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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 테리 미스터리… 그들은 왜 대놓고 주고받았나

미 한반도 전문가 수미 테리 기소… ‘명품’부터 금전까지 대담한 접촉 발각되자 표적 수사설 ‘솔솔’
등록 2024-08-02 19:04 수정 2024-08-05 11:00
2023년 11월6일 오전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탈북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 상영회에 참석해 영화를 제작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수미 테리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11월6일 오전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탈북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 상영회에 참석해 영화를 제작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수미 테리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의 유력한 한반도 전문가 수미 테리(54)가 국가정보원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고 10년여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한 혐의(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로 연방검찰에 기소된 사건의 파장이 만만찮다. 검찰 쪽이 공개한 혐의 내용이 워낙 구체적이어서, 미국이 동맹인 한국을 겨냥해 장기간 ‘표적 수사’를 한 게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국정원 쪽은 2024년 7월29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한-미 안보협력에 전혀 문제가 없다. 정보 협력도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경고’받고도 점차 대담해진 접촉

12살 때 미국에 이민을 간 ‘재미동포 1.5세대’인 테리는 뉴욕대학 정치학과를 거쳐 보스턴의 터프츠대학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 출신이다. 2001~2008년 중앙정보국(CIA) 선임분석관으로 일한 그는 2008년부터 약 3년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국가정보위원회(NIC)에서 한반도 정책에 간여했다. 2011년 공직에서 물러난 뒤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윌슨센터, 미국외교협회(CFR) 등 대표적 외교안보 전문 연구기관에서 일하며, 각종 매체 출연과 기고 활동을 병행해왔다. 학계와 정부, 연구기관을 오가며 경험과 인맥을 쌓는 건 미국 정책 전문가의 전형적인 이력이다.

2024년 7월16일 연방검찰 뉴욕 남부지방검찰청이 공개한 31쪽 분량의 공소장을 보면, 검찰 쪽은 테리와 국정원의 관계를 △주유엔 한국 대표부 공사(관리자-1)가 테리와 접촉한 시기(2013년 6월~2016년 말) △주미 대사관 공사참사관(관리자-2)이 접촉한 시기(2017년 초~2020년 8월) △주미 대사관 공사이자 국정원 미국 지부장(관리자-3)이 접촉한 시기(2020년 8월~2023년 7월) 등 3단계로 나눠 설명한다.

‘관리자-1’과 접촉하던 시기에 테리는 한국 외교부의 입장을 반영한 글을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2014년 6월)하고, 출범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에 지명된 인사와 한국 당국자의 접촉(2016년 12월)을 주선했다. 기고문에 대한 고료와 함께 고급 식당에서 접대받긴 했지만, 전문가 차원의 ‘공공외교’ 성격을 크게 벗어났다고 하기 어렵다. 공소장을 보면, 연방수사국(FBI)은 2014년 11월 테리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임의 수사’ 과정에서 “한반도 전문가 그룹 내에서 (테리의) 높은 위상을 고려할 때, 국정원이 자금 지원을 제안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관리자-2’와 접촉한 시기엔 ‘선물 공세’가 시작됐다. 2018년 말~2019년 초 국정원 고위 간부의 방미를 앞두고 CSIS를 통해 미 국방부, CIA 전·현직 고위인사와의 비공개 면담을 주선해준 대가로 국정원 쪽은 테리에게 돌체앤가바나 코트(2845달러)와 보테가베네타 핸드백(2950달러)을 선물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 아예 현금 오가기도

2020년 8월 ‘관리자-3’이 등장하면서 테리와 국정원은 더욱 ‘대담’해졌다. 양국 당국자와 전문가 등이 참여한 비공개 온라인 회의(2020년 11월 말)를 주최한 대가로 루이뷔통 핸드백(3450달러)을 제공하더니,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부턴 아예 ‘현금’이 오가기 시작했다. 실제 이 무렵 테리가 몸담고 있던 윌슨센터로 한국 대사관 명의의 국정원 자금 1만1천달러가 입금됐다. 검찰 쪽은 “해당 계좌는 테리가 제한 없이 맘대로 쓸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 달여 뒤인 그해 6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테리 등 북한 전문가 5명과 1시간 남짓 비공개회의를 열었다. ‘함구령’에도 테리는 회의 직후 ‘관리자-3’에게 모든 내용을 전달했다.

2023년부터 테리는 한국 정부의 정책을 적극 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는 국정원 요청으로 당시 윤석열 정부가 강조한 △미국의 전략자산 상시 전개 등 확장억제 강화 △한-미 핵협의그룹(NCG) 창설 촉구 등을 뼈대로 한 기고문을 2023년 1월 <포린어페어스>에 실었다. 또 외교부 쪽 요청으로 일본의 사죄·배상 없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제3자 변제안)을 “담대한 발걸음”이라 평가한 칼럼을 3월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했다. 테리는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을 앞둔 4월18일 윌슨센터에서 열린 한-미 동맹 70주년 기념행사 준비를 주도했다. 역시 외교부가 요청했다. 행사 비용으로 윌슨센터 쪽엔 2만5418달러가, 테리한테는 따로 2만6035달러가 입금됐다.

2023년 6월5일 FBI가 테리를 재차 임의조사했다. 그는 수사 내용 대부분을 사실상 인정했다. 그로부터 13개월 뒤에야 테리가 기소된 걸 두고, “11월 대선을 앞두고 각국에 보내는 경고”라거나 “미국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감청 노출(2023년 4월)에 대한 보복”이란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반증도 만만찮다.

표적 수사 음모론 나오지만 ‘글쎄’

뉴욕 남부지검은 맨해튼과 브롱크스 지역을 관장한다. 세계적 기업과 다국적 투자기관 등이 몰린 ‘힘 있는 곳’이다. 2021년 10월 데이미언 윌리엄스 현 지검장이 ‘232년 만의 첫 흑인 지검장’으로 부임한 이후 남부지검은 굵직굵직한 국가안보 사건을 수사해왔다. 로버트 메넨데즈 상원의원 뇌물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는 연방 하원의원(임기 2년) 7선을 한 뒤 2016년부터 연방 상원의원(임기 6년)에 내리 세 번 당선된 민주당 중진이자, 미국 외교정책을 좌우하는 상원 외교관계위원장을 두 차례나 지낸 유력 정치인이다.

남부지검은 2023년 9월22일 메넨데즈 의원과 부인이 이집트 출신 사업가 3명한테서 수십만달러 규모의 현금, 금괴, 고급 자동차 등을 받는 대가로, 공직을 이용해 이들의 사업을 지원하는 한편 이집트·카타르 정부에 유리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메넨데즈 의원과 부인을 기소했다. 메넨데즈 의원은 테리가 체포된 7월16일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고, 7월23일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남부지검은 7월25일에도 중국 당국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파룬궁 활동가들을 단속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국세청(IRS) 직원에게 금품을 건넨 중국계 미국인 2명을 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 등의 혐의로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테리 사건도 이들 사건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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