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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에 가해진 무차별 폭격… 중동 어디서도 안전할 수 없다

이란과 이스라엘,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이란, 미군 병력·시설까지 겨냥한 반격 가능성 커
등록 2025-06-19 21:16 수정 2025-06-21 11:01
2025년 6월15일 이란 수도 테헤란 중심가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다친 남성이 피범벅인 채로 걷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5년 6월15일 이란 수도 테헤란 중심가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다친 남성이 피범벅인 채로 걷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5년 6월13일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했다. 이란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요르단과 이라크가 있다. 지상전은 불가능하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 이란의 테헤란까지 1천㎞가 넘는 하늘길이 공중전의 최전선이 됐다. 불을 뿜는 전쟁에 중재자는 없다. 미국은 아예 이란 쪽에 ‘조건 없는 항복’을 요구하며 참전까지 벼르고 있다. 자칫 중동 전역으로 전쟁의 불길이 번질 기세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이스라엘과 이란이 처음부터 ‘철천지원수’ 사이였던 건 아니다. 팔레비왕조(1925~1979년) 시절 이란은 이스라엘의 든든한 우군이었다. 실제 이란은 튀르키예에 이어 1950년 3월 이스라엘을 공식 승인한 두 번째 무슬림 국가다. 이유는 명확하다. ‘유대인의 나라’인 이스라엘과 ‘페르시아인의 나라’인 이란은 아랍국가란 공통의 적과 맞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냉전 시절 두 나라는 경제·문화는 물론 군사 분야에서도 협력을 확대해나갔다.

하지만 1979년 1월 이슬람혁명으로 팔레비왕조가 무너지면서 상황이 표변했다. ‘혁명의 아버지’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아랍의 대의’였던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슬람의 대의’로 탈바꿈시켰다. 아랍과 페르시아,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할 촉매제로 ‘이교도가 점령한 팔레스타인’을 내세운 게다. 양국 간 국교는 단절됐고, 교류도 끊겼다. 이란인은 이스라엘을 방문할 수 없게 됐고, 이스라엘 방문 기록이 있는 여권 소지자는 이란 입국이 금지됐다.

2025년 6월13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파괴된 건물 주변에서 소방관들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5년 6월13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파괴된 건물 주변에서 소방관들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이란혁명 뒤 우군에서 원수로 변한 두 나라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다. 이란은 즉각 파병에 나섰다. 이슬람 무장정치세력 헤즈볼라가 이란의 전폭적 지원 속에 창설된 것도 이때다. 이후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선 이슬람 시아파의 맏형을 자임했고, 아랍 각국의 부패한 친미 왕정체제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자부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 이라크의 이슬람저항군과 인민동원군, 예멘의 후티 반군,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무장정치세력이 이란을 중심으로 ‘저항의 축’을 형성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2023년 10월7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시작한 이후 이스라엘은 이란을 겨냥한 조직적인 공세를 이어갔다. 2024년 7월31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을 위해 테헤란을 방문 중이던 하마스의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암살됐다. 같은 해 9월28일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외곽에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헤즈볼라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목숨을 잃었다. 12월8일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반군이 함락하면서 이란의 오랜 동맹이던 아사드 정권이 무너졌다. 예멘의 후티 반군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공세로 움직임이 둔해졌다. ‘저항의 축’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스라엘의 전격적인 이란 침공을 오랜 기간 치밀하게 준비한 시나리오에 따른 것으로 보는 이유다.

내세운 침공의 명분은 이란의 핵무장 저지다. 침공 첫날 이스라엘은 이란의 군사기지와 핵시설, 군부 요인과 핵 과학자 등을 겨냥해 13차례 파상공격을 퍼부었다. 핵무장 저지와 무관한 공세도 이어졌다. 침공 사흘째인 6월15일 오후 3시30분께 테헤란 북부 타즈리시 중심가의 6층 건물로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은행과 자선단체 등이 입주한 건물 3개층이 파괴됐다. 비슷한 시각 차량이 몰린 타즈리시 사거리에도 폭격이 가해졌다. 차량이 나뒹굴고 매설된 수도관이 터지면서 현장 일대에 물이 폭포수처럼 넘쳐났다. 이란 당국은 공습으로 “세 살 어린이와 임신부 등 17명이 숨지고, 46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군 당국은 소셜미디어 엑스(X)에 올린 글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딸린 특수부대인 쿠드스군과 연계된 10개 장소를 ‘정밀타격’했다고 주장했다. 타즈리시에서 벌어진 두 차례 공습도 여기에 포함됐다.

2025년 6월13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상공에서 아이언돔 요격체계가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을 요격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5년 6월13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상공에서 아이언돔 요격체계가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을 요격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핵무장 저지’ 명분 뒤엔 ‘정권 붕괴’ 노림수

이란 국영통신 이르나(IRNA)는 6월15일 “이스라엘이 테헤란 시내 5개 지역에서 차량폭탄 공격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차량폭탄 공격이 무서운 이유가 있다.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6월16일엔 국영 이란이슬람공화국방송(IRIB)에서 여성 앵커가 생방송 도중 방송사 건물이 폭격을 당해 피신하는 장면이 생중계됐다. 이스라엘 쪽은 “이란군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던 통신시설을 정밀타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게 됐다. 테헤란의 거리에서 공포가 바이러스처럼 번지고 있다.

“이란은 내가 말한 ‘거래’를 받아들여야 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생명을 낭비하다니. 간단히 말하겠다. 이란은 절대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 같은 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테헤란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당장 대피해야 한다!”

캐나다 앨버타주 캐내내스키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중단하고 급거 귀국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월16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2023년 말을 기준으로 테헤란 인구는 약 950만 명에 이른다. 이들 모두가 ‘당장’ 대피할 방법은 없다. 이란의 핵무장 능력을 제거하고 나면, 이스라엘은 전쟁을 멈출까? 이스라엘에 ‘존재론적 위협’인 이란의 미사일 능력이 다음 차례일 것이다. 그다음은 뭘까? 트리타 파르시 미국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을 위한 퀸시연구소’ 부소장은 6월18일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테헤란 주민 소개령은 이스라엘 쪽이 주장해온 바다. 테헤란에서 주민들이 모두 대피하고 나면 이스라엘은 주요 정부기관을 모조리 폭격할 것이다. 일부에선 이스라엘의 침공 목적이 이란의 ‘정권 교체’라고 말하지만, 정권 교체와 ‘정권 붕괴’는 전혀 다른 말이다. 정권 교체는 (2003년) 이라크 침공 때처럼 새 정권을 수립할 계획을 세우고 현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반면 정권 붕괴는 아무런 사후 계획 없이 현 정권을 무너뜨린 뒤 혼란을 부추기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목적은 정권 붕괴로 보인다.”

2025년 6월14일 이란이 발사한 탄도미사일로 파괴된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 주택가에서 구조요원들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2025년 6월14일 이란이 발사한 탄도미사일로 파괴된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 주택가에서 구조요원들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돌변한 트럼프, 으름장과 저울질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직접 겨냥한 위협은 침공의 가려진 실제 목적이 정권 붕괴란 주장에 힘을 싣는다. 미국 시엔엔(CNN) 방송은 6월15일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정부 당국자의 말을 따 “이스라엘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암살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이스라엘 쪽에 전달했고, 암살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6월17일 국가안보회의를 앞두고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이른바 ‘최고지도자’가 어디 숨어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는 쉬운 표적이지만 숨어 있는 곳에서 안전할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를 제거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이슬람혁명 뒤 제3대 대통령(1981~1989년)을 지냈고, 1989년 6월 아야톨라 호메이니 사망 뒤 최고지도자에 오른 인물이다. ‘신적 존재’인 이란의 최고지도자는 정치·외교·군사·종교를 아우르는 대통령보다 높은 헌법상 최고 권력자다.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6월18일 녹화방송된 텔레비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란은 강요된 평화와 마찬가지로 강요된 전쟁에 대해서도 단호히 맞설 것이다. 이란은 어떤 강요에 대해서도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국가와 민족, 역사를 알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절대 이란을 겨냥한 위협적인 언사를 내뱉지 않을 것이다. 이란은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알아야 한다.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한다면 반드시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침공에 앞서 미국은 이란과 6차례 핵협상을 벌였다. 이스라엘에도 이란을 침공하지 말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침공 직후 태도가 돌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미군 개입 가능성을 언급하며, 이란 쪽에 ‘무조건적 항복’을 요구했다. 그는 6월18일 기자들과 만나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생각이 있지만,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진 않았다. 최후의 순간에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2025년 3월28일 금식월 라마단의 마지막 금요일이자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와 이스라엘의 점령에 저항하는 ‘알쿠드스의 날’을 맞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시민들이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5년 3월28일 금식월 라마단의 마지막 금요일이자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와 이스라엘의 점령에 저항하는 ‘알쿠드스의 날’을 맞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시민들이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이란이 ‘항복’할 수 없는 이유

트럼프 대통령의 뒤바뀐 태도는 향후 협상과 타협의 가능성을 더욱 낮췄다. 그나마 남아 있던 미국에 대한 신뢰를 저버린 탓이다. 이란 입장에선 ‘항복’하더라도 미국 쪽이 언제든 약속을 뒤집을 수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이란이 항복하지도, 협상에 응하지도 않으면 어떻게 될까?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공습에 직접 뛰어든다면, 이란은 중동 일대에 있는 미군 병력과 시설을 겨냥한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6월18일 “현재 중동 일대에 배치된 미군 장병과 군무원 등은 모두 4만여 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이라크 서부 안바르주의 사막 지역에 있는 알아사드 공군기지엔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 2500여 명 대다수가 주둔 중이다. 미 해군 제5함대 사령부가 자리한 바레인 마나마에는 9천여 명이 주둔하고 있다. 쿠웨이트엔 5개 기지에 모두 1만3500여 명이 주둔하고 있다. 카타르엔 중동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알우데이드 공군기지가 있고, 아랍에미리트 알다프라 공군기지엔 3500여 명이 주둔하고 있다. 이들 기지 모두 이스라엘보다 이란에 훨씬 가깝다. 뉴욕타임스는 전문가의 말을 따 “이란을 대신해 시아파가 절대다수인 이라크 등지에서 미군기지와 외교 시설을 겨냥한 공세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란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걸프 연안 국가의 미군기지를 타격하는 데 3~4분이면 족하다”고 전했다.

“국제연합 회원국에 대해 무력공격이 발생한 경우, 이 헌장의 어떠한 규정도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할 때까지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 유엔 헌장 제51조는 이렇게 규정한다. 침공을 당한 쪽의 반격은 헌장이 규정한 ‘개별적 자위권’에 해당한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2025년 6월17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외곽 도시 라마트간의 지하철역에서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해 주민들이 피신해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5년 6월17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외곽 도시 라마트간의 지하철역에서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해 주민들이 피신해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자위권은 왜 이스라엘의 전유물인가

“중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스라엘이 자국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며, 이스라엘 안보에 대한 지지를 거듭 표명한다.” 주요 7개국 정상들은 6월16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란에 대해선 “지역 불안정과 테러의 주된 원천”이라며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해서는 안 된다는 우리 입장은 일관되고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시작했을 때도, 레바논과 시리아에 맹폭을 퍼부었을 때도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를 내세웠다. 팔레스타인과 레바논과 시리아와 이란엔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없는 건가? 전쟁의 음습한 그림자가 중동 전역을 휘감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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