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라면’과 ‘포르말린 통조림’의 교훈… 대법원 무죄 판결 났어도 업체들은 쓰러져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우지라면’의 교훈을 잊었는가? 불량만두 사건에 대한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태도가 15년 전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수사기관의 발표를 철저한 검증 없이 그대로 ‘전재’하는 언론의 무책임한 행태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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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라면 사건은 지난 1989년 검찰이 라면 원료로 수입 우지를 사용한 삼양식품 등 5개 식품회사 대표와 직원들을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등의 혐의로 전격 구속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이 밝힌 업체들의 혐의 내용은 비누나 윤활유를 만드는 데 사용해야 할 공업용 우지로 라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라면의 대중적 인기만큼이나 사회적 충격과 파문은 대단했다. 소비자단체들은 대대적인 불매운동을 벌였고 라면 생산은 중단되다시피 했다. 당시 시장점유율 60%로 라면업계 1위이던 삼양식품은 이 사건 직후 1천여명의 종업원들이 회사를 떠나고 100억원대 이상의 라면 제품을 회수하는 등 타격을 입어 시장점유율이 한 자릿수까지 곤두박질쳤다. 다른 4개 업체들도 2천억원 이상의 피해를 봤다. 관련 업체인 부산유지화학공업은 결국 도산했다.
재판에서 검찰은 비식용 우지를 라면 제조에 사용하는 것은 명백히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일부 식품전문가들로부터 라면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던 우지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연구 결과를 받아냈다고 강조했다. 반면 식품업체들은 “라면 제조에 사용한 우지는 국내에서 정제돼 보사부(옛 보건복지부)의 기준 규정에 합격했기 때문에 인체에 무해한 것은 물론 사법 처리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업체들은 “식용과 비식용의 구분은 미국이 가격등급을 정하기 위해 설정한 기준일 뿐이며 비식용 우지도 정제 과정을 거치면 식용으로 쓸 수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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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재판부는 업체들에게 유죄를 선고했으나, 2심에서는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검찰의 상고로 사건을 맡게 된 대법원 형사1부(당시 정귀호 대법관)는 1997년 “우리 사회의 식생활 관행으로 볼 때 당시 식품업체들이 사용한 우지가 식품원료의 일반 기준인 ‘사회 통념상 식용으로 하지 않거나 상용식품으로서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은 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이 사건 이후 정부는 공업용 우지로 식품을 생산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법적 조치를 완비했다.
지난 1998년에 있었던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도 수사기관과 언론의 선정적인 행태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한 대표적 사건이다. 검찰은 골뱅이 통조림에 인체에 치명적 해를 가하는 포르말린을 넣은 혐의로 서아무개씨 등 제조업자 4명을 기소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1심 재판 때부터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1심 재판부는 업자들이 원료에 포르말린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거나 포르말린을 일부러 넣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재판과정에서 포르말린이 자연 상태에서도 소량 생겨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 때 자연 상태에서 포르말린이 골뱅이 1kg당 0.01∼0.02mg 들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문제의 제품에서 0.03∼0.19mg이 검출된 점을 들어 인위적으로 넣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서씨 등은 2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돼 누명을 벗었다. 하지만 서씨 등이 입은 피해는 돌이킬 수 없었다. 언론들은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만을 믿고 서씨 등을 파렴치범으로 몰고 갔다. 골뱅이 통조림 생산업자들은 영업에 치명적 타격을 입었고 도산하는 회사들도 속출했다.
서씨 등은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검찰과 언론을 상대로 30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거액의 손해배상 위협을 느낀 언론들은 공동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기자들은 서울지검 기자실에 모여 대책회의를 열고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 하나가 골뱅이 통조림 업체들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기사를 쓰는 것이었다. 신문과 방송들은 손배 소송 1심 판결이 임박한 2001년 여름부터 업주들의 딱한 사정을 알리는 기사를 일제히 내보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이 통했을까. 법원은 잘못된 검찰 수사의 책임을 물어 국가에 3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지만, 언론들에게는 “공신력 있는 기관의 발표이기 때문에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면죄부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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