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15개국 기자 100명 설문조사… 김대중이 한반도의 위대한 지도자 1위
100년간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은 2차 세계대전, 가장 위험한 분쟁지역은 한반도
▣ 류이근 기자/ 한겨레 경제부 ryuyigeun@hani.co.kr
4430만㎢의 땅에 사는 38억인의 지난 100여 년 동안 가장 위대한 인물은 누구일까?
<한겨레21>이 지난 2월부터 3월10일까지 아시아의 오피니언 리더들인 15개 나라 100명의 소속이 다양한 기자를 대상으로 ‘아시아의 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은 누구냐’고 물었더니,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라는 응답이 241점(18%)으로 가장 높게 나왔다. 간디는 중동,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에서 고른 지지를 받았다.
김일성, 최고와 최악 동시에 꼽혀
이번 조사의 결과치는 영향력의 순서에 따라 5명을 순서대로 꼽아달라고 응답자에게 제시한 뒤 그 순서에 따라 5점에서 1점까지 가중치를 부여해 총 응답 횟수에 곱해 산출한 것이다. 아시아권 전체를 대상으로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의 기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것은 국내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자인 마오쩌둥은 간디에 38점(3%) 뒤진 203점(15%)의 지지를 받아 2위로 나타났다. 마오쩌둥은 가중치와 상관없이 총 48번의 중복 응답이 나와 단순 응답 횟수에서도 간디(61번)에게 밀렸다. 다음으로는 호찌민(155점·12%·베트남) → 덩샤오핑(69점·5%·중국) → 마하티르 빈 모하맛(55점·4%·말레이시아) → 아웅산 수치(48점·4%·버마) → 김대중(48점·4%) → 쑨원(22점·2%·중국) → 셰이크 아메드 야신(21점·2%·팔레스타인) → 수카르노(12점·1%·인도네시아)가 꼽혔다. 간디·마오쩌둥·호찌민·쑨원·수카르노 등은 식민 제국주의에 맞서 독립투쟁을 벌이고 자국의 근대국가 성립에 크게 기여한 지도자들로 평가받았다. 버마의 아웅산 수치와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사로서,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을 국제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입시킨 덩샤오핑, 이스라엘에 맞서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의 영웅으로서 암살당한 하마스의 전 지도자 아메드 야신도 아시아의 10대 인물에 포함됐다.
아시아 최악의 지도자는 폴포트로 나타났다. ‘아시아의 현대사에서 최악의 지도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18%가 캄보디아 대량학살의 주역인 폴포트를 꼽았다. 다음으로 마르코스(14%·필리핀) → 히로히토(7%·일본) → 김일성(6%) → 도조 히데키(5%) → 김정일(5%) → 고이즈미 준이치로(5%) → 사담 후세인(5%) → 마오쩌둥(5%) → 박정희(3%) 순으로 이어졌다. 히로히토 일왕와 도조 히데키는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의 ‘전범’으로서, 필리핀의 마르코스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아시아의 장기 독재자로서 불명예를 안았다. 북한의 김일성 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과 김정일 현 국방위원장은 부자가 나란히 아시아 최악의 지도자 4, 6위로 뽑혔다. 마오쩌둥은 간디에 이어 아시아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혔으면서도 동시에 최악의 지도자 공동 6위로 뽑혀 공뿐만 아니라 문화대혁명 등 과도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됐다.
‘남북한을 포괄해 한반도 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누구냐’는 물음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압도적으로 1위를 달렸다. 응답자의 44%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한반도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꼽았으며, 다음으로 김일성 전 주석이 16%의 지지를 받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내에서의 높은 평가와는 달리 나라 밖에서 큰 지지를 얻지 못해 9%에 그쳤으며, 한국 기자들에게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김구는 8%를 기록했다.
자유가 잘 구현된 나라 한국 1위
김일성 전 주석은 아시아 최악의 지도자 10위 안에 들면서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두 번째 위대한 지도자로 꼽힌 점이 특이하다. 더구나 ‘아시아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국가의 억압이 가장 심한 곳은 어느 나라인가’라는 질문에 북한이 42%로 가장 높게 나왔다는 점에서 아시아에서 김일성 전 주석과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중층적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북한 다음으로는 버마(22%) → 중국(9%) 순으로 국가의 억압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반대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자유와 가치가 가장 활발하고 잘 구현된 나라’를 묻는 질문에 한국이 34%로 일본(25%)과 싱가포르(11%)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아시아에서 각각 억압이 가장 심한 나라와 정반대인 나라가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가 ‘아시아에서 가장 위험한 분쟁지역’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31%가 가장 위험한 분쟁지역으로 한반도를 꼽았으며, 다음으로 중국과 대만 관계(13%) → 버마(9%) → 팔레스타인(6%) → 페르시아만(4%) → 중동(4%) 순으로 나타났다. 팔레스타인과 페르시아만, 중동을 하나의 서남아시아라는 위험지역으로 묶는다면 14% 정도로 높아지지만, 전세계적으로 팔레스타인을 가장 위험한 분쟁지역으로 인식하는 것과 어느 정도 간극이 있다. 이는 응답자 가운데 서남아시아에 위치한 나라가 팔레스타인밖에 없고,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남부아시아인들이 서남아시아에 대해 갖는 지리적·정치적 거리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도 북-미의 긴장 고조라는 답이 3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는 북핵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계속되는 현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일본의 우경화(19%) → 중-미 긴장(14%) → 중국의 패권주의적 팽창(10%) 등의 순이었다.
국적에 상관없이 아시아인들은 아시아인이라는 나름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확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가 공유하는 가치나 문화가 있냐’는 물음에 무려 84%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 설명은 따로 분류하기 어려울 만큼 천차만별이었고, 지역적으로 비슷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나라들의 특징에 따라 유교, 불교, 가족 등의 열쇳말이 제시됐다. ‘유럽의 유럽연합(EU)과 같은 아시아의 경제공동체가 가능하다고 보냐’는 물음에 필요하다는 응답이 51%,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44%로 나타났다. ‘아시아 대륙 전체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는 외부적 요인’을 묻는 질문에 국적에 상관없이 70%가 미국(서구의 힘이라는 일부 응답 포함)이라고 답했다. 미국의 헤게모니가 대아시아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아시아의 희생이 따르거나 아시아와 미국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폭넓게 공유하는 것이다.
아시아의 최우선 과제는 빈부격차 해소
아시아권 전체의 최우선 해결 과제로는 빈부격차 해소(28%)가 꼽혔으며 다음은 아시아권의 집단 평화보장 체제 마련(22%), 민주주의 증진(21%), 경제발전(18%)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빈부격차 해소가 최우선 과제로 꼽힌 것은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지난 20여 년 사이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하면서 빚어진 그늘에 주목해야 한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아시아 경제가 직면할 가장 큰 위기의 원인은 여전히 세계 경제의 축을 형성하고 있는 미국의 달러화가 붕괴(28%)될 때로 예상했다. 다음으로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으로 떠오르는 중국 경제성장의 둔화(22%) → 식량위기(11%) → 석유 고갈 등 자원 문제(10%) 등의 순으로 이어졌다. 국제 사회의 정치·경제 영역에서 역할이 커지고 있는 중국의 안정을 파괴할 가장 큰 위협요인은 대만의 독립 문제(19%)나 미국과의 우발적 충돌(13%)보다 내부적 요인인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 혼란(50%)이 꼽혔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은 일본의 재무장 강화 등 우경화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 등을 들어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53%)하는 쪽에, ‘찬성’(30%) 보다 많은 표를 던졌다.
다른 지역과 다를 바 없이 아시아에서도 지난 100년 동안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은 2차 세계대전이었다. ‘지난 20세기에서 지금의 21세기에 걸쳐 아시아인들의 삶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역사적 사건을 중요성에 따라 5개를 꼽으라’는 주문에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응답이 345점(24%)으로 가장 높게 나왔다.
다음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167점·12%) → 베트남전쟁(156점·12%) → 한국전쟁(130점·9%) → 미국의 이라크 침공(36점·3%) → 문화대혁명(26점·2%) → 킬링필드(22점·2%) → 소비에트연방 해체(20점·1%) → 9·11 테러(18점·1%) → 중국 개혁개방(9점·1%) 순으로 나타났다. 21세기의 사건으로는 9·11 테러에서 연속된 흐름에 있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나란히 10위권 안에 포함됐다. 2위로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이 꼽힌 것은 아시아의 14개국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거대 중국의 변화가 주변국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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