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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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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이란이 아니라 트럼프였다

‘속전속결’ 뇌피셜 빗나가고 중간선거 다가오고… 출구전략 다그치며 정작 자신은 오락가락
등록 2026-04-16 21:49 수정 2026-04-18 19:2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6년 4월12일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자신을 예수로 묘사한 그림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4월13일 트럼프 대통령 사진과 해당 그림을 합성한 이미지.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6년 4월12일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자신을 예수로 묘사한 그림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4월13일 트럼프 대통령 사진과 해당 그림을 합성한 이미지. AFP 연합뉴스


해협 개방을 요구하더니, 돌연 주변 해상을 역봉쇄한다. 14억 명 지구촌 가톨릭 신자의 수장인 교종(교황)을 맹비난하더니, 아예 ‘치유의 기적’을 베푸는 예수를 자처한다. 분노와 불안을 오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행’ 속에 세계가 혼돈으로 빨려들고 있다.

시작은 쉽다. 뚜렷한 전략적 목표도 없이 충동적으로 나선 전쟁이다. 압도적 화력을 동원해 초전에 박살 냈다. 개전 전 시나리오는 이란의 굴복이었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신기루에 불과했다. 저항은 격렬했고, 비용은 쌓여간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부터 전쟁을 오래 할 생각이 없었다. 개전 초기 “4~6주 정도 걸릴 것”이라던 전쟁은 이미 7주째를 지나고 있다.

끝내기는 어렵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25일 벌어졌다. 개전 1년 뒤부터 본격적인 휴전 협상이 시작됐다. 교전의 양쪽 당사자 모두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던 때다. 전쟁은 1953년 7월27일에야 끝났다. 휴전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만 2년이 걸렸다. 2026년 2월28일 시작된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은 어떤가?

 

‘최후통첩’ 네 번 만에 대면 협상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이 3주째를 맞은 3월21일 “호르무즈해협을 48시간 안에 개방하지 않으면 이란의 에너지 인프라와 발전시설을 초토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후통첩 시점은 이후 △5일(3월23일) △10일(3월26일) △2주(4월7일)씩 계속 연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4월1일)거나 “문명 전체를 파괴해 영원히 되살리지 못하게 만들겠다”(4월7일)는 식의 ‘야만적 위협’도 이어갔다. 극한의 위기감 속에 파키스탄의 중재로 성사된 미국과 이란의 대면 협상에선 무슨 말이 오갔을까?

2026년 4월11일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미국과 종전 협상에 나서기 전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왼쪽 둘째)이 주선자인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와 두 손을 맞잡고 있다. UPI 연합뉴스

2026년 4월11일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미국과 종전 협상에 나서기 전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왼쪽 둘째)이 주선자인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와 두 손을 맞잡고 있다. UPI 연합뉴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이 이끈 이란 대표단은 협상 전날인 4월10일 저녁 파키스탄 주도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했다. 대표단이 탄 전용기에는 전쟁 첫날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주 소도시 미나브의 샤자레타이예베 여자초등학교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학생과 교사 175명의 영정이 좌석마다 빼곡했다. 협상에 임하는 이란 쪽 태도를 상징한다.

제이디 밴스 부통령이 이끈 미국 대표단은 협상 당일인 4월11일 오전 10시29분께 이슬라마바드 외곽 누르칸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협상은 오후 1시30분께 시작됐다. 밤샘 협상을 마친 밴스 부통령은 짤막한 기자회견을 열어 협상 결렬을 선언한 뒤, 4월12일 오전 7시9분께 ‘공군 2호기’(부통령 전용기)에 탑승했다. 파키스탄 체류 시간은 총 21시간, 이 가운데 16시간을 협상에 썼다.

4월11일 협상은 1979년 이슬람공화국 수립 이후 미국과 이란 사이에 열린 사상 최고위급 회담이었다. 쟁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세계 원유·천연가스 생산량의 각각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해협 개방 문제다. 둘째, 이란이 기존에 무기급(농축도 60% 이상)으로 농축한 고농축우라늄(HEU) 처리 문제다. 셋째, 270억달러(약 40조원) 규모로 알려진 이란의 동결 국외자산 문제다.

 

핵문제는 충분히 협상 가능하다

 

그간 미국 쪽은 이란의 무기급 우라늄 국외 반출을 요구했다. 반면 이란 쪽은 개전 전 협상 때 무기급 우라늄의 농축도를 20% 이하로 희석해 핵발전용 연료로 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희석 처리 과정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은 물론 미국 쪽도 참여해 검증할 수 있도록 했다. 2025년 6월 미국과 이스라엘은 ‘12일 전쟁’을 통해 나탄즈·이스파한·포르도 핵시설을 초토화했다. 같은 해 7월1일 미국 반핵단체 핵과학자협회보는 “이란은 추가 우라늄 농축 활동 없이도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이를 막을 유일한 길은 협상뿐”이라고 전했다. 이 단체의 지적을 종합해보자.

이란이 보유한 고농축우라늄은 약 408㎏으로 추정된다. 핵탄두 1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고농축우라늄은 농축도 90% 이상인 경우 20~25㎏이다. 농축도가 60% 수준이면 그보다 1.5배가 필요하다. 이란이 보유한 고농축우라늄이 90% 이상 농축됐다면 핵탄두 9~10기, 60%급이라면 6~7기를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미국, 특히 이스라엘이 이란의 우라늄 농축 능력과 기존에 보유한 무기급 우라늄 처리 문제에 집착하는 이유다.

2026년 4월12일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제이디 밴스 미국 부통령(오른쪽)이 기자회견을 열어 이란과 밤새워 지속한 종전 협상이 결렬됐다고 밝히고 있다. REUTERS

2026년 4월12일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제이디 밴스 미국 부통령(오른쪽)이 기자회견을 열어 이란과 밤새워 지속한 종전 협상이 결렬됐다고 밝히고 있다. REUTERS


이슬라마바드 협상에서 미국 쪽은 이란이 보유한 무기급 우라늄 국외 반출과 우라늄 농축 활동 20년 중단을 요구했다. 반면 이란 쪽은 고농축우라늄 희석 재활용과 농축 활동 5년 중단을 제시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은 전했다. 미국 쪽 요구는 일방적이다. 이란 쪽 주장은 법적 근거가 있다. 이란도 참여한 ‘핵확산금지조약’(NPT) 제4조는 “평화적 목적을 위한 원자력의 연구생산 및 사용을 개발할 수 있는 모든 조약 당사국의 불가양의 권리”를 보장한다. 개전 직전까지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을 중재했던 바드르 알부사이디 오만 외교장관은 “이란은 무기급 핵물질을 절대 보유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합의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체결한 이란 핵합의(JCPOA)에는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내용이자 매우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한 바 있다. 부족한 신뢰를 사후 검증과 사찰로 대체할 수 있다면, 핵문제는 충분히 협상 가능한 수준으로 볼 수 있다.

 

핵문제 풀리면 동결자산도 풀린다

 

이란의 국외 동결자산 해제는 전쟁피해 배상과 직결된 문제다. 핵문제에서 합의가 이뤄지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와 미국의 독자 제재를 풀 수 있다. 그럼 국외 동결자산 문제도 해소된다. 실제 로이터 통신은 4월11일 이란 고위 당국자의 말을 따 “미국이 이란의 국외 동결자산 부분 해제에 합의했다. 해제 대상은 카타르가 동결 중인 60억달러(약 8조8200억원)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란은 국외 동결자산 해제를 미국의 ‘선의’를 확인하는 지표로 여기고 있다. 미국 쪽은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남은 문제는 호르무즈해협 개방이다. 미국은 협상에서 해협 개방이 2주 휴전의 전제인 만큼 당장 전면 개방하라고 요구했다. 이란 쪽은 종전 협상이 최종 타결된 뒤에나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국제유가 급등과 금융시장 불안 속에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인한 각종 경제적 파장으로 미국을 포함해 지구촌 전역이 휘청이고 있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을 터다. 일방적 승리를 선언하고 군대를 철수시키려면 최소한 ‘전쟁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야 한다. 호르무즈해협 개방이 그 핵심이다. 전쟁 전에 없던 문제가 전쟁으로 만들어졌다. 그 문제를 풀지 않고는 전쟁을 끝낼 수 없다. 전쟁 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쟁을 시작한 꼴이 됐다.

협상 결렬 직후 밴스 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대단히 유연하게 협상에 임했지만, 이란 쪽이 끝내 우리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부 장관은 전혀 다른 주장을 내놨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썼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선의를 갖고 회담에 임했다. 하지만 합의 사항을 담은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MOU) 체결에 거의 다가섰을 때, 미국이 극단적인 요구를 내놓으며 골대(요구 조건)를 옮겨 타결을 가로막았다. 미국은 앞선 협상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선의는 선의를 낳고, 적의는 적의를 낳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격노’했다. 그는 4월13일 오전 10시(미국 동부시각)부터 호르무즈해협 내 이란 항구와 연안을 드나드는 선박을 전면 봉쇄하도록 미군에 명했다. 미군 중부사령부 쪽은 이란 해상 봉쇄에 병력 1만여 명과 항공모함을 포함한 군함 10여 척, 군용기 수십 대가 투입됐다고 밝혔다. 막힌 바닷길을 열기 위해 아예 주변 해상을 다 막는단다. 지독한 역설이자, 해협 개방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상과제란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 조치다. 앞서 미국 재무부는 3월20일 이미 선박에 적재된 이란산 원유와 정유제품에 대한 판매를 4월19일까지 한 달간 한시적으로 허용한 바 있다. 급등하는 유가를 잡기 위해 국제 원유시장에 일시적으로 공급량을 늘려주려는 고육책이었다.

2026년 4월15일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부 장관(뒷줄 오른쪽)이 미국 쪽 협상안 전달을 위해 테헤란을 방문한 파키스탄 대표단을 만나고 있다. UPI 연합뉴스

2026년 4월15일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부 장관(뒷줄 오른쪽)이 미국 쪽 협상안 전달을 위해 테헤란을 방문한 파키스탄 대표단을 만나고 있다. UPI 연합뉴스


 

진짜 남은 걸림돌은 트럼프 자신

 

트럼프 대통령은 “우방국이 해상 봉쇄에 동참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호르무즈 호위선단 구성 제안 때와 마찬가지로 참여 뜻을 밝힌 국가는 전무하다. 해상 봉쇄를 실제 집행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예를 들어 이란 항구에서 원유를 싣고 출항한 선박이 중국 국적선이거나 중국 쪽이 대금 지급까지 마친 원유를 실었다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미군이 이들 선박을 나포하거나 위협해 강제 회항시키면 중국은 이를 ‘무력도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중국은 개전 초기만 해도 “관련 당사국은 긴장 고조 행위를 중단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식의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하지만 전쟁의 파장이 커지면서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된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겨냥해 불법적인 군사행동을 했기 때문”이라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한 셈이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월14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의 이란 해상 봉쇄를 “위험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질타했다. 중국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앞으로 이틀 안에 (미국과 이란 간) 2차 협상이 열릴 수 있다. 전쟁이 거의 끝나간다. 이란은 협상 타결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14일 미국 일간 뉴욕포스트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엔엔(CNN) 방송은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단에 종전을 위한 출구전략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 차례나 연장한 최후통첩 시한은 4월21일이다. 그 전에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다시 협상의 문이 열릴 수 있다. 미국 쪽에선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경제적 번영을 보장하는 포괄적 합의(그랜드바겐)를 원한다”는 말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인 2019년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 때도 ‘그랜드바겐’을 고집했다. 결과는 ‘노딜’(협상 결렬)이었다.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고빗길로 접어들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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