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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원유길 두 해협 막히는데…미국은 뒷짐

후티, 홍해 요충지 장악하고 사우디 본토 공격…이란 침공한 미국은 지원 요청 거절
등록 2026-09-20 00:03수정 2026-09-20 08:35
2026년 9월15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는 예멘 정부군 병사들이 북서부 알자우프 외곽에서 친이란계 후티 반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6년 9월15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는 예멘 정부군 병사들이 북서부 알자우프 외곽에서 친이란계 후티 반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아라비아반도를 휘감은 전운이 점점 짙어진다. 반도의 동쪽 호르무즈해협과 서쪽 바브엘만데브해협 모두 전쟁의 한복판이 됐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3분의 1가량을 떠맡았던 두 해협이 동시에 막히면서 국제유가가 몸서리치고 있다. 전쟁은 번지는데, 정작 전쟁을 시작한 쪽은 뒷짐만 지고 있다. 아슬하다.

사우디아라비아 보안당국은 2026년 9월15일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의 후티 반군이 자국 내 3개 도시를 공격해 적어도 13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공격 지점이 어디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앞서 사우디 쪽은 전날인 9월14일 오후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홍해 연안 항구도시 제다, 타이프에 적대세력의 공격이 임박했다며 ‘위험경보’를 발령한 바 있다. 이어 같은 날 밤에는 제다와 타이프, 원유 수출 거점도시인 얀부에 다시 위험경보를 발령했다. 사우디는 사실상 ‘준전시’ 상태로 보인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9월16일치에서 사우디 쪽이 위험경보를 내린 곳 가운데 제다가 포함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사우디의 실질적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총리)가 최근 제다에서 집무하는 일이 잦았던 탓이다. 실제 위험경보가 내려진 9월14일 빈 살만 왕세자는 제다에서 브래드 쿠퍼 미군 중부사령관을 접견했다. 그는 9월15일엔 제다에서 내각회의를 주재한 뒤 이집트 방문을 위해 출국했다. 후티 반군이 빈 살만 왕세자가 머무르고 있던 제다를 공격했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을 터다.

2026년 9월12일 전날 후티 반군이 장악한 모카에서 풀려난 후티계 수감자들이 소지품을 든 채 예멘 수도 사나로 들어서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6년 9월12일 전날 후티 반군이 장악한 모카에서 풀려난 후티계 수감자들이 소지품을 든 채 예멘 수도 사나로 들어서고 있다. AFP 연합뉴스


 

호르무즈 우회로마저 흔들…원유 수송 ‘비상’

 

정부군 쪽을 지원하며 사실상 예멘 내전에 참전했던 사우디와 후티 반군 쪽이 8년여에 걸친 전쟁을 멈추기로 합의한 건 2022년 3월30일이다. 불안했던 정세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2026년 2월28일 이란을 침공한 이후 격랑으로 빨려들었다. 7월13일 후티 반군이 장악한 예멘 수도 사나 국제공항에 미사일 공격이 퍼부어졌다. 후티 반군은 사우디를 배후로 지목하고, 이튿날 예멘과 국경을 맞댄 사우디 서남부 아시르주의 아브하 국제공항을 공격했다. 4년여 유지됐던 휴전은 그렇게 깨졌다. 이어 7월20일 후티 반군 쪽은 성명을 내어 “사우디에 대한 포괄적 해상봉쇄에 나설 것”이라고 발표했다. 예멘과 북아프리카의 지부티가 만나는 바브엘만데브해협 봉쇄를 선언한 셈이다. 당시만 해도 사우디 쪽은 “상황은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등의 자료를 종합하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이전까지 하루 평균 2천만 배럴의 원유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했다. 바브엘만데브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량은 하루 약 420만 배럴, 홍해 북쪽 수에즈운하를 통한 수송량은 약 490만 배럴이었다.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이 막히자, 사우디 쪽은 아라비아반도를 가로지르는 동서 횡단 파이프라인을 통해 원유를 홍해 연안 얀부항으로 운송했다. 사우디 쪽은 얀부항을 통해 하루 평균 45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했다. 이 가운데 바브엘만데브를 통한 수출 물량은 약 300만 배럴에 달했다. 후티 반군의 해상봉쇄 선언 이후 8월 들어 얀부항을 통한 원유 수출 물량은 400만 배럴 이하로 떨어진 바 있다. 후티 반군은 말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9월10일 후티 반군이 홍해 연안 항구도시 모카에서 정부군을 몰아냈다. 오랜 기간 예멘산 커피의 주요 수출 항구로 ‘모카커피’란 이름의 유래지인 그곳은 홍해 해상 물류의 주요 거점이다. 모카에서 홍해 연안을 따라 70~80㎞를 남쪽으로 내려가면 바브엘만데브해협이 나오기 때문이다. 모카 장악은 후티 반군이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을 타격할 수 있는 전략적 거점을 마련했다는 뜻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가 2026년 9월15일 카이로를 방문해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REUTERS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가 2026년 9월15일 카이로를 방문해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REUTERS


 

넉 달 전쟁에 46조원…미군 7명 사망·417명 부상

그날 빈 살만 왕세자가 오전과 오후 두 차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해 후티 반군 타격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거절했다. 정치 전문매체 액시오스는 외교 당국자의 말을 따 “미국은 바브엘만데브해협의 자유로운 통항을 원한다. 예멘 상황에 직접 개입할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미국이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은 탓이다.

미국 국방부 감찰관실은 9월15일 이란 침공으로 인한 비용과 피해 규모를 집계한 44쪽 분량의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감찰관실 쪽은 2월28일 개전 이후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에 따라 미국과 이란이 휴전에 들어간 이후인 6월29일까지 이른바 ‘장대한 분노’ 작전에 소요된 비용을 약 334억달러(약 46조2천억원)로 집계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작전에 쏟아부은 각종 미사일과 탄약류(약 223억달러) 비용이다.

전쟁으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 규모도 일부 공개됐다. 전쟁 넉 달 남짓 동안 미군 7명이 숨지고, 417명이 다쳤다. 이라크·쿠웨이트·사우디·아랍에미리트 4개국 주재 미국 외교공관이 이란의 공격으로 파손·파괴됐다. 감찰관실 쪽은 이들 공관의 복구에 필요한 예산을 1억8400만달러(약 2542억원)로 추산했다. ‘작전 비용’에 포함되지 않은 액수다. 바레인·요르단 등 8개국의 미군기지도 이란군의 공세로 파손·파괴됐다. 감찰관실 쪽은 △전투기(F-15E) 4대 △공중급유기(KC-135) 7대 △전투용 헬리콥터(AH-6) 4대 △공격형 대형 드론(MQ-9) 최소 30대 등 50대 이상의 미군 항공기가 손상을 입거나 파괴됐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이란을 ‘압도’하지 못했다.

같은 날 미국 의회예산처(CBO)도 하원 예산위원회 브렌던 보일 의원(민주당)의 요청으로 작성한 19쪽 분량의 이란 침공 비용 추정치 보고서를 내놨다. 예산처 쪽은 개전 만 6개월째를 맞은 8월 말 현재, 이란 전쟁 비용을 약 380억달러(약 52조5천억원)로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가짜뉴스’로 일축했던 탄약류 부족 사태도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예산처는 “이번 전쟁으로 요격미사일을 포함한 탄약류는 전체 보유 물량의 절반에서 3분의 2가량 소진한 상태”라며 “생산량을 늘리더라도 증산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전쟁 이전 수준까지 탄약류 보유량을 회복하는 데 최소 5년이 걸릴 것”이라고 짚었다. 미국이 스스로를 ‘안보 위기’로 내몬 형국이다.

2026년 9월12일 예멘 남서부 바브엘만데브해협 해상에서 상선이 닻을 내린 채 정박해 있다. AFP 연합뉴스

2026년 9월12일 예멘 남서부 바브엘만데브해협 해상에서 상선이 닻을 내린 채 정박해 있다. AFP 연합뉴스


시진핑 방미 앞두고 베이징 찾은 이란 외교장관

후티 반군은 파죽지세로 몰아붙였다. 9월11일엔 바브엘만데브해협 중간 지점에 위치한 마윤섬(페림섬)을 장악했다. 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선박을 감시·통제할 수 있는 일종의 전진기지다. 이어 9월14일엔 홍해의 전략적 요충지로 통하는 하니시제도까지 점령했다. 후티 반군이 홍해의 남쪽을 사실상 묶어버린 셈이다. 여기에 9월11일 사우디 메디나 남동쪽 알메사바 부근에서 동서 횡단 송유관을 노린 무인기 공격이 최소 두 차례 벌어졌다. 이라크의 친이란계 무장정파 소행이란 추정이 나왔다. 사우디 쪽은 즉각 송유관 사용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에이피(AP) 통신 등은 “파손된 송유관을 교체·수리 뒤 재가동하는 데는 최소한 몇 주가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선을 넘어서면서 다시 고공행진에 들어갔다. 9월15일 북해산 브렌트유 현물거래가는 교전 상황이 절정이던 4월 이후 최고치인 배럴당 136.75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런 가운데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이 9월16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났다. 아라그치 장관의 방중 시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5월6일에도 베이징에서 왕 부장과 회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정상회담(5월14~15일)이 코앞이었고, 미국과 이란 간 휴전협상이 급진전하던 때였다. 당시 회담에서 왕 부장은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전쟁 중단 △호르무즈해협의 자유로운 통항 재개를 강조했다. 이번 방중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 정상회담(9월24일)을 앞두고 이뤄졌다. 교착상태인 미국-이란 협상을 추동하는 데 중국이 모종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중국과 이란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다. 중국은 이란이 자국의 정당한 권익을 잘 지켜가기를 원한다. 전쟁이 지속되는 건 당사국과 국제사회의 공동 이익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왕 부장은 이번 회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또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를 조속히 복원하고, 지금까지 도출된 합의에 따라 협상 틀을 재구성하고, 양국이 각자의 관심사에 대한 실질적 협의를 진행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어 왕 부장은 “현 상황은 중동의 기존 안보체계가 완전하지 않으며, 개혁과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며 중동 차원의 ‘새로운 다자안보 체계’ 구축을 강조했다. 미국의 군사력에 기댄 기존 중동 질서가 끝나가고 있다는 점을 내비친 게다.

“충돌이 계속되기를 원치 않는다. 외교적 해결 경로로 복귀하기를 바란다. 동시에 이란의 권익을 굳게 지켜내겠다.” 아라그치 장관은 이렇게 화답했다. 이어 그는 “이란은 미국과 체결한 양해각서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이미 오만과는 호르무즈해협 개방 방안에 대해 합의를 마쳤다. 미국이 기존에 맺은 각종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후티 반군의 공세 속에 중동 전역이 ‘화약고’가 되는 건 이란도 원치 않음을 분명히 한 셈이다.

2026년 9월14일 대형 반미 걸개그림이 내걸린 이란 수도 테헤란의 엥겔라브 광장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EPA 연합뉴스

2026년 9월14일 대형 반미 걸개그림이 내걸린 이란 수도 테헤란의 엥겔라브 광장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중간선거 뒤 끝난다”… 유엔총회가 대화의 틈새 될까

“이란 전쟁은 중간선거 뒤 바로 끝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여러 차례 이렇게 말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란이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악착같이 버티고 있는데, 중간선거 결과가 나오면 더 이상 버틸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고개를 숙일 것’이란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 중간선거(11월3일) 직후 전쟁이 끝난다면, 한국이 ‘호르무즈 파병’을 고민할 이유도 없을 터다.

국방부 감찰관실과 의회예산처의 보고서는 전혀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간신히 버티고 있는 건 누구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9월16일 기자들과 만나 “전쟁의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란이 협상을 원한다. 이란 쪽에서 ‘직접’ 들었다”고 말했다. 익숙한 말투다. 9월22일 유엔 총회에서 각국 정상의 기조연설이 시작된다. 대화의 ‘틈새’라도 파고들어야 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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