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없는 게 가장 많은 대학교, 그러나 골리앗 대학들이 부럽지 않은 그들만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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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회대는 작다. 서울에서 없는 게 가장 많은 대학교이다. 하지만 서울의 골리앗 대학들이 부럽지 않은 점들이 많다. 왜 그럴까. 성공회대가 잘나가는 비밀을 알아보았다. |


▣ 글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이 대학엔 없는 게 많다. 교문, 담, 교수식당, 총장 판공비.
일부러 없앤 게 아니라 원래부터 없는 것도 많다. 가령 욕심 없기로 이름난 총장조차도 이것만은 꼭 갖고 싶다 했다. 샤워실이 딸린 체육관.

서울에서 가장 작은 종합대학교. 13개 학과에 학생 수 2천여명, 교수 72명에 직원(정규직)은 20여명에 불과하다. 재정과 조직 면에서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정말, 규모는 숫자에 불과하다. 최근 이 학교의 활동을 눈여겨 들여다보면 진짜 그렇다.
외부평가, 몇년새 알짜배기 성적
종합대학교로 출범한 지 올해 10돌을 맞은 성공회대학교는 외부평가에서 몇년새 내리 알짜배기 성적표를 받고 있다. 특히 성공회대의 강점 분야인 사회복지·사회학과는 전국에서 수위를 다툰다. 지난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표한 ‘2002년도 학문분야평가’ 결과 성공회대는 서울대·이화여대와 함께 사회복지 분야에서 ‘최우수’(100점 만점에 90점 이상)를 받았다. 사회학과도 교수 1인당 연간 3.13권의 단행본을 단독·공동으로 출간해 저서 실적에서 1위에 올랐고 해외 학술지에 실린 논문 수(2위), 2000~2002년 기준 교수 1인당 외부 지원 연구비(3위), 학술발표(6위), 등록금 대비 장학금 환원율(5위·17%로 1위는 서울시립대 26%임) 등 거의 모든 지표에서 강세를 보였다. “교수 수만 더 늘어난다면 연구·강의 면에서 아시아 최고의 사회학과가 될 것”이라는 이 학교 김동춘 교수의 자신감도 괜한 것이 아니다.
돈과 조직과 권위를 갖춘 골리앗 학교들 가운데 ‘틈새’를 노리는 게릴라 전략은 작고 힘없는 학교가 선택한 최선이었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 정치와 사회를 움직여온 시민사회단체의 눈부신 성장을 눈여겨본 성공회대는 1998년 국내 처음으로 NGO대학원을 설립해 활동가들이 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2004년엔 서울연극제 등 굵직한 행사를 꾸려온 기획자 강준혁씨를 초빙해 예술경영·문화기획 등을 가르치는 문화대학원이 문을 열었다. 2002년 개설된 신생학과 디지털콘텐츠학과는 국내에서 전문대를 졸업한 뒤 할리우드에서 게임 및 그래픽업계의 독보적 지위에 오른 윤용기씨를 교수로 임용하는 파격 인사를 하기도 했다.
국내 유수의 대학들이 돈을 주고라도 미국의 대학들과 교류하고자 분주할 때 학생들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성공회대 글로컬센터는 중국·일본을 비롯해 인도·러시아 등에서 공부하며 학점을 따고 어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교수들의 활발한 사회참여 활동이 빚어낸 결과일 텐데, 민주화운동자료관·사이버NGO자료관·인권평화센터·민주사회정책연구소·민주사회교육원 등은 우리 사회 인권·평화·민주화와 관련한 자료조사·연구·교육·정책생산의 거점 기지다. 교수들은 “조직이 작은 만큼 의사결정도 빨라서 교수가 원하는 강의와 필요한 프로그램 등을 신속하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꾼들이 모이는 학교로 자리잡다
김성수 총장은 10년 전엔 “(학교 성적이 시원치 않은) 우리 아이는 성공회대나 보내야겠어요”라던 학부모들이 이제는 “성공회대를 어떻게 해야 보낼 수 있을까요?”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학교 평판이 높아진 것은 학교가 잘해서만은 아니다.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우리 학교의 막강한 교수님들이 그동안 언론을 휘어잡았다”며 껄껄 웃는다.
‘참여정부, 잘하고 있나’ ‘8:2 사회, 이대로 문제없나’ ‘군 징병제 대안은 없나’ ‘미디어 긴급진단’ 같은 TV토론·신문지상토론·칼럼 같은 꼭지엔 성공회대 교수들이 단골 출연하는 일이 잦다. 조희연·김동춘·정해구(이상 사회과학부)·조효제(NGO대학원장)·이영환(사회복지학과)·권혁태(일어일본학과)·이남주(중어중국학과)·김창남·김서중(이상 신문방송학과) 교수 등 언론이 반기는 교수들이 많다. 성공회대 교수들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이들이 유독 언론과 ‘코드’가 잘 맞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들이 생산하는 지식 또는 이슈가 터질 때마다 내놓는 제언이 ‘유의미한 기삿거리’가 될 수밖에 없도록, 그만큼 우리 사회의 정치 지형이 변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간극에서 ‘진보적 시민운동’라는 이름을 걸고 태어난 시민사회단체들은 성공회대 교수들이 강단 밖에서 활동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런 공간에서 발을 딛고 ‘현실참여’ 활동을 하는 교수들이 어느 대학보다도 많은 곳이 성공회대다. ‘주류’ 시민운동단체로 자리잡은 참여연대만 보더라도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조희연),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이영환) 정책위원장(김동춘) 등 중요한 위치의 전·현직을 성공회대 교수들이 맡고 있다. 특히 참여연대뿐 아니라 학술단체협의회·한국산업사회연구회 등 각종 학술단체에도 깊숙이 관여하는 조희연 교수는 학교에 아침 일찍 출근해 늘 뛰어다닌다고 하는데, 그는 신영복 교수로부터 좀 쉬라는 뜻으로 ‘善事不如省事’(일을 잘하는 것이 일을 살피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아니다)라는 고사성어를 받기도 했다. 이 밖에도 (김동춘), ‘베트남전진실위원회’(한홍구) 등에서 일하며 마이너리티의 목소리를 내는 교수도 여럿이다. 단 아직까지 ‘현실정치 참여’는 이재정 전 총장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성공회대는 이런 일꾼들을 어떻게 모았을까? 이들은 대학 안에선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한홍구 교수는 성공회대 교수들 사이에 유행했던 농담 하나를 소개한다. “가끔씩 교수들이 모이면 성공회가 예전엔 부동산이 많았다는 얘기들을 합니다. ‘요즘 그 땅이 있다면 학교가 참 발전했을 텐데’라고 누군가가 아쉬워하자 그 옆의 교수가 냉큼 받아쳤죠. ‘그러면 넌 안 뽑았어.’” 그의 설명에 따르면, 70~80년대 암울한 시대를 거치며, 젊고 유능한 사회과학도들이 집중적으로 배출됐는데 다른 대학에선 이들의 비판적 학문 태도를 수용할 수 없었다. 이때 성공회대가 앞장서 이들을 받아줌으로써 자연스럽게 동질적 성향의 학자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이다. 김동춘 교수는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있을 뿐이지 뭘”이라며 ‘쿨’하게 말했으나 사실 우리나라 대학에선 딴 목소리 낸다고 간섭받거나 왕따당하는 일이 잦다. 가령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TV토론회에 한홍구 교수가 출연하고 난 다음날, 해병전우회 소속이라고 밝히며 “거 양심 운운하는 얼굴 넓적한 놈이 누구야?”라고 학교 당국에 막말 전화를 걸어와도 초연할 수 있는 학교란 흔치 않다.

부총장이 겨우 조교수?
한편으론, 교수들이 일을 안 할 수 없게 만드는 곳도 성공회대다. 학교가 작다 보니 교수로 임용된 뒤 5년 지나서 학과장은 물론이며 ‘처장’ 같은 보직을 안 받아본 사람이 없을 정도다. 오죽하면 양권석 교수는 부총장으로 임명됐을 때 ‘조교수’였다고 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학교가 꼭 일을 시켜서 바쁜 것만도 아니다. “사실은 다 자기가 하고 싶어 저지른 일”이라는 김동춘 교수의 말처럼, 교수들은 조용히 강의만 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NGO학과 같은 새로운 학과를 신설하거나 민주사회교육원·사회문화연구소 같은 부속연구기관을 만들어 외연을 넓혀가고자 하는 것이다. 학부생 강의 말고도 대학원과 각종 연구소 등을 오가며 강의를 하고 연구를 진행하다 보니 3명의 교수가 해야 할 일을 교수 1명이 도맡게 된다. 그래서 양권석 부총장은 “우리 학교는 돈으로 커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조직의 규모가 작으면 사람들 사이 친밀감의 농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학교에선 그 농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성공회대를 한번쯤 방문한 사람들은 놀란다. 총장과 학생들이 서로를 너무나 스스럼없게 대하기 때문이다. 마침 대동제가 열리던 날이었다. 김성수 총장이 지나가자 한 학생이 파전을 부치던 부침개를 휘두르며 손짓한다. “총장님, 저희 장터에 와서 놀다 가세요.” 김 총장이 자리에 앉자 학생들은 곧장 막걸리잔을 채운다. 어떤 여학생은 총장님과 팔짱을 끼고 휴대전화로 찰칵~ 사진을 찍는다. 김 총장은 점심 때면 아예 식권 무더기를 들고 다니며 ‘밥 먹었냐’고 챙긴다. 교직원들은 “애들이 총장님을 ‘봉’으로 아는 것 같다”며 “지난 5월엔 판공비도 없는 총장이 학생들에게 밥을 너무 많이 사주다 카드가 구멍이 났다”고 속상해한다.

총장님이 아무리 학생들의 응석을 잘 받아준다고 해도, 교수들의 학사관리는 엄격한 편이다. 전공 과목은 물론 교양강의조차도 수강생이 50명 이하로 제한돼 교수와 학생은 “서로 눈을 맞추며” 공부를 한다. 다른 대학을 다니다 1년 전 이 학교 사회복지학과로 편입학한 4학년생 주명철씨는 “선생님들과 학생들간에 거리가 없어 공부가 즐겁지만 조별 발표를 비롯해 숙제는 훨씬 많다”고 말한다. 이 학교에서 몇년째 학생들의 강의 평가에서 1등을 한 김동춘 교수는 엄격하고도 자상한 선생으로 이름높다. “우리 학교는 민주노동당·학벌없는사회(*이름 정확히) 운동 등 바깥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개중엔 수업에 충실한 애들도 있고 소홀한 애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무조건 결석 5번 하면 F를 준다. 하는 일과 관련된 공부인데 열심히 해야 할 책임이 있을뿐더러 요즘 운동이 예전처럼 목숨 걸고 하는 투사형 운동도 아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서울대처럼 공부 잘하는 애들을 가르치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태반이 고시공부하는 애들을 붙들고 ‘계급론’을 수업하는 것 역시 고역일 것”이라며 열의 있는 학생들을 키워나가는 것이 보람이라고 말했다. 이종구 교수(사회과학부)도 “보통 수능 등급으로 볼 때 3~4등급 학생들이 입학하는데, 고등학교 때 수능 등급 1, 2개 차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학생들은 4년 동안 굉장히 많이 변한다. 유능한 학생들이 많이 가는 큰 대학에 투자해야 우리나라 대학이 산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론 작은 대학에서 학부 교육을 충실히 해서 개개인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학풍이 우리를 지켜주리라
그러나 성공회대의 앞날에 대해 모두가 낙관하는 것만은 아니다. 40~50대 초반의 교수들이 언제까지 지금과 같은 체력과 열정으로 버틸 수 있을지 예상할 수 없다. 앞서 말한 대로, 70~80년대라는 특정 시대 속에서 성장한 지금의 교수진 이후에도 지금처럼 능력과 열정을 겸비한 학자들이 계속 성공회대로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다. 돈이 없다는 것은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결정적 단점이다. 학교에서 벌여놓은 각종 연구소와 부속기관들의 재정 지원이 충실해져야, 교수들의 학문적 성과와 활동이 학교를 구심점 삼아 안으로 쌓일 수 있기 때문이다. 1914년 미카엘신학원이라는 이름으로 첫걸음을 내디딘 지 90년, 종합대학교 승격 10년. 이제 성공회대학교는 다시 한번 투자와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수들은 이제껏 견지해온 학풍의 힘을 신뢰한다. “또 다른 시각으로 사물과 현상을 보게 하는 것이 진보적 관점이라고 한다면, 우리 대학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관점을 뒤흔들어 새로운 의미를 재발견하는 지식을 만들어왔다. 이것이 우리 대학의 학풍이다. 이 학풍이 우리를 지켜줄 때 우리는 계속 흥미진진한 도전을 할 수 있다.”(고병헌 교수·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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