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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극우, 이대로 대세?

중도 진영 과반 지켰지만 사상 처음으로 약 20% 득표율 얻은 극우 진영… 유럽의회 선거 파장
등록 2024-06-22 18:14 수정 2024-06-24 09:32
2024년 6월13일 이탈리아 남동부 풀리아주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개막 행사에 참석한 정상들이 고개를 들어 공중낙하 공연을 지켜보는 가운데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맨 왼쪽)가 곁에 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게 뭔가 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4년 6월13일 이탈리아 남동부 풀리아주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개막 행사에 참석한 정상들이 고개를 들어 공중낙하 공연을 지켜보는 가운데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맨 왼쪽)가 곁에 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게 뭔가 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4년 6월13~15일 이탈리아 남동부 풀리아주 브린디시의 보르고 에냐치아 리조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참석자의 면면이 오늘의 세계, 특히 유럽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4년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맞붙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형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음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여론조사에서 보합 또는 열세다. 특히 2020년 대선에서 간발의 차로 승리했던 격전지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밀리면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가능성이 점점 높아 보인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의 지지율은 최신 여론조사(<아사히신문>, 6월15~16일)에서 19%까지 추락했다. 내각 지지율도 집권 이후 최저치인 22%까지 떨어졌다. ‘포스트 기시다’ 논의가 본격화할 조짐이다. 임기가 약 3년이나 남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유럽의회 선거 패배 직후 조기 총선 카드를 꺼내들었다. 총선에서 패배하면 남은 임기도 장담하기 어렵다.

2025년 10월 이전에 총선을 치러야 하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집권 9년차에 접어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역시 2025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 추락세로 악전고투하고 있다. 7월4일 조기 총선을 앞둔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집권 보수당이 14년 만에 노동당에 정권을 넘겨줄 것으로 점쳐지면서, 아예 ‘정치적 시한부’ 선고라도 받은 모양새다. 그 사이에서 유독 자신감 넘쳐 보이는 건 유럽의회 선거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리며 정권 기반을 다진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다. 이탈리아가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약 70차례나 정부가 바뀌면서 오랜 기간 ‘정정 불안’의 대명사였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6월6~9일 치른 유럽의회 선거 결과는 예상과 조금 차이가 났다. 그렇다고 예상을 아예 비껴간 것도 아니다. 극우파가 대거 약진하면서 유럽연합(EU)의 정치 지형 자체를 뒤집을 것이란 우려는 일단 기우에 그쳤다. 기존과 마찬가지로 중도파 진영이 득표율 1·2·3위를 기록하며 무난히 의석 과반을 확보했다. 하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주요 국가는 물론 벨기에·헝가리·오스트리아·라트비아 등지에서 극우정당이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 독일과 폴란드 등지에선 극우파가 주류 정당을 밀어내고 득표율 2위로 올라섰다. 한때 ‘경멸의 대상’에 불과했던 극우정당이 명실상부 유럽 정치권의 주류가 됐음을 새삼 일깨워준다. 유럽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

유럽의회에서 주류로 자리잡은 극우

유럽의회(EP)는 유럽연합의 국회 격이다. 유럽연합 차원의 입법권·예산권,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에 대한 관리·감독권, 집행위원장을 포함한 주요직 임명 동의권·불신임권을 갖는다. 5년 임기의 유럽의회 의석(전체 720석)은 27개 회원국에 인구 비례로 할당된다. 투표는 각 회원국이 자체 실시하고, 득표율에 따라 할당된 의석을 배분한다. 무소속 출마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주로 개별 정당이 아닌 유럽의회에서 해당 정당이 참여한 교섭단체(연합정치세력) 차원에서 선거를 치른다. 교섭단체를 구성하려면, 회원국의 최소 4분의 1을 넘는 국가(7개국)에서 당선된 의원 23명을 확보해야 한다. 현 유럽의회(2019~2024년)의 교섭단체는 모두 7개다.

개표가 사실상 마감된 6월18일 오후(현지시각)까지 유럽의회가 집계한 선거 결과를 보면, 중도우파 교섭단체인 유럽국민당(EPP)이 기존보다 14석을 늘린 190석(득표율 26.39%)을 확보하며 원내 1당 지위를 유지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현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EPP 소속이다. 중도좌파 교섭단체인 사회민주동맹(S&D)은 3석이 줄어든 136석(18.89%)을 차지하며 제2당이 됐다. 하지만 중도파인 ‘리뉴유럽’ 쪽은 무려 22석을 잃으며 80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이들 3개 중도세력이 과반 의석을 넘기면서, 그나마 유럽의회의 기존 구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소수파인 좌파연합은 2석을 늘리며 39석(5.42%)을 확보했다. 반면 2019년 선거에서 약진하며 돌풍을 일으켰던 녹색당-유럽자유동맹(EFA) 쪽은 의석을 19석이나 잃으면서 52석(7.22%)까지 떨어졌다. ‘리뉴유럽’과 녹색당 그룹의 빈자리를 차지한 건 극우정당이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속한 정당(이탈리아형제당)이 주도하는 유럽 보수·개혁당(ECR)은 의석을 7석 늘리며 76석(10.56%)을 확보했다. 2022년 프랑스 대선에서 결선 투표까지 올랐던 마린 르펜의 소속 정당인 국민연합(RN)이 주도하는 ‘정체성과 민주주의’(ID) 쪽도 9석이 늘어난 58석(8.06%)을 확보했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진영이 20%에 가까운 득표율을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할당된 의석수가 많은 독일(96석)·프랑스(81석)·이탈리아(76석)의 선거 결과에 관심이 집중된 것도 이 때문이다.

2024년 6월6~9일 치른 유럽의회 선거에서 참패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6월15일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 정상회의 행사장에 도착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4년 6월6~9일 치른 유럽의회 선거에서 참패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6월15일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 정상회의 행사장에 도착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극우정당보다 득표율 낮은 독일 사민당

독일에선 야당인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CDU/CSU) 연합이 주도한 EPP 쪽이 약 30%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하며 29석을 확보했다. 문제는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득표율을 15.9%까지 끌어올리며 기존보다 4석 늘어난 15석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AfD는 애초 양대 극우 진영으로 꼽히는 ID 쪽에 가담했으나 선거를 앞두고 잇단 친나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교섭단체에서 쫓겨난 상태다. 반면 올라프 숄츠 총리가 속한 사회민주당(SPD)이 참여한 S&D는 AfD보다 득표율이 2%포인트 밀린 13.9%를 기록하며 14석을 얻는 데 그쳤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SPD가 치른 전국 단위 선거에서 얻은 최악의 성적표다.

SPD와 함께 집권 연립정부를 구성한 녹색당과 자유민주당(FDP)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녹색당은 2019년 선거 때보다 득표율이 8.6%포인트 떨어진 11.9%까지 추락하면서 의석도 9석 줄어든 12석에 그쳤다. FDP가 참여한 ‘리뉴유럽’ 쪽은 5% 남짓한 2019년 선거 득표율에서 큰 변동 없이 기존 5석을 지키는 선에 만족해야 했다. FDP는 2021년 독일 총선에서 10.7%의 득표율을 기록한 바 있다. <유로뉴스>는 6월10일 “사상 처음으로 16살까지 투표권이 확대된 이번 선거에서 전통적으로 녹색당 지지 성향이 강했던 24살 이하 유권자의 17%가 AfD를 지지했고, CDU/CSU 지지자도 17%를 기록했다. 현 집권세력에 대한 불만을 보수·극우정당 지지로 표시한 것”이라고 짚었다.

2024년 6월18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저항한 프랑스 레지스탕스 기념행사에 참석해 프랑스 국기와 유럽연합 깃발을 배경으로 연설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4년 6월18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저항한 프랑스 레지스탕스 기념행사에 참석해 프랑스 국기와 유럽연합 깃발을 배경으로 연설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정확한 확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 여러분이 전한 우려의 메시지에 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 프랑스에는 평온과 조화로움 속에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분명한 다수파가 필요하다. (…) 유럽 전역에서 극우정당이 약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6월9일 저녁 유럽의회 선거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대국민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짙은 감색 양복에 검은색 넥타이를 맨 모습이 상복을 입은 상주를 연상시켰다. 한편에 나란히 걸린 프랑스 국기와 유럽연합 깃발은 ‘무언의 외침’으로 보였다. 이날 마크롱 대통령은 하원을 해산하고, 6월30일(결선투표 7월7일)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의 소속 정당인 르네상스당(RE)이 참여한 중도파 연합이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파 RN에 참패한 탓이다.

유럽의회 집계 결과, 28살 청년 정치인 조르당 바르델라를 앞세운 RN 쪽은 2019년 선거 때보다 지지율을 10%포인트가량 끌어올리며 32%의 득표율로 프랑스에 할당된 81석 가운데 30석을 거머쥐었다. 마크롱 대통령의 RE가 참여한 리뉴유럽 쪽은 RN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한 14.6%를 득표해 13석을 얻는 데 그쳤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6월11일 “RN 쪽은 유럽의회 선거를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로 규정했다. 강해진 반이민 정서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침공 이후 늘어난 증오범죄, 2년째 지속되는 물가상승 압박 등이 RE의 발목을 잡았다”고 짚었다.

의회 해산 뒤 조기 총선 치르는 프랑스

이탈리아는 어땠을까? 멜로니 총리가 속한 이탈리아형제당은 2019년 유럽의회 선거 때보다 득표율을 4배 가까이(28.8%) 끌어올리며 약진했다. 집권에 성공한 2022년 총선 때보다 2.8%포인트 높은 수치다. 중도우파부터 극우파까지 멜로니 총리 주도 연립정부에 참여한 보수정당의 득표율 합계도 2022년 총선 때보다 4%포인트 높아진 47%를 기록하며 정권 기반을 더욱 탄탄히 했다. 2004년 71.72%를 기록한 이탈리아의 유럽의회 선거 투표율은 20년 만인 2024년 48.31%까지 떨어졌다.

2024년 6월9일 유럽의회 선거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자신이 속한 유럽국민당(EPP) 청사에서 선거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4년 6월9일 유럽의회 선거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자신이 속한 유럽국민당(EPP) 청사에서 선거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유럽연합 내부의 역학관계는 멜로니 총리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유럽연합 정상회의의 지명을 거쳐, 유럽의회 절대다수(과반+1표)의 승인을 받아 선출한다. 유럽연합 정상회의는 27개 회원국 지도자로 구성되는데, 현재 13명이 EPP 소속이다. 여기에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숄츠 독일 총리까지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재선을 지지하고 있다. 유럽연합 정상회의의 지명은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유럽의회의 승인이다. 중도세력 3개 정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면 무난히 통과될 수 있지만, 사정이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2019년 초선 도전 때도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최저기준(374표)에서 단 9표를 더 얻었다.

실제 S&D와 리뉴유럽 쪽은 물론 EPP 내부에서도 ‘이탈표’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프랑스 EPP 소속 유럽의회 의원단은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재선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녹색당 쪽은 2019년에 아예 반대표를 던졌다. 불과 몇 표 차로 당락이 갈릴 수 있다는 뜻이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선거 승리 직후 “좌우 양극단과 맞서 싸울 것”이라면서도, 멜로니 총리 쪽과 연결 고리를 강화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탈리아형제당은 이번 선거에서 유럽의원 24명을 당선시켰다. 10대 중반부터 ‘네오파시스트 청년운동’에 참여한 멜로니 총리가 유럽연합의 새로운 ‘킹메이커’라도 된 모양새다.

멜로니 총리는 6월30일 프랑스 총선 1차 투표 결과를 지켜본 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 지지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동료 극우’인 RN이 승리한다면, 전체 판도를 더욱 흔들 수도 있어서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재선을 위해 ECR 등 극우 진영과 손잡는다면, 역으로 S&D와 리뉴유럽 쪽의 반대에 직면할 수 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어떤 선택을 하든 유럽연합 정치권에서 극우파의 입김은 커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싱크탱크 독일마셜펀드는 6월12일 펴낸 자료에서 이렇게 내다봤다.

유럽연합 ‘킹메이커’로 떠오른 멜로니 총리

“2024년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극우파의 극적인 부상이 점쳐졌다. 하지만 결과는 ‘미묘한 차이’만 만들어내는 데 그쳤다. 유럽 전역에서 갈수록 불안정성이 높아지면서 각국에서 극우의 약진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유럽 대륙 전체를 놓고 보면 상황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극우파가 ‘정치적 일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자체가 유럽 정치가 구조적으로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 결과는 우려했던 ‘지진’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 파급 효과는 향후 상당 기간 유럽 전역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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