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씨의 ‘정신병’ 발언에도 보수세력 가세한 용천역 참사 돕기운동… 육로소송 좌절은 아쉬움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또다시 우리의 금품을 받아달라고 북한쪽에 뇌물을 바치는 정신병적 상황, 그렇게 하는 것이 이웃돕기라고 자위하는 도착 증세가 있어서는 안 되겠다. 북한을 돕되 정상적인 절차와 사고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당국이 먼저 북한 주민들에게 진실을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폭발사고를 숨기는 집단에게 어떻게 동포애를 쏟아부을 수 있는가. ”
조갑제 대표이사가 4월2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하지만 북한은 조 대표이사가 글을 쓰기 하루 전인 4월24일 을 통해 폭발사고의 경위를 비교적 자세하게 공개하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했다.
한나라당의 전향적 자세
대북 지원을 해오던 단체들은 용천역 사고 소식이 알려지자 2~3일 만에 ‘북녁 용천에 새 희망을’ 캠페인을 벌이고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 피해동포돕기운동본부’를 만들어 발빠르게 대응했다. 이들이 북한 동포 돕기에 나선 것은 당연하지만, 조 대표이사의 주장은 ‘우군’이라 믿은 세력한테도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조갑제 대표이사의 친정 격인 는 4월26일치 1면에 ‘고통 받는 북한 동포 우리의 이웃입니다’는 기사를 실었다. 는 ‘북 동포에 사랑을 보냅시다’는 사고를 이날치 신문 1면에 내고, 조선일보사가 북한돕기 성금 1억원을 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도 당 차원에서 ‘용천동포돕기 모금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김형오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4월25일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 정부가 이틀 만에 사고 경위를 밝히고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한 것은 대단히 다행스럽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고 밝혔다. 이날 한 기자는 한나라당의 ‘돌변’에 대해 “북한 정부란 표현을 썼다. 국가보안법상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데 이런 표현을 쓴 것은 무슨 입장 변화가 있는 것인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형오 사무총장은 “북한 정부라고 하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과 거리낌을 갖지 않는다. 적대관계는 국가보안법상 특별한 적대적 관계다. 국보법은 북한을 국가가 아니라고 하고, 남북교류협력법은 국가로 보는 이중적 잣대가 있다.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을 도울 수 있다”고 대답했다.
보수세력들도 ‘세상에 이데올로기보다 강한 것이 있다’며 용천 동포 돕기에 동참하고 있다. ‘엄청난 재난을 당한 동포를 돕자’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셈이다. 언뜻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이런 합의가 쉽게 이루어진 게 아니다.
‘좋은 벗들’ 이사장인 법륜 스님은 1997년 북한 식량난 때 ‘굶주린 동포를 돕자’는 운동을 벌이다 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법륜 스님은 한쪽에서는 ‘친북 인사’라고 불렸고, 다른 쪽에서는 ‘반북 인사’로 찍혔다. 보수세력은 ‘북한 식량난을 빌미로 대북 지원을 해서 망해가는 김정일 정권을 돕고 있다’고 스님을 비판했다. 반대로 진보적 성향의 일부 단체에서는 ‘사회복지가 완비된 북한 사회에서 식량난이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북한을 돕자는 스님에게 반북 모략 선전을 그만하라며 외면했다.
대북 지원을 해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이용선 사무총장은 “보수·진보 세력 모두가 용천 동포 돕기에 나선 것은 지난 7년 동안 민간과 정부 차원의 남북 화해협력과 대화·교류의 성과가 차곡차곡 쌓인 결과”라고 분석했다.
육로는 12시간, 배로 가면 40시간
큰 관심을 모은 구호물품 육로수송과 남쪽 응급의료진과 복구지원 인력·장비의 파견은 당분간 어렵게 됐다. 북한은 4월26일 오후 판문점 남북 연락관 접촉에서 남쪽이 제안한 육로수송 대신 남포항으로 구호물자를 보내주고 응급의료진과 병원선 파견도 사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 대북지원단체 관계자는 “서울에서 트럭이 판문점을 통하면 용천까지 12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인천에서 배로 가면 30~40시간가량 걸린다. ‘물자만 받고 사람은 받지 않겠다’는 북한의 어려운 처지는 이해하지만, 육로수송과 복구인력 파견이 이루어지면 신속하게 용천 동포들을 도울 수 있고,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홍재형 통일부 사회문화교류국장은 “북한이 피해지역 시설 복구와 이재민 지원 문제의 회담을 제의해온 만큼 남북 실무접촉에서 의료진과 병원선 파견 문제도 거듭 제의하겠다”고 말했다.
‘좋은 벗들’은 용천 사고에 대한 성명에서 “민족적 비애를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전화위복으로 대처하는 지혜를 함께 찾자. 긴급구호 차원에서 의약품·생필품 지원도 절실하지만,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북한의 사회간접시설 복구와 경제 재건을 위한 남북한과 주변국의 경제협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남북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용천 참사가 남북관계 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각종 재난 사고에 속수무책 |
재해대책 시스템 거의 없는 북한 “보상금은 기대도 안 해”
북한의 재해 관련 기구는 지난 1995년 물난리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기 위해 설치한 ‘큰물피해대책위원회’ 외에 알려진 게 없다.
북한이 용천역 참사 직후 만든 용천군재해대책위원회(위원장 장송근 용천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는 큰물피해대책위원회를 본뜬 것 같다. 용천대책위가 사고 소식을 외국 언론과 국제기구에 알리고 지원을 호소한 것은 큰물대책위와 비슷하다. 용천대책위도 큰물대책위처럼 피해복구가 끝날 때까지 국제사회의 지원 접수 창구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들은 북한에 재해대책 시스템이 거의 전무하다고 말한다. 각 지역에 소방대가 설치돼 있고 노동성과 각 도 인민위원회 노동행정국이 있지만 작은 화재 같은 일상적인 사고를 처리한다. 국가는 홍수 같은 자연재해 때는 생필품 등을 모아 피해 지역에 지원하지만 큰 화재나 폭발 같은 사고가 나면 속수무책이다. 피해 주민들은 직장·지역 단위별로 자체적으로 복구해야 한다고 한다.
한 탈북자는 “80년대 말 자강도 강계에 있는 군수공장 폭발사고로 많은 인명피해가 났지만 몇몇 노동자를 순직자로 처리해 유자녀들을 혁명학원에 입학시켜준 게 사고 대책의 전부였다. 나머지 피해자들은 각자 알아서 생활을 꾸려가야 했다. 북한 주민들은 당국으로부터 보상금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의료체계가 무너졌다. 최근 방북한 북한 지원단체 관계자는 “링거액을 만드는 공장에 가보니 링거액을 담을 병이 없어서 음료수 병을 소독해서 담고 있었다. 큰 재난 때 외부의 지원이 없다면 북한의 긴급구호 체계가 작동하기 힘든 상황이다”고 말했다.
◇ 국내에서 북한을 돕는 단체들의 연락처와 계좌번호 |
- 대한적십자사 용천재해지원대책본부/ 3705-3587~8(내선 587·588), ARS 060-700-1004(통화당 2천원)/ 우리은행 108-05-001401/ 대한적십자사
-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02-734-0477, 02-706-6008/ 국민은행 055201-04-005419, 농협 1127-01-114886, 우체국 012245-01-010174, 조흥은행 316-01-156221
- 북한용천역폭발사고 피해동포돕기운동본부(사무국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02-734-7070/ 신한은행 254-05-017647, 국민은행 463501-01-054123/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02-544-9544, ARS 060-700-0770/ 하나은행 353-810000-86604/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 한민족복지재단/ 02-2275-9814/ 우리은행 170-174533-13-008/ 한민족복지재단
- 굿네이버스/ 02-338-0448/ 우리은행 165-338539-13-103/ 굿네이버스인터내셔널
- 월드비전 한국/ 02-784-2004/ 농협 083-01-217230/ 월드비전
- 좋은 벗들/ 02-587-8996/ 국민은행 086-25-0021-286/ 사단법인좋은벗들
- 남북나눔운동본부/ 02-745-5763/ 조흥은행 325-01-159776/ 사단법인 남북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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