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자>의 일어판 출간은 또 하나의 ‘세 여자’ 스토리다. 원작자 외에 번역자 양징자씨, 출판사 대표 기타하라 미노리가 모두 여성이다. 재일동포 2세인 양징자씨는 일본에서 지난 30년간 ‘위안부’ 이슈를 주도해온 인물이고, 기타하라 대표는 일본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운동가다.
플라워시위
기타하라 대표는 2019년 4월부터 시작해 5년째 매달 11일에 저녁 7시부터 한 시간 동안 도쿄역 광장에서 성폭력 반대 시위를 주도해오고 있다.
2019년 3월 한 달 동안 성폭력 사건 판결 4건이 있었는데, 12살 소녀와 19살 여성이 친부에게 장기간 성폭행당한 사건을 비롯해 4건 모두 무죄판결이 났다. 그중 3건은 재판부가 “항거불능이 인정되지만 합의가/동의가 있었다고 가해자가 느꼈다”는 것이 무죄 판단의 취지였다. 일본 여성계는 분노했다. 기타하라 대표는 4월11일 도쿄역 광장에서 ‘오픈토크’ 시위를 했다. 애초 8명이 발언하고 마칠 예정이었는데, 시위 참가자가 한 사람씩 나와 자신의 경험을 폭로하면서 집회가 몇 시간 이어졌다. 기타하라 대표는 다음달인 5월11일에 다시 모이자 하고 해산했는데 그것이 월례 행사로 자리잡았다.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에는 일본 전국 47개 도/도/부/현(都道府県)에서 각기 연대집회가 열렸다. “한국을 많이 방문하고 촛불시위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거기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지요. 하지만 촛불 대신 꽃 한 송이를 들고 모이기로 했어요.” 그래서 ‘플라워시위’로 불리게 됐다.
2023년 9월11일 도쿄역 광장에서 53번째 플라워시위가 열렸다. 이날 시위에는 25명 정도가 참가했는데, 아즈마북스의 편집자 오시마 후미코가 진행했다. 오시마는 “사전에 허락받은 매체 외에 개인적인 사진촬영은 금지입니다. 얼굴이 찍혀도 되는 분은 도쿄역 편에 서주시고 거부하는 분은 일본 황궁 방향으로 서주세요”라고 안내했다.
러브피스클럽
기타하라 대표는 1989년 대학에 입학했고 국제금융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여성문제에 눈뜨면서 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1995년 대학원까지 마치고 나와, 1996년 ‘러브피스클럽’을 창업했다. 여성의 성생활을 도와주는 제품, 이른바 ‘성인용품’ 가운데 여성용품만 파는 회사다. 바이브레이터, 마사지오일, 생리컵 등. “성폭력을 반대하고 성폭력에 항의하는 것과 자기 몸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섹스의 즐거움을 적극 추구하는 것은 같아요.” 일본은 성인용품숍이 많은데 거의 남성 용품이다.
아즈마북스
여성문제 캠페인에 출판이 필요했다. 좋아하는 책이 절판되면 그 책을 내가 내면 어떨까 생각했다. 구체적 계기는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그림을 가르친 선생님의 수기인 <못다 핀 꽃>의 일어판을 내자고 양징자 선생이 제안해온 것. 그래서 2021년 출판사 등록을 했다. 아즈마북스라는 이름은 한국의 ‘아줌마’에서 따왔다. 양징자 선생이 두 번째로 번역하겠다고 제안한 책이 <세 여자>였다. 기타하라 대표는 그동안 양 선생과 ‘위안부’ 지원 활동을 함께해왔다. 지금까지 아즈마북스에서 나온 책 13권 가운데 10권이 한국책 번역본이다. 직원 22명 중 아즈마북스는 편집자 한 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러브피스클럽 쪽이다.
양징자씨 가족은 제주도에서 살았는데 할머니가 생활고 때문에 일본으로 넘어와서 기반을 잡고 그다음 할아버지가 오고 1943년에 아버지도 건너왔다. 양씨는 홋카이도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도쿄로 왔고 조선학교에 다녔다. 지금은 조선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경우가 재일동포의 1%인데 그때는 10%였다. “일본 학교 나오면 한국인의 정체성이 없다. 조선학교 출신 중 고지식한 사람들이 총련으로 가고 비뚤어진 사람들이 민단으로 간다.” 그가 농담 섞어 한 말이다. 그는 1992년 ‘위안부’ 운동을 시작하면서 할머니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한국으로 국적을 바꿨다.
<세 여자> 번역
2018년 한국에 왔을 때 구해서 읽었는데 재미있었다. 1980년대에 북한 최고인민회의 명단에서 허정숙의 이름을 보고 누군가 궁금했다. 조선학교 다닐 때 박헌영을 종파분자라고 배우고 미워했던 것에 대한 죄의식이랄까 연민 같은 것도 있었다. 또한 그때까지 아는 한국의 현대사에는 김구, 김규식, 여운형 등 남자들 이름뿐이었는데 여성 중심의 역사를 소개하고 싶었다. 이는 옛날이야기도, 바다 건너 한반도만의 역사도 아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에 분단의 기원이 들어 있다. 그것은 일본의 역사이기도 하고 지금 일본인이 꼭 읽어야 하는 역사다.
‘위안부’ 문제
1990년 11월 서울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결성되고 12월에 윤정옥 대표가 일본에 와서 강연회를 했다. 강연회에 300명이 모였다. 그때 모인 동포 여성들이 우리가 뭘 해보자고 해서 만든 것이 ‘종군위안부문제 우리여성네트워크’였다. 대표 없이 서로 역할을 나눠서 하는 수평적 조직이었는데 양징자씨는 언론 담당이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도쿄법원에 소송을 걸었을 때 위안부 관련 증언을 하는 집회를 열고 신고 전화를 개설했는데 숨어 있던 피해자들이 나왔다. 1993년에는 ‘재일 조선인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송신도 할머니의 재판은 1993년 시작해 2003년 패소로 끝났는데, 양징자씨는 그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제작했다. 홋카이도에서 규슈까지 ‘위안부’ 운동단체가 약 30개이고 그 연합기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전국행동’인데, 그는 2010년 출범부터 지금까지 공동대표를 맡아오고 있다. 2017년 일본에서 다음 세대의 교육과 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희망씨앗기금은 양징자씨가 대표를, 기타하라 대표가 이사를 맡고 있다.
“바른 역사인식을 젊은 세대에 계승시키자는 생각에서 ‘희망씨앗기금’을 만들었다. 그 회원으로 활동하는 젊은 친구 세 명이 이번 강연회에 친구들, 또 친구의 친구들을 데리고 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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