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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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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위험한 ‘마이웨이’

이스라엘 “헤즈볼라 볼모 된 평화유지군 나가라”
유엔 사무총장 “국제법 위반이며 전쟁범죄” 경고
등록 2024-10-18 22:47 수정 2024-10-21 12:01
2024년 10월14일 레바논 피란민들이 아기를 안은 채 걸어서 국경을 넘어 시리아로 들어서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4년 10월14일 레바논 피란민들이 아기를 안은 채 걸어서 국경을 넘어 시리아로 들어서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유엔 회원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적대행위를 막기 위해 배치된 유엔 평화유지군을 공격한다. 국제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세계 각국의 비판이 커지고 있음에도 현상변경 시도는 계속된다. 아무도 그들을 막지 않는다. 국제사회가 무법천지가 됐다.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전쟁이 1년째를 넘긴 2024년 10월10일 레바논 남부 나쿠라에 자리한 ‘레바논 주둔 유엔평화유지군’(UNIFIL·유니필) 본부 감시초소를 이스라엘군 탱크가 공격했다. 초소는 무너졌고, 초병 근무 중이던 인도네시아 출신 평화유지군 병사 2명이 다쳤다. 이스라엘군은 이튿날도 나쿠라 본부 정문을 포격했다. 세계가 경악했다. 이스라엘의 유니필 공격은 이어졌다.

평화유지군 공격한 이스라엘

10월12일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 메이스 알자발 지역에서 군수품을 싣고 가던 유니필 수송단의 이동을 방해했다. 10월13일 라미야 지역에 자리한 유니필 기지로 이스라엘군 탱크 2대가 강제진입했다. 이스라엘군의 연막탄 발사로 평화유지군 15명이 가려움증과 복통을 호소했다. 10월16일엔 이스라엘군 탱크가 크파르 킬라 지역의 유니필 감시초소를 공격했다. 초소와 감시장비가 파손됐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 유니필 쪽은 “직접적이고 의도적인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유니필은 1978년 레바논을 침공한 이스라엘군의 철군을 감시하기 위해 창설됐다. 이스라엘은 2006년 7월12일~8월14일 레바논을 다시 침공해 이슬람 무장 정치단체 헤즈볼라와 전쟁을 벌였다. 유엔의 중재 속에 휴전협상이 성사됐다. 안보리는 결의 1701호를 채택하고, 유니필을 확대 개편했다. 그간 유니필은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잠정적 국경 구실을 해온 이른바 ‘블루라인' 일대에 레바논 정부군과 함께 배치돼, 적대행위를 감시하는 완충지대 구실을 해왔다. 한국군 동명부대를 포함해 50개국에서 파병한 1만여 명이 현재 레바논 남부에 주둔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왜 유니필을 공격하는가?

9월30일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국경을 넘어 ‘제한적 지상전'에 나설 것이라고 유니필 쪽에 통보했다. 이스라엘은 블루라인 일대 마을에 거주하는 민간인에게 대피령까지 내렸다. 유니필은 “국경을 넘는 것은 레바논 주권에 대한 침해이자 안보리 결의 1701호 위반”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되레 한술 더 떴다.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10월13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연설 내용을 따 이렇게 전했다.

“헤즈볼라가 유니필을 ‘인간방패’로 삼고 있다. 이제 유니필을 헤즈볼라 거점과 전투지역에서 철수시켜야 할 때다. (이스라엘의) 철수 요청을 거듭 거부하면서 유니필은 헤즈볼라의 볼모가 됐다. 당장 위험지역에서 벗어나라.”

레바논 주둔 유엔평화유지군(유니필) 소속 병사가 감시초소에서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 REUTERS 연합뉴스

레바논 주둔 유엔평화유지군(유니필) 소속 병사가 감시초소에서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 REUTERS 연합뉴스


같은 날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유엔 깃발은 레바논 남부에서 계속 휘날릴 것”이라며, 이스라엘의 철수 요구를 일축했다.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익명을 요구한 고위 외교 당국자의 말을 따 “유니필 주둔은 (안보리 결의에 따른) 국제질서의 일부다. 유니필을 철수시킨다면 이스라엘의 받아들일 수 없는 행태를 용인하는 꼴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외부 감시 피하려는 이스라엘의 ‘속내’

이스라엘이 ‘외부자’를 배제시키려는 것은 의도가 분명하다. 자국군의 전쟁 수행에 대한 감시의 눈길을 피하고 싶어서다.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도 그렇게 했다. 이스라엘은 유엔 인권감시단과 외신기자의 가자지구 출입을 철저히 차단했다. 팔레스타인 공보 당국은 지난 1년 동안 가자지구에서 취재 도중 숨진 언론인이 적어도 175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대체 무엇을 감추려는 건가? 유니필은 2023년 10월8일부터 2024년 6월30일까지 이스라엘과 레바논 상공을 넘나든 ‘발사체’가 모두 1만5101발이라고 집계했다. 이 가운데 레바논에서 이스라엘로 날아간 발사체는 2642발에 그친 반면, 이스라엘에서 레바논으로 날린 발사체는 1만2459발이나 됐다. 양쪽 모두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지만, 위반 건수는 이스라엘이 레바논(헤즈볼라)보다 5배가량 많다는 뜻이다.

안보리 결의 1701호에 따라 유니필은 특정 상황에서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다. 무력으로 유니필의 임무 수행이 방해받거나, 유니필의 인력·시설·장비 보호와 임박한 공격 위협에 처한 민간인 방어를 위한 때는 무력 사용이 가능하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이후 위 3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된 터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0월13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엔 평화유지군에 대한 공격은 국제법 위반이며, 전쟁범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보리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10월14일 낸 성명에서 안보리는 유니필의 레바논 주둔에 대한 지지의 뜻을 재차 확인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아무런 언급 없이, “모든 당사국은 유니필 인력과 시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만 강조했다.

2024년 10월15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나세르병원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가족의 장례식을 치른 이들이 애통해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4년 10월15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나세르병원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가족의 장례식을 치른 이들이 애통해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이 유엔의 결정(1947년 11월29일, 유엔총회 결의 181호)에 따라 건국됐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그러니 유엔의 결정을 무시하지 말라.” 아에프페(AFP) 통신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0월15일 주례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프랑스는 유니필에 700여 명을 파병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즉각 반발했다. 그는 “이스라엘 건국은 유엔 결의에 따른 게 아니다. 독립전쟁에서 흘린 영웅적 전사의 피로 얻은 승리로 건국했다. (나치에 부역한) 프랑스의 비시 정권 피해자를 포함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 다수가 독립전쟁에 참여해 피를 흘렸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1년 넘게 ‘경고’만

미국 국방부는 10월13일 이스라엘 방어를 위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1개 포대와 이를 운영할 장병 100여 명을 파병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이스라엘 쪽에 서한을 보내 “30일 안에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상황을 개선하지 않으면 군사지원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1년 넘게 통하지 않은 ‘경고’가 이번엔 통할까? 일탈을 막지 않으면 더 큰 일탈을 부른다. 불법을 방치하면 국제질서는 무너진다.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은 2023년 10월7일 개전 이후 전쟁 376일째를 맞은 2024년 10월16일까지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가자지구 주민 4만2409명이 숨지고, 9만9153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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