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여성리더십의 새로운 지형, 그 단초를 대학가의 총학생회장 여성 당선자들에게서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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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요?”
질문을 하자 되레 눈이 동그래졌다. 개교 이래 처음으로 첫 여성 총학생회장이 탄생한 서울대(정화)와 숭실대(강주영).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여학생 당선자가 나온 경희대(김노진). 역대 학생회장 중 가장 나이 어린 여성 총학생회장이 나온 홍익대(송효원). “잘할 수 있는 여자가 있는데 굳이 남자일 필요는 없잖아요.” 내년 대학 학생회를 이끌어갈 총학생회장 당선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자신들의 당선에 대해 이들은 “특별할 것 없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처럼 꾸며 말하지 않았다”
물론 학생회에서 여학생들의 선전은 낯선 것이 아니다. 2000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정나리씨 이후 고려대·한국외국어대 등 곳곳에서 여자 총학생회장이 배출됐다. 2004년 한해만 해도 경희대·서울산업대·서울시립대·한국과학기술원 등에선 여학생이 총학생회를 이끌었다. 총학생회장만을 놓고 보자면 캠퍼스 안에서 여성 리더십은 적어도 ‘21세기 이후’부터는 새로운 지형이 그려진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여자가 학생회장이 됐다는 사실이 신기한 것이 아니라 조직론 차원에서 그렇다. 여자들이 이끌면 조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남자들의 견제 또는 반발은 없는지, 리더의 경험이 어떻게 여성을 바꾸는지. 은 여자 총학생회장이 특별할 것 없는 새로운 세대의 풍경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우선 5개 후보팀 중 2개 팀의 정후보가 여자였던 서울대를 보자. 올해 인문대 학생회장을 지낸 정화(22·국문학)씨가 정후보로 나온 팀과 정·부후보 모두 여학생인 이은서(21·법학)·변인희(21·디자인)팀. 연장 투표까지 간 끝에 정화팀이 1위를 차지했고 이은서-변인희팀이 980여표 차로 2위를 했다. 선거 구도가 성대결이 아니었던 것은 1·2위 모두 여학생 선거본부가 차지한데서도 확인된다.
작은 키에 여릿여릿한 몸매만 보면 어디서 힘이 날까 싶은 정화씨는 “(총학생회장에 나선다는 것이) 생각보다 별건 아니었다”고 당차게 말한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하면 사람들이 미리 기대하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서울대 학생회장이 하는 말은 더 무게감 있게 사회가 받아들이고요. 그래서 처음엔 좀 겁을 냈는데 막상 도전하고 보니 그리 대단한 게 아니더라고요.”
동료들의 평가를 취합하면, 정화씨의 장점은 ‘당찬 발랄함’이다. “밝고 쾌활해서 주위 사람들을 힘나게” 하고, “회의를 정리하거나 이끌 때 논리가 정연하고 당당해서 신뢰가 간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연설할 때 이성적으로만 말하는 게 아니라 감동적인 말을 던져서 가슴을 울린다”고 한다. 정화씨는 “남들은 어리고 약해 보인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오버’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아직도 학교 안에선 같은 말을 해도 ‘~요’가 아니라 ‘~입니다’처럼 남성적인 말하기 방식이 더 인정받는 분위기예요. 저는 그렇게 억지로 말하지 않아요. 사람들한테 명확히 의견을 전달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처럼 꾸며 말할 필요는 느끼지 않기 때문이에요.”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 따라 자신의 이미지를 달리 내보이는 것을 ‘페르소나’라고 한다.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이 썼던 가면에서 유래된 페르소나는 사람들이 역할에 따라 선택하는 자기 연출의 가면 같은 것이다. 정화씨는 씩씩함을 과장하기 위해 남성적인 페르소나를 굳이 뒤집어쓸 필요를 느끼지 않은 셈인데, 자신의 고유한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들이 시들해지니 여자들이 한다?
이런 점은 2위를 차지한 이은서-변인희씨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학생회관에 자리잡은 ‘문화인큐베이터’라는 카페지기 출신인데, 변인희씨는 투표기간 중에도 이곳에서 앞치마를 입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학우들을 독려할 시간도 부족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변인희씨는 “이곳에서도 얼마든지 학우들을 만날 수 있다”며 부지런히 테이블을 훔쳤다. 법대 밴드부 동아리에서 드럼을 쳤던 이은서씨 역시 지난해엔 이 카페의 운영위원을 맡아 밴드공연·전시회 등을 기획했다. 선거에서 지고 난 뒤 “조금 울었다”는 이들은 패인을 조직력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투표함 분석을 단대별로 해본 결과 우리가 진 것은 정파 조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 두명이 정·부후보로 나와서가 아니다.”
전국대학기자연합에서 운영하는 웹진 ‘유뉴스’(unews.co.kr)에 따르면, 올해 전국의 대학 학생회 투표 결과 운동권과 비운동권이 비슷한 수준으로 현상유지를 한 것으로 파악된다. 전반적으로 학생회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후보를 내지 못해 투표를 다음해로 미룬 대학도 20여곳이나 된다. 이런 배경에선 흔히 등장하는 이론이 있다. 한 조직이 지닌 사회적 보상이 약해지고 질이 떨어지면 여자들이 대거 진입한다는 것이다. 즉, 총학생회장에 여학생이 당선되는 것은 학생회 활동이 매력이 없어지면서 남학생들이 빠지게 되자 그 빈 자리를 여자들이 채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 대해 모든 당선자들은 펄쩍 뛰었다. “실제로 우리 학생회 일꾼 중엔 남자들이 더 많다.”(김노진·송효원) “왜 남자들이 열심히 하면 학생회가 가치 있는 듯이 말하다가 여학생이 열심히 하면 그렇게 평가 절하하는가.”(정화) “잘하니까 뽑힌 거지 남자가 없어서 대신하는 게 아니다.”(송효원)
3살 나이 많은 남자 부후보와 함께 출마했던 홍익대 송효원(21·국어교육과)씨는 선거 기간 중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부후보가 회장 한다고 안 하던가요?” 하지만 정작 정후보로 정해진 과정에선 별 이견이 나오지 않았다. 올해 사범대 학생회장을 지낸 송효원씨가 워낙 야무지게 일을 해냈던 까닭이다. “요즘 학생들이 학생회나 공동체 같은 곳에 별로 관심 없다고 하지요. 사실 누구나 지향이 있는데 그걸 하나로 끌어모으지 못해서 그런 거 아닌가요.” 그는 사범대의 2학기 사업을 결정하면서 학교복지·사회참여 등에 대해 설문지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돌렸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짰다고 했다. 예전엔 체육행사만 했던 사범대 축제 때는 학생들을 홍보·자원봉사단·프로그램 기획 등으로 조직해 더 너른 판을 벌였다. 그는 학생회 활동을 돌아보며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직 규모가 크든 작든 여성이기 때문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는 장애물들이 있다. 숭실대 강주영(21·실내건축)씨는 “선거 유세 때 남학생들이 많은 공대 강의실에 가는 게 겁났다”고 털어놓는다. “어, 생각보다 예쁘시네요” “노래 한곡 불러봐라”부터 “나가라~”는 반응까지 각양각색이었다. 몇년 전엔 여자 선배가 총학생회 후보로 나오려 했다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포기할 정도로 학교 분위기가 은근히 보수적이었지만, 강주영씨는 “이번에 내가 잘하면 많이 바뀌지 않겠는가”라며 희망을 품어본다. 스쳐 지나가는 빈정거림 외에도 ‘일을 한번 해보려는’ 여학생들이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집단은 ‘예비역’들이다.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던 ‘예비역’
“군대가 사람들을 많이 바꿔놓아요.” 송효원씨는 “복학생들은 여자를 잘 믿지 않고 기회를 안 준다”고 비판했다. “가령 과에서 답사를 준비할 때 복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일을 뚝딱 해치웠어요. 엄연히 답사 책임을 맡은 여자애가 있는데도 말이죠. 너희들은 경험이 없으니까 우리가 할 수밖에 없다는 식이죠. 그런 문제에 대해 지적하면 여자애들하고는 일 못하겠다, 시키면 그냥 하면 되지 왜 이리 말이 많냐고 합니다.” 여학생들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입학 초기에 동아리에 가입하기 위해 동아리방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한 남자 선배가 ‘또 여자야? 이러다 우리 학교 아예 여대 되겠다’고 하더군요.” 김노진씨는 “몇년 새 수시모집 등으로 여학생 수가 급격하게 늘면서 학생들 사이에 이런 혐오감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교수들은 ‘너희들은 공부하다 시집가면 되지’라며 상처를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장애물들이 곳곳에 암초처럼 도사리고 있지만 20대 초반의 이 씩씩한 여성들에겐 콤플렉스가 느껴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남녀 차별이 없는 가정에서 조건 없는 자아 존중감을 배우고 자랐기 때문일 텐데 학생회 한다고 부모가 걱정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모두 “부모님은 어릴 적부터 뭐든 네가 행복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경희대 총학생회장을 지내고 역시 여자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게 된 윤이서윤(22·한의대)씨의 부모는 딸이 학생회 일 때문에 집에 늦게 오는 일이 잦자 아예 학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이런 자신감은 불투명한 미래에 매이지 않고 현재를 충분히 즐기겠다는 태도로 이어진다. 실내건축이 전공인 강주영씨는 “당장은 힘을 쏟아 하고 싶은 것이 학생회 일이다. 임기가 끝나면 어느 누구보다도 공부에 전념할 자신이 있다. 졸업 뒤엔 전공을 살려 신나게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자 못지않게 인정받는 건 중요한 경험”
이 콤플렉스 없는 세대, 개인의 자존감을 날 때부터 체득해온 세대에게 학생회의 경험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연세대 첫 여성 학생회장을 지낸 정나리씨는 “학생회든 동아리든 공동체 안에서 활동했던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자들이 남자 못지않게 인정받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경험이에요. 우리는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는 오로지 집단성에만 물들지 진정한 사회성을 체득할 수 없잖아요. 내 생각을 설명하거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기술을 익히게 되지요. 여자들 중엔 대학 때 사회성 훈련을 하지 않으면 평생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봐요. 그런 연습이 없었던 여자들에게 사회에선 ‘여자들은 그렇지’ 하고 손가락질하기 일쑤니까요.”
그는 또래가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을 압축적으로 겪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고, 그래서 학교를 마친 뒤엔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것을 찾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나리씨는 졸업 뒤 재즈아카데미에서 음악 공부를 했고 지금은 영화음악을 작곡하고 있다. “사회에 나와 보니 여자 총학생회장보다 ‘여자 작곡가’ 되기가 더 힘들다는 걸 알겠네요. 그것이 이제 저의 도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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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울대 ‘남자 성정치국장’ 안상욱씨
성평등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생각할 거리, 실천할 거리를 계속 제안
요즘 학생회 부서 중엔 386 운동권 세대들에겐 낯선 것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성정치국’이다. 성정치국이 무엇인가. 올해 서울대 사회과학대 학생회에서 성정치국장을 맡았던 안상욱(21·사회학과)씨는 “성평등한 학교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남녀 차별에 대해 학우들과 고민을 나누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여학생 수가 늘어났다고 해서 여학생들이 기를 펴고 사는 건 아니다. 대학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보면 대다수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에 비해 과방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문화의 문제인데 툭툭 던져지는 말들과 상황 속에서 여학생들이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여자 동기들이랑 불편한 점들을 이야기하다 보니 무심히 넘어갔던 일들에 대해서도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다.
-문제점을 느낀 뒤엔 어떻게 했나?
=입학한 뒤 한해 동안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1학년 겨울방학 때 사회과학대 성정치국에서 세미나를 한다기에 선뜻 찾아갔다. 다른 세미나들은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정답만 말하려는 분위기였는데 성정치국 세미나는 선배나 후배나 서로 의견을 존중해주는 따뜻한 느낌이었다. 여성학이라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적용될 수 있는 매우 실천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배움이 머릿속으로만 그치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세미나를 통해 여성학에 입문한 뒤 2학년 때는 과에서 친구들과 ‘여행담’이라는 여성주의 소모임을 만들었고 3학년인 올해는 성정치국장을 맡아 일하게 됐다.
-성정치국에선 어떤 일들을 주로 하나.
=새내기새로배움터나 축제 때 성평등과 관련된 강연회, 문화행사를 기획하거나 성매매·여성 노동자 성폭력 등 학교 바깥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 토론·발언하고 이와 관련된 집회에 참여한다. 때로는 관악여성모임연대 같은 교내 여성주의 단체와 연대해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학우들에게 남녀 평등에 관해 생각할 거리, 실천할 거리를 계속 제안하고 고민을 넓히도록 하는 것이다.
-남학생으로서 성정치국 활동을 하는 것이 특이해 보인다.
=중·고등학교를 죽 남학교에서만 보냈다. 말 안 해도 알 수 있다거나, 주먹질로 오히려 우정을 확인한다거나, 어느 한명이 힘을 과시하고 나머지는 굴복하는 그런 남자들의 문화에 한번도 즐거운 적이 없었다. 말 안 하고 지나친 뒤엔 오해가 쌓이게 마련이었고, 힘에 의한 서열주의 안에서는 소수를 빼고는 아무도 행복해하지 않았다. 여자친구랑 얘기를 해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성정치국 활동을 하면서 우선 내가 많이 바뀌었고 그래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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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장벽 뚫고 올라가도 얼토당토 않은 면접질문… 여학생들도 능동적 전략 세워야
“남학생들한테는 하지 않는 얼토당토않은 질문들을 여자라서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사귀는 남자친구와 데이트가 있고, 회사일로 인한 미팅이 있다면 어떤 걸 선택하겠느냐’ ‘애는 낳고 싶으냐’ 등 말도 안 되는 질문들을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남성의 견제가 눈에 띈다고 전했다. “기업 담당자들을 만나보면 이러다간 우리 사회가 모계사회로 간다는 둥 과장을 하지요.”
하지만 통계로 살펴보면 ‘모계사회’ 운운은 ‘엄살’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률을 살펴보면, 2003년 현재 남성 대졸자의 취업률이 61.6%인 데 반해, 여성 대졸자의 취업률은 56.7%로 남성보다 4.9%가 낮은 수준이다(통계청·2003). 고학력으로 가면 이런 상황은 더욱 심해진다. 200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4년제 대학 졸업 이상의 고학력 경제활동 인구는 남성이 89%인 데 반해 여성은 58.2%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4년제 대학생 남녀 비율을 살펴보면 1980년에는 여학생 비율이 22%였는데 2003년에는 36.8%를 차지하고 있다. 여성 고학력자는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받아줄 노동시장은 아직도 열악한 셈이다.
대학을 졸업한 여학생들이 이처럼 취업에 불리한 까닭은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노동시장과 진입장벽의 까다로움 때문이다. 하지만 여학생들도 이를 헤쳐나가기 위한 능동적 전략이 남학생들에 비해 부족한 것 또한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늦은 진로 결정, 그에 따른 준비 부족 등이다. 예를 들어 2004년 2월 취업정보회사 잡링크가 20대 구직자 중 남자 4117명, 여자 3241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언제 희망 직업을 정했느냐’는 질문에 남성들은 대학교 1~2학년 때가 28.1%, 대학교 3~4학년 때가 48.1%라고 답했다. 반면 여성들은 대학교 1~2학년이 22.6%, 대학교 3~4학년이 47.6%라고 답했다.
진로를 선택하는 데에는 직업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전문지식도 필요하지만 미래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 낙관적 전망, 자신감 등 심리적 요소도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대학 여성 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University Women)에서 발간한 1992년도 보고서는 “교육 연한이 길어질수록 남학생들은 자존감·성취도·직업적 열망이 높아지는 반면, 여학생들은 자존감이 낮아지고 직업적 열망도 낮아진다”는 결과를 발표해 학계에 충격을 던졌다.
우리나라 여학생들은 어떨까. 2001년 아주대 사회학과 이선이 교수가 실시한 ‘학년별 자아효능감·인생만족도·행복감 평균 점수’를 살펴보자. 여학생의 평균 자아효능감 점수는 2.54로 남학생의 2.58에 비해 약간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남학생은 자아효능감·인생만족도·행복감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반면, 여학생은 기복이 심하거나 3학년까지 상승하다가도 4학년이 되면 하락한다. 이선이 교수는 “남녀공학에서는 남학생들이 주도적 역할을 맡아 여학생들이 리더 역할을 할 기회가 박탈되는 반면 여학교에선 의존할 남성이 없어 여성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발달하게 된다”며 “남녀공학에서 여학생들에게 성취감·자존감을 심어주려면 여성 동문·여교수 등을 자주 접촉하도록 해서 여성 리더의 역할모델을 발견하게 해주고 공동체 안에서 리더십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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