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추모가 폭동이라니… 홍콩, 인민은 잊지 않는다

리척얀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 전 주석(맨 왼쪽)과 초우항텅 전 부주석(오른쪽 둘째)이 천안문(톈안먼) 민주화 운동 유혈탄압 30주기를 맞은 2019년 6월4일 홍콩섬 중심가 빅토리아공원에서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REUTERS
2026년 8월21일 홍콩 고등법원 국가보안법 전담재판부는 ‘체제전복 선동’ 혐의로 기소된 리척얀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 전 주석과 초우항텅 전 부주석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216쪽에 이르는 장문의 판결문에서 “공산당을 필두로 한 중국 지도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건 체제전복을 시도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최종 형량 결정은 후속 재판으로 미뤄졌다.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리척얀은 1957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2살 무렵 홍콩으로 이주했다. 홍콩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취업한 그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분노해 자연스레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1989년 봄 그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사건이 벌어졌다. 개혁개방 이후 극심해진 빈부격차와 만연한 부패를 비판하며 학생과 노동자가 베이징 중심가 천안문(톈안먼) 광장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리척얀은 홍콩 시민사회와 함께 천안문 시위대를 지원하기 위한 모금운동에 나섰다.
삽시간에 거금이 모였다. 그해 5월 말 그는 동료 활동가들과 함께 베이징행 비행기에 올랐다. 모금한 자금과 마련한 물품을 시위대 쪽에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내 6월4일이 닥쳤다. ‘인민 해방의 군대’가 탱크를 몰고 와 광장의 인민들을 학살했다. 리척얀은 서둘러 홍콩행 전세기를 수소문했다. 이륙하기 직전 중국 공안이 전세기 안까지 들어와 그를 체포했다. 사흘간 구금된 리척얀은 ‘반성문’을 제출한 뒤에야 풀려나 홍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련회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듬해인 1990년부터 지련회는 해마다 6월4일이면 홍콩섬 중심가 빅토리아공원에서 촛불집회를 열어 천안문 민주화 운동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에도 6·4 촛불집회는 중단 없이 이어졌다. 중국 당국은 ‘6·4’란 문구마저 아예 지우려 했다. 그저 ‘1989년의 특별한 사건’이라 불렀다. 홍콩은 중국 전역에서 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기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홍콩의 민주노총 격인 직공회연맹(CTU) 사무총장과 비서장 등을 거쳐 공당(노동당) 소속 입법회 의원이 된 뒤에도 리척얀은 지련회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민간인권전선과 함께 지련회는 홍콩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양대 기둥이었다.
초우항텅은 1985년 홍콩에서 태어났다. 4살 때인 1989년 부모님을 따라 빅토리아공원에서 열린 천안문 민주화 운동 지지 시위에 참석하며 6·4 촛불집회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는 2021년 5월27일 지금은 폐간된 ‘빈과(핑궈)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해마다 6·4 촛불집회에 참석하면서 성장했다. 어디를 가든 내 근본을 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지구물리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2008년 뒤늦게 방향을 틀어 인권운동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이유다. 귀국 뒤 법대에 진학해 변호사가 된 그는 지련회 상임위원을 거쳐 부주석으로 적극 활동했다.
‘광복홍콩, 시대혁명!’ 2019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송환법 반대 시위는 홍콩의 ‘화양연화’였을까? 그해 11월 말 치른 지방선거에서 친중파를 누르고 민주파가 압승한 것은 ‘아름다운 계절’의 절정이었다. ‘꽃’은 오래가지 못했다. 코로나19와 함께 ‘북풍한설’이 몰아쳤다. 2020년 6·4 촛불집회는 사상 처음으로 불허됐다. 중국 중앙정부의 압박 속에 홍콩 입법회는 그해 6월30일 홍콩판 국가보안법안을 통과시켰다.
여러 시민단체와 노동단체가 줄줄이 자진해서 해산했다. 이른바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의 시금석으로 여겨졌던 지련회도 탄압의 서슬을 피해 자진 해산을 결정했다. 홍콩 시민사회는 궤멸 수준으로 내몰렸다. 그 무렵 리척얀도, 초우항텅도 불법시위 주도 등의 혐의로 동료 활동가들과 함께 체포됐다. 두 사람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판은 2026년 1월에야 시작됐다. 이들은 5년째 수감된 상태로 재판에 임했다.
검찰 쪽은 재판에서 지련회가 촛불집회 때 사용한 ‘일당독재 종식’ 구호를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지련회가 이 구호를 동원해 “대중에게 불법적인 수단으로 중국 공산당 지도부를 전복하라고 선동했다”는 게다. 검찰 쪽은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가 법과 제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절대적 권리는 아니다”란 주장도 되풀이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검찰 쪽은 지련회가 대중에게 뭘 ‘선동’했는지에 대해 아무런 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체제전복 선동’ 혐의로 기소된 리척얀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 전 주석과 초우항텅 전 부주석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린 2026년 8월21일 홍콩 웨스트카오룽 법원 청사 주변에서 경찰이 삼엄한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일당독재를 종식하자는 건 공산당 집권을 끝장내자는 게 아니라 민주화로 나아가자는 주장이다. 인민 스스로 지도자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리척얀은 5월18일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판에서 스스로를 변호했던 초우항텅은 5월19일 최후진술에서 “진실을 말하는 건 증오를 부추기는 선동이 됐다. 정의를 추구하는 건 남의 고통마저 도구화하는 악행이 됐다. 권력의 책임을 묻고 견제하는 건 헌법 위반이란다. 그래서 인민에게 권력을 돌려주자는 주장을 체제전복 시도로 규정하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재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겉돌기만 했다.
“이 사건 재판 과정에서 제시된 증거는 국가보안법 발효 이후에도 피고인들이 ‘일당독재 종식' 주장을 옹호하고 확산시켰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공산당에 대한 대중적 적대감을 부추겼고, 지도부에 대한 대중적 신망을 훼손했다.” 재판부는 8월21일 선고공판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어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실제로 믿었던 게 아니다. 그저 벼랑 끝으로 내몰렸음에도 항복하지 않고, 어떻게든 끝까지 저항하기로 결심한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유죄 판결을 두고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 대변인은 “법 집행과 국가 안전 수호에 대한 홍콩 특구 정부의 의지를 단호히 지지한다”고 환영했다. 홍콩 국가보안법 제23조는 체제전복 선동 혐의가 경미한 경우 최고 징역 5년형에, 엄중한 경우엔 징역 5~10년형에 처할 수 있도록 정해놨다.
촛불을 든 시민은 폭도가 됐다. 추모의 마음을 모은 활동가는 체제전복 세력이 돼서 중형을 앞두고 있다. 홍콩은 다시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2019년 홍콩의 거리를 물처럼 흐르던 송환법 반대 시위 때마다 리척얀과 초우항텅이 입었던 셔츠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인민은 잊지 않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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