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셋, 둘, 하나, 해피 뉴 이어!” 2022년 12월31일 밤 12시(현지시각), 파리·런던·베를린 등 유럽 주요 도시에서 카운트다운 종료와 함께 화려한 불꽃놀이와 레이저쇼가 밤하늘을 수놓았다. 같은 시각, 우크라이나의 사정은 전혀 달랐다. 이날 밤부터 2023년 1월1일 새벽까지 수도 키이우에는 폭죽과 환호가 아니라 공습 경보음과 폭발음이 잇달았다.
2023년 새해 첫날, 우크라이나 공군 사령부는 “12월31일부터 1월1일까지 밤새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역 30여 곳에 이란제 샤헤드 자폭 드론과 미사일을 결합한 심야 공습을 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모두 45대의 드론을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군의 주요 공격 목표는 수도 키이우였다. 현지 매체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키이우 민방위청을 인용해 1월1일에만 32개의 러시아산 항공 목표물이 자국군 방공 부대에 의해 격추됐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도 공습 사실을 확인했다. 1월1일 러시아 국방부는 “2022년 12월31일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전투용 무인 드론 생산과 관련된 군수산업 시설들을 겨냥해 장거리 초정밀 공중 발사 무기 공격을 벌였다”고 발표했다. 국방부 대변인은 “이번 조처는 우크라이나 정권이 가까운 미래에 러시아에 테러 공격을 하려는 계획을 좌절시켰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은 1월2일에도 드론 공격을 이어갔다.
군사시설 공격이라는 러시아의 주장과 달리, 우크라이나 쪽이 밝힌 피해 상황은 민간인에 집중됐다. 키이우에선 민간인 거주지역에 미사일이 날아들어 호텔 2곳과 주택 수십 채가 파손되고 1명이 숨졌다. 또 남부 헤르손에는 어린이병원에 포탄이 떨어져 1명이 숨지는 등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4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키이우에서 격추된 이란제 드론의 잔해에는 러시아어로 갈겨쓴 ‘해피 뉴 이어’라는 붉은색 글씨가 뚜렷했다. 낙서 위에는 선물 꾸러미와 폭탄을 줄로 연결한 그림이 그려졌다. 키이우 지방경찰청장 안드리 네비토프는 드론 잔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이것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최전방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에서 발견됐다”며 러시아를 ‘테러국가’라고 비난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트위터에 “러시아의 대규모 미사일 공격은 심지어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시설도 아닌 민간인 거주지역을 고의로 겨냥했다”며 “러시아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퇴출돼야 한다”고 썼다.
러시아의 ‘폭탄 선물’ 비아냥은 악명이 높다. 1939년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소련은 폴란드를 독일과 분할 점령한 데 이어 서부 접경국인 핀란드를 전격 침공하면서 ‘겨울전쟁’이 벌어졌다. 러시아의 군사력은 핀란드를 압도했지만, 영하 40℃까지 내려가는 혹한을 이용한 핀란드 스키 부대의 완강한 저항과 게릴라 전술에 고전했다. 당시 소련군의 무차별 소이탄 폭격에 국제사회의 비난이 커지자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소련 외무장관은 “원조용 빵을 던져줬다”고 비아냥거렸다. 핀란드인들은 “몰로토프야, 이거나 마셔라”라며 소련군 탱크에 화염병을 던지며 맞섰다. 화염병에 ‘몰로토프 칵테일’이란 별칭이 붙은 유래다.
새해 첫날 러시아의 키이우 공습은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으로 대규모 사상자가 나온 것에 대한 보복 공격으로 보인다. 2023년 1월2일 러시아 국방부는 “12월31일에서 1월1일 사이에 우크라이나가 도네츠크주 마키이우카의 러시아군 임시 숙소를 (미국산) 하이마스 미사일로 공격해 63명의 군인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1월4일 러시아 관영 <스푸트니크> 통신이 사망자가 추가로 확인돼 모두 89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폭사한 군인들은 모두 갓 징집된 신병이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이 400여 명 숨지고 300여 명이 다쳤다고 주장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격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해를 넘겨 1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두 나라의 출구전략도 아직 불분명하다. 무엇보다 전쟁에 대한 양쪽의 상이하고 확고한 명분이 평행선을 달린다. 푸틴은 서방의 안보 위협을 내세워 뽑아든 칼을 최소한의 실리와 명분도 없이 거둬들이기가 쉽지 않다. 실속 없는 종전은 푸틴의 권력 기반까지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12월26일 푸틴 대통령은 국영방송 <로시야 1> 인터뷰에서 “우리는 관계 당사국 모두와 받아들일 수 있는 해법에 대해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12월28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로 합병된 4개 지역과 관련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평화 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빼앗긴 땅을 한 치도 내줄 수 없으며 막대한 인명 피해와 재산상 손실 보상과 안전보장을 확약받겠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종전 조건으로 △핵 안전 △식량·에너지 안보 △포로 석방 △러시아군 철수와 적대행위 중단 △정의 회복 △종전 공고화 등 10개 항을 제시한 바 있다. 전황은 교착상태지만, 시간은 우크라이나 편으로 기운 형국이다.
2022년 12월3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매년 연말께 해오던 연례 기자회견을 10년 만에 취소하고 러시아 남부군 사령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신년사를 발표했다. 그는 “올해(2022년)는 어렵지만 필요한 결단, 러시아의 완전한 주권과 강력한 연대를 향한 중요한 전진의 해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도덕적, 역사적 정당성은 우리한테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같은 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가 벌인 이 전쟁은 러시아의 거짓 선전이 말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의 전쟁도, 역사적인 것도 아니다. 이건 오직 한 사람(푸틴)의 종신집권을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국제사회의 제재가 이어지면서, 푸틴 대통령의 고립감과 위기감도 점점 더 커지는 분위기다. 2022년 12월30일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패배에 익숙하지 않은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양상)이 꼬이면서 갈수록 고립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외교가에 정통한 러시아 정부 관리는 이 신문에 “푸틴이 친구들을 잃고 있다고 느낀다. 그가 진지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루카셴코(벨라루스 대통령)가 유일하며, 나머지는 필요할 때만 그를 만난다”고 말했다. 이 관리는 “푸틴의 유일한 계획은 우크라이나의 핵심 인프라를 끊임없이 공습해 서방과 우크라이나에 (평화) 협상을 시작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최고위 관리들과 선이 닿는 러시아의 한 부호는 “푸틴은 고립돼 있으며 사람들과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극소수 측근만 있으며 그조차도 쪼그라들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푸틴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화상회담을 하며 중-러 결속을 과시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는 양국이 온도 차이를 보였다. 푸틴은 시진핑의 3연임을 축하하며 “우리는 내년(2023년) 봄에 시진핑 주석의 모스크바 방문을 기대한다. 이는 세계에 양국 관계의 우호를 과시할 것”이라며 정상회담 초청 의사를 밝혔다. 반면 시진핑이 “중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분쟁을 외교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에 주목하며 그 방법을 추천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중국은 앞으로도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을 견지하며 국제사회에서 시너지를 창출하고 우크라이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할 것”이란 논평도 달았다.
앞서 12월19일 푸틴은 벨라루스를 방문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루카셴코가 옆에 앉은 푸틴과 기자석을 번갈아 바라보며 냉소 짙은 농담을 던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격과 푸틴의 처지를 고백하는 극적인 장면이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두 사람 모두 공동 침략자다. 지구에서 가장 해롭고 불량한 사람들이다. 논쟁거리는 단 하나, 누가 더 나쁘냐일 뿐이다. 우린 둘 다 똑같은 불량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뿐이다.” ▶동영상=Belarus dictator Lukashenko admits he and Putin are 'co aggressors' and 'toxic people'
2022년 12월9일에는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연례 정상회담을 열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두 나라가 냉전시대에도 각별한 우호관계를 유지했고 2000년부터는 매년 12월 정상회담을 열어온 관례에 비춰 매우 이례적이다. 그동안 두 나라의 정상회담이 취소된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0년 한 차례뿐이었다. 인도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양쪽의) 우호관계를 널리 알리는 것은 모디 총리에게 이롭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12월1일 모디 총리는 러시아 경제전문지 <콤메르산트>에 ‘우리 시대는 전쟁의 시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제목의 기고를 실었다. 그 석 달 전인 2022년 9월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모디 총리가 푸틴에게 “지금은 전쟁의 시대가 아니다. 세계를 하나로 묶는 건 민주주의와 대화”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인도는 2023년 9월 뉴델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이다. 회담 주제는 ‘하나의 지구, 하나의 가족, 하나의 미래’로 정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푸틴의 개인적 경험에서 구축된 냉전적 세계관과 직결돼 있다. 푸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사상 최장기 포위전이자 최악의 섬멸전을 벌인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이다. 독일군은 1941년 9월부터 1944년 1월까지 872일 동안이나 레닌그라드를 포위해 포탄을 퍼부었다. 철저히 고립된 레닌그라드에선 최소 100만 명의 민간인이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었다. 푸틴은 종전 이후인 1952년생이지만 참혹한 전쟁의 상흔은 폐허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도 깊은 화인을 남겼다.
푸틴은 23살이던 1975년 옛소련의 공산당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에 들어가 그곳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동독의 KGB 지부 책임자였던 푸틴은 홀로 사무실에서 기밀 서류를 불태우며 냉전 종식을 실감했고 소비에트 제국의 몰락을 예감했다. 본국으로 돌아온 푸틴은 1990년 정계에 입문해 승승장구했다. 1999년 8월엔 총리직까지 올랐다. 20세기의 마지막 날인 1999년 12월31일, 푸틴에게 다시 없을 기회가 찾아왔다. 알코올 중독과 부패 의혹으로 궁지에 몰린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전격 사임하고 푸틴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지명했다. 이듬해 3월 대선에서 무소속 후보 푸틴은 무소불위였던 공산당의 후보를 큰 표차로 누르고 정식으로 권력을 움켜쥐었다. ‘푸틴의 시대’는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열렸다.
그러나 푸틴의 머릿속 시계는 20세기 냉전 종식과 함께 작동을 멈춘 듯하다. 2005년 4월, 푸틴은 대국민 연설에서 “소련의 붕괴는 금세기의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한탄했다. 옛소련에 대한 푸틴의 향수는 엷어지는 법이 없었다. 2021년 12월에도 푸틴은 국영방송 <로시야 1>의 특집 프로그램 ‘러시아, 새로운 역사’에 출연해 “소련의 붕괴는 역사적인 러시아의 종말이었다. 대부분 러시아 국민에게 비극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두 달 뒤인 2022년 2월, 푸틴의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했다.
우크라이나는 옛소련 시절 중공업 생산시설과 핵무기가 중점 배치된 소비에트 연방국이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흑해를 통해 지중해로 나아갈 수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푸틴이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 분리주의 세력을 앞세운 대리전쟁을 벌이고 우크라이나의 흑해 연안 영토인 크림반도를 빼앗은 이유다. 푸틴은 러시아에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노선과 나토 가입 추진을 ‘턱밑에 칼’이 들어오는 안보 위협으로 인식했다. ‘나토의 동진 확대’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이 됐다. 위대한 러시아의 부활, 나아가 ‘유라시아 연합’의 부흥을 꿈꾸는 푸틴에게 “역사, 문화, 혈연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인 우크라이나 합병 시도는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동시에 최악의 패착이 되고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은 시리아 난민 사태보다 더 심각한 대량 난민 위기를 낳고 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목표물뿐 아니라 발전소, 상·하수도 시설 같은 사회기반시설과 주택·병원·학교 등 민간인 시설에까지 무차별 공격을 퍼부으면서 많은 도시가 폐허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2022년 12월 마지막 주 현재 외국으로 피란한 우크라이나 국민이 15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했다. 전쟁이 시작된 지 10개월 만에 우크라이나 난민이 시리아 내전 10년 동안 발생한 난민 550만 명의 세 배에 육박할 만큼 급증했다. 전체 인구 4350만 명의 35.6%가 난민인 셈이다. 파괴된 삶터를 떠났으나 국경은 넘지 않은 국내 실향민은 650만 명, 긴급한 인도주의적 구호 대상자도 1770만 명에 이른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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