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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우호적인 경쟁관계’가 될까요?

미국-쿠바, 적대관계 청산하고 53년만에 ‘관계 정상화’ …이제 더 이상 적국도, 아직 친구도 아닌 두 나라가 자국의 실익증대 속에서 걸어갈 상호관계의 새로운 길은
등록 2015-01-07 15:01 수정 2020-05-03 04:27

꼭 56년 전인 1959년 1월1일, 피델 카스트로와 동생 라울 카스트로, 체 게바라 등 청년 좌파 혁명가들이 이끄는 무장투쟁단체 ‘7월26일 운동’ 대원들이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입성했다. 강고해 보였으나 부패하고 무능했던 풀헨시오 바티스타 독재정권은 신념에 찬 게릴라 전사들에게 맥없이 무너졌다.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 사회주의혁명의 성공’을 선언했다. 이후 반세기 넘게 이어질 미국과 쿠바의 악연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역사적 합의, 서로 다른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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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새해 첫날 카리브해에서 떠오른 태양은 많은 쿠바 국민과 미국인들에겐 유난히 더 붉고 크게 보였을지 모른다. 두 나라가 오랜 적대관계를 끝내고 ‘관계 정상화’에 전격 합의한 뒤 처음 맞는 해이기 때문이다. 불과 보름 전인 2014년 12월17일(현지시각)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각각 워싱턴과 아바나에서 중대 성명을 발표했다. 18개월 동안 양국이 극비리에 벌여온 협상의 결실이었다.

오바마는 백악관에서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연설에서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이익을 증진하는 데 실패한 낡은 쿠바 정책을 끝내고 양국 관계를 정상화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우리는 이같은 변화를 통해 미국인과 쿠바인들을 위한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하고 양국 사이에 새로운 장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첫 조처로 미국은 쿠바계 미국인들이 쿠바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방문하거나 송금하는 것을 금지해온 조처를 해제합니다.”

같은 시각, 라울 카스트로(83)도 집무실에서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우리(쿠바와 미국)는 외교 관계를 복원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우리는 두 나라의 몇몇 상호 관심사를 해결하는 데 진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결정은 쿠바 국민의 존중과 인정을 받을 만합니다.” 카스트로는 그러나 “이번 합의가 문제의 핵심이 해결됐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우리나라에 막대한 인적·경제적 손실을 입힌 (미국의) 경제·상업·금융 봉쇄가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두 정상의 발표문에 드러난 양쪽의 관심사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오바마는 연설에서 양국 관계 정상화의 의미와 상호 이익,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 인권 등의 가치를 강조했다. 반면 카스트로의 연설문에는 경제개발과 상호 존중, “번영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열망이 녹아 있었다.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미국 플로리다반도 남단까지는 기껏해야 150km. 비행기로 30분이면 닿을 거리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두 나라의 정치적·심리적 간극은 북극에서 남극까지의 거리보다도 멀었다. 미국의 금수 조처로 쿠바의 경제난이 본격화한 1960년대 중반부터는 ‘쿠바 탈출’이 시작됐다. 긴 세월 동안 어림잡아 50만 명이 넘는 쿠바인이 자유와 경제적 기회를 찾아 ‘아메리칸드림’에 목숨을 걸었다. 한때 쿠바의 대량 난민 방출은 미국에 큰 골칫거리였다. 미국은 1995년부터 이른바 ‘젖은 발, 마른 발(wet foot, dry foot) 정책’을 시행해왔다. 쿠바 난민들이 미국의 ‘영해에서’(wet foot) 적발되면 쿠바 또는 제3국으로 돌려보내고, 일단 ‘미국 땅에 발을 디디면’(dry foot) 난민으로 받아들여 영주권을 얻을 권리를 부여하는 정책이다. 대다수는 미국 땅 상륙에 실패했다.

두 나라 애증의 110년

자본주의 진영의 슈퍼파워 미국과 사회주의 체제의 작은 섬나라 쿠바가 외교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것은 세계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1992년 옛 소련과 동구 공산권이 파산한 뒤에도 두 나라의 관계는 줄곧 냉전 대결 구도에 머물렀다가 급작스런 전환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이젠 한반도만 세계에서 유일한 냉전의 유물로 남았다.

미국과 쿠바가 관계 회복에 나선 것은 1961년 1월 국교를 단절한 지 53년 만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최고의 번영기를 구가하기 시작하던 1950년대, 쿠바는 미국 사업가들에게 떠오르는 ‘블루오션’이자 물 좋은 휴양지였다. 그 반세기 전인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스페인 식민지였던 쿠바를 챙긴 이래 60년 동안 쿠바는 미국의 안마당이나 다름없었다. 그랬던 쿠바가 1950~60년대 중남미 좌파 혁명의 열풍으로 친미 독재국가에서 반미 사회주의국가로 돌변한 것이다. 미국으로선 소련과의 체제 경쟁이 한창이던 냉전의 한복판에서 목구멍에 가시가 돋은 느낌이었을 테다.

미국은 급기야 1961년 4월 쿠바 남부 피그스만을 침공했으나 참패했다. 이듬해 10월엔 쿠바가 옛 소련의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다 들키면서 미-소 대립이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았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1960년대 케네디 정권부터 2000년대 조지 부시 정권까지 40여 년간 무려 638차례나 집요하게 피델 카스트로의 암살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미국이 쿠바와 절연한 바로 그해 8월, 미국 본토에서 4천km나 떨어진 하와이섬에서 케냐 출신의 흑인 청년과 영국계 백인 여성 사이에 한 아이가 태어난다. 부모는 아이에게 ‘버락 후세인’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바로 지금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오바마는 자신이 태어나기 일곱 달 전에 끊긴 미국-쿠바 관계를 자신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인 대통령 임기에 복원하는 주춧돌을 놓은 셈이다.

카리브해 양안에는 올해부터의 양국 관계는 지난해까지와 많이 달라질 것이란 기대감과 급작스런 변화 예고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뒤섞여 있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라는 신중함, 크게 달라질 게 있겠느냐는 냉소도 나온다. 오바마와 카스트로의 행보도 아직은 조심스럽다. 미국 정가에선 찬반 양론이 날카롭게 맞선다. 쿠바도 급속한 변화가 가져올지 모를 체제 불안정을 경계하는 눈치다.

흥분과 불확실성이 교차하는 쿠바

오바마 정부가 쿠바 봉쇄 해제를 비롯한 정책 전환을 위해선 보수 성향의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한 의회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공화당의 유력 정치인들의 반발은 그게 녹록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하원 의장인 존 베이너 의원(공화당)은 “쿠바 국민이 자유를 누리기 전까지는 카스트로 정권과의 관계 정상화 불가는 말할 것도 없고 검토해서도 안 된다”고 못박았다. 쿠바 이주민 2세 출신으로 상원 외교관계위원장을 지낸 로버트 메넨데스 의원(민주당)조차 “이건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전체주의 정권에 대한 보상이며 억압적인 카스트로 정권을 지속시켜줄 뿐”이라고 비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9일 기자회견에서 쿠바와의 외교관계 복원이 하룻밤 새 쿠바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지 않으며 쿠바에 대한 금수 조처를 당장 전면 해제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한발 물러서는 모양세를 보였다. 다음날 카스트로 의장은 인민권력국가회의(의회) 정례회의에서 “우리가 단 한 번도 미국에 정치체제를 바꾸라고 하지 않았던 것처럼 미국도 우리의 체제를 존중해주길 요구한다”고 말했다고 <afp> 등이 보도했다. 그는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쿠바가 힘들게 지켜온 가치들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쿠바에서도 흥분과 불확실성이 교차한다. 1960년대 이래 쿠바는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사회주의국가로서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이라는 자존감으로 버텨왔다. 비록 가난에 찌들긴 했지만 나라가 설탕에서부터 교육과 의료서비스, 일부에겐 자동차까지 다 공급해주었다. 그러나 앞으론 사회주의 체제에 시나브로 시장경제가 틈입할 수밖에 없는 어색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언제가 됐든 미국의 경제 봉쇄가 풀리고 교류가 활발해지면 나라와 인민의 살림살이도 한결 나아질 것이란 기대감이 있지만, 한편으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 갑자기 열린 것에 대해선 정부와 국민 모두에 불안감을 드리운다. 특히 쿠바식 사회주의 복지의 양대 축이자 상징인 무상의료 서비스와 강력한 공공교육 시스템을 지키는 것은 미국식 자본주의 문화의 유입과 사회적 불평등을 감수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쿠바의 의료체계와 의술은 상당한 수준이다. 200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의사 1인당 환자 비율 평가에서 쿠바가 세계 3위권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초부터 1년여간 서아프리카를 휩쓸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에서도 쿠바의 의료 지원은 단연 돋보였다. 쿠바의 ‘보건의료 외교’는 1970년대 아프리카 의료 지원으로 본격화한 이래 국제사회의 호평을 받아왔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

미국도 쿠바와의 관계가 안정되면 안보 우려를 크게 덜게 된다. 미국에 쿠바는 그 자체로서 위협이 아니라 쿠바의 지정학적 위치가 누구에게 어떻게 쓰이느냐가 최대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쿠바를 장악하는 것은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에도 핵심적이다. 대서양과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운하의 길목에 쿠바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쿠바는 이제 더 이상 적국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직 친구가 된 것도 아니다. 모든 국제관계가 그렇듯, 두 나라도 자국의 실익 증대가 최우선이다. 쿠바에선 2006년 라울 카스트로가 형인 피델에게서 권력을 넘겨받은 뒤 ‘현실적 생존’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미국도 쿠바 봉쇄의 실익이 없다는 걸 인식하면서 양국의 오랜 냉전에도 해빙이 찾아왔다. 그러나 체제와 이념이 다른 두 나라가 ‘전략적 동맹’ 수준의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은 당분간은 ‘제로’에 가깝다.
미국의 쿠바 봉쇄 해제를 주장해온 미국 비영리 싱크탱크인 국제정책센터(CIP)의 엘리자베스 뉴하우스 연구원은 에 “쿠바와 미국은 상호관계의 새로운 길을 찾아가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던진 질문은 미국과 쿠바가 맞닥뜨린 질문이기도 하다.
“라울 카스트로는 꽤 오래전부터 미국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누그러뜨려왔고 미국의 금수 조처도 더는 전적인 악행이라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제 봉쇄가 조만간 해제될 것 같지는 않고 그 효과도 아직은 길거리 광고판에 있는 격이죠. 양국은 ‘우호적인 경쟁관계’가 될까요?”
조일준 국제부 기자 iljun@hani.co.kr</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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