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8월4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의 무료 급식소에서 굶주린 피란민들이 음식을 배급받고 있다. EPA 연합뉴스
전쟁의 목적이 분명해졌다. 소문으로 떠돌던 음모가 현실이 됐다.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를 장악하라! 지중해로 나아가자!’ 진군의 북소리가 울려퍼진다. 이스라엘이 지난 22개월간 벌인 전쟁은 영토 확장을 위한 침략전쟁이다. 이스라엘 인권단체들도 더는 침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참상은 ‘홀로코스트’다. 가해자는 이스라엘이다. 때늦은 성찰이 들려온다. 전쟁을 이대로 둘 텐가?
이스라엘 전쟁내각 회의가 2025년 8월7일 오후 6시(현지시각) 소집된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제안한 가자지구 점령 계획을 승인하기 위해서다. 현지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네타냐후 총리가 제안한 점령계획은 약 5개월에 걸쳐 가자지구 전역을 단계별로 정복하는 내용이 뼈대”라고 전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장악할 것이란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떠돌았지만, 2025년 들어 더욱 구체화했다.
“가자지구는 수십 년 동안 죽음과 파괴의 상징이었다. (…) 미국이 가자지구를 접수하고 소유하겠다. 가자지구에서 위험한 불발탄과 무기를 제거하고, 파괴된 건물 잔해를 정리하고, 경제적 발전을 이뤄내겠다. 관광객으로 넘쳐나게 하겠다. 가자지구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5년 2월4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네타냐후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곁에 선 네타냐후 총리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11일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 만나서도 “우리가 가자지구를 가지겠다. 우리가 접수해 관리하면서 소중하게 다루겠다”고 재차 말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군사적으로 점령하면 미국이 재건을 주도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스라엘 전쟁내각은 5월4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벌일 새로운 군사작전 계획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작전명 ‘기드온의 전차’다.

2025년 8월6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 외곽의 셰이크라드완 지역에서 피란민들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를 살피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작전은 3단계로 나뉜다. 첫째, 가자지구 전역에서 대대적인 공세를 벌인다. 기존처럼 가자지구에 진입해 군사작전을 벌인 뒤 빠져나오는 대신, 아예 가자지구를 점령·통제하는 걸 목표로 내걸었다. 둘째, 군사작전과 함께 대규모 주민 대피령을 내려 200여만 명 가자지구 주민을 최대한 최남단 라파 인근으로 피란하도록 유도한다. 셋째, 라파 일대로 몰린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의 식량만 제공한다. 무한 폭력과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주민들의 ‘자발적 이주’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기드온의 전차’는 성공적이었다. 이스라엘군의 파상공세로 피란민 상당수가 라파 인근으로 몰렸다. 이스라엘은 물·식량·의약품 등 기본적인 구호품조차 반입을 차단했다. 제공된 ‘최소한의 식량’은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정도’였다.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8월6일 “지난 24시간 동안 가자지구 주민 적어도 135명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도 771명이나 된다. 사망자 가운데 87명은 구호품을 수령하려고 모여든 피란민이다. 지난 24시간 동안 5명이 추가로 굶어 죽었다. 개전 이후 지금까지 아사자는 193명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이 의도했던 ‘자발적 이주’는 성사되지 않았다. 이집트·요르단 등 주변국은 팔레스타인 난민 유입을 강하게 반대했다. 가자지구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었다. 침묵하던 국제사회가 아사에 직면한 가자의 어린이 모습을 보며 경악했다. 국제적 압박이 거세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하루 10시간 ‘전술적 전투 중단’ 조처를 발표하고, 극소량 구호품 반입을 허용했다. 이스라엘 극우 진영은 거칠게 반발했다. 전쟁내각이 흔들렸다.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단체 하마스가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의 휴전안을 제시한 뒤, 이를 거부하면 가자지구를 강제 합병하는 방안이 유력해졌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7월28일 가자지구 관련 새로운 내부 계획안을 입수해 이렇게 보도했다.
“먼저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해안선과 이스라엘 영토와 맞닿은 지역을 장악해 설정한) 완충지대부터 합병한다. 이어 이스라엘 도시 스데로트와 아슈켈론과 맞닿은 가자지구 북부를 합병한다. 이런 과정은 가자지구 전역을 합병할 때까지 지속된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8월4일 성명을 내어 “전쟁의 3대 목표 달성 방안을 군에 지시할 것”이라며 “3대 목표는 적을 궤멸시키고, 인질을 구출하고, 가자지구가 다시는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8월5일 군 지휘부와의 회의를 거쳐 구체적인 ‘작전안’을 마련했다. 인질의 안전 등을 우려하며 작전에 반대하는 의견에 대해선 “그럴 거면 군을 떠나라”라며 무질렀다. 이스라엘 최대 일간 ‘예디오트 아하로노트’ 등은 군 고위 관계자의 말을 따 “주사위는 던져졌다. 가자지구 전역을 점령할 것이다. 인질이 구금된 것으로 알려진 지역에서도 군사작전이 펼쳐질 것”이라고 전했다.

2025년 8월4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남부 라파 부근 모라그 회랑을 통해 구호품 트럭이 도착하자 굶주린 주민들이 트럭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하레츠 등 현지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새 군사작전 계획에 따라 이스라엘군은 우선 가자지구 북부의 심장부인 가자시티 전역에 대피령을 내리기로 했다. 가자지구 인구의 절반가량인 약 100만 명의 주민과 피란민이 가자시티에 몰린 것으로 전해졌다. 몇 주에 걸쳐 이들이 대피를 마치면, 본격적인 군사작전을 개시한다. 여기에는 이스라엘군 4~5개 사단이 동원된다. 북부가 정리되면 중부를 거쳐 남부로 작전반경을 넓힌다. 가자지구 인구 전체를 최대한 이집트와 국경을 맞댄 남부 라파 이남으로 내몰려는 의도다. 이스라엘 쪽은 군사작전 기간을 4~5개월로 상정하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최신 자료를 보면, 가자지구 면적의 87%가 이미 이스라엘군의 군사작전 지역이거나 대피명령이 내려진 곳이다. 새 계획안이 실행에 옮겨지면 피란민 밀집 지역에서도 지상군 작전이 본격적으로 벌어질 터다. 인명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스라엘 정보·보안 당국자 출신 인사 600여 명이 8월4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동서한을 보내 “가자 전쟁 즉각 중단을 위해 나서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의 가자지구 전면 합병 계획에 대해 “선택은 이스라엘의 몫”이란 반응만 내놓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정책을 점검했다. 그 정책이 만든 끔찍한 결과도 조사했다. 이스라엘 정치인과 군 지휘부가 내놓은 말과 글을 통해 전쟁의 목표도 확인했다. 이를 통해 의심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스라엘은 지금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회를 파괴하기 위한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을 겨냥한 집단살해를 저지르고 있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인권단체 ‘점령지인권정보센터’(베첼렘)는 7월27일 공개한 최신 보고서에서 이렇게 썼다. 88쪽에 이르는 장문의 보고서 제목은 ‘우리의 집단살해’다. 같은 날 ‘인권을 위한 이스라엘 의사회’(PHRI)도 ‘삶의 조건을 파괴하다-가자지구 집단살해에 대한 보건학적 분석’이란 제목으로 65쪽 분량 보고서를 펴냈다. 그간 이스라엘 시민사회에선 가자지구의 참상을 ‘집단살해’(제노사이드)로 규정하는 걸 금기시해왔다. 약 2년에 걸친 집요한 분석을 통해 두 단체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행위가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1948년)이 규정한 집단살해죄의 정의에 부합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율리 노박 베첼렘 사무총장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언론인이 함께 참여한 탐사보도 전문매체 ‘+972’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25년 8월6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의 시파 병원 영안실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울고 있다. AP 연합뉴스
“내가 집단살해를 저지르고 있는 사회의 일원이란 점을 자각했을 때의 감정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심히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길고 고통스러운 내적 성찰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목도한 것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회를 파괴하려는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행위였다. 특정 집단을 파괴할 목적으로 민간인을 공격하는 행위, 그게 바로 집단살해의 정의다. (…) 우리 단체만의 힘으로 집단살해를 막을 순 없다. 그저 이 땅에 사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과 함께 목소리를 높일 뿐이다. 우리의 최우선적이고 가장 중요한 도덕적 의무는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다. 덧붙여 집단살해의 체계가 어떻게 유지되는지에 대한 분석 결과도 알려야 한다. 사람들이 우리 목소리를 듣고 행동에 나서주기를 소망한다. 이 사태가 단순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주민만의 문제가 아니란 점도 이해하기를 바란다. 피해자가 누구든 인간을 말살하는 행위는 인류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다.”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은 2023년 10월7일 개전 이후 전쟁 670일째를 맞은 2025년 8월6일까지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가자지구 주민 6만1158명이 숨지고 15만1442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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