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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창제’는 진정한 대안인가

등록 2004-10-14 00:00 수정 2020-05-03 04:23

‘단군 이래 처음’인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 요구… “말도 안된다”는 시각부터 “공론화 필요성”까지

▣ 김성재 기자/ 한겨레 문화생활부 seong68@hani.co.kr

지난 10월7일 낮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성매매 종사 여성들이 벌인 시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전국에서 올라온 3천여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그것도 백주 대낮에 국회 앞에서 당당하게 집단 행동을 벌인 것은 ‘단군 이래 처음’이었다. 여성계는 물론 성매매를 은근히 애용해왔던 한국 남성사회도 깜짝 놀랐다. ‘성매매 여성은 밤에만 만난다’고 생각했던 남성들은 한편으론 의아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혹시(?)’ 하는 심정으로 이들의 시위에 곁눈질을 멈추지 못했다. 언론도 이를 놓치지 않고 크게 보도했다.

금지주의로 일관해온 성매매 정책

이날 시위에서 사람들을 가장 당혹케 한 것은 이들의 구호였다. “생존권을 보장하라!” 불법 행위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성매매 산업 종사원들의 생존권을 보호해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모습은 쫓겨난 철거민이나 부당해고 노동자들만큼이나 당당해 보였다.

이들은 성매매의 합법화를 요구했다. 정부가 일정한 지역에 한해 합법적이고 공공연히 성매매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사실상의 공창제 도입을 주장한 것이다. 국제적으로 조롱당할 만치 사창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공권력이 이를 강력히 단속하려고 하자 공창제를 허용하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과연 공창제는 성매매 여성들을 먹여살리면서도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는 진정한 대안일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 공창제가 사라진 것은 이미 수십년 전이다. 일제시대는 물론 해방 뒤 미군정 때에도 ‘관기’를 통한 공공연한 매춘(성매매)이 이뤄졌지만, 지난 1961년 윤락행위방지법(이하 윤방법)이 제정되면서 공창은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윤방법을 기초로 했던 우리나라의 성매매 정책은 한마디로 ‘금지주의’였다. 금지주의는 성매매를 불법으로 보고 성 판매자 혹은 성 구매자를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9월23일부터 시행된 우리나라의 성매매 처벌법·보호법은, ‘모든 성매매는 여성 인권의 말살’이라고 보고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강력한 단속과 처벌로 성매매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한 스웨덴의 금지주의를 모델로 삼았다.

정부가 공창제를 차마 입에도 담지 않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성매매는 이미 우리 법 체계상 원칙적으로 ‘불법’이라는 결론이다. 공창, 즉 성매매를 직업으로 인정해주자는 주장은 불법 행위를 특정 지역과 여성들에게 용인해주자는 논리적 모순을 불러온다. 또 열번을 물러나 공창을 허용했을 경우에도, 그 폐해가 너무나 크다는 것이다. 공창을 허용한다고 해서 사창을 흡수하거나 소멸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번성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우리 사회는 공창과 사창이 마구 병립하는 ‘성매매의 천국’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여성부 권익증진국 정봉협 국장은 “정부는 법 제정 이전에 이미 수많은 토론을 거쳐 우리 사회에 공창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지금의 우리 사회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여성에 대해 억압적이고 성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갖고 있어 공창제를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시민사회나 학계에서도 공창제에 관한 논란은 그다지 활발하지 못해왔다. 그동안 성매매가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억누르는 가장 대표적인 산업이란 측면과, ‘성매매란 더럽고 부도덕한 행위’라는 국민들의 고정관념 탓에, 공창제에 대한 논의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돌을 맞는’ 분위기였다.

여의도에서 나온 성매매 여성들의 공창제 주장에 대해 정부는 새로운 법 집행과 강력한 단속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포주들이 단속 회오리가 지나고 시간이 흐르면 영업을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성매매 여성들을 붙잡아놓고 생존권 보장이나 공창제 주장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성매매 여성들도 단속이 수그러들기를 헛되이 기다리지 말고 빨리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스웨덴의 경우에도 정부와 경찰의 강력한 단속 태풍이 수차례 일자, 초기에는 이를 피해 지하로 숨거나 영업 중단을 거부했던 포주와 성매매 여성들이 결국 전업을 택했다.

>“포주들의 계획된 전략일 뿐”

성매매 여성들의 공창제 주장을 놓고 여성단체들은 허탈감을 넘어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현장에서 꾸준히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위해 이들의 탈성매매를 도와온 여성단체들은 이런 주장이 포주와 이들에게 우호적인 성매매 여성들에 의해 조작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6월 발족한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정미례 공동대표는 “포주와 일부 성매매 여성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고 생존권을 이유로 공창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해 정부의 성매매 특별법과 단속 의지를 무력화해 결국 불법 성매매 영업을 지속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법 시행 초기부터 공창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 정부와 여성단체의 성매매 근절 의지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포주들의 계획된 전략”이라고 말했다.

한 여성단체 활동가도 “포주와 성매매 여성들의 공창제 주장으로 성매매에 대한 현실이 국민들에게 크게 오도될 수 있다”며 “실제 대다수 성매매 여성들이 정신적·육체적·사회경제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에서 공창제는 생각할 수 없는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성매매 특별법 시행과 정부의 강력한 단속, 성매매 여성들의 집단 반발과 잇따른 죽음 등을 계기로 무조건적인 금지와 단속보다는 다른 대안을 모색할 시점이라는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1999년 공창제 폐지를 시작했던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시에서는 공창 여성들이 여성단체의 도움을 얻어 오히려 ‘공창제를 부활시켜달라’며 연일 시위를 벌인 일이 있었다. 이들은 현실적으로 성매매가 근절될 수 없다면, 다른 방법으로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는 성매매 여성들에게 법적인 보호를 받으며 성매매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종성 교수(서원대 정외과)는 “성매매 여성을 ‘더럽다’고 손가락질하면서도 또다시 밤이 되면 이들을 찾아가는 우리 남성사회의 이중성과 사고의 경직성이 성매매 여성들을 더욱 절망으로 몰고 가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박 교수는 “현실적으로 최선이 불가능하다면 ‘차악’을 찾아야 한다”면서 “‘무균질 사회’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몸 파는 여성’에게도 시민·유권자로서 인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방향의 논의가 이제는 공론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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