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2025년 1월8일 워싱턴의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공화당 지도부와 만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2025년 1월20일 정오(현지시각) 취임식을 열고 제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트럼프 2.0’ 시대 개막과 함께 미국도, 세계도 지난 4년과 전혀 다른 4년을 맞이하게 될 터이다. 돌아온 트럼프가 만들어갈 미국과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미국에서 극단적인 부와 권력, 영향력을 지닌 ‘과두체제’가 형성되고 있다. 이 과두체제는 문자 그대로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월15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한 고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기술-산업 복합체’의 잠재적 부상에 대해서도 똑같이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군산복합체’의 위험을 경고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의 1961년 고별 연설을 떠올리게 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언급한 ‘과두체제’와 ‘기술-산업 복합체’의 현실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차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른바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게 된 일론 머스크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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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효율부는 현재로선 내각의 공식 일원이 아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정권 인수를 준비한 지난 두 달여 동안 정부효율부 관계자가 머스크가 소유한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엑스의 워싱턴 사무실에서 근무한 것도 이 때문이다. 취임식 이후엔 어떨까? 뉴욕타임스는 1월13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바로 옆에 자리한 아이젠하워 행정동 건물에 머스크의 업무공간이 마련될 예정”이라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머스크의 막강한 영향력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경제 전문매체 포브스가 집계한 최신 자료를 보면, 머스크는 자산 총액 4349억달러(약 632조5천억원)로 세계 1위 갑부다. 세계 갑부 순위 2위인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자산 총액(2371억달러)보다 약 2천억달러(약 290조8천억원) 압도적으로 앞서 있다.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의 창업자인 머스크에게 스페이스엑스와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가 있다면,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창업자인 베이조스에겐 블루오리진과 워싱턴포스트가 있다. 극단적인 부와 권력, 영향력을 지닌 ‘과두체제’와 ‘기술-산업 복합체’의 일원이란 점이 두 사람의 공통분모다.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2024년 10월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선거유세 도중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와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AFP 연합뉴스
현실에선 어떻게 작동할까? 2024년 대선 당시 머스크는 엑스를 적극 활용하며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선거운동을 앞장서 지원했다. 반면 워싱턴포스트는 36년 만에 처음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사설을 게재하지 않았다. 애초 신문 편집진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민주당 후보)을 지지하는 사설을 게재할 예정이었다. 신문은 10월25일치에서 “특정 후보 지지 사설을 게재하지 않기로 한 것은 소유주인 베이조스의 결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가히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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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영향력을 사고, 영향력은 다시 돈이 된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대선 직후인 11월14일 “2002년 창업 이후 최근까지 (머스크의) 군사용 위성과 달착륙선 개발 등 스페이스엑스가 수주한 연방정부 조달계약 규모는 모두 210억달러에 이른다”고 전했다. 미국 우주군사령부는 2024년 6월13일 국가안보우주발사(NSSL) 3단계 사업자로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와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 등 3개 업체를 선정했다. 향후 5년간 56억달러의 예산이 투입될 이 사업의 3번째 낙찰자는 유나이티드론치얼라이언스(ULA)다. ULA는 2006년 12월 원조 ‘군산복합체’인 보잉과 록히드마틴이 합작해 만든 회사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동안 미국 사회는 ‘군산복합체’의 시대에서 ‘기술-산업 복합체’의 시대로 성큼 나아갈 터이다.
미국 바깥 세상은 어떨까? 미 상원이 당선을 공식 확정 지은 직후인 1월7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1시간12분 남짓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당선자가 언급한 세 가지 사안을 눈겨여볼 필요가 있다.
첫째, 트럼프 당선자는 카리브해를 거쳐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 소유·운영권을 회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프랑스가 19세기 중후반부터 건설을 추진한 파나마 운하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행정부(1901~1909년) 때 미국이 공사권을 넘겨받아 완공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콜롬비아 땅이던 파나마를 분리독립(1903년)시키기까지 했다. 미국은 파나마 운하 소유·운영권을 카터 행정부 시절인 1977년 파나마 정부와 체결한 조약에 따라 1999년 이양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운하 소유·운영권 회수의 근거로 “파나마 운하를 운영하는 건 파나마 정부가 아니라 중국”이란 근거 없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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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17세기에 덴마크령으로 편입돼 현재 광범위한 자치를 누리고 있는 그린란드를 미국 영토로 사들이겠다는 계획이다. 그린란드는 북극항로의 요충이자 원유·천연가스와 희토류 등 막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집권 1기에도 백악관에 따로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려 그린란드 합병을 검토한 바 있다. 덴마크 정부도, 그린란드 자치정부도 매각할 뜻이 없음을 이미 분명히 했다. 파나마 정부도 다시 운하 소유·운영권을 넘겨줄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트럼프 당선자는 1월7일 회견에서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는 미국의 경제안보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린란드 편입과 파나마 운하 회수 과정에서 ‘군사적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까지 내비쳤다.
셋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인 캐나다 쪽에 ‘미국의 51번째 주’로 들어오라고 제안했다. 트럼프 당선자는 기자회견 전날인 1월6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많은 캐나다인이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되기를 희망한다. (…) 캐나다가 미국의 일부가 되면 관세는 사라지고, 세금도 대폭 낮아질 것이다. 툭하면 캐나다 주변 해역을 포위하는 러시아와 중국 함정의 위협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미국과 캐나다가 함께하면, 얼마나 위대한 나라가 될까!”라고 주장했다. 회견 당일엔 트루스소셜에 “오 캐나다!”란 글귀와 함께 캐나다 영토를 포함해 북미 대륙 전체를 성조기로 뒤덮은 그림 파일을 올렸다.
캐나다에 대해선 ‘군사적 수단’ 동원 가능성을 배제했다. 대신 자동차 조립 수출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등 경제적 압박을 시도할 것이란 점을 밝혔다. 그는 회견에서 “모든 캐나다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미국과 캐나다가 1958년 창설해 공동 운영해온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가 미국의 방공 미사일 방어의 핵심임에도, “미국이 캐나다를 방어해주고 있는데, 캐나다의 기여가 불충분하다”는 주장도 내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2025년 1월7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스스로를 ‘캐나다 역사상 가장 친미적인 정치인’이라고 말하는 스티브 하퍼 전 총리(2006~2015년)는 1월13일 토론토스타와 한 인터뷰에서 “미국이 캐나다에 약간의 경상수지 적자를 보는 이유는 캐나다 서부지역에서 생산된 막대한 양의 원유 천연가스를 수입하기 때문이다. 캐나다 원유산업의 미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보니 헐값에 수출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가 달리 생각한다면, 캐나다도 원유 가스 수출을 다른 나라로 돌리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실제 캐나다원유생산자협회(CAPP)가 2024년 3월 낸 자료를 보면, 2023년 캐나다는 원유 생산량의 약 80%, 천연가스 생산량의 약 45%를 미국으로 수출했다. 사실상 국내 필요량을 뺀 나머지 전량을 미국으로 수출한 셈이다. 역으로 미국 역시 캐나다산 에너지 의존도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하퍼 전 총리는 이렇게 덧붙였다.
“미국이 캐나다를 방어하는 데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트럼프 당선자의 주장도 이해하기 어렵다. 두 나라는 북아메리카 방위를 위한 동반자다. 미국이 캐나다와 공동 방위에 나선 건 자국의 사활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캐나다가 중립국가가 되기를 바라는 건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미국우선주의’(MAGA)는 종종 ‘고립주의’로 치부됐다. 미국이 직접 만든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란 국제질서 대신 보호무역과 일방주의를 앞세운 탓이다. 그 바탕엔 ‘미국의 힘’이 예전 같지 않다는 현실이 깔렸다.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와 캐나다를 품을 수 있다면, 트럼프 당선자는 미국의 영토를 새로운 단계로 확장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터이다. 미국이 마지막으로 무력을 통해 영토를 확장한 것은 미국-스페인 전쟁(1898년 4~8월) 때다. 당시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필리핀과 괌, 푸에르토리코를 장악했다. 전쟁 직후 집권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말은 부드럽게 하되, 몽둥이는 큰 것을 지니라”라는 말로 요약되는 이른바 ‘곤봉외교’를 내세워 중남미 일대를 중심으로 미국의 영향력을 키웠다.
“미국우선주의는 고립주의가 아니다.” 스티븐 워스하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2024년 12월4일 독일 슈피겔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트럼프는 고립주의자였던 적이 없다. 미국 정치권 전체가 그렇다.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의원은 미 의회에 단 1명도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욱 강력해진 ‘미국우선주의’, 미국의 이익을 앞세운 강력한 ‘개입주의’의 바람이 거세질 조짐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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