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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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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호감 대결’ 미 대선 출발… ‘사법 리스크’에도 트럼프 약진

91건 기소됐는데도 지지율 상승… 바이든은 아프리카계·여성 등 전통 지지층 잃으며 하락세
등록 2023-12-27 13:35 수정 2023-12-27 17:12
2023년 10월2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미국 뉴욕 맨해튼의 법원 앞에서 그의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REUTERS

2023년 10월2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미국 뉴욕 맨해튼의 법원 앞에서 그의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REUTERS

미국은 ‘선거의 나라’다. 대통령선거 다음날부터 2년 뒤 중간선거 준비가 시작되고, 중간선거 다음날부터 2년 뒤 치를 대통령선거 대비를 위한 시동이 걸린다. 2024년은 대선의 해다. 1월15일 아이오와주에서 첫 당원대회(코커스·당원만 참여 가능)가, 1월23일 뉴햄프셔주에서 예비선거(프라이머리·당원과 유권자 모두 참여 가능)가 치러지면서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대장정이 시작된다. 3월5일은 이른바 ‘슈퍼 화요일’이다. 캘리포니아·매사추세츠 등 14개 주에서 두 당의 경선이 치러진다. 후보 선출을 위한 민주당 대의원의 30%, 공화당 대의원의 34%가 이날 결정된다.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사실상 이날 대선 후보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콜로라도주 대법원 “트럼프는 후보 경선 참여 못해”

미국 대선은 특정 후보가 아닌 대통령 선거인단을 뽑는 ‘간접선거제’로 치러진다. 인구 비례에 따라 각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해당 주에서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모두 차지하는 ‘승자독식’ 방식이다. 당내 경선도 마찬가진데, 경선으로 선출된 대의원들이 전당대회에 모여 대선 후보를 공식 추인한다. 공화당은 7월15~18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민주당은 8월19~22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각각 전당대회를 열 예정이다. 본선은 11월 첫째 화요일에 치러진다. 2024년 11월5일이다.

2023년 12월19일(현지시각) 콜로라도주 대법원이 2024년 미국 대선전이 본격화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ap통신> 등 미국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이날 대법관 7명 가운데 4명이 낸 다수의견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콜로라도주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고 판결했다. 법원의 판단은 간단한 삼단논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2021년 1월6일 대통령선거 결과를 공식 추인하는 절차를 밟고 있던 의회 의사당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난입하는 내란 사건이 벌어졌다. 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 사건에 연루됐다고 봤다. 둘째, 미국 수정헌법 제14조 3항은 내란에 연루된 사람은 공직을 맡을 수 없다고 규정한다. 셋째, 따라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수 없으며 본선 출마를 위한 콜로라도주 공화당 경선에도 참가할 수 없다.

콜로라도주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은 ‘슈퍼 화요일’에 치러진다. 법원은 경선용 투표용지 인쇄일 전날인 2024년 1월4일까지 판결을 유예했다. 주대법원의 판결은 연방대법원에서 뒤집을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쪽도 “희대의 정치적 판결”이라 비난하며, 즉각 연방대법원에서 다시 다툴 것이라고 밝혔다. 이럴 경우 콜로라도주 대법원의 판결은 연방대법원의 확정판결 전까지 자동으로 유예된다. 연방대법원 대법관 9명 가운데 닐 고서치 등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3명을 포함해 모두 6명이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성향이다.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우호적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이래저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콜로라도주 경선에 불참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콜로라도주는 전형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2020년 대선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13.5%포인트 차로 압도했다. 콜로라도주에서 대선 본선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선 타격이 전혀 없다는 얘기다. 공화당 당내 경선도 마찬가지다. 퀴니피액대학이 2023년 11월1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64%의 지지율을 기록해, 2위인 론 드샌티스 후보(16%)와 3위 니키 헤일리 후보(9%)를 압도했다. 콜로라도주 대법원의 판결을 두고 “상징적 결정일 뿐”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 옹호한 후보도 덩달아 지지율 상승

되레 정치적으론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흐르고 있다.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인 12월20일 발표된 퀴니피액대학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내 지지율은 67%로 높아졌다. 지지층이 더욱 똘똘 뭉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판결 직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옹호했던 헤일리 후보의 지지율도 11%로 높아진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직접 언급을 피했던 드샌티스 후보의 지지율은 5%포인트 떨어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에 대한 공화당 내부의 반응을 단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3년 12월17일 네바다주 리노에서 선거유세를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3년 12월17일 네바다주 리노에서 선거유세를 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직면한 사법 리스크는 크게 세 종류다. 기소된 혐의만도 91건에 이른다. 첫째, 2020년 대선과 개표 과정에 개입했다는 혐의다. 둘째, 퇴임 뒤 백악관에서 기밀문서를 무단 반출했다는 혐의다. 셋째, 사문서위조 등 기업 활동과 관련한 혐의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연방 법원에 기소된 혐의는 모두 44건에 이른다. 퇴임 뒤 무단 반출했다가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사저에서 발견된 핵무기 정보를 포함한 기밀문서 관련 혐의가 40건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1년 1월6일 의사당 난입 사건 관련 혐의 4건에 대해서도 연방 법원에 기소됐다.

또 성추문에 연루된 ‘포르노 스타’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지급한 합의금 13만달러 마련을 위한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 사문서위조 등 34건의 혐의로 뉴욕주 법원에 기소됐다. 2020년 11월 대선 당시 조지아주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압력을 행사한 혐의 등 13건에 대해선 조지아주 법원에 기소됐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조지아주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1만1780표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 내용이 담긴 음성파일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함께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등 18명이 기소됐는데, 이 가운데 4명이 이미 검찰과 플리바게닝(유죄 인정 조건부 형량 감경)에 합의한 상태다. 증거가 쌓이고 있다.

그러니 트럼프 전 대통령 입장에서 2024년 대선은 ‘감옥 안 가기’가 핵심이다. 설령 그가 대선 전에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실제 수감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항소 절차가 11월 안에 끝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대선 전에 수감되는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옥중 출마’가 가능하다. 당선된다면 ‘셀프 사면’을 하면 된다. 이 모든 시나리오에 설득력을 더하는 것은 여론 동향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법 리스크를 역으로 활용해 자신을 ‘사상 최악의 정치 탄압 희생자’로 포장했고, 이에 부응해 지지층이 결집했다. 사법 리스크를 앞세워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격하려던 공화당 내부 경선 주자들도 여론의 압박에 밀려 이를 카드로 활용하지 못했다. 경선 구도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독주 체제로 변해갔고, 그에 대한 검찰의 추가 기소가 있을 때마다 지지율도 함께 뛰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사법 리스크가 최고의 선거운동 카드가 된 셈이다.

바이든 직무수행 긍정 평가 무당파에서 최저치 경신

본선에선 어떨까?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공식화한 2023년 4월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줄곧 우세를 보여왔다. <뉴욕타임스>가 12월19일 내놓은 최신 조사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2%포인트 차로 간만에 앞섰지만, 같은 날 발표한 <시엔비시>(CNBC)와 여론조사 전문기관 모닝컨설트 조사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각각 6%포인트와 2%포인트 차로 우위를 유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재입성 가능성이 아예 없지 않다는 뜻이다. 미국 내부 정치 상황을 들여다보면, ‘가능성이 높다’는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미국 유권자 47%가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 싫다’고 답했다. 2016년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둘 다 싫다는 응답은 20%에 그쳤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1월6일 인터넷판에서 이렇게 전했다. 실제 2024년 미국 대선은 이미 ‘비호감 대결’ 구도로 굳어지고 있다. 12월18일 발표된 바이든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를 묻는 최신 여론조사에서 긍정 평가는 34%에 그쳤다. 특히 무당파층에선 28%를 기록하며 집권 뒤 최저치를 경신했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 기반인 아프리카계, 라틴계와 여성 유권자층의 지지율도 떨어지고 있다. 10월7일 가자 전쟁 이후엔 바이든 행정부의 대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급속도로 높아지면서 강력한 민주당 지지층이던 아랍계 유권자 지지율도 뚝 떨어졌다.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 대통령의 강고한 지지기반이었던 청년층의 이탈도 심상찮다. <엔비시>(NBC) 방송이 2023년 11월10~14일 위스콘신주에서 29살 이하 청년층 유권자를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한테 4%포인트 뒤졌다. 2020년 대선 때는 바이든 대통령이 20%포인트 이상 앞선 바 있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60%는 ‘이스라엘에 대한 추가 자금·군사 지원에 반대한다’고 했다. 미 정치권 안팎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승산이 있으려면 유권자가 ‘최악’ 대신 ‘차악’을 선택하는 것뿐”이란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내부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출마를 접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3년 12월20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경제정책 관련 연설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3년 12월20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경제정책 관련 연설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세계 각국 정부도 바삐 계산기를 두드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기후변화를 “사기꾼이 발명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미국은 다시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할 것이다. 친러시아 성향을 보여온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의 대외 개입에 비판적인 터라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로선 우호적 조건으로 휴전을 성사시킬 기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대서양 동맹에 회의적이었다. 그의 재집권은 ‘전략적 독자성’을 중시해온 프랑스 등이 미국과 거리 두기에 나설 명분이 될 수 있다. 집권 1기 때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이어가면, 가자 전쟁으로 고조된 정세 긴장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에 바빠진 각국 정부

미국 중심주의와 보호무역 정책도 대폭 강화할 전망이다. 중국뿐 아니라 유럽연합과 한국·일본 등 동맹국도 공세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2023년 8월 “모든 수입품에 현행보다 3배 이상 높은 10% 일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첨단 산업 분야 등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 집중했던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집권 2기는 다시 무역과 관세 문제로 초점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미-중 갈등이 증폭될 수도, 극적인 타협이 이뤄질 수도 있다. 타협이 이뤄지면 ‘대만 방어’를 강조해온 미국의 안보정책도 달라질 수 있다. 반면 미-중 정면충돌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주변에 포진한 극단적 반중 인사들 탓이다. 이들이 중국을 자극하는 행보를 이어가며 정권 차원의 타협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신호를 지속할 경우, 자칫 중국이 ‘대만 침공’이란 오판을 할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에서 온 불법 이민자가 미국의 피를 더럽히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3년 12월19일 아이오와주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불법 이민자들은 건강할 수도 건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이 질병을 안고 와 미국에 퍼뜨릴 수도 있다”고도 했다. 정치전문 매체 <액시오스> 등은 이를 두고 “아리안족의 순혈주의를 강조한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 등장하는 문구를 연상시킨다”고 짚었다.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히틀러가 쓴 책은 읽은 적도 없다”고 맞받았다. 아뿔싸, 또 시작인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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