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그루밍’ 범죄, 지인의 사진이나 영상을 성적으로 합성하는 ‘지인 능욕’ 범죄, 성착취물을 제작·배포하는 범죄 등만 처벌되면 온라인 공간은 여성에게 충분히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을까? 답은 “아니요”다. 트위터, 댓글 등 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게시하고 공유되는 글, 즉 ‘텍스트’(글자)를 기반으로 하는 여성혐오적인 행위도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을 위협하고 배제하며 침묵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실제로 2019년 영국의 조기 총선을 앞두고 여러 여성 정치인은 모욕적인 협박과 공격 등을 이유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오프라인 공간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여성 정치인을 겨냥한 위협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앞서 국제앰네스티 영국지부가 2017년 총선을 앞두고 여성 의원을 향한 트위터 게시글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여성 하원의원이 총선 전 약 5개월(1월1일∼6월8일) 동안 받은 모욕적인 트위트는 2만5688건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161.6건꼴이다. 하지만 ‘이미지 기반 학대 행위’의 심각성이 최근 법적인 차원에서 다뤄지기 시작한 데 견줘 이런 게시글은 ‘법적 규제가 필요한’ 여성혐오적인 행위로 충분히 논의되지 않는다.
이처럼 온라인에서 댓글과 게시글 등을 이용해 여성을 괴롭히는 사례를 한국과 영국의 연구진이 서로 공유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마련됐다. 2023년 3월8일 영국 밀턴케인스의 ‘오픈유니버시티’(Open University)에서 열린 ‘여성 대상 온라인 괴롭힘 감시소’(Observatory on online violence against women) 콘퍼런스에서다.
오픈유니버시티에 마련된 이 ‘감시소’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여성 대상 온라인 폭력 문제를 세계적으로 조사하고 다양한 학문의 관점에서 교차 탐구하기 위해 마련된 일종의 연구기관이다. 이곳 로스쿨에 재직 중인 킴 바커, 올가 유라시 교수가 이끌고 있다. 이 기관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함께 2021년 영국 연구혁신기구(UKRI)가 후원하는 ‘한-영 인문사회과학 연결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2022년 3월부터 약 1년6개월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통해 양국 연구자 간 교류를 활성화하고, 국제 학술대회 등을 개최한다.
이날 콘퍼런스에 참석한 김유향 박사(북한대학원대학교)는 한국의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발생한 괴롭힘의 역사적 움직임을 짚었다. 김 박사는 “2001년 부산대 페미니즘 웹진 <월장> 편집인 등에 대한 인신공격과 협박 등으로 <월장> 게시판이 폐쇄된 것에서 시작해 2021년 여성형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에게 성희롱 발언이 쏟아져 서비스가 일시 중단되는 일까지 온라인 공간의 여성혐오는 오랜 역사적 맥락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의 주요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는 대부분 남성 중심적인 공간으로, 여성은 상대적으로 공격과 괴롭힘 등으로부터 ‘안전하고 폐쇄적인’ 소수의 커뮤니티, 또는 ‘여성 전용’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특성을 보인다는 점도 짚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 지원을 받아 김창욱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와 신우열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조사한 ‘여성기자 온라인 괴롭힘에 관한 저널리즘 사회학적 연구’(2022년) 결과도 이 자리에서 공유됐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똑같은 기사를 작성해도 여성기자와 남성기자가 경험하는 혐오의 유형, 빈도, 정도가 다르”고, 여성기자는 “(통상의) 남성기자가 겪지 않는 ‘외모 비하’와 ‘강간 협박’ 같은 괴롭힘”을 겪는다. 가장 흔한 유형의 괴롭힘은 ‘악성댓글’로 욕설, 외모 품평, 성희롱성 댓글이 주를 이룬다. 특히 “성적인 괴롭힘을 담은 댓글의 경우 성희롱성 댓글을 다는 분위기나 흐름이 조성되면 (다른 누리꾼들이) 집단으로 몰려와 댓글을 다는 경향”을 보이고, 이는 “‘강간 문화’와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런 행위에 대해 조직 차원의 대처 움직임은 거의 없다. 연구진은 “한국 여성기자들 대부분 온라인상에서 흔적을 지우거나 개인 신상정보를 통제하고, 공격이 예상되는 주제에 대해선 취재를 회피하는 등 주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영국도 크게 다르진 않다. 바커와 유라시 교수는 “온라인 여성혐오는 일반적으로 소셜미디어의 ‘텍스트 기반 학대’를 통해 표현되는데, 이런 문제는 여전히 법적인 규제 범위 바깥에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두 연구진은 온라인 괴롭힘 문제와 관련해 ‘사법적 관할권의 문제’와 ‘플랫폼 제공자 규제’가 핵심 요소라며 “플랫폼 등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의 특성상 물리적 국경을 넘어 여러 법적 관할권에서 운영되기 때문에 (전통적인 수사 방식처럼) 모든 곳에서 동일하게 증거를 수집하기 매우 어렵다. 또 익명화된 계정을 사용하는 경우 욕설하는 사용자를 식별할 수 없는 점도 법적인 대책을 마련할 때 고민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더 나아가 “현재 ‘혐오범죄’(hate crime)를 규정할 때 (인종, 장애, 성적 지향 외에) ‘젠더’가 삭제돼 여성이 겪는 피해가 보이지 않는다”며 “혐오범죄의 범주에 젠더, 즉 ‘여성혐오’를 포함하는 방향의 법 개정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한국에서도 여성혐오의 관점에서 온라인 괴롭힘 문제를 다루거나 법적인 규제를 고민하는 움직임은 크지 않다. 2022년 오픈유니버시티에서 열린 국제 학술대회에 참여해 여성혐오 표현 사용이 온라인에서 어떻게 ‘놀이’가 되는지, 또 이러한 표현을 규제하는 데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등을 발표한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언론사·포털 댓글 등을 방치하지 말고 관리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지 한참 됐는데 (실질적인) 대책이 잘 안 보인다. (관련 논의가) 진전이 더디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통신매체 등을 활용한 폭력과 집단 괴롭힘 행위를 처벌하는 ‘폭력행위처벌법’ 개정안(이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언어를 이용해 발생하는 성폭력과 성적 괴롭힘을 ‘성폭력처벌법’에 별도로 정의하고 처벌 규정을 명문화한 개정안(강선우 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돼 있으나 논의에 별다른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여성 연예인이 악성댓글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2019년 포털의 연예·스포츠 기사 댓글창이 사라졌지만, 좀더 광범위한 범주에서 여성 대상 온라인 괴롭힘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윤지소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제협력센터장은 “2021년 제65차 유엔여성지위위원회(CSW)에서 정치 영역의 여성 대상 폭력 문제를 논의한 것처럼 정치·언론 분야, 즉 공적인 영역의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가 최근 세계적으로 굉장히 심도 있게 다뤄지는 추세”라며 “한국에서도 더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밀턴케인스(영국)=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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