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2026년 10월25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뒤 지지자들과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1차 투표에선 200만 표가 넘는 열세였다. 결선에서 판세가 뒤집혔다. 무려 400만 표 이상 앞섰다. 1차 투표에서 지고도 2차 투표에서 이긴 건 1980년대 중반 군사독재 종식 이후 처음이란다. 불과 3주 만에 600만 표가 넘는 격차를 만든 건 대체 뭘까?
2026년 10월25일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가 치러졌다. 브라질은 휴일에 투표한다. 투표는 국민의 의무다. 투표하지 않으면 상징적 수준의 벌금(약 1천원)도 낸다. 1차 투표(10월4일) 때 투표율은 78.92%였다. 앞선 2022년 대선 1차 투표 때보다 0.13%포인트 낮은 수치다. 결선투표는 달랐다. 투표율 80.78%, 2022년 대선 결선투표 때보다 1.37%포인트 올랐다. 2022년 대선 때도 1차 투표(79.05%) 때보다 결선 투표(79.41%) 때 투표율이 높긴 했다. 이번엔 더 높았다. 그게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냈다. 1차 투표 때 기권했던 수백만 유권자가 만들어낸 결과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노동자당)이 4선에 성공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1차 투표에 앞선 여론조사에서 룰라 대통령은 지지율 1위(38~41%)를 유지했다. 최대 경쟁자인 극우파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자유당)은 33~37%에 그쳤다. 실제 선거 결과는 달랐다. 브라질 좌파는 경악했다. 룰라 대통령 재집권 뒤 집권 노동자당은 보수 기득권층의 반발에도 최저임금을 끌어올렸고, 공공부문 소수자 우대 정책 확대와 성평등 임금제 도입, 출산휴가 확대와 비정규직 지원 정책 확대 등으로 지지층 결집을 이끌어낸 터였다. 선거 판세를 확 바꿔야 했다.
방향은 두 가지였다. 첫째, 룰라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던 ‘주 5일제’(주간 노동시간 40시간 제한) 법안이 10월14일 상원을 통과했다. 대선 결선투표를 앞두고 보수파도 마냥 반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우소나루 역시 찬성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선거가 만들어낸 정치적 ‘공간’을 적극 활용한 게다. 앞서 브라질 하원은 6월27일 주간 노동시간을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둘째,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지지층 결집이다. 1차 투표 패배로 극우파의 재집권 가능성이 커지면서, 브라질 좌파는 대규모 집회와 함께 온라인 총력전을 펼쳤다. 쿠데타 혐의로 징역 27년3개월형을 선고받고 가택연금 중인 플라비우 보우소나루의 부친 자이르 보우소나루 정권의 실정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선연한 터다. 1차 투표에서 유권자 약 1억6천만 명 가운데 약 3300만 명이 투표하지 않았다. 그들의 투표 참여가 대세를 뒤집는 유일한 길이었다.
‘보라, 룰라!’(룰라, 가자!) 대선 1차 투표 직후부터 젊은이들이 나섰다. 와츠앱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노동자당 집회와 룰라 대통령 유세 장면이 속속 전해졌다. 팔순의 룰라 대통령은 생애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구매해 ‘셀카’를 올렸다. 1차 투표 뒤 룰라 대통령이 “거리로 나가자, 시간이 됐다!”고 외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은 조회수 2천만을 훌쩍 넘어섰다. 에이피(AP) 통신은 10월23일 “룰라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채널이 800만 명 이상의 ‘군대’를 모았다면, 플라비우 후보의 소셜미디어가 모은 ‘분대’는 200만여 명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대세는 그렇게 뒤집혔다.
10월4일 대선 1차 투표와 함께 치러진 연방 의회 선거에서 보수파는 압승을 거뒀다. 보우소나루의 자유당은 하원 513석 가운데 121석, 상원 81석 중 28석을 얻으며 양원에서 제1당 지위에 올랐다. 의회 권력뿐이 아니었다. 75살 정년까지 임기 제한이 없는 브라질 대법관 11명 가운데 룰라 대통령과 그의 후계자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등 좌파 및 중도좌파 진영의 대통령이 임명한 건 6명이다. 이 가운데 카르멘 루시아 대법관(룰라 대통령 임명) 등 3명이 차기 대통령 임기 중에 퇴임을 맞는다. 사법 권력까지 극우한테 넘어갈 뻔했다는 뜻이다. 생각하면, 아찔하다.

2026년 10월28일 브라질 대선 후보였던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이 법원의 출국금지 조치에도 미국 마이애미의 오파로카 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10월25일 결선투표는 마감 시각인 오후 5시에서 두 시간 연장됐다. 두 후보 쪽 모두 투표 시간 연장을 요청했고, 연방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룰라 대통령 쪽은 일부 지역에서 대중교통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유권자가 투표장으로 갈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보우소나루 쪽은 일부 지역에서 산사태와 폭우로 유권자의 투표권이 보장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개표 직후 보우소나루는 투표 시간 연장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선거 무효를 주장했다. 낯익은 장면이다.
2022년 대선에서 룰라 대통령은 자이르 보우소나루 당시 대통령을 210만여 표 차로 이겼다. 지지율 격차는 단 1.8%포인트였다. 보우소나루는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지지자와 군부를 동원해 ‘친위 쿠데타’를 획책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그는 임기를 마치기도 전에 미국으로 도주했다. 3개월여 뒤 귀국한 그는 내란 혐의로 기소돼 2025년 9월 징역 27년3개월형이 확정됐다.
대선 전에도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자금세탁과 탈세 혐의로 수사받고 있었다. 결연히 ‘선거 불복’을 선언했던 그는 대선 직후 법원의 출국금지 명령에도, 아르헨티나와 에콰도르를 거쳐 미국으로 도주했다. 그의 선거캠프조차 이를 사전에 알지 못했단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보우소나루 가족에게 입국사증을 기꺼이 발부했다. 거듭, 낯익다.
룰라 대통령의 당선 다음날 브라질 이보베스파 주가지수는 3만2천여 포인트(약 17%) 급락한 17만2479포인트를 기록했다. 헤알화 가치도 달러화 대비 전날보다 11% 급락했다. ‘탈출’한 건 보우소나루뿐이 아닌 게다. ‘자본의 역습’이 브라질을 휘몰아친다. 차기 룰라 정부는 극우가 장악한 의회를 버텨낼 수 있을까? 라틴아메리카를 휘감은 우파 바람을 잠재운 브라질이 여전히 위태롭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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