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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공백에 기름을 부어라?

등록 2004-05-28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maroon">일부서 제기된 ‘국방비 증액’의 허상… 남북 대치 상황 위기 감소시키는 ‘발전적 해결’만이 열쇠 </font>

권혁철 기자/ 한겨레 여론매체부 nura@hani.co.kr

주한미군 병력의 이라크 차출로 안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주한미군이 이라크로 간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시민들이 놀라고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차분한 원인 분석과 구체적인 대안 마련이다.

는 5월20일치 사설을 통해 “나라 안팎의 불안 심리를 해소하는 것이 말로만 되는 일이 아니다. 정부가 구체적인 복안을 내놓을 때 가능하다. 당장 급한 것은 현실로 다가온 미군 감축에 따른 안보 공백을 메우는 대책이다”고 주장했다. 5월21일치 사설은 “당장 걱정은 자주국방에 소요되는 천문학적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라며 ‘자주국방을 부담할 능력이 있는가’를 묻고 있다.

정말 남한 군사력이 열세일까

최근 국방부 산하 한국국방연구원은 자주국방과 선진국형 첨단기술군을 실현하려면 앞으로 20년 동안 209조원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이런 예산을 확보하려면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8% 수준인 국방비를 3.2~3.5%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

최근 국방비 증액 주장의 바탕에는 1) 북한에 비해 군사력이 열세인 남한에게 주한미군이 절대 필요하다, 2) 주한미군 감축이 본격화되고 있다, 3) 주한미군의 공백을 메우는 국방비 투자가 필요하다는 3단 논법이 깔려 있다.

주한미군 이라크 차출 이후 제기된 안보공백 논란은 남북한 군사력 균형이 북한쪽으로 현저하게 기울어진다는 ‘선험적’ 판단을 깔고 있다. 안보 공백을 걱정하는 쪽은 ‘한국군의 전력이 북한의 70%, 주한미군을 포함하면 80~90%’란 전문가들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을 뿐, 남북한 군사력 균형에 대한 구체적 분석은 건너뛰고 있다.

합리적으로 따지자면, 주한미군 감축에 따른 안보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전력 증강을 논의하기 전에 남북한 군사력 균형에 대해 정확한 평가부터 해야 한다. 북한의 ‘위협 평가’는 ‘그 위협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어떻게 싸울 것인가’ ‘어떤 군사력을 건설할 것인가’ 같은 안보전략 등을 세울 때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군사력 균형 평가 방식에는 정태적 평가와 동태적 평가 두 가지가 있다. 정태적 평가에는 단순 정태적 방식과 가중치를 적용한 전력지수 방식이 있다.

1988년 이후 국방부는 등을 통해 단순 정태적 방식을 통한 남북 군사력 비교만 공식 발표하고 있다. ‘단순수량 비교방식’(bean counting)은 남북한의 병력, 전차, 야포, 전투기, 전투함 같은 수를 비교한다. 주한미군 이라크 차출 이후 벌어지는 안보 공백 논란도 북한이 수적으로 월등히 앞선 남북 군사력 평가에서 출발하고 있다.

단순수량 비교는 남북한 군사력을 표로 만들어 한눈에 비교할 수 있지만, 군사력 능력을 설명하는데는 한계가 많다. 이 방법은 군사력의 양적인 측면만 고려할 뿐 정보통신, 군수지원, 전략과 전술, 군대의 훈련 정도와 사기 등 질적 측면은 빠져 있다.

예를 들어 2001년 영국에서 나온 를 기준으로 볼 때, 잠수함을 뺀 남북한 함정 수는 167:343로 북한이 월등히 많다. 함정 수는 남한이 북한의 39% 수준에 불과하지만, 함정의 진짜 능력을 알 수 있는 총 t 수로 보면 남한(15만t)이 북한(10만5천t)보다 많다. 북한 해군 함정이 대부분 100t 미만 소형 초계정으로 연안 방어용인 데 비해, 남한 해군 함정은 1천t 이상이 많기 때문이다.

소형 · 대형 모두 ‘잠수함 1대’로 계산

단순 수치 비교뿐만 아니라 가중치를 적용한 정태분석 방식도 있다. 최근 남한 군사력이 북한 군사력의 70~80% 안팎이란 보도들도 이런 분석에 터잡은 것이다. 예를 들어 국방대 한용섭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한 논문에서 남북한 군사력을 평가한 결과, 남한 지상군은 북한의 65%, 남한 공군은 북한의 130%, 남한 해군은 북한의 163%가 나왔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총체적으로 본 남한 군사력은 북한의 77.7%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군사력 균형 분석에는 정태적 방식뿐만 아니라 동태적 방식도 있다. 시간의 변화에 따른 전투 결과를 예측하는 동태적 평가에는 수학방정식에 의한 모델, 컴퓨터에 의한 전투 시뮬레이션, 인간이 직접 참여하는 워게임 등이 있다.

대개 워게임에서는 방어자가 공격자에 비해 1.3~1.7의 승수효과를 얻는다. 한국 최전방처럼 지형이 험할 경우 방어자는 더욱 유리해진다. 당국과 연구기관들이 벌인 대다수 워게임 결과는 개전 30일 안에 북한이 남한 영토를 점령할 수 없는 것으로 나온다. 이를 두고 군사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안정성이 방어적 측면에서 달성됐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세계적인 고밀도 군사대치 상태인 한반도에서 남북 군사력 우열 분석은 큰 의미가 없다. 평양~원산 이남에 북한 전력의 70%가량이 배치돼 있고, 남한도 이에 맞서 대전 이북에 전력의 90% 이상을 배치했다. 대전~평양 400km 사이에 무장병력 140만명, 전차 5천대, 장갑차 4천대, 야포 1만여문 등이 배치돼 있다.

북한은 남한 땅을 점령할 수는 없어도 수도권을 ‘불바다’로 만들 능력을 갖고 있다. 북한 전력 가운데 위력적인 것은 자주포와 방사포다. 사거리 54km인 700여문의 자주포와 1만3천문가량의 사거리 60~70km의 240mm 방사포(22개 포를 직사각형 모양으로 배열해 하나로 묶었다)가 발사되면 미사일과 달리 요격할 수도 없다.

남한의 대응책은 1차 발사된 포탄의 궤도를 추적해 자주포와 방사포 위치를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의 1차 장사포, 자주포 공격에 속수무책이다. 미국쪽은 정찰 능력과 정밀타격 능력의 향상으로 북한 장거리포의 95%가량을 제거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북한 장거리포는 시간당 최고 포탄 5만4천발을 발사할 수 있기 때문에 살아남은 5% 장거리포가 발사한 2700발만 수도권에 떨어져도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함택영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남한이 이기더라도 엄청난 인명 손실과 재산 피해를 가져오기 때문에 남북한의 군사적 대립은 군사적 수단이 아니라 대승적인 정치적 해결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감축 이후의 대책으로 첨단무기 도입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남북관계의 발전으로 ‘위협’ 자체를 관리·감소하는 근본 대책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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