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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해도 미군 뺀다?

등록 2003-09-25 00:00 수정 2020-05-02 04:23

육군이 적은 미군 현실 고려하면 2사단 철수 가능성도…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배신’ 돌아봐야

우리가 이라크 추가 파병 요청을 거부할 경우 미국이 주한미군 2사단을 빼서 이라크로 보낼 가능성이 있을까. 이 가능성은 한때 뜨거운 논란이 일다가 곧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논란의 시작은 보도였다. 는 9월16일치 1면에서 “정부가 미국의 이라크 추가 파병 요청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며 “정부가 파병하는 쪽으로 기우는 것은 미측이 주한 미 2사단 병력 일부를 이라크에 파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능성은 외교·안보쪽의 일부 정부 당국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 배치의 수수께끼는 주한미군”

물론 정부 당국자들은 하나같이 이 가능성을 공식 부인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9월16일 정례 브리핑에서 ‘전투병 이라크 파병과 미 2사단 철수 연계’ 가능성에 대해 “어제 반기문 외교보좌관이 2차례나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고 오늘 조영길 국방장관도 그렇게 말했다. 더 할 말이 없다”고 설명했다. 조영길 국방부 장관도 이날 “국방부에는 공식적으로 들어온 이야기가 없고 외교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도 17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파병 문제와 미 2사단 철수 연계 논의가 있었느냐’는 의원 질문에 “없었다”고 대답했다. 윤 장관은 또 ‘그런 보도는 근거 없는 것이었나’라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는 9월16일치에서 “정부 안팎의 파병 지지자들이 파병 문제와 미 2사단 재배치·감축 문제의 연계 가능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파병 분위기를 고조시키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정부 당국자도 “미국이야 심정적으로 파병과 2사단 문제를 연계하고 싶겠지만, 한-미 협의 초기 단계에서 꺼내기 힘든 이야기다. 우리가 먼저 그런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 당국자들의 부인 발언을 유심히 보면 ‘미국이 그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한 적이 없다’는 것이지, ‘미국이 그런 이야기를 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정부 당국자의 거듭된 공식 부인으로 ‘없던 일’로 됐지만 최근 미국이 처한 ‘현실’과 베트남 파병 ‘전례’를 볼 때 ‘이라크 파병과 미 2사단 철수 연계’는 파병 관련 한-미 협의 과정에서 다시 불거질 수 있다.

미국이 언젠가는 이라크 파병과 미 2사단 철수를 연계할 것으로 보는 쪽은 우선 미군의 현실을 든다. 현재 미군 전력 규모는 현역이 140만명가량이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미군은 해·공군, 해병대 전력의 비중이 높은 반면, 미 육군 현역 사단은 10개에 불과하다.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10개 미 육군 현역 사단 중 평시에도 작전단위로 전시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사단은 주한 미 2사단이 유일하다. 미 2사단은 미 육군 안에서도 훈련 강도나 전투력을 따지면 첫손에 꼽히는 부대다.

한 전문가는 “미 육군 10개 사단 가운데 이라크 작전에 관여하지 않는 부대는 주한 미 2사단을 포함해 2개 사단뿐이다. 이라크 주둔 미군은 16만1500명인데 주방위군 8천명과 예비군 1만2천명이 포함돼 있다. 애초 6개월로 예정된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체류 기간이 연장되면서 직장과 가정을 가진 예비군들과 그 가족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등 미국 정부가 병력 교체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9600명, 발칸지역에 5100명이 배치돼 있어 1년 단위로 순환근무를 하더라도 대부분 미 육군 현역병은 ‘전투지역에서 전투지역으로’ 옮겨다녀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1만5천명이 넘는 2개 여단의 육군병력이 한국에 상시 주둔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과 등은 ‘미군 배치의 수수께끼는 주한미군’이라고 보도했다. 이들은 주한미군 3만6천명이 테러위협을 막으려고 미국에 배치한 병력보다 많은 숫자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이라크에서 미군 전사자가 늘어나면 ‘예비군까지 이라크에 보내놓고 한국에 현역 2개 여단 병력을 붙박이로 배치할 필요가 있느냐’는 압력이 미국 안에서 거세질 가능성이 있으며, 대선을 앞두고 이런 압력에 직면한 미 정부가 ‘한국군 이라크 파병과 미 2사단 철수 연계’를 들고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군 1개 군단 전력과 맞먹는 것으로 알려진 주한 미 2사단 병력이 차출돼 이라크로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국군 파병이 우리 안보에는 유리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핑퐁’외교 위해 미군 일방적 철수

하지만 국군을 파병하더라도 미군 재배치나 철수를 막을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약 40년 전 우리 국군의 베트남 파병 때도 지금과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국군 베트남 파병은 1965년 7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 회담에서 합의됐는데, 당시 주한 미 대사였던 브라운이 서명했다고 해서 ‘브라운 각서’라고 불린다. 이 각서는 5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째 조항이 ‘한-미 두 나라는 양국 정부간에 사전협의 없이 주한미군이나 한국군을 감축시키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이 조항을 ‘국군을 베트남에 보내 미국을 돕겠으니 주한미군을 철군하지 않는다. 주한미군을 철수할 때는 사전에 한국과 협의·결정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미국은 국군 전투병들이 베트남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71년 3월 한국에 주둔하던 미 7사단을 일방적으로 철수시켰다. 미 7사단이 철수하고 10일 뒤 미국은 탁구 대표팀이 중국을 방문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미-중 관계 정상화를 연 ‘핑퐁외교’였다. 미국은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란 세계 전략을 위해 약소국 한국의 처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미 7사단 철수는 브라운 각서 위반이란 한국의 항의에 대해 당시 닉슨 미 행정부는 “주한미군의 철수는 한국의 동의가 필요 없다. 다만 철수를 위한 절차 등에 대해서만 사전 협의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배신’에 충격을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70년대 초부터 자주국방을 주창하게 된다.

앞으로 한-미 협의 과정에서 미국이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와 미 2사단 철수를 연계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40년 전 베트남 파병의 교훈을 돌이켜보면, 한국이 미군 철수를 막기 위해 전투병을 이라크에 보내더라도 주한미군 재배치와 감축에 우리의 의사가 끝까지 관철된다는 보장도 없을 것 같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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