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돌입한 KBS 정연주 사장 인터뷰… “떳떳한 공영방송 될 때 정치권도 수신료 인상 검토할 것”
▣ 정리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한국방송(KBS) 정연주 사장은 시절부터 ‘드라마광’으로 유명하다. 그가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짰다’는 이야기는 후배들 사이에서도 ‘파다했다’. 정 사장은 타고난 ‘테돌이’인데다 미국 특파원 시절에는 미국의 공중파, 케이블 채널을 두루 섭렵했다. 요즘도 주말이면 드라마 테이프를 잔뜩 쌓아놓고 보고, 평일에도 4개의 공중파 방송을 켜놓고 모니터링을 한다. ‘일과 여가’의 행복한 결합인 셈이다. KBS 개혁을 이야기할 때면 무거워졌던 눈빛이 드라마를 이야기할 때면 반짝반짝 빛났다. 그는 KBS 개혁을 ‘역사적 당위’라고 강조했다.
이제 ‘창가족’도 떳떳해질 것
-사장 취임 뒤 가장 먼저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 문제점은?
=좋은 프로그램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방송은 종합예술이다. 기획, 제작, 기술이 합쳐져야 한다. 개개인의 독창력과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KBS의 관료주의, 권위주의가 창의력 발휘를 막아왔다. 취임하면서 사장의 제왕적 권위를 하방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임기가 끝날 때는 무력화된 사장이 되는 것이 목표다. 팀제 개편은 현장 중심의 문화를 꽃피우는 방안이다. 물론 지난 1년2개월 동안 충분한 의견 수렴과 토론을 거쳤다. 나는 집단의 지혜를 믿는다.
-정연주의 개혁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는 목소리는 없나?
=팀제 개편 등은 정연주의 작품이 아니다. 이른바 ‘노조 탈레반’이 밀실에서 만든 것도 아니다. 수년 전부터 KBS 안에 개혁의 움직임이 있었다. 밀레니엄 기획단 등의 이름으로 개혁안도 나와 있는 상태였다. 내가 한 일은 개혁을 ‘집행’한 것이다. 그래서 이름도 KBS 개혁 ‘추진단’이었다. 무한경쟁 시대에 개혁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위기의식이 개혁의 동력이다.
-이번 개편은 노조가 주도했다는 평가가 있다.
=사실이다. 7개 지역국 폐쇄는 노조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다. 지역 노조의 반발에도 전체 노조원들이 동의했다는 것은 개혁이 시대의 요청이고 역사의 필연이기 때문이다. 현장을 우대하는 시스템으로 가면 조직원들의 생각도 바뀔 것이다. 기존의 조직으로는 전문 PD, 전문 기자가 나오기 어려운 구조였다.
-조직 개편 뒤 2주가 지났다. 부작용은 없는가?
=빠르게 안정돼가고 있다. 라디오 본부 간부들은 평사원도 맡기를 꺼리는 새벽 프로그램을 하겠다고 나서는 솔선수범을 보였다. 제 역할을 못 찾았던 이른바 ‘창가족(族)’(창가에서 바깥만 바라보며 제 몫을 못하는 사람들)도 조직개편을 통해 떳떳해질 수 있다. 지금까지는 차장 진급을 못하면 물먹은 것이 되고, 부장이 못 되면 인생의 패배자가 되는 분위기였다. 이것을 한꺼번에 바꾸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구성원 모두를 위해서 좋은 일이다.
-직장협의회 등 비판 세력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들의 움직임이 활성화되지는 않고 있는 듯하다.
=비판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직협이 활성화되지 못한 원인은…. 우선 회사에 사내게시판(KOBIS) 등 비판 의견을 제시할 통로가 많이 있다. 노조도 있고, 17개의 직능협의회도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비판 세력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 비판이 건강하냐 여부가 문제다. 이미 KBS 안에는 정치적인 비판을 걸러낼 건강한 풍토가 자리잡고 있다.
-한겨레신문사에도 수많은 조직 혁신안이 있었다. 정연주 사장은 2001년에 한겨레발전위원장을 맡은 적도 있다. 한겨레와 비교하면 어떤가?
=한겨레는 너무 혹독(!)한 조직이어서 거기에 비하면 KBS는 점잖다. (웃음) 한겨레는 지나치게 이데올로기 중심이어서 개혁을 하기 힘들다. KBS는 그런 측면이 없으니까 오히려 개혁 논의가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퇴출 구조 만들어야
-팀제 개편과 지역방송국 통폐합을 바라보는 2가지 시선이 있다. 사원 대부분을 평사원으로 만들어 승진에 목표를 두지 않게 만드는 포퓰리즘적 개혁이라는 시선과, 그러면서도 사람 하나 자르지 않아 구조조정 시늉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조직개편은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의 동의를 얻어 진행된 것이다. 대중에 영합해 인기를 얻기 위해서라면 적당히 현상유지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KBS 사장 얼마든지 적당히 편하게 즐기면서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평생을 언론인으로 살아왔는데 마지막 불꽃을 태워야 할 곳이 지금, 여기라는 역사적 책무를 느꼈던 것이다. 왜 사람 안 자르냐고들 하는데, 우리는 공기업이고 퇴출 구조가 없다. KBS가 ‘철밥통’이라면 역시 사람 함부로 못 자르지 않는가. 사실 장기적으로 본다면 경영효율을 위해선 공무원도 퇴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신자유주의라면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팀제 개편 이후 승진 개념이 사실상 사라졌다. 조직을 운영하려면 임무에 대한 확실한 보상·평가 시스템이 있어야 조직 안에서 개인이 목표를 설정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 팀제 성공은 투명하고 객관적인 보상과 평가가 핵심이다. 앞으로는 인사고과에 개인평가와 팀에 대한 평가가 함께 들어간다. 이는 급여·인사고과 등에 반영될 것이다. 현재 평가보상팀이 안을 마련하고 있으니 좀 기다려봐야 한다. 또 우리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인정받을 최고의 PD, 최고의 기자를 만들 것이다. 곧 전문가제도를 마련해 관리자로 가지 않고 전문 저널리스트로 남을 사람들을 선발할 것이다.
-팀제가 KBS의 기형적 인사구조를 해결하는 것뿐 아니라 다른 언론사에도 적용될 수 있는 해법이라고 생각하나?
=물론. 우리나라 언론 환경에선 한번 데스크가 되고 나면 다시 평기자로 내려오는 것을 물먹는 걸로 생각한다. 하지만 외국에 특파원으로 보내면 일 잘하는 국장이 국내에서 한다고 못하겠는가? 도 마찬가지로 항아리형 인력구조를 깨뜨려야 한다. 또한 일부 공기업에서도 우리의 팀제개편을 벤치마킹하려고 한다. 문제는 이름만 팀제로 바꾸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이다. 위계 구조는 그대로 두고 선배 중심으로 인사발령을 내면 안 된다. 처음부터 파격 인사를 해야 한다.
-정연주 사장이 와서 KBS 프로그램이 변했다는 반응이 지배적인데?
=절대 안 그렇다. 정연주 때문에 KBS 변했다고 하면 개혁 열망을 지녀온 구성원들에게 모독 아닐까. 는 나 오기 전부터 기획안이 나와 있었고, 는 종래의 미디어 비평 코너를 확대한 것이다. 는 기존의 과 비슷한 프로그램이고. 내가 단행한 변화라면 신입사원 선발 시스템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저 감사패들을 봐라(지방자치단체장 또는 대학 총장들이 보낸 것들이다). 지난해부터 지역기자를 뽑을 때 지방대학 졸업생 50% 할당제를 실시했다. 공영방송이라면 특정 지역 특정 계급 출신자들만 뽑아서 되겠는가. 여성과 지방대 출신 등 마이너리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은 가산점 주는 길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크니 가산점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영어시험 비중을 줄이고 한국어능력시험 비중을 높인 것도 보람으로 생각한다. BBC가 표준 영어, NHK가 표준 일본어를 대변한다면, KBS는 우리말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부여해야 한다.
지방대 졸업생 50% 할당제 실시
-감사원에선 ‘구조조정 먼저, 수신료 인상은 그 다음’을 주문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수신료 인상은 국회에서 결정할 문제이므로 KBS 사장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당당하고 떳떳하게 공영방송으로서 존재 의미를 가진다면,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들도 24년 동안 계속 2500원에 묶여 있던 수신료 인상을 검토하지 않겠나. 사실 난 사원들에게 당당할 수 없는 사장이다. 경제 사정이 안 좋으니까 광고 수입이 안 좋다. 지난해도 긴축했고 올해도 임금을 못 올려준다. 2년 연속 임금 동결하는 최고경영자가 포퓰리스트 될 수 있겠나. 그렇잖아도 조직개편과 지역방송국 통폐합으로 변화에 스트레스가 많은데 이를 못 달래주는 것이 원망스럽고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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