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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교실로 ‘맹모삼천’

등록 2003-01-16 00:00 수정 2020-05-03 04:23

분당지역 중학교 학급당 정원 확대 속사정… “서현고 진학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

지난해 12월 말 경기 성남시 분당지역 중학교 학급당 정원이 35명에서 40명으로 ‘재조정’됐다. 교육환경 개선 차원에서 다른 지역이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는데 이 지역 중학교 학급당 정원은 왜 거꾸로 늘어나야 했을까.

애초 지난해 11월 경기도교육청과 성남교육청은 이 지역 중학교 학급당 정원을 35명으로 줄이려고 했다. 이는 2001년 7월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고교는 2004년까지, 초·중교는 2003년까지 학급당 학생 수를 35명 이하로 줄이겠다는 ‘교육여건 개선계획’에 따른 것이다. 그동안 일선 교사들과 교육전문가들은 과밀학급을 뜻하는 ‘콩나물교실’이 우리 교육문제의 출발점이라고 지적해왔다. 콩나물 교실에서는 특기 적성 교육, 수준별 학습, 토론식 수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교사는 “교사가 학생들의 이름도 모르는 과밀학급에서는 교육의 기본인 인간적 교류나 믿음이 생길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나라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인 우리 교육 여건을 평균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중학교 학급당 정원을 35명으로 낮추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시·도 교육청도 학교 신설과 교실 증축을 통해 해마다 학급당 인원을 줄이고 있다.

분당엔 교육여건 개선계획 통하지 않아

학급당 평균 학생 수가 15~25명선인 선진국도 ‘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학급 크기를 줄여야 한다’고 한다. 미국은 1999년부터 연방정부 차원에서 예산 124억달러를 투입했고,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97년 총선에서 ‘초등학교 교실 규모 줄이기’를 소속당인 노동당 5대 공약 가운데 하나로 내걸었을 정도다.

그런데 분당에서는 학급 정원 감축정책이 지역 특성이란 ‘암초’에 걸렸다. 분당의 특수성은 서현초등학교-서현중학교-서현고등학교로 이어지는 ‘명문 계보’를 말한다. 이 계보의 정점에는 서현고가 있다. 지난해 고교 평준화가 됐지만 서현고에 자식을 입학시키려는 분당지역 학부모들의 열망은 여전히 뜨겁다. 평준화 이전 서현고는 3학년 정원 440명 가운데 220~230명이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에 진학했다. 이 때문에 아직도 많은 분당 학모부들은 ‘서현고 입학=원하는 대학 진학’으로 받아들인다. 김명자(47·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씨는 “평준화 이전에는 서현고에 다니는 자식을 둔 어머니와 그렇지 못한 어머니들이 서로를 질시하고 무시하는 미묘한 분위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분당이 고교 평준화가 됐지만 서현고 등 유명학교들에 자녀를 보내려는 학부모들은 방학 때면 이삿짐을 싼다. 분당지역 고교는 선 지원 후 추첨 방식으로 50%를 선발하고, 나머지는 근거리배정원칙에 따라 출신 중학교 구역 내 고교 가운데 지망한 순서별로 배정하기 때문에 서현고 주변 중학교에 다니면 서현고에 진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서현고에 가까운 아파트값은 분당 다른 지역보다 2천만~3천만원쯤 비싸다.

서현고로 가는 첫 단추를 채우는 서현초등학교에는 해마다 학생들이 몰린다. 서현중학교 통학권인 인근 서현·분당 초등학교 6학년 학생 수는 지난해 11월에만 32명이 늘었다. 성남교육청 관계자는 “서현중학교는 인근 초등학교 학생 수가 해마다 늘어나 과학실과 특별활동실을 줄여 교실을 늘렸으나 이제 더 이상 늘릴 공간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교실 늘릴 공간 없어… 대입 위주 교육 반영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경기도교육청과 성남교육청이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2003년도 분당지역 중학교 학급정원을 35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당연히 서현초등학교 학부모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학부모들은 학급 정원이 줄면 근거리 1순위, 희망 1순위인 서현중학교에 갈 수 없는 학생이 서현초등학교와 분당초등학교를 통틀어 232명이나 된다며 교육청을 항의 방문했다.

성남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말 도교육청이 성남중학교 학급당 정원을 35명에서 40명으로 재조정해 서현초등학교 학부모들의 민원은 거의 해결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분당 주민은 “제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겠다는 학부모들을 탓할 수 없다. 하지만 분당지역 중학교 학급정원을 둘러싼 논란은 결국 대학입시 위주 교육의 반영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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