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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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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까, 어떻게 살까…

등록 2001-02-06 00:00 수정 2020-05-02 04:21

설합본특대호의 표지이야기 ‘젊은 그대여 유서를 쓰자’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기사 기획 당시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잘 보여줬다. 기획 단계에서는, 정초부터 유언장 얘기하면 되레 불쾌감만 주는 게 아닌가, 사회 명사들한테 유언장을 청탁하면 과연 몇이나 써주겠는가 등 여러가지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막상 유언장을 써달라고 청탁하니 대부분의 청탁자들이 흔쾌히 써주었다. 일부 청탁자의 경우, 아직 “내 삶을 제대로 정리를 못해 어렵다”는 등의 정중한 거절이 있었지만 유언장 쓰기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아니었다.
독자들의 반응은 더욱 긍정적이었다. 많은 독자들이 “이번 기사가 나의 삶을 정말 진지하게 돌이켜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반응을 보내왔다. 어떤 독자는 전화로 “잘 읽었다”면서 “그런데 막상 유언장을 쓰려고 하니 무슨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끙끙 앓다가 결국 포기했는데 올해 안으로 반드시 한번 써보겠다”고 전했다.
취재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의 유언장을 미리 보게 됐는데, 그중 특히 KSS해운 박종규 회장의 유언장이 인상적이었다. 박 회장의 유언장은 그 어떤 장식도 없이 담담히 자식들에게 당부를 하고 있는 내용이다.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왔다는 자평과 함께 시신을 의학도들에게 해부용을 기증하라는 당부도 당부였지만 제사를 지내지 말고 “사망한 아침에 기념으로 꽃 한송이 놓고 묵념으로 끝내기 바란다”는 부분은 그 연배에서는 쉽게 하기 힘든 말이어서 더욱 가슴에 다가왔다.
유언. 영어로는 will인데 결국 ‘내 뜻’이란 말이다. 죽기 전에 내 뜻을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분명히 알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어떤 뜻을 남길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과연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까? 결국 유언장 미리 쓰기는 필연적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이며 곧 그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유서. 죽음 직전에 재력가들이 유산으로 인해 자손의 법정투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죽음 직전에 후손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로 여겼다. 그런데, 유서를 씀으로 자신의 생에 대한 반성과 당당한 삶의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니 우리 모두 유서를 죽음이란 어두운 그림자로 보지 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으로 보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삶의 이정표를 설정하기 위해 유서는 필요하다. 유서는 어떤 특정 계급의 전유물이 아니라, 차분하게 삶을 반성하고, 진로를 이끄는 등대다. 산목숨은 유한하고 언젠가 때가 되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죽음이란 자연의 순리다. 자연의 이법(理法)에 순응하고 떳떳한 죽음을 위해 이제 우리 모두 유서 쓰기를 생활화하자.
채규정 kyujoung@edunet4u.net

안녕하세요? 이번에 에서 다룬 ‘유언장’에 대한 기사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아서 이렇게 글을 보냅니다. 저도 유언장을 써보라는 내용의 기사를 접했을 때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기사를 마저 읽고 나서 유언장을 써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유언장을 써봄으로써 저를 되돌아보는 계기도 될 것이고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부분들을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잘 알아야 하는데 제 자신을 충분히 수양시킨 다음에 다른 사람들을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유언쓰기는 저에게 해봄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수경 80nsk@thru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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