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결과에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 있어… 버리려고 놔둔 단무지를 찍어 증거물로?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지난 6월6일부터 대한민국은 공황상태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증시가 폭락한 것도 아니다. 주범은 만두다. 더러운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겨 물이 흥건하게 고인 하수구 바닥에 방치된 단무지 더미는 그동안 먹었던 만두회사의 상표를 하나하나 떠올리게 했고, “먹는 걸로 장난치면 안 된다”는 옛어른의 말씀에 관련 업체들은 온 국민의 공적이 되었다. 만두를 둘러싼 온갖 억측과 루머는 자가발전을 거듭해, 급기야는 일본 정부가 한국 만두 수입금지령을 내렸고, 만두업계는 초상집이다.
폐우물이 사건의 단초였는데…
지난 6월13일 만두제조업체인 비전푸드 신아무개 사장은 “쓰레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한강에 투신했다.
경찰의 불량 만두 수사는 경찰청 외사범죄수사대 박아무개 경사의 ‘여가활동’에서 비롯됐다. 지난 2월 경기도 파주시 봉암으로 낚시를 갔던 박 경사는 주민과 낚시꾼들에게서 “근처 식품공장 때문에 낚시터 물이 더러워져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하천에서는 악취가 나고 색깔도 탁했다. 애초 식품 관련 사건에 관심이 많았던 박 경사는 친구와 함께 쉬엄쉬엄 공장이 있는 곳까지 올라가보기로 했다. 그곳이 이번 파동의 ‘주범’으로 꼽히는 으뜸식품이었다. 박 경사는 애초에는 중국산 단무지를 국내산으로 속여 파는 업체로 생각했다. 지난 3월 부산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에서 몇몇 단무지에 약품을 첨가해 적발당했던 사례를 떠올려 비슷한 사례라고 판단했다.
지난 3월9일, 박 경사는 파주시청 관계자들과 함께 으뜸식품 공장을 다시 찾았다. 으뜸식품의 냉장실에는 단무지 자투리를 모아놓은 상자들이 가득했다. 이아무개 사장은 전량이 국내산 단무지이며, 만두소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의 눈에 띈 것은 공장 앞 논에 있는 폐우물이었다. 이 우물에 파이프가 설치되어 작업장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단무지를 탈염·탈수하는 과정에 폐우물물이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으뜸식품이 제조한 무말랭이 만두소 제품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조사를 의뢰했다. 물에 담가 소금을 뺀 무말랭이 반제품과 완제품 두 가지가 의뢰대상이었다. 또 으뜸식품이 사용 중인 폐우물물에 대해서도 보건환경연구원에 판정을 의뢰했다. 얼마 뒤 으뜸식품이 사용한 물은 부적합 판정이 나왔고, 식품에서도 대장균 양성반응이 나왔다. 4월19일 이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이씨는 도주했다.
으뜸식품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식약청은 별도로 5월4일부터 사흘간 단무지와 무말랭이 제조업소를 점검했다. 자투리 단무지를 이용해 무말랭이를 만든 맑은식품 만두소 공장, 형제식품, 푸른들식품 등 세곳을 적발했고 관할 시·군·구에 통보해 행정처분을 하도록 조처하고 5월19일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식약청이 통보한 세 업체는 물론, 이들 업체에 자투리 단무지를 제공한 양지식품과 맑은식품 단무지 공장 등에 대해서도 수사했다. 경찰은 지난 6월1일 형제식품 김아무개 사장과 맑은식품 만두소 공장 손아무개 사장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단무지 납품 20일 뒤의 사진이 증거?
주범으로 꼽힌 이씨를 검거하지 못한 경찰은 결국 지난 6월6일 브리핑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발표했고, 이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내용과 식약청의 발표를 살펴보면,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경찰은 단무지 공장에서 더러운 플라스틱 바구니와 마대에 담겨져 바닥에 방치되어 있는 단무지 더미를 촬영해 언론에 공개했다. 처리과정의 비위생적인 부분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단무지 업체들은 “경찰이 폐기처분하려고 쌓아둔 단무지 더미를 증거사진이라며 찍어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경찰이 단무지 공장에 들이닥쳐 사진촬영을 한 시점은 식약청에서 통보받은 뒤인 5월20일께다. 경찰의 주장대로라면 혐의 사실에 사진촬영 당시인 5월20일께도 포함돼야 하지만, 경찰은 단무지 업체들이 단무지를 만두소 업자에게 넘긴 시점이 각각 4월30일과 5월4일까지라고 발표했다. 경찰이 촬영한 사진이 쓰레기 단무지가 만두소 업체로 넘어갔다는 증거가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한 단무지 업체 사장은 “자투리 단무지를 평소 친분이 있던 업체들에게 넘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투리는 규격이 안 돼 납품할 수 없거나 자르고 남은 단무지의 끄트머리일 뿐 직원들도 갖다먹을 만큼 깨끗한 것”이라며 “그나마 으뜸식품 사장이 도망다닌다는 말을 듣고 괜히 문제가 생길 것 같아 4월 이후로는 아예 넘기지 않고 폐기처분했다”고 주장했다. 이 업체 사장은 또 “만일 우리가 쓰레기를 만두소 업체에 공급했다손 치더라도, 이미 한 차례 식약청에서 단속을 받았는데, 경찰이 올 때까지 20여일 동안 같은 상태를 유지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덧붙였다.
대장균 검출 부분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한 으뜸식품의 경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는 대장균 양성판정을 받았다. 대장균 수치와 유·무해를 둘러싼 논란은 접어두고, 대장균은 원칙적으로 식품에서 검출돼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식약청이 적발한 형제식품, 푸른들식품, 맑은식품 가운데 대장균이 검출된 곳은 맑은식품 한곳뿐이다. 으뜸식품, 맑은식품과 함께 경찰이 불량 만두소 업체라고 발표한 형제식품과 푸른들식품의 경우에는 대장균이 발견되지 않았다.
여기에 이번 파동의 ‘핵심’으로 으뜸식품의 무말랭이 만두소가 지목됐지만, 경찰에 입건된 단무지 업체 가운데 으뜸식품에 단무지를 공급한 업체는 없다. 단무지 제조업체인 양지식품은 푸른들식품과 형제식품에 자투리 단무지를 공급했지만, 시점상 쓰레기 단무지라는 증거가 없는데다 푸른들식품과 형제식품의 만두소에서는 대장균이 검출되지 않았다. 맑은식품 단무지 공장은 ‘계열사’인 맑은식품 만두소 공장에 납품했다. 으뜸식품에 단무지를 공급한 업체는 입건되지 않은 것이다. 즉, 으뜸식품의 만두소에서 대장균이 검출되긴 했지만, 막상 이 업체가 ‘쓰레기 단무지’를 이용해 만두소를 만들었다는 증거는 현재로서는 없다.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충분한 진술을 들었다”고 주장한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청 외사과 관계자는 “사진을 촬영한 시점과 납품 시점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만두소 업체 사장들에게서 5월 초까지 불량 단무지를 가져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그냥 단무지 자투리로 만두소를 만들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며칠 동안 바깥에 방치한 단무지 자투리를 가져온다는 진술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적발업체 중 대장균 검출은 두곳뿐
결국 사건을 종합해보면 경찰에 입건된 6개 업체 가운데, 실제 대장균이 검출된 업체는 맑은식품 만두소 공장과 으뜸식품뿐이다. 경찰이 두곳의 단무지 업체에서 단무지 쓰레기를 촬영했지만, 시점의 차이 때문에 실제로 이 쓰레기들이 정말 만두소 공장에 납품됐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른 두곳의 만두소 제조업체는 자투리 단무지를 이용해 만두소를 만들긴 했지만, 대장균이 검출되지 않아 유해성 논란에서는 비껴난 상태다.
그동안 수없이 터져나왔던 비위생적인 먹을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은 불량 만두 사건에서 극에 달했고, 경찰의 엉성한 수사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가 맞물려 거대한 혼란을 만들어냈다.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온 나라를 뒤집어놓은 ‘불량 만두’의 실체는 앞으로의 재판에서 가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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