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조사 결과 “중국쪽 소행 가능성” 결론… 양국 분쟁 꺼리는 외교통상부 무조건 쉬쉬

중국산 납꽃게를 먹은 임신부가 기형아 출산을 우려해 지난 8월29일 낙태수술을 받은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8월10일 납이 든 중국산 꽃게로 제조된 게장을 사먹은 울산의 정아무개(31·당시 임신6주)씨가 납꽃게 파동이 터지자 집 근처 산부인과에서 낙태수술을 받은 것이다. 정씨는 당시 꽃게장에서 납을 발견했지만 낚시하다 들어간 이물질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납을 들어낸 뒤 계속 먹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을 음해하기 위한 음모?
이런 소비자 피해뿐만 아니라 국내 꽃게잡이 어민들의 피해도 지난 8월22일께 납꽃게 사건이 터진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중국산 납꽃게 파동 탓에 애꿎게 덩달아 폭락한 국내산 꽃게값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10월12일 경남 근해통발수협에 따르면 동중국해에서 들어오고 있는 국산 냉동꽃게의 경우 kg당 2500원에 거래되고 있다. kg당 3800원 나가던 지난해에 견줘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물론 꽃게시장이 얼어붙은 탓이다. 근해통발수협 관계자는 “사건이 터진 뒤 한동안은 중간상들이 아예 사지도 않았다”며 “지금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긴 있지만 소비자들의 기피가 여전하다”며 울상을 지었다.
꽃게와 마찬가지로 납 파동을 겪은 복어 역시 된서리를 맞은 여파가 채 가시지 않고 있다. 수협 구리공판장쪽은 “복어도 꽃게처럼 수요가 크게 위축되면서 공급이 자연히 줄었다”며 “가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다보니 복어잡이 어민들이 아예 어로작업에 나서지 않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 따르면 국내산 냉동복어의 경우 납복어 사건이 터지기 전에 1kg에 8천원∼1만원까지 거래되던 것이 지금은 1kg에 4천∼6천원선에 거래되는 등 제값을 못 받고 있다.
납꽃게 파동으로 인한 피해는 이처럼 지속되고 있지만 누가, 왜, 꽃게와 복어에 납을 넣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현재 납꽃게 파동과 관련한 중국 현지에서의 조사는 중국 공안당국에 맡겨져 있다. 실제로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고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있다”는 중국쪽의 말을 믿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서로 맞물려 있는 ‘누가’와 ‘왜’는 △꽃게 무게를 늘려 더 높은 값을 받으려는 중국 어민이나 중국 가공업자의 소행 △한국 수입업자의 소행 △중국 수집상한테 꽃게를 넘긴 북한 어부의 소행 등 세 갈래로 나뉘고 있다.
꽃게에서 납이 검출된 직후 중국쪽은 이를 북한 어부의 소행으로 단정지었다. 당시 단둥시 검역관계자들은 “꽃게에 납이 들어 있다면 북한산 꽃게일 가능성이 높다”거나 “북한어선 노무자들의 노임이 하루 20위안(약 2600원)에 불과해 납을 넣어 무게를 늘리면 큰 수입이 되므로 이들이 어구용 납을 넣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우다웨이 주한 중국대사는 한국인의 개입을 강력히 주장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우다웨이 대사는 9월8일 아시아·태평양정책연구회 월례토론회 초청강연에서 “중국산 꽃게의 수출과정에는 중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들도 끼어 있다”며 “중국 농수산물의 신용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한국인이 그런 행위를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정작 문제는 한국인이나 북한 어부의 소행으로 몰아가려는 이런 중국쪽 공세에 대한 우리 외교당국과 해양수산부의 대응 태도다. 외교통상부나 해양수산부는 되레 먼저 나서서 이번 납꽃게 파동을 서둘러 덮는 데 급급해 하는 인상이 역력하다. 그래서 이 문제는 ‘가해자 없는 범죄’로 끝날 공산이 점점 커지고 있다.
중국 도매시장 관계자의 구체적 증언
그동안 우리 정부가 한 일은 8월28일부터 9월1일까지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 3명을 문제의 납꽃게와 납복어가 수출된 중국 단둥시와 웨이하이시에 보내 현장조사를 벌인 게 전부다. 현장조사 직후 주중 한국대사관은 보고서를 외교통상부에 보내왔다. 그러나 외교통상부는 이 보고서의 존재자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박용호 의원(민주당)쪽이 입수한 ‘납꽃게 및 복어사건 관련 현지조사 결과보고’라는 이 문건에는 납꽃게의 범인이 중국 어민이나 중국 수집상이라고 확신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쪽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중요한 보고서를 일부러 감추고 있는 것이다.
이 보고서를 보면 당시 문제의 납복어를 한국으로 수출한 준마쉐이찬이라는 중국 수산물 수출회사의 리우쩐지애 대표와 면담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리우쩐지애는 면담에서 “복어잡이 그물이 저가의 1회용이므로 폐기할 어구의 납조각을 중국 어부들이 중량을 늘리기 위해 투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중국의 복어 휴어기인 7월20일부터 8월22일까지 단둥지역에서 자사의 수집선박 2척을 이용해 중국 어민으로부터 수집한 복어 2700상자를 냉동가공한 뒤 한국으로 수출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8월27일 한국과의 주거래선인 ‘21세기 상사’로부터 우리가 냉동가공해 수출한 복어에서 납이 검출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창고에 보관중이던 복어 20여t을 검사한 결과, 단둥지역에서 올해 후반기에 수집한 150상자 중 6상자에서 납이 발견됐다”고 진술했다.
또한 납복어가 한국으로 수출됐던 웨이하이시 해관의 위쩐셩 부관장은 “단둥에서 수집한 복어는 모두 중국 어선으로부터 직접 수집한 것”이라며 “북한의 무리도(북한 어부로부터 문제의 복어를 수집했다면서 중국당국이 애초에 밝혔던 장소)라는 섬은 존재자체를 모른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특히 중국 어부들의 소행이라고 확정할 만한 중국수산물 도매시장 관계자들의 구체적인 증언까지 담고 있다. “조금이라도 중량을 늘리려는 목적에서 중국 어부가 70위안(9천원 정도) 하는 1회용 복어잡이 그물에 달려 있는 납조각을 주입했을 것이다”라는 내용이나 “과거에도 어민들이 소득이 낮아(일당 20위안 정도) 평소에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납이나 돌멩이 등 이물질이나 물 등을 주입해왔다”는 진술이 그것이다. 이들은 또 “복어의 경우 마리당 300∼500g은 kg당 20∼25위안 하는 반면 200∼300g은 kg당 10∼15위안을 받는 등 가격차가 심해 가격기준에 10∼20g 정도 미달될 경우 납을 넣어 무게를 늘려왔다”고 밝히고 있다. 중국 어부들이 쓰는 그물은 값싼 1회용으로 한번 쓰면 폐기처분되기 때문에 어부들이 그물에 달려 있는 납을 떼내 넣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진술이다.
해양수산부, 이 정도 선에서…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아태통상과 박재현 과장은 “준마쉐이찬이라는 회사의 리우쩐지애 대표가 누구냐. 처음 들어본다. 그런 사람의 진술이 보고서에 들어 있다고 누가 말하더냐”고 발뺌하면서 “우리 어민들의 피해가 뭐가 있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는 또 “이 사건이 한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분쟁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우리가 그렇게 되도록 두지도 않을 것”이라며 “지금은 금속탐지기로 철저히 검사하고 있는 만큼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꽃게 수입을 중단시킬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덧붙였다.
이 보고서는 또 6∼9월까지는 중국의 꽃게 금어기이므로 문제의 꽃게는 모두 북한산 반입물량이라는 중국쪽 주장과 관련해 “조사단이 단둥지역에 갔을 때 중국 어민들이 불법적으로 꽃게를 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 어부의 소행이라는 애초 중국쪽 주장을 뒤엎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한국인의 소행이라는 대목 역시 해양수산부쪽의 분석을 보면 사실무근임이 확실시되고 있다. 해양수산부 유통가공과 관계자는 “우리 꽃게 어구는 중국과 달리 계속 재사용하는 것인데다 냉동된 뒤에 들여오는데 얼어 딱딱한 상태에서 어떻게 납을 넣을 수 있겠느냐”며 “우리쪽 중개업자의 소행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정도 선에서’ 매듭지어야 한다는 게 해양수산부의 입장이다. 해양수산부쪽은 “원인보다는 재발을 막는 대책이 더 중요하다”며 “중국과의 수산물위생 의정서 체결을 위해 논의중인 만큼 납 하나 더 나왔다고 떠들지 말고 이제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쪽의 소행 가능성을 무기로 의정서 협의 때 우리가 유리한 입장을 취하면 족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심지어 해양수산부쪽은 “국산 꽃게는 안전성이 부각돼 중국산 납꽃게 파동이 우리 어민한테 오히려 도움이 된 측면도 있다”고 나름대로 해석하기도 했다.
범인을 잡기 위한 중국 공안당국과의 공조수사도 게걸음이다. 검찰은 9월 말 중국 공안당국에 공조수사를 요청하는 외교문서를 외교통상부에 보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우리 수사관을 현지에 파견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에 필요한 증거나 자료를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엄밀히 말해 ‘공조’수사는 아닌 셈이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우리쪽 수사관을 보내는 것은 주권침해도 될 수 있고 외교문제화될 수도 있다”며 “요청서가 지금 중국 공안당국에 전달됐는지 등은 모른다”고 대수롭잖게 말했다. 외교통상부쪽에서도 이 문서가 어디에 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외교통상부 영사과는 “법무부로부터 공조수사 요청문건을 받아 담당부서인 아태통상과로 보냈다”고 했지만 정작 아태통상과쪽은 “우리는 받은 적도 없고 금시초문”이라고 엇갈린 대답을 했다.
납꽃게 파동에 대한 이런 정부의 대응에 대해 박용호 의원은 “주중 한국대사관의 보고서를 비밀에 부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과거 한중 마늘협상도 우리 당국이 저자세로 굴복해 농민들의 피해만 가져오지 않았느냐”며 “정부의 이런 태도가 국민들의 불신을 더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계완 기자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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