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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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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석유, 피의 다이아몬드

등록 2002-03-06 00:00 수정 2020-05-02 04:22

강대국의 이해가 충돌한 앙골라 내전…반군지도자의 죽음으로 평화의 계기 열려

내전으로 피폐해진 앙골라에 평화가 올 것인가.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앙골라는 무려 4반세기 동안 계속된 내전으로 50만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고 전 국민의 약 1/3에 달하는 400만명이 삶의 터전을 박탈당했다. 마침내 ‘앙골라의 완전독립을 위한 국민연합’(UNITA)의 지도자 조나스 사빔비가 지난 2월22일 정부군과의 교전에서 사살돼 앙골라에서 내전이 종식되고 평화가 정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앙골라는 냉전 시절 이데올로기의 대결장이었다. 사회주의적 노선을 지향하고 있던 ‘앙골라 독립을 위한 인민운동’(MPLA)은 소련과 쿠바로부터 군사지원을 받았고 UNITA는 남아공 백인 소수정권과 미국의 지원 아래 내전을 전개했다. 남아공 백인 소수정권은 남아공을 에워싼 사회주의적 성향의 남부아프리카 국가들이 정권의 존립에 위협적이라고 파악하고 이들 국가 내의 반대세력을 지원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UNITA와 ‘정략결혼’을 한 셈이다. 미국 역시 아프리카에서 사회주의 세력의 확장을 막기 위해 70년대와 80년대에 UNITA에 대한 군사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사빔비를 악의 제국에 대항하여 싸우는 ‘자유의 투사’라고 치켜세우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풍부한 지하자원은 ‘저주’

조나스 사빔비에 대한 평가만큼 이해관계에 따라서 극과 극을 달리는 경우도 드물다. 스위스, 포르투갈, 중국에서 공부하고 7개 언어를 구사하며 비상한 카리스마와 국제정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게릴라 지도자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독단적이고 잔혹한 독재자의 풍모를 지녔으며 점령 지역을 자신의 봉토처럼 지배하는 정신병자라는 평가가 그것이다. 사빔비의 죽음으로 UNITA 반군세력 내부에는 권력공백이 생겼고 이를 메우기 위한 권력투쟁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UNITA 추종세력 중 일부는 반군활동 대신 야당활동과 같은 정치적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등 무장반군 세력과 다른 신노선을 지향해왔다. 주세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 앙골라 대통령의 방미기간 중 부시 대통령은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앙골라 정부가 일방적 휴전을 선언하여 앙골라 내전의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라고 요구했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앙골라에서도 풍부한 지하자원이 내전의 자금원이었다. 천혜의 자원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흑아프리카(사하라사막 이남)에서 나이지리아에 이은 제2의 산유국인 앙골라는 원유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반군진압을 위한 무기구입에 사용해왔고, UNITA 반군은 다이아몬드 밀수출로 무기구입과 반군활동을 위한 자금을 충당해왔다. 다이아몬드 원산지 표기를 의무화함으로써 내전지역에서 채광된 다이아몬드를 규제하는 등 유엔의 제재가 발효된 이후에도 이른바 ‘피의 다이아몬드’는 벨기에의 앤트워프,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등지로 밀수출되어 반군의 젖줄 역할을 해왔다. 이런 까닭에 벨기에의 일간 는 UNITA 반군의 장래는 앤트워프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반군진압을 빌미로 앙골라 정부가 용인하고 있는 부패와 인권탄압 문제도 지탄의 대상이 돼왔다. 지난해 원유수출로 벌어들인 14억달러의 외화가 오리무중이 될 만큼 권력자들의 부패가 아무런 제재없이 만연해 있는 상황에서 앙골라는 세계최빈국 중 하나로 전락했고 국민들의 평균수명도 아프리카대륙에서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UNITA 반군이 민간인을 학살하고 정부관리들이 국가의 재원을 독식하고 있는 데 반해 일반 국민은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와 같은 처지가 된 것이다.

향후 국면전개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앙골라 정부가 휴전을 선언하고 포용정책을 실시할지가 관건이다. 반군의 주요 지원세력은 앙골라 최대부족인 오빔분두족이다. 이들은 앙골라 정부의 정책에 소외당한 세력이기 때문이다. UNITA가 이들을 아우르고 반군세력이 아닌 야당세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앙골라 정부가 노력하느냐가 평화의 관건이다. 평화정착의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려 있지만 그 실현이 내전당사자들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음은 변함이 없다.

헨트=양철준 통신원 YANG.chuljoon@wanad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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