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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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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 돕는 건 배신 배반이야”

등록 2004-06-23 00:00 수정 2020-05-03 04:23

‘눈치 10단’ 쿠르드인들, 겉으론 찬성해도 속내는 복잡… 아랍계와의 갈등도 파병에 큰 위험

아르빌= 글 · 사진 김영미/ 자유기고가

지난 6월18일 정부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지역에 추가 파병될 이라크평화재건사단(자이툰부대)은 북부 아르빌주의 라슈킨, 스와라시 두 도시에 나뉘어 주둔하면서 아르빌주 일부와 인접한 니나와주 일부를 책임지게 된다”고 밝혔다.

정작 한국 정부 발표가 나던 날은 이곳 아르빌이 휴일인 금요일이라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하지만 한국의 월요일 격인 토요일 아침이 되자 이곳 정부청사의 관리들은 한국군 파병에 비상한 관심을 드러냈다. 마침 바그다드를 방문 중인 쿠르드 자치정부의 총리 대신 부총리가 현지 기자들에게 한국군 파병이 시작됐음을 밝혔다. 이곳에서 가장 큰 방송사인 를 비롯해 현지 방송사들이 하루 종일 한국군 파병 지역이 아르빌로 확정됐음을 뉴스 시간마다 톱 뉴스로 다루었다.

‘기업’이라는 콩고물에 관심

연일 4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 상점을 열고 있는 시민들과 길가는 시민들도 모두 텔레비전을 열심히 보며 한국군 파병에 관심을 보였다. 긴 역사 속에서 인접국들과 마찰을 빚거나 이용당하는 것을 반복해오던 쿠르드족은 한국 교민들이 ‘눈치가 10단’이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변화에 예민하다. 시민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한국군이 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대부분 “환영한다. 한국군이 도로 공사나 하수 처리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그들은 앞으로 한국군이 이곳에 오면 쿠르드 지역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곳 아르빌에만 3만여명의 페슈메르가(쿠르드 민병대)가 치안을 담당한다. 술라이마니야를 포함해 전 쿠르드 지역을 모두 합하면 7만여명의 민병대가 활동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아르빌에는 군인들이 넘쳐난다. 페슈메르가를 담당하는 장관인 하미드씨는 “한국군이 오는 것을 환영한다. 또 한국이 이곳의 경제 발전에 더 많이 기여하길 기대한다. 한국군의 안전은 우리 페슈메르가가 지켜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들은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을 도와 사담을 밀어내면서 오랫동안 게릴라로 산에서 싸우던 것을 종식하게 됐다. 이제야 자기들 세상이 왔다고 만족해하는 실정에 군복을 입은 외국인이 오는 것이 과히 좋지는 않지만 한국군이 오면서 한국 기업들과 구호단체들이 세트로 따라와 준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그들의 속마음이다. 아르빌에서 사업을 하는 탈라(42)씨는 “이곳은 군인이 너무 많다. 그러니 한국군이 오는 것보다 한국 기업들이 같이 올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같이 파트너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쿠르드 사람들은 장사에 눈이 밝은 민족으로 알려졌는데 사실 콩고물에 더 관심이 있는 눈치다.

한국군이 파병될 예정인 아르빌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시내 한가운데에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올 법한 고성이 자리해 있고 쿠르드족이 75%, 터키족이 20% 그리고 아시리안족과 칼다니안족이 합쳐서 5%가량 이곳에 살고 있다.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지만 아시리안과 칼다니안족은 가톨릭을 믿는다.

북쪽으로는 터키 국경과 접하면서 터키군을 상대로 15년 동안 투쟁해온 쿠르드 게릴라 단체인 쿠르드 자유민주회의(KADEK)를 중심으로 싸우고, 동쪽으로는 이란 국경과 접하면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대리전 양상의 싸움을 벌이고, 서쪽으로는 시리아와 접하면서 매번 크고 작은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것이 쿠르드 지역의 지리적인 위치이다. 또 앞서 파병지로 확정됐던 키르쿠크는 차로 겨우 1시간 정도 남쪽에 위치한다. 파병지가 변경된 뒤로 한국 언론의 관심이 끊겨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 키르쿠크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져 미군들도 거의 기지 밖으로 나오지 못할 정도로 저항세력의 공격이 치열하다.

쿠르드 내부의 복잡한 분파 충돌

그리고 아르빌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1시간 거리에는 모술이 위치하고 있다. 여기도 만만치 않아서 하루라도 저항세력의 공격이 없는 날이 없다. 미군들이 자조 섞인 소리로 지옥이 따로 없다고 하는 곳이 모술이다. 이런 곳에 한국군이 파병되다 보니 아무리 아르빌이 안전하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안전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구나 주둔지 중 하나인 니나와주는 모술 옆에 붙어 있어서 안전을 장담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여기에 정치적인 상황 또한 좋지 않다. 쿠르드족이 여기서 하나로 똘똘 뭉친 것도 아니고 크게 두 파로 나뉜다. 쿠르드 지역을 둘로 나누어서 위쪽은 아르빌을 중심으로 하는 쿠르드민주당(KDP)으로 마수드 바르자니가 집권하고, 아래쪽은 술라이마니야를 중심으로 쿠르드애국동맹(PUK)으로 잘랄 탈리바니가 집권하고 있다.

문제는 두 파가 그동안 서로 대립해 죽고 죽이면서 물리도록 싸웠다는 점이다. 지금이야 겉으로는 연합하는 척해도 물밑에서는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 정부도 회담을 해도 두번씩, KDP와 한번, PUK와 한번 해야 하고, 심지어 지난 1월 아르빌시에서 312명의 사상자를 낸 폭탄 테러조차 두 당사에 같이 났다. 미군도 폭탄 테러범도 두 군데 다 신경써야 할 정도로 두 집권당이 막상막하다.

앞으로 종족간 내전도 가능

더군다나 지난 6월15일에서는 키르쿠크 PUK 지도자이면서 당수인 탈리바니의 사촌 가지 탈리바니가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다가 괴한에게 피격을 당했다. 현지 사람들은 아르빌파인 KDP가 사주한 거라고 수군거렸지만 정확한 물증은 나오지 않았다. 하긴 이 혼란의 이라크에서 누가 범인임을 밝힐 것이며 물증이 어디에 있는가. 그러니 현지에서는 두 파가 속으로는 많은 갈등을 겪고 있구나 하는 것만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크지 않은 아르빌시에는 23개의 당이 존재한다. 정치로 종교로 이념으로 민족으로 갈리고 갈려서 23개나 되는 당들이 저마다 정치적인 입장을 내세우고 있어서 쉽게 누구의 의견이 옳은지 알 수 없다. 빵보다 정치가 우선이라는 이들을 골고루 만족시킬 수 있을지 염려된다. 정치적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곳에 오는 한국군도 머리가 아플 것이고 자칫 정치 싸움에 휘말릴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아르빌 중심으로 제기되는 우려의 목소리이고 이라크 전체를 들여다보면 더 골치 아픈 문제가 있다. 바로 아랍계와 쿠르드 사이의 갈등이다. 아랍인들에게 “쿠르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거의 90%가 비난을 퍼붓는다.

또 쿠르드인들에게 아랍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면 거품을 물고 욕한다. 두 민족은 생긴 것도 다르지만 언어도 다르고 어찌 보면 서로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다고 한다. 미군을 도와서 민가 수색을 돕고 저항세력 색출에 협조한 쿠르드족은 이미 아랍계와 감정이 상할 대로 상했고 그 골이 아주 깊다.

더군다나 쿠르드는 전쟁 뒤 오랜 숙원인 쿠르드의 분리 독립을 원하고 나라 이름도 아예 ‘쿠르디스탄’으로 부른다. 이라크라고 하지도 않고 자기네 국기를 흔들어대고 있으니 이라크 아랍계 사람들의 눈엣가시가 되었다. 게다가 쿠르드족은 유전지대인 키르쿠크를 접수하고 키르쿠크에 사는 아랍인들을 키르쿠크에서 쫓아내려 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앞으로 종족간 내전도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아랍계 방송인 기자인 모함마드(37)씨는 “이미 민족간 전쟁이 시작됐다. 이번 새 정부 구성에서는 서로 눈치를 보면서 양보했지만 다음 정부 구성에서는 쿠르드건 아랍이건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일 것이다. 피를 부르는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내다봤다.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라

이 판국에 한국군은 키르쿠크에서 아랍 사람들까지도 도와주러 간다고 했다가 돌연 쿠르드로 파병지를 바꿨으니 아랍인들은 아랍계를 버리고 쿠르드족을 도와주러 아르빌로 간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한국군이야 안전한 아르빌에서 나오지 않으면 된다고 해도 그 밖의 지역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우려할 만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이라크는 어디도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하는 아르빌도 정치적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치안은 날이 갈수록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다. 이제 폭탄이 얼마나 터지고 누가 얼마나 죽고 하는 것은 이라크에서나 한국에서나 뉴스가 되지 않는다.

지난 몇달간 만나서 인터뷰한 이라크의 주요 인사들 가운데 3명이나 이미 피살됐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그만큼 이라크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주요 인사가 되면 목숨을 내놓고 다녀야 할 정도로 표적 암살이 극성이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 둘러싸여 있는 한, 아무리 치안이 안정된 아르빌이라도 변수는 있기 마련이다. 이곳이 안전하다는 것만 언급하지 말고 만약에 발생할 수도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대비가 중요하다. 그것은 창군 이래 최대의 군 파병을 앞둔 우리 한국군이 마지막까지 고심해야 할 중요한 숙제이다.



전투력의 상징, 페슈메르가

주둔예정지 라슈킨은 예전 후세인의 군대가 주둔했던 지역
페슈메르가란?

쿠르드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마수드 바르자니의 아버지이고, 쿠르드민주당(KDP)의 창립자인 무스타파 바르자니에 의해 1946년 조직됐다. 쿠르드 지역의 산악지대를 무대로 쿠르드 독립과 사담 후세인에 반대하며 게릴라로 싸웠고 ‘피의 전사’라는 뜻의 민병대이다. 변변한 무기조차 갖추지 못했지만 수십년간의 전투 끝에 이란 국경에서부터 서쪽으로 진군하여 아르빌에서 동쪽으로 40여분 거리의 살라아딘이라는 곳에 근거지를 두고 아르빌을 장악했고, 한때 키르쿠크까지 진출했으나 사담의 군대에 의해 다시 아르빌로 후퇴한 바 있다. 현재 7만여명의 페슈메르가가 쿠르드 지역의 치안 유지를 담당하고 있으며 그들의 전투 능력은 상당히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과 작전을 수행할수 있을 정도로 조직적이다. 이라크의 주권이양이 6월 말에 이뤄짐에 따라 이들은 중앙 정부 통제 아래 경찰이나 군인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한국군이 주둔할 지역 중 라쉬킨은?

아르빌시에서 북쪽으로 10여분 떨어진 거리에 있고 바로 인근에 아르빌 공항이 위치하며, 자이툰부대 본부인 사단사령부가 주둔하게 될 지역이다. 주둔지 옆에는 30여 가구의 작은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 이름이 라슈킨이다. 이전에 사담의 군대가 주둔했던 지역이다. 주민들의 통행이 금지됐던 곳으로, 주민들에게는 어두웠던 사담 통치 시절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은 한국군이 이곳에 들어오는 것을 알고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양을 치거나 농사를 짓고 있다. 현재는 페슈메르가 대원들 4명이 그곳에 초소를 만들어 경비를 서고 있다. 한국군은 2㎢ 국유지를 쿠르드 자치정부로부터 무상 지원받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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