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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상륙’ 독과점 통신시장 손볼까

터치폰·콘텐츠 시장 판도 변화에 휴대전화 업계 초긴장… 삼성·SKT 공동 마케팅 등 대응 부심
등록 2009-12-01 14:09 수정 2020-05-03 04:25
‘아이폰은 한국에서도 돌풍을 일으킬까?’ 일본 도쿄에서 지난해 7월11일 아이폰이 출시되자 젊은이들이 줄지어 구매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AP

‘아이폰은 한국에서도 돌풍을 일으킬까?’ 일본 도쿄에서 지난해 7월11일 아이폰이 출시되자 젊은이들이 줄지어 구매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AP

아이폰은 ‘뜨거운 감자’다. KT·SK텔레콤·LG텔레콤과 같은 ‘골리앗’ 이동통신사들이 무게 135g, 두께 12.3mm짜리 휴대전화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처럼 휴대전화기를 만드는 회사 역시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아이폰을 앞에 두고 이들 기업은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미리 보는 아이폰의 손익계산서는 어떨까?

한동안 아이폰은 ‘담달(다음달)폰’이었다. 6월에는 ‘7월 출시설’이 흘러나왔다. 7월에는 ‘8월15일 판매설’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9월, 10월도 ‘다음달에 나온다’는 소문만 무성한 채 그렇게 지나갔다. 하지만 11월 아이폰은 ‘이번달 폰’이 됐다. KT는 11월22일부터 온라인으로 예약판매에 들어갔다. 첫날 1만5천 명, 23일 2만7천 명, 24일 3만6천 명 등이 구매 대열에 동참하며 인기몰이를 했다. 온라인 예약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얼마만큼 실제 구매로 이어질지는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하루 1천 대만 팔려도 인기 제품으로 통하는 국내 시장에서 대단한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KT는 11월28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대대적인 서비스 출범 행사도 벌였다.

KT, 무선인터넷 시장에 승부 걸어

손바닥만 한 휴대전화기인 아이폰이 뭐기에, 대기업에서 그토록 신경을 쓸까? 아이폰은 애플이 2007년 내놓은 스마트폰이다. 인터넷 정보검색, 전자우편, 파일 전송 등의 기능을 갖춘 차세대 휴대전화가 바로 스마트폰이다. 아이폰은 철저히 손가락 위주로 설계된 터치폰이다. 배우기 쉽고 쓰기도 편하다. 나사 하나 보이지 않는 매끈한 디자인도 특징이다.

KT는 아이폰을 역전의 발판을 삼는다는 전략이다. KT는 음성통화 시장에서 SK텔레콤에 뒤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폰을 내세우며 무선인터넷 시장에서 치고 나간다는 계산이다.

KT는 아이폰 최대 판매목표를 연간 100만 대까지 잡고 있다. 이는 2천만 대 규모인 국내 휴대전화 시장의 5% 수준이다. 하지만 삼성·LG전자가 과점하며 막대한 이익을 창출해온 국내 고가 풀터치폰 시장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규모다.

아이폰 상륙으로 SK텔레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현재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 50.5%를 자랑하는 SK텔레콤은 아이폰 상륙이 달가울 리 없다. SK텔레콤은 아이폰 출시를 당분간 미뤘다. SK텔레콤은 “시장 반응을 지켜보고 최종 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KT가 아이폰 출시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뒤늦게 아이폰 출시 경쟁에 가세해봤자 별 이익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또 다른 속내가 있다. 바로 무선인터넷을 통한 데이터통신 수익이다. 현재 SK텔레콤은 짭짤한 데이터통신 요금을 받고 있다. SK텔레콤의 데이터통화 요금과 정보이용 요금 수익은 2006년 각각 8500억원, 4100억원으로 최대를 이룬 뒤 2008년에는 각각 7400억원, 3300억원으로 다소 떨어졌다. 하지만 이는 무선인터넷 요금이 비싸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이용경 창조한국당 의원은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동통신사들의 부가서비스 수익 내용을 보면 2006년 정점을 찍은 뒤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무선인터넷이 비싼 요금 때문에 사용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아이폰은 비싼 이동통신사의 통신망 대신 무료로 쓸 수 있는 무선랜(와이파이·WiFi)으로 데이터 통신이 가능하다. 이동통신사는 아이폰이 확산되면 데이터통화 요금 수익이 줄어들 것을 고민하고 있다.

배터리 교체 안 되고 AS도 문제

물론 KT도 고민이 있다.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아이폰이 우리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아이폰은 배터리가 내장된 형태라 따로 빼내어 충전할 수 없다. 배터리 교체가 불가능해 ‘2년짜리 폰’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애프터서비스(AS)도 문제다. 제품이 고장나면 이를 수거하고, 기존에 고장나서 수거된 제품 가운데 수리가 완료된 제품으로 교환해주는 방식이다. 무상 교환 기간은 1년이다. 소비자는 제조사 책임으로 제품이 고장났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무상으로 교환받을 수 있다. 아이폰의 강점은 음악·영화·게임·지도 등 각종 콘텐츠를 내려받을 수 있는 온라인 장터 ‘아이튠즈’(Itunes)와 ‘앱스토어’(Application store)다. 하지만 이곳에는 한글 콘텐츠가 별로 없다. 국내에도 비슷한 온라인장터가 있지만 콘텐츠가 빈약하다. 이런 단점은 소비자들이 아이폰에 등을 돌리기 되는 요인들이다.

3위사업자 LG텔레콤도 아이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LG텔레콤은 아이폰을 지원하는 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폰을 출시하기는 쉽지 않다. 대신 LG텔레콤은 월 6천원 정액제의 저렴한 무선인터넷 ‘오즈’ 서비스를 보다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안방인 내수시장에서 아이폰의 공세에 맞닥뜨린 삼성전자와 LG전자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애플은 아이폰 흥행 돌풍으로 미국에서 점유율 32.9%를 기록하며 판매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아이폰은 세계적으로 3500만 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삼성전자는 아이폰이 밉기도 하고 예쁘기도 한 존재다. 애플은 삼성전자의 동업자인 동시에 상대하기 피곤한 경쟁 상대이기 때문이다. 아이폰 안에는 삼성의 반도체인 플래시 메모리가 들어간다. 이 때문에 아이폰이 잘 팔리면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도 따라 올라간다. 하지만 휴대전화 사업만 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이폰과 경쟁해야 하는 휴대전화 사업은 밥그릇을 뺏기게 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은 지난 10월 “삼성과 LG가 아이폰과 유사한 터치스크린 기기를 출시했지만 ‘아이폰’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낮고 인상적인 스마트폰 제품이 없어서 아이폰과 경쟁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전자는 옴니아와 햅틱, F490, 인스팅트 등 4종의 터치스크린폰을, LG전자는 프라다와 뷰티, 보이저 등 3종의 터치스크린 방식 휴대전화를 아이폰 공략의 선봉에 내세우고 있다.

일단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은 동맹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두 회사는 삼성전자의 새 스마트폰인 ‘T옴니아2’에 대한 공동 마케팅을 계획하는 등 공동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물론 동맹은 깨질 수 있다. 김동준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SK텔레콤은 KT의 아이폰 판매 효과가 상당히 클 경우 아이폰을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소비자 중심 패러다임 전환에 관심

아이폰은 국내 이동통신과 휴대전화 제조업체의 독과점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일단 이동통신 회사가 쥐락펴락해온 무선인터넷·콘텐츠 시장의 빗장을 열었다. 콘텐츠 시장을 쥐락펴락하던 이동통신사들을 무장해제한 셈이다. 아이폰에 맞서려면 이동통신사들도 콘텐츠 가격을 내리거나 더 좋은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가격인하 유발도 소비자 쪽에서 볼 때 긍정적이다. KT는 아이폰에 최대 81만원까지 보조금을 줄 예정이다. 요금제에 따라 공짜로도 아이폰을 구입할 수 있을 정도다. 경쟁제품인 삼성전자의 T옴니아2의 경우 약정 보조금을 감안해도 50만원 이상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당장 보조금 경쟁이 촉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SK텔레콤은 휴대전화 사용 기간이 24개월 이상인 장기 우수 고객이 2년 약정으로 기기를 변경할 경우 신규 가입자 수준의 휴대전화 할인 혜택을 제공할 계획이다. KT의 아이폰으로 옮길 것 같은 고객들을 겨냥한 것이다. 아이폰 덕에 SK텔레콤 장기 사용 고객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휴대전화를 교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아이폰이 국내 통신시장의 패러다임을 기업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꾸게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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