잠자리를 함께한 중년여성이 중정 의전과장인 주 과장에게 “새벽에 (우리 딸) 온몸을 쓰다듬으셔서… 벗은 채로 어른 수발을 들었어요. …그 어른 참 대단하세요. 그 연세에”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여성은 “그분이 원하시는 거 당신들이 왜 막느냐”고 따진다. 이 ‘발칙한’ 캐릭터도 나름의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 <궁정동의 총소리>에는 “영화스타 C의 경우엔 그 여자의 어머니가 궁정동 의전과장에게 ‘각하께서 우리 아이를 좋아하는데 당신들이 중간에서 차단해도 돼요?’라고 항의한 적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상황은 바뀌었지만, 대사를 따온 장면들도 있다. 각하는 헬기를 타고 가면서 일본말로 “배꼽 아래 일은 원래 문제 삼는 게 아냐”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동아일보사가 발간한 <정치공작 사령부 남산의 부장들>에 나오는 말을 재구성했다. 각하의 평소 ‘지론’을 상황에 맞춰 인용한 것이다. 이 책에는 당시 대통령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대행사” “소행사”라는 말이 자주 쓰였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영화에서는 이 표현을 “오늘도 연회하신답니다. 큰 걸로”라는 대사로 재구성해 인용했다.
각하의 부정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기 위해 구성한 말처럼 보이지만, 기록에 바탕을 두고 재구성한 대사도 많다. 각하가 궁정동 연회 장면에서 “세상에 민주주의 하는 나라가 몇 나라나 되는지 아나…”라며 미국, 일본, 유럽의 몇개국을 제외하면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고 ‘설파’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대사는 <청와대 비서실>이라는 책에 박 대통령이 이후락 부장 등과 식사를 하면서 직접 한 말로 기록돼 있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연회 중에 각하에게 “캄보디아에서는 300만도 죽었다”며 “데모대 1만명만 죽이면 조용해진다”는 요지의 대사를 한다. 강준만 교수가 쓴 <한국 현대사 산책>에는 당시 차 실장이 이런 내용의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일본어 사용에 대한 근거도 있다. 동아일보사가 발간한 <운명의 술, 시바스>에는 당시 청와대에서 술 마실 때 은밀한 대화를 일본어로 나누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김계원 비서실장은 법정에서 “일본말을 쓰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라며 평소 사용하던 일본말을 재현했다. 또 다른 책에는 유신 무렵, 보안사령관 강창성이 각하가 집무실에서 일본군 장교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엔카에 대한 언급도 있다. 심수봉씨가 쓴 장편 고백소설 <사랑밖엔 난 몰라>에는 “엔카를 잘 부른다는 이유로 정부 고위관리와 재벌들의 연회석에 종종 불려가곤 했다”고 나와 있다.
사실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 허구인지는 영화를 만드는 데, 영화를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근거가 아닐 수 있다. 표현의 자유에 근거한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또 다른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상수 감독과 MK픽처스는 잡지, 소설을 포함해 70여권의 책을 검토하고, 10·26 관련 다큐멘터리 5편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사실을 알아야 구성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논란은 박지만씨가 1월 중순 이 영화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더욱 뜨거워졌다. 박지만씨는 영화 시나리오의 △엽색 행각 △일본어와 엔카 사용 △살해 장면에서 목숨 구걸 등을 근거로 이 영화가 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지만씨의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는 이승환(삼원국제법률사무소) 변호사와 2월1일로 예정된 법원의 결정을 앞두고 1월27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영화를 봤나.
1월26일 법원에 제출한 비디오를 보았다. 시나리오로 볼 때보다 훨씬 악의적이었다. 활자로 보던 것을 영상으로 보니까 더욱 명예훼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특히 어떤 부분이 그랬나.
영화에는 시나리오에 없는 장면도 나온다. 대통령 시해 장면에서 1차 피격을 하고 나서 2차 피격을 하기 전 김재규가 대통령의 정수리를 잡아 일으켜세운다. 마치 참수 장면 같았다. 경찰이 연쇄살인범을 쏘는 순간을 연상케 했다. 또 그 장면에서 김재규가 ‘다카기 마사오’라고 부르는데, 김재규는 실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왜 그런 짓을 굳이 하는지 모르겠다. 유치했다.
주검이 나오는 장면도 논란거리다.
벌거벗은 대통령의 주검을 보여주고, 장관이 주검의 음부에 모자를 씌우는 장면을 보여주는 의도가 무엇인가? 교양 없는 짓이다. 설사 연쇄살인범의 주검이라도 그렇게 묘사하면 안 된다.
영화 마지막에서 박 대통령 장례식 다큐멘터리 장면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영화를 사실로 느끼게 하겠다는 강한 의도가 보였다. 통곡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그때 당신들 왜 울었느냐?’고 윽박지르는 것 같았다.
엽색 장면에 대해서는.
우리 딸을 보듬고 어쩌고 하는 여인의 대사가 시나리오보다 길고 느리게 나왔다. 이 영화가 그날 명령에 따라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진혼곡이라면서 죽은 사람들의 일상은 나오지 않고, 젊은 여성들의 벗은 모습만 나온다. 좌파 상업주의라고밖에 볼 수 없다.
가처분 소송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표현의 자유가 있으면 개인의 인격권도 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해 너그러운 미국조차 허위 사실을 ‘악의적’으로 유포하면 명예훼손이라고 본다. 이 영화는 분명 의도적 악의가 있다. 다만, 명예훼손이 인정되더라도 가처분 신청이 내려지지 않을 수는 있다. 법원이 손해배상 청구 등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권할 수 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민주주의 망가질 것 같아서”…서울 도심 거리 메운 10만 촛불
‘미친놈’ 소리 들으며 3대가 키우는 정원, 세계적 명소로
김영선 두 동생, 윤 대통령 ‘창원 산업단지’ 발표 전 인근 주택 ‘공구’
[영상] ‘윤 대통령 거부권’에 지친 시민들의 촛불…“광장 민심 외면 말라”
‘아버지’ 된 정우성 “아들 책임 끝까지…질책은 안고 가겠다”
한동훈, 정년 연장이 청년 기회 뺏는다는 지적에 “굉장히 적확”
‘명태균 게이트’ 국힘 전반으로 확산...“앞으로 나올 게 더 많다” [공덕포차]
야당 예산안 감액 처리에 대통령실·여당 “민주, 예산폭주” 반발
‘TV 수신료 통합징수법’ 국회 소위 통과에…KBS 직능단체 “환영”
오세훈, 동덕여대 시위에 “기물 파손, 법 위반”…서울시장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