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적으로 피해야 했던 그 무엇… 당신은 가장 최근 언제 울어보았는가
#1. 2020년, 남자들의 눈물방
2020년 11월 서울 신촌의 한 골목에 40대 중반의 직장인 김아무개씨가 서 있다. 머뭇머뭇 한 건물로 들어서려는 김씨의 옆으로 간판이 보인다. ‘카타르시스 남성눈물방.’ 2개월 전부터 이곳 출입을 시작한 김씨는 좀처럼 발길을 끊을 수 없다. 한번씩 실컷 울고나면 노래방에서 악을 써가며 노는 것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개운하기 때문이다.
한번 이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1시간에 2만원.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경우 추가로 5천원을 받고 30분 더 있을 수 있다. 도우미 아저씨를 따라 11번 방에 들어갔다. 탁자 위에는 눈물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쓰는 눈물촉진제도 있다. 98.5%의 물에 염화나트륨이나 염화칼륨 등의 염류와 알부민, 글로불린 등 단백질을 섞은 것까지는 눈물과 성분이 같지만 눈물선을 자극하는 남성호르몬 ‘안드로겐’이 첨가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 업소의 자랑은 다른 데 있다. 남자의 눈물을 상징하는 코드를 20가지 이상으로 나눈 뒤 각 분야에 해당하는 영상물을 수십 가지 이상 체계적으로 갖춰놓았다는 점. ‘당신은 어떤 주제로 울겠습니까’라는 메뉴판을 열자 눈물의 코드들이 순서대로 적혀 있다.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아들, 친구 이야기, 군대 이야기, 아내 이야기, 딸의 결혼식…. 김씨는 ‘아버지와 아들’란에서 2000년 이탈리아감독 로베르토 베니니가 만든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골랐다. 김씨의 눈물샘은 특히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도착한 뒤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이 모든 상황은 게임”이라고 설명하는 장면에서부터 열리기 시작해 죽음 직전 아들에게 우스꽝스럽게 걷는 장면에서 활짝 열린다. 특히 아버지가 죽은 다음날 숨어 있던 곳에서 나와 엄마를 찾은 아이가 아무것도 모른 채 “이겼어! 아빠 땜에 배꼽 빠지는 줄 알았어” 하고 웃는 장면에서 김씨는 오열했다.
#2. 울지 않는 남자의 신화는 현재진행형이다
“남자는 여자들같이 아무 때나 질질 짜지 않는다/ 기쁜 일이 있어도 잘 내색하지 않으며 슬픈 일이 있어도 속으로 꾹꾹 참는다/ 남자가 그런 걸 못 참고 눈물을 흘린다는 건 얼마나 애절한 일이겠는가/ …/내가 진정으로 눈물을 흘릴 때 과연 어떤 일로 울게 될는지 모르겠지만/ 싸나이의 눈물!/ 뭔진 몰라도/ 그 날은, 그 날은, 단 한 날일 것이다.”(한 경찰특공대 대원이 쓴 시 ‘남자의 눈물’ 중에서)
남자들에게 눈물은 본능적으로 피해야만 하는 무엇이다. 오죽하면 슬픈 영화를 보러 가서도 ‘눈물 나오는 장면은 마지막에 나오지 말아야 하는데…’ 하고 속으로 생각할까. 남자의 공인된 눈물은 세번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내자식이 울면 고추가 떨어진다는 얘기는 남자들의 무의식에 깊숙이 박혀 있다. 현실은 남자가 매일 엉엉 울 만큼 참혹한데도 말이다.
너무나 울지 않다보니 어떤 남자들은 눈물을 어떻게 흘려야 하는지를 잊어버렸다고 하소연한다. 직장인 임아무개(35)씨의 경우는 그야말로 눈물이 날 정도다.
“부부 사이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이혼을 결심해야 할 기로에 놓여 있었다. 너무 기분이 안 좋아 울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일부러 포장마차에 혼자 갔다. 소주를 몇병 마시면 눈물이 날 것이고 그러면 기분이 좀 좋아질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소주만 계속 마시게 되고 눈물은 나지 않는 거다. 결국 동이 터왔다. 밤새도록 울지 못한 것이다. 내 앞에는 빈 소주병만 쭉 서 있었다. 내 눈물샘이 막혀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아버지의 눈물은 특별관리 대상이다. 가장의 눈물은 가족들을 불안하게 한다는 신화는 건재하다. 온갖 보수꼴통들에게 전방위적 똥침을 날리고 있는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씨 역시 “가족을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우선하는 것 같다”며 “그런 이유로 나도 가족들 앞에서는 울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3. 남자의 눈물은 수치인가, 축복인가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유지태)는 세번 운다. 그것도 옛날 영화에서처럼 멋있고 박력있게 우는 남자의 모습이 아니다. 눈물과 콧물을 섞어가며 엉엉 우는, 스타일 구기는 방식이다. 반면 은수(이영애)는 한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울기는커녕 새 애인과 시시덕거리며 즐긴다.
섬약하고 눈물 많은 유지태는 젊은 여성들이 추구하는 새 남성상의 아이콘이 돼가고 있다. 눈물을 참는 남성, 강한 남성은 젊은 여성들에게 더이상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닌지도 모른다. 툭하면 울어버리는 가수 조성모의 매력도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아니, 조성모에게 눈물은 여성팬들을 위협하고 포박해서 항복을 받아내는, 일종의 ‘무기’인 셈이다.
18세기 프랑스 남자들에게도 눈물은 축복이었다. 근현대 프랑스사회의 감수성에 대한 변천사인 <눈물의 역사>를 쓴 안 뱅상 뷔포는 18세기는 사람들 앞에서 흘리는 눈물이 찬양받고 고독 속에서 흘리는 감미로운 눈물이 자기존재의 증명이 되는 시기였으며 이는 남자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커뮤니케이션의 한 방식인 눈물이 사회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눈물이 사회적·정치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19세기 초반 프랑스에서 기독교의 고뇌주의로 인한 자기억제의 이상과 낭만주의가 결합하면서 남자의 눈물에 일정한 사회적 제재가 마련되는 현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감정을 절제해야 하고, 절대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길러진 남자들이 눈물을 감추려는 건 정신적인 자기방어기제이다. 그러나 그것이 왜곡된 남성성을 강화하는 데 쓰이는 것은 남자들에게 큰 슬픔이다. 집단적이고 권위적인 남자다움의 강요가 눈물이라는 개인적 감정표현의 수단마저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의 눈물은 ‘남자다움’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긴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인지도 모른다.
#4. 그 남자의 눈물은 뜨거웠다
늘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만 전화를 걸던 그가 어느날, 회사 앞으로 찾아왔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면도를 안 한 얼굴은 까칠한 수염이 무성했고 언제나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장은 흐트러져 있었다. 그가 기다린다는 말에 서둘러 퇴근한 나는 자주 가던 바를 찾아갔다. 증권계가 워낙 힘들었던 시기여서 그도 많이 힘들었는지, 말은 한마디 안 하고 그날따라 조용히 술만 마셨다. 사실 20대 연인 사이인 우리는 좀 서먹한 데가 있었다. 그런데 힘겹게 그가 입을 열었다. “옆에 앉아도 될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이었다, 옆에 앉는 건. 그리고 그의 머리가 ‘스르르’ 나의 어깨 위로 실렸다. 내가 움찔하며 어깨를 치우려 할 때 그가 말했다. “잠시만, 잠깐만 이렇게 있어줘….”
다시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어깨를 빌려줬다. 몇분이 지났을까. 나는 뜨거운 무엇인가가 어깨 위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남자의 눈물이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 힘들어… 너무….”
그뿐이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를 알고 난 뒤로 처음 본 눈물이었고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그때 나는 그를 인정했다. 그렇게 강한 남자가…. 힘겨워서 나를 찾아와 눈물을 흘릴 때, 비로소 내가 그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 같다.
#5. 아내는 남편의 눈물이 그립다.
강남에 사는 결혼 7년차 전업주부랍니다. 남자의 눈물요? 본 적이 너무 오래됐네요. 우리 남편요?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안 우는 사람이에요. ‘강한 남자 콤플렉스’가 있나봐요. 그런데 그 사람 우는 건 딱 3번 봤어요.
첫 번째는 결혼 전 부모님들끼리 상견례하는데 우리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한다는 뜻을 보였을 때였어요. 학교 앞 카페에서 펑펑 울더라고요. 나는 창피해서 죽을 뻔했는데 주변 사람들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그때 그 사람이 울지 않았으면 결혼도 안 했을 거예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 사람의 인생에 내가 차지하는 비중이 참 크구나 하는.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 때문에 울었을 수도 있지만 내게는 그렇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결혼해 딸아이를 낳은 뒤였어요. 남편이 직장일 때문에 일본에 오랫동안 나가 있었어요. 너무 만나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딸아이를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보름 정도 지내다가 왔어요. 그런데 일본에서 돌아와서 며칠 지나지 않은 뒤였는데 딸아이가 일본에 있는 아빠랑 통화를 하다가 전화통을 붙잡고 엉엉 우는 거예요. 놀라서 아이한테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하는 말이 “아빠가 울어” 하는 거 있죠. 전화기를 받아보니까 남편이 아이 이름만 부르면서 계속 울고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운 것은 둘째아이 생일날이었어요. 내가 생일상 차리려고 시장에 갔다왔는데 남편이 침대에 앉아서 펑펑 우는 거예요. 세살짜리 아들한테 “아빠, 가방 싸서 나가요”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해요. “어깨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집안에서의 자기 위치가 느껴지면서 한없이 서러워졌다나요. 세 식구에 한번씩 운 셈이지만 너무 인색하다고 생각해요. 하도 안 우니까 우는 모습을 한번 봤으면 하고 생각하는 때가 가끔 있어요. 인간적이잖아요, 우는 모습은.
#6. 눈물이란 무엇인가
우리 속담에 아내가 죽으면 남자들은 화장실에 가서 웃는다는 얘기가 있다. 과연 그런가. 조선의 ‘울보’ 사대부인 심노숭(1762∼1837)은 그렇지 않았다. 1792년 아내가 죽자 그는 2년 동안 아내를 애도하는 작품을 쏟아냈다. 얼마나 울었던지 그는 눈물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돋보이는 ‘눈물이란 무엇인가’(淚原)라는 글을 써냈다.
“눈물은 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심장)에 있는 것인가. 눈에 있다고 하면 마치 물이 웅덩이에 고여 있는 듯한 것인가. 마음에 있다면 마치 피가 맥을 타고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인가. 눈에 있지 않다면, 눈물이 나오는 것은 다른 신체부위와는 무관하게 오직 눈만이 주관하니 눈에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마음에 있지 않다면, 마음이 움직임 없이 눈 그 자체로 눈물이 나오는 일은 없으니 마음에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만약 마치 오줌이 방광으로부터 그곳으로 나오는 것처럼 눈물이 마음으로부터 눈으로 나온다면 저것은 다 같은 물의 유로써 아래로 흐른다는 성질을 잃지 않고 있으되 왜 유독 눈물만은 그렇지 않은가? 마음은 아래에 있고 눈은 위에 있는데 어찌 물인데도 아래로부터 위로 가는 이치가 있단 말인가! 한번은 이렇게 생각해보았다. 마음은 비유하자면 땅이고 눈은 구름이다. 눈물은 그 사이에 있으니 비유하자면 비와 같다. 비는 구름에 있지도 않고 땅에 있지도 않다. … 눈물은 마음으로부터 나오고 또 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심노숭은 또 이 글에서 “내가 가슴에 사무침이 있어 눈물이 날 때면 아내는 늘 자기 곁에 있는 것”이라면서 가슴에 사무침이 중요할 따름이지 곡(哭)을 하는지 여부나 제사를 지내는지의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못박았다. 참된 눈물은 가슴에 사무치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심노숭은 유배생활을 하다 50대 중반에야 현감(군수) 자리에 올랐다. 그는 현실정치에서 실패했는지 모르지만, 자신의 감수성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정서를 가꾸며 감정을 제대로 다스린, 괜찮은 남자였다.
눈물은 언어와 침묵 사이에서 흐른다. 그리고 눈물은 마음의 가장 밑바닥에 고여 있는 액체인지도 모른다. 슬픔이란 그 눈물로서 인간의 영혼을 씻어내린다. 당신이 가장 최근에 울어본 적은 언제인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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