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그만두고 선거운동하는 열성파에 투표 위해 귀국하는 해외파… 민주노동당 진성당원의 힘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거미줄 같은 조직도 없다. 탄탄한 지역 기반도 없다. 가난해서 공탁금 내기도 버거웠다. 심지어 각종 토론 프로그램의 패널로 참가하는 것 자체가 ‘투쟁’이었다.
민주노동당은 겉보기에는 그야말로 가진 것 없는 정당이다. 그러나 돈과 조직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열세를 극복하고, 결국 두 자릿수 의석을 거머쥐며 진보정치의 ‘역사’를 새롭게 써냈다.
진성당원 비율, 80% 훌쩍 넘어
그리고 이 역사의 주역은 그저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민주노동당의 진성당원들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기존 정당들은 100만~200만명의 당원을 자랑하지만, 실제로 당비를 내고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는 진성당원의 비율은 1%에도 못 미친다. 반면 민주노동당 5만여명의 당원 가운데 진성당원 비율은 80%를 훌쩍 넘는다. 그야말로 ‘사람만이 희망’인 정당이다.
특히 이번 선거기간 동안 민주노동당에서 선거에 ‘올인’한 당원들은 결코 희귀한 존재가 아니었다. 각 지구당에서는 잠시 휴가를 내거나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궂은일을 자임하는 당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학원강사 우의정(29)씨는 지난달 중순, 일하던 학원에 휴가신청을 냈다. 애초 집근처 대전 대덕구 지구당에서 틈틈히 자원봉사만 할 계획이었지만, “가난한데다 사람도 없어” 고생하는 지구당의 열악한 처지를 보고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학원장을 설득해 휴가를 낸 뒤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을 ‘꼬드겨’ 당원으로 가입시켰고, 지구당에서는 선거실천단을 꾸렸다. 얼굴 모르는 지역 당원들에게는 무작정 전화를 돌려 “도와달라”고 호소했고, 곧 100여명의 당원이 지구당 사무실로 몰려왔다.
“신탄진 공단에서 3교대로 일하는 아저씨들은 퇴근 뒤 벌게진 눈으로 거리로 나섰어요. 월차를 내고 새벽부터 하루 종일 피켓 홍보를 하는 당원도 있었고요. 동네 주민들을 ‘거짓말 안 보태고’ 일일이 다 만나면서 민주노동당의 정책과 후보를 소개했습니다. 처음에 뜨악하던 주민들도 나중에는 ‘민주노동당 선거운동원들은 돈 안 받고 하는 건 확실하네’ 하며 마음을 열더군요.”
지난 4월5일은 우씨의 결혼 1주년 기념일이었다. 하지만 남편과 간단한 저녁식사만 하고는 선거운동과 이어지는 회의를 위해 서둘러 헤어졌다.
시부모님과 남편, 어머니, 친척오빠 등 가족 6명이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우씨는 “민주노동당이 정책적인 면에서 차별성이 뚜렷한, 진정한 서민정당이라는 믿음이 있다”며 “원내 진출이 감동적이었지만, 당과 후보를 찍어준 분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당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건설현장에서 시설관리 일을 하던 김요안(38)씨는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민주노동당 후보의 수행비서로 들어갔다. 애초 한달 정도 휴가를 낼 생각이었지만, 회사쪽은 선거 때문에 휴가를 내줄 만큼 녹록하지 않았다. 결국 “이제는 나이도 있으니 차분히 직장생활을 했으면” 하는 어머니의 바람을 뒤로 하고 일을 접었다.
“사실 정치에 매우 냉소적이었어요. 정치가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상황에서, 선거는 바보 같은 일이라는 생각도 했었어요.” 하지만 김씨는 ‘노동자도 정치적 지향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2002년 지방선거 직전, 당원으로 가입했고 선거 결과를 보고는 ‘이 정도면 할 만하다’는 자신을 얻었다. 그리고 올해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힘을 보태려 모든 것을 ‘던졌다’.
“공탁금 마련하고 홍보물 찍어내는 비용 구하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선거운동 과정은 너무나 신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자원봉사자들이 집에서 싸온 밥과 반찬을 함께 나눠먹고, 그마저도 선거운동해야 한다며 허둥지둥 먹을 때가 대부분이었어요.” 김씨의 지구당에서는 특히 환경미화원 당원 50여명이 매우 큰 힘이 됐다고 김씨는 귀띔했다. 이들 환경미화원들은 특별당비 600여만원을 걷어 지구당에 건넸고, 하루 서너 시간씩 유세차량 운전을 도맡으며 홍보활동에 열을 올렸다. 환경미화원인 한순만(48)씨는 “어려울 때 민주노동당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우리가 사실 배운 것도 없고 답답한 적이 많은데, 민주노동당은 그럴 때마다 말 한마디라도 성의 있게 해주고, 서류 하나도 성의껏 만들어줬어요. 그게 인연이 된 거죠. 우리처럼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정말 위하는 정당이라고 믿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열성당원은 해외까지 퍼져 있다. 민주노동당은 국내 정당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해외에 지구당 조직을 두고 있다. 당원 30여명으로 구성된 민주노동당 유럽지구당의 오복자 위원장과 장광렬 사무국장은 특별당비·후원금 2200유로(약 300만원)와 133명의 민주노동당 지지선언서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민주노동당 미주후원회 준비모임 관계자 3명도 교포와 유학생 등 100여명이 모아준 후원금 2500달러를 들고 미국에서 날아왔다. 보수적인 동포사회에 민주노동당 홍보활동을 벌여오던 준비모임은, 올해 ‘총선 승리’를 위해 ‘한국에 전화걸기’ ‘친구에게 이메일 보내기 운동’ 등 선거운동을 벌였다. 준비모임의 박재우(37)씨는 “여러 정당 관계자들이 가끔 미국에 와서 화려한 후원회를 열기도 하지만, 실제로 해외동포들의 애환을 알아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민주노동당이 한국의 서민과 노동자를 위한 활동을 벌이는 만큼, 미국의 서민·노동자 계층인 미주동포들을 위해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선거운동은 너무나 신나는 경험”
이 밖에도 민주노동당의 선거 게시판에는 중국·캄보디아 등에서 오직 투표를 위해 귀국했다는 당원들의 사연과 자신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에 온통 민주노동당 포스터와 펼침막을 걸어놨다는 당원 이야기 등 열혈당원 소개가 선거기간 내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토록 바라던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이 이뤄졌지만, 민주노동당의 당원들은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부부가 모두 당원인 김천석(34)씨는 “50년 만의 원내 진출로 화제가 되고 있지만, 당원의 입장에서는 책임감이 더욱 무겁다”고 털어놨다.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들은 단순한 의원이 아니라, 그야말로 우리를 대신하는 일꾼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잘 할수 있도록 당원들이 지지하고 또 꾸준히 감시해야겠지요.” 김씨는 “주위 사람들은 나를 통해 민주노동당을 평가할 것”이라며 “내가 국회의원이 된 것 같아 행동이 더욱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총선이 치러진 지난 4월15일 밤, 서울 여의도동 민주노동당사 앞에 모인 당원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새 세상을 꿈꾸는 자만이 새 세상의 주인이 된다”고 노래했다. 그리고 당원들은 ‘꿈꾸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 한 발짝씩 더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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