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월28일 시리아 북동부 카미실리에서 정부군과 교전 중 전사한 시리아민주군(SDF) 병사 합동 장례식에 참석한 유가족들이 매장에 앞서 오열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내전이 끝난 시리아에서 다시 전쟁의 망령이 떠돈다.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맞서 최전선에서 싸웠던 쿠르드족 주축 시리아민주군(SDF)이 시리아 임시정부의 표적이 됐다. 시리아민주군을 앞세워 이슬람국가를 궤멸 직전까지 몰아갔던 미국은 슬그머니 발을 빼는 모양새다. 14년 가까운 내전 기간에 광범위한 자치를 구가해온 시리아 쿠르드족이 다시 벼랑 끝에 섰다.
‘로자바’로 불린다. 튀르키예와 국경을 맞댄 시리아 북동부 일대를 가리킨다. 주민의 절대다수는 소수종족인 쿠르드족이다. 2011년 ‘다마스쿠스의 봄’과 함께 시리아 내전이 시작됐을 때, 로자바에선 좌파 성향의 민주연합당이 주도해 바샤르 아사드 정권에 맞섰다. 전면에 나선 인민방위대(YPG)는 시리아민주군의 주축이다. 이라크 북서부 일대를 장악한 이슬람국가는 2013년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리아 국경을 넘어와 ‘영토 확장’에 열을 올렸다.
2014년 9월 이슬람국가는 튀르키예의 국경도시인 코바니를 봉쇄하고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튀르키예 쪽에 코바니 방어를 위한 지원을 요청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 이유는 자명했다. 튀르키예 내부의 쿠르드족 분리·독립 움직임에 민감했던 에르도안 대통령은 시리아 북동부 일대에서 미국이 쿠르드족 자치를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실제 사담 후세인 정권의 몰락 뒤 미국은 이라크 북부 일대에서 쿠르드족이 광범위한 자치를 인정받도록 지원한 바 있다. 시리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튀르키예 쿠르드족도 비슷한 요구를 할 게 뻔했다.

2026년 1월23일 시리아 북부 락까에서 이슬람국가(IS) 관련자가 수감된 구금시설 주변을 시리아 정부군이 지키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미국은 시리아민주군 쪽에 손을 내밀었다. 인민방위대는 이슬람국가와 치열한 교전을 벌인 끝에 코바니를 지켜냈다. 장기간 코바니에 화력을 집중했던 이슬람국가는 패퇴하면서 한층 기세가 꺾였다. 결국 2017년 10월 시리아민주군이 이슬람국가가 ‘수도’로 삼은 락까를 함락하면서 이슬람국가는 궤멸 수순으로 접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숱한 쿠르드족 병력이 스러져갔다. 미국은 무기 지원과 함께 공습에만 집중했다. 시리아민주군과 협력관계를 구축하면서 미국은 지상군 파병과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시리아민주군 역시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과 동맹을 맺은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첫째, 아사드 정권에 맞설 합법성과 정통성을 얻었다. 둘째, 미국의 동맹이란 점은 일정한 보호막 구실을 했다. 셋째, 내전 이후 들어설 새로운 시리아 정부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컸다. 아사드 정권은 갈수록 약해졌고, 시리아 정부군의 영향력은 강해졌다. 이에 맞서 튀르키예 정부는 아랍인 중심으로 시리아국민군(SNA)을 창설·지원했다.
2024년 12월8일 독재자 아사드가 러시아로 야반도주했다. 53년여를 이어온 세습독재도 막을 내렸다. 수도 다마스쿠스에 입성한 이슬람근본주의 무장단체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샴’(HTS)을 이끈 반군 지도자 아흐메드 샤라는 스스로 임시대통령에 올랐다. 시리아 안팎의 정치 지형도 바뀌었다. 전투복을 벗고 양복을 입은 샤라는 순방외교를 통해 임시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승인을 이끌어냈다. 미국은 2025년 5월 시리아 제재를 전격 해제했고, 같은 해 11월 샤라는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아사드 정권과 불화했던 튀르키예는 샤라 대통령의 최대 우방으로 떠올랐다.
내전이 끝난 뒤에도 로자바 일대에선 쿠르드족의 자치가 이어졌다. 샤라 대통령은 ‘통합’을 내세워, 시리아민주군의 정부군 편입을 재촉했다. 조금씩 파열음이 커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시리아민주군을 향해 정부군과 통합하지 않으면 직접 개입하겠다고 노골적으로 위협했다. 2026년 1월 초 시리아 정부군이 파죽지세로 북상을 시작했다. 1월6일 알레포에서 정부군과 시리아민주군이 아사드 정권 몰락 이래 가장 격렬하게 맞붙었다. 1월10일 주튀르키예 미국대사를 겸하는 토머스 배럭 시리아특사가 다마스쿠스에서 샤라 대통령을 만나 “양쪽이 최대한 자제하고, 적대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조속히 대화로 복귀하라”고 촉구했다.

2026년 1월24일 튀르키예의 최대 도시 이스탄불에서 쿠르드족 여성들이 시리아의 동족들을 위해 저항과 연대를 상징하는 머리땋기를 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충돌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튀르키예의 국경도시 코바니가 다시 봉쇄됐다. 이번엔 정부군 짓이다. 폭설 속에 주민 40여만 명이 도시에 고립됐다. 봉쇄에 앞선 전투 과정에서 인근 티슈린댐이 파손되면서 수력발전이 중단됐다. 코바니로 향하던 전기와 물이 끊겼다. 식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마즐룸 압디 시리아민주군 사령관이 1월24일 샤라 대통령과 대화를 재개했다. 1월25일 유엔난민기구(UNHCR)가 마련한 구호품 트럭이 코바니 시내로 진입했다. 현지 매체 쿠르디스탄24는 유엔 관계자의 말을 따 “모든 생필품이 바닥났다.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시리아 정부군의 파상공세에 미국은 침묵만 지켰다. 앞서 토머스 배럭 시리아특사는 1월20일 소셜미디어 엑스에 “이슬람국가와 맞서기 위해 시리아민주군과 맺은 협력관계는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썼다. 시리아민주군은 다시 고립됐다. 엇비슷한 경험은 차고 넘친다. 1972년 미국은 이라크와 국경 분쟁 중이던 이란의 리자 팔레비 왕조를 지원하기 위해 이라크 쿠르드족의 봉기를 지원했다. 3년여 뒤 이란과 이라크는 국경 획정에 합의했다. 이라크 정부는 대대적인 쿠르드족 탄압에 나섰다. 미국은 지원을 끊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의 쿠웨이트 침공이 부른 1991년 제1차 걸프전 때는 ‘아버지’ 조지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과 남부 시아파에게 봉기를 부추겼다. 후세인 정권은 무자비한 탄압에 나섰다. 미국은 이라크 북부와 남부에 ‘비행금지구역’(NFZ)을 설정한 것 외에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았다.
미국은 이슬람국가 잔존세력 제거를 시리아민주군 대신 정부군에 맡길 텐가? 이슬람국가와 마찬가지로 샤라 대통령의 뿌리도 이슬람근본주의다. 미국 내부에서 “대테러 전쟁의 협력자로 시리아 임시정부를 신뢰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소수 이슬람국가 계열 무장세력은 시리아 영토의 절반이 넘는 광활한 사막 지역에서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리아 쿠르드족 자치의 미래는 어떨까? 중동 전문가인 헨리 베이커 미국 리하이대학 교수(국제관계)는 1월28일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글에서 “과거에도 튀르키예와 시리아 정부는 쿠르드족 인구를 힘으로 제압하려 했지만 폭력의 악순환만 부추겼을 뿐이다. 미국이 발을 빼면 에르도안과 샤라 역시 과거와 같은 방식을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들이 전임자들보다 성공적일 것이란 보장은 없다”고 짚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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