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maroon">고려산업개발 주가조작 증거자료 손에 쥐고도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이유는 </font>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주가조작 사건에서 금융감독원은 사실상 검찰 구실을 한다. 증권거래소가 주가조작을 적발해 금감원에 통보해도 금감원이 혐의 없다고 처리하면 그만이다. 검찰이 독자적으로 수사를 해서 주가조작을 적발해내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그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금감원이 사실상 ‘기소 독점권’을 갖는 셈이다. 그러나 증권거래소에서 적발한 사건을 금감원이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금감원 조사국 외에는 거의 알기 어렵다. 주가조작 사건의 공모자들이 사건이 적발돼도 금감원 선에서 덮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건을 밝힐 의지가 없는가
고려산업개발의 주가조작 의혹을 신고한 변아무개씨도 애초 증권거래소에 신고하기에 앞서 금감원에 이를 제보했다. 금감원은 증권거래소의 조사가 선행되는 것이 좋다며 거래소에 신고하도록 충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증권거래소가 주가조작을 적발해 금감원에 통보한 이후에도 금감원은 사건 조사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변씨는 “금감원쪽은 인력과 시간이 부족하니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말했다. 그는 금감원이 조사에 소극적인 점을 비판하고 시민사회에 호소할 요량으로 증권거래소에서 넘겨받은 ‘심리결과 통보문서’ 사본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이 또한 공개대상 정보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개가 거부됐다.
금감원이 사건을 붙잡고 있는 사이, 고려산업개발 주주들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으로 내몰려갔다. 고려산업개발 소액주주들은 회사가 부실기업인 두산건설과 합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애썼다. 이들은 무엇보다 주가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이 2128원에 불과해진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소액주주들은 합병을 의결한 이사회 결의가 무효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합병이 마무리되면서 소액주주들이 해볼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금융감독위원회에 매수청구권의 행사가격을 재조정하는 것이었으나 이 또한 어려웠다. 매수청구권 행사가격 조정은 합병 반대를 전제로 매수청구권 행사를 신청한 주주들 가운데 30%가 행사가격에 반대해야 한다. 그런데 합병에 반대한 주식은 전체의 7%(466만주)나 됐으나, 50만주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행사가격에 찬성했다. 일부 소액주주들은 “매수청구권 행사가격 조정신청을 무산시키기 위해 합병 찬성쪽에서 매수청구권을 행사하고, 행사가격에는 찬성을 표시한 것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합병에 반대하던 고려산업개발의 주주들은 지난 5월13일까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이제 법원에 매수가격결정신청을 낸 21명의 주주(50만주)를 제외하면 옛 주주들의 모든 권리는 사라졌다. 금감원이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서둘러 실체를 밝혔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청와대 신문고에도 조사 촉구했지만…
변씨는 지난 1월14일 청와대 신문고에 고려산업개발 주식 불공정거래 혐의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는 글을 올린 바 있다. “수백만원의 포상금을 줄 정도의 주가조작 혐의가 포착됐는데 아직까지 아무 결론이 없습니다. 언제 어떻게 조사해 밝혀준다는 것인지, 2~3년 후에 밝혀주면 무슨 효과가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변씨의 호소는 다음날 금감원에 이첩됐고,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변씨는 “법이 낮잠을 자는지 모르겠지만, 증거자료를 손에 쥐어줘도 도대체 이뤄지는 일이 없다”며 금감원의 직무유기를 비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의 질의에 대해 “고려산업개발의 이상매매 혐의는 현재 조사2국 제4팀에서 조사중인 것으로 안다”고 조사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우선조사할 사건 등이 있으면 조사가 오래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해명했다. 증권거래소가 금감원에 고려산업개발 주가조작 사실을 통보한 것은 이미 6개월 전, 변씨가 금감원에 주가조작을 신고한 것은 벌써 9개월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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