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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돌보며 슬픔 잊고 지역과 연결”

이스라엘 불법 정착민 공격으로 아들 잃은 수하이르 아사이라… 양봉 통해 ‘팔레스타인 자립’ 희망 키워내
등록 2025-02-28 21:26 수정 2025-03-06 22:50
수하이르 아사이라의 큰아들 후삼은 이스라엘 불법 정착민들의 공격과 군사 작전을 막겠다며 집을 나섰다가 ‘순교자’가 되어 돌아왔다. 아사이라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벌을 돌보며 꿀을 생산하는 양봉 프로젝트로 달랬다. 사나벨 살레 기자

수하이르 아사이라의 큰아들 후삼은 이스라엘 불법 정착민들의 공격과 군사 작전을 막겠다며 집을 나섰다가 ‘순교자’가 되어 돌아왔다. 아사이라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벌을 돌보며 꿀을 생산하는 양봉 프로젝트로 달랬다. 사나벨 살레 기자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어떤 시간들은 조금 더 빨리 흐르고, 더 일찍 멈춘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있는 나블루스 남쪽 아시라 알키블리야 마을에 사는 수하이르 아사이라(52)의 장남 후삼이 세상을 떠난 2021년 5월14일이 그랬다.

‘순교자 후삼의 어머니’

후삼은 이스라엘 불법 정착민들의 공격과 군사 작전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겠다며 아침 일찍 웃으며 집을 나섰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지인들의 어깨에 들려 순교자로 돌아왔다. 장례가 돼버린 장남의 귀갓길에 어머니는 아들의 주검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사이라는 그날 아침에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 “수백만의 순교자들이 행진하듯이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간다”를 떠올리며 눈물을 쏟았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는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 불법 정착민들의 지속적인 침략과 폭력 속에서 고통받아왔다. 주민들은 올리브 농장을 불태우고 가옥을 파괴하는 정착민들의 습격에 맞서 싸워야 했다. 이 과정에서 후삼을 포함한 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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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단이 끝난 뒤 열리는 축제 ‘이드 알 피트르’(Eid al-Fitr)의 둘째 날이었다. 우리는 외출할 계획이었지만, 인근 우리프 마을에서 정착민들과 이스라엘군, 그리고 마을을 방어하는 팔레스타인 청년들 간의 충돌이 발생해 외출하지 않기로 했고, 후삼은 친구들과 함께 나가보겠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의 부상 소식이 왔고, 곧 순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4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사이라는 그날을 또렷하게 회상했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수하이르 아사이라. 사나벨 살레 기자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수하이르 아사이라. 사나벨 살레 기자


그는 목숨과도 같이 아끼는 큰아들을 잃고 ‘순교자 후삼의 어머니’가 됐다. 아사이라는 “사랑하는 후삼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가족 모두에게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이지만 우리는 절망하지만은 않았다”며 “‘순교자 후삼의 어머니’라는 사실에서 위안을 받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후삼의 아버지는 유리로 된 액자에 후삼의 피 묻은 청바지와 그가 사용하던 라이터, 마지막 담배 한 갑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우리 아들, 순교자들은 팔레스타인 사람의 자랑과 긍지의 원천이다.” 아사이라가 강조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강하고 굳건하며, 우리는 신의 뜻대로 살아갈 것이다. 아들의 순교가 내 결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도전에 나설 용기를 줬다”며 “아들의 순교가 절망하거나 나약해질 이유가 되면 안 된다. 신의 자비로 순교자들을 위로하고, 또 우리는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며, 거창하지 않은 주제라도 교육과정이 있으면 꼭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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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 내 아들같이 느껴졌다”

아사이라는 2013년 친구들과 함께 리타즈 여성 협회(Retaj Women’s Association)를 설립했고 공동설립자가 됐다. 협회 회원들과 수년간 노력한 결과 2020년부터 양봉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양봉장이 아사이라의 집에 설치됐고, 그는 꿀벌 돌보기를 맡았지만 이듬해 후삼이 순교했다. 아사이라는 “나는 슬픔에 압도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다른 사람에게 넘길까도 생각했다”며 “하지만 슬픔을 딛고 일어나 내가 시작한 일을 계속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아사이라는 이어 “보통 양봉 일은 낮에만 관리하면 되지만,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벌에게 가 물을 주고 지켜보는 날이 계속되면서 어느 순간 벌이 내 아들같이 느껴졌다”며 “협회가 벌통을 다른 장소로 옮기자고 제안했을 때 나는 강하게 반대했다”고 강한 애착을 나타냈다. 아사이라는 나블루스 농업부의 교육 세션에 참여하고, 제닌에 있는 양봉 현장을 방문해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점령과 지속되는 군사적 위협 속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생계 수단을 찾아야 했다. 서안지구에서 양봉 산업이 중요해진 이유다. 제닌에서 양봉협동조합을 설립한 알리 다글라스(27)는 “양봉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공동체가 외부 압력에도 자립할 수 있는 중요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양봉은 공동체의 연대와 희망을 키우는 도구이기도 하다. 제닌 양봉협동조합이 처음 설립됐을 때, 조합원은 15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양봉을 배우고, 50명이 넘는 조합원이 자신의 벌통을 운영하며 경제적으로 독립할 기회를 찾았다.

수하이르도 벌 키우기에 헌신한 덕분에 벌통의 수가 25개에서 현재 70개로 늘었다. 2023년 한 해 동안 수하이르는 200㎏의 꿀을 생산했는데, 전년도 110㎏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아사이라는 인터뷰에서 “벌은 우리가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상기시켜준다”며 “우리가 함께 벌을 돌보고 가꿀 때, 벌은 우리에게 달콤한 결실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최근 아사이라는 양봉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천연 벌꿀 크림 제작을 배우는 교육 세션에 참여하며 공부하고 있다. 그는 벌꿀을 활용한 피부 톤 개선 크림, 유향 크림, 디오더런트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벌은 단순한 곤충이 아니다. 전쟁과 점령으로 생계를 잃은 사람들에게 벌과 양봉은 희망의 상징이며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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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을 돌보며 지역사회와 연결

순교한 아들의 어머니 아사이라는 벌을 돌보며 아들의 부재를 견디고, 벌이 모은 꿀을 통해 지역사회와 연결됨을 느낀다. 끝없는 시련에도 불구하고 수하이르의 강인한 의지는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슬픔과 역경을 딛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상징이 됐다. 수하이르는 “모든 팔레스타인 여성에게 연대하고 서로 지지할 것을 촉구하며, 가족과 자신들의 미래를 위한 희망의 창을 열어야 한다”며 “많은 순교자의 어머니들이 상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다시 설계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나블루스(팔레스타인)=사나벨 살레 기자

** ‘팔레스타인에서 온 편지’ 연재를 마칩니다. 뜻깊은 원고를 보내주신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현지 여성 기자들과 아디, 연재를 아껴주신 독자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장남 수삼의 장례식에 참여한 수하이르 아사이라와 가족, 마을 주민들. 

장남 수삼의 장례식에 참여한 수하이르 아사이라와 가족, 마을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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